추석 연휴 동안 넷플릭스 드라마 DP를 몰아서 봤다. 드라마가 궁금했는데 원작도 보고 싶었고, 마음과는 다르게 원작을 먼저 볼 기회는 없었다. 결국, 드라마를 잠깐 봐야지 했다가 시즌1을 한꺼번에 다 보게 되었다. 그동안 부드러운 이미지로 굳혀 있던 배우 정해인이 이런 역할도 하는구나 싶어서 살짝 놀란 것도 잠시, 군대에서의 탈영이 이렇게나 많았던가 싶어서 더 놀라고야 말았다. 주변 사람들 통해서 군대 이야기는 종종 들어왔으나, 그 실상을 직접 경험하지 못한 나는 그저 이야기로 듣고 말았을 뿐이고, 도대체 무슨 내용인지 궁금해서 보다가 갑자기 큰 조카가 생각이 났다.


내 주변에 가장 최근에 군대를 다녀온 이는 큰조카였다. 제대한 지 2~3년쯤 된 것 같다. 인천의 어느 섬에서 군 생활을 했고, ,.이었다. 헌병이라고 하니 가장 먼저 각 잡힌 제복이 생각났고, 어떤 하루를 보내는지 궁금했다. 훈련도 받고, 짜인 일정대로 야간에 근무하기도 한다면서, 그러다 보면 다른 사람들 다 일어나서 식사하고 낮 훈련받는 시간에도 늦잠을 자기도 한다더라. 모두가 똑같이 찍어낸 것처럼 일사불란하게 한 가지 형태로만 움직이는 줄 알았는데, 헌병은 또 그런 생활을 하는구나 싶어서 새로운 것을 알게 된 기분이었다. 사실 군대 가혹행위 같은 거 없냐고 물었지만 괜찮다는 대답만 들었다. 한 가지 힘든 점은 섬에 있다 보니 날씨에 따라 배가 오고 가지 않을 때도 있다 보니, 보급품이 제대로 채워지지 않을 때도 있고 휴가를 제날짜에 나오기 어려운 경우가 종종 있었다고. 무엇보다 우리가 면회 한번 가려고 계획하다가 알게 된 사실은, 배를 타고 들어갔다가 숙박까지 하고 나와야 하는데 교통비며 숙박비가 장난 아니어서 포기했다는 것 정도.


너무 막연하게, 너무 무난한 것만 생각했나 보다. 오래전에 친구나 학교 선배들에게 들은 군대 얘기는 때로는 잔인하면서도 어이없었고, 이해의 범주를 넘어선 게 많았다. 그때로부터 거의 이십 년 가까운 세월이 흘러서 큰 조카가 군대에 갔으니 좀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기대가 있던 것도 사실이다. 따로 들은 말도 없기에 요즘 군대 괜찮구나 하는, 나 혼자만의 착각을 키워왔던가 보다. 이 만화 때문에 탈영병 잡는 군인이 따로 있다는 걸 알았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탈영병이 많았다는 것도, 탈영의 이유가 다양한 듯하면서도 다양하지 않았다는 것에 놀랐다. 군대가 바뀐다고 기대하지만, 바뀌지 않았다는 것만 확인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실제로 군대에서 DP였다던 작가의 경험에 근거했다고 생각하니, 아무리 창작물이지만 실화를 그대로 옮긴 게 아닌가 하는 생각만 짙어졌다.


드라마와 원작은 비슷하다. 주인공 안준호의 배경, 입대 후 일어나는 위치 변화, 탈영병 찾으러 다니면서 마주하게 된 에피소드가 약간 앞뒤로 섞인 것 등. 서로 다른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이야기가 조금씩 섞인 거 말고는 거의 비슷하다. 부대 안에서 훈련받고 헌병 임무를 수행하는 것보다 외부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서인지 다른 부대원들의 시기와 질투를 받지만, DP도 나름 고충이 많다. 마치 형사가 범인 추적하듯 온갖 수단과 두뇌를 총동원해서 탈영병을 쫓아야 하고, 받아온 활동비 내에서 외부 생활을 해결해야 한다. 어떤 DP들은 사비로 충당하면서 활동한다고 하지만 상병 안준호에게 사비라는 건 없다. 현실에서 마주하는 것들이 지긋지긋해서 도피하듯 들어간 곳이 군대였으니, 그에게는 휴가도 반갑지 않은 일이다. 술에 절어 사는 아버지, 아버지의 폭력에 길든 엄마, 두 동생은 현실에 안주하듯 피해가듯 살아가는 날들이었다. 그가 기를 쓰고 탈영병을 찾으러 다니면서 느끼는 온갖 감정이 만화의 한 컷마다, 대사 하나마다 그대로 전해진다.


아무 문제가 없는 부대에서 탈영병이,

그것도 유서를 쓴 탈영병이 생겼다는 건,

문제가 없는 게 아니라는 거죠.

문제가 보이지 않았거나,

보지 않았다는 겁니다. (DP 개의 날2, 24페이지)


아마도 연고 없는 곳에서

신분을 숨긴 채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아마도, 외로울 것이다. 그리고 그리울 것이다.

지나온 모든 과거가 그리워지는

밤들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 (DP 개의 날1, 40페이지)


작가의 모습을 많이 닮은 듯한 안준호는, 처음에 내무반 생활이 고달프고 싫었던 차에 DP 제안을 받은 게 반가웠다. 하지만 탈영병을 쫓으면서 점점 그 반가움은 괴로움으로 변했다. 자신이 속한 이 세계가 어떤 곳인지, 어떤 방식으로 운영되는지, 그 부조리에 나서지 못하거나 나서고 불행해지는 이들을 본다. 그러면서 알게 된다. 그들이 왜 탈영할 수밖에 없었는지. 읽다 보면 가장 많이 들려오고, 가장 많이 궁금한 게 바로 탈영의 이유다. 실제로 1년간 몇 명의 탈영병이 발생하는지 일반인들은 모르겠지. 나 역시도 마찬가지. 나와 관련 없는 세계에서 벌어지는, 아무도 본 적 없는 얘기였으니까 말이다. 이 만화를 보다 보니, 탈영의 이유는 한 가지가 아니었지만, 결국 한 가지로 모였다. 군대 내 가혹행위, 이해하기 어려운 꼬투리 잡기, 인격 모독과 언어폭력까지 더해지면, 가혹행위는 군대 내 거의 모든 생활에서 이루어지는 건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어이없게 시작된 탈영에는 피식 웃음이 나기도 했다. 휴가 나와서 복귀하려고 버스 터미널에서 버스표를 끊었는데, 어라 시간이 많이 남네 근처에서 게임이라고 한판 하고 오면 시간이 딱 맞겠군, 신나게 게임 한판 하고 났는데 미치겠네 버스가 떠나버렸어, 에라 모르겠다 영창밖에 더 가겠냐 게임이나 더 해야지. 술을 한잔 마시다 보니 기분도 좋고 한잔 들어가니 더 마시고 싶고, 마시다 보니 귀대할 시간이 지나버렸네, 어쩌나 하고 걱정하다가 들어가서 된통 깨지느니 찜질방에서 잠이나 더 잘란다. 이게 탈영의 이유라고? 진짜야? 웃음이 나다 못해 어린아이를 보는 것만 같았다. 하긴 잠깐의 실수로 두려움은 커지고, 감당하지 못할 지경에 이르러 피하고 싶은 건 누구나 비슷하게 가지는 공포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군번줄 차고 찜질방에서 자다가 잡히고, 어디 피시방에서 로그인했다가 잡히고. 설마 완전 탈영을 꿈꿨을까 싶으면서도 너무 어이없이 잡히는 것도 참 웃음뿐이로다.



문제는 다른 탈영에 있다. 그 무게가 한없이 무거워서 탈영이라고 벌해야 하는지 의문을 품고야 마는 이유. 작가의 말처럼, 누군가 탈영을 해야만 했던 이유가 나에게 찾아오지 않았던 것뿐이라는. 이 작품은 탈영해야만 했던 탈영병과 그 탈영병을 쫓는 DP의 시선으로 그려낸다. 탈영병을 찾아다니면서 탈영의 이유를 찾는 과정이면서도, 끝도 없고 변화도 없을 현실에 또 다른 탈영병은 계속 생길 거라는 절망을 확인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도대체 왜, 탈영을 부르는 가혹행위는 계속되는가. 심심해서? 짜증이 나서? 단체 생활에서 자기 위주의 태도는 별의별 폭력을 만든다. 구타와 언어폭력은 기본이다. 코를 곤다고 방독면을 씌우고 그 안에 물을 부어버린다. 벌레를 잡아서 계속 먹인다. 이게 사람이 할 짓인가? 버티고 버티다가 탈영이라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고통을 매번 확인할 때마다, DP 역시 상관의 지시를 따르면서도 선임병의 폭력을 겪을 때마다, 안준호는 회의를 느낀다. 탈영병을 붙잡아 탈영의 이유를 확인하고 가혹행위 가해자들을 처벌해도, 누군가는 다시 탈영한다. 뭐가 변할 것인지 도무지 알 수 없는 날들 속에서, 군인이면서 군인 같지 않은 군대 생활에 안준호는 군인과 민간인 그 사이에서 서성인다.


이 책을 읽기 전에 작가의 후기부터 읽었다. 무슨 마음으로 이 책을 썼을까 싶어서. 이 책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이 펼쳤는데,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라는 말에 이야기의 생생함은 더 깊게 들어왔다. 한컷 한컷,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릴 때마다 허투루 들리지 않았다. 내가 잘 몰랐던 곳, 경험자의 이야기가 아니라면 제대로 듣지 못할 내용을 마주하고 무서웠다. 인간 세상에서 이보다 더한 일도 많이 있겠지만,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지는데도 아무도 나서지 않는, 방관자들만 득실대는 걸까. 어떤 이유가 있다고 해도, 군대에 보낸 자식이 죽어 나와 절규하던 어느 어머니의 말처럼, 군대가 사람이 죽어도 되는 곳은 아니지 않은가. 그 호소가 안준호에게도 닿은 것일까. 성과를 앞세우며 탈영병 체포에 집중하던 그는, 그가 쫓는 시간만큼 탈영병의 고통에 공감하고 현실에 분노한다. 온갖 기술을 총동원해서 어떻게잡을지 고민하던 그는 탈영병을 잡아야 하는지 묻는다. ‘제정신이 아니어서 탈영을 한다고 생각하다가, ‘탈영하지 않고는 제정신으로 살 수 없다라는 결론을 얻는다. 작가의 실제 경험에서 쏟아지는 인물들의 섬세한 감정 표현은 이 책의 매력이자 현실을 담은 힘일 것이다.


드라마를 순식간에 다 보고, 이 책을 몇 시간 동안 다 읽고 나니, 각 잡힌 제복에 영화 같은 장면을 생각하며 큰 조카를 대입해서 상상했던 순간들이 무너졌다. 어쩌면 그 아이가 겪었을지도 모를 시간에, 함부로 말할 수 없는 공포였을 감정에, 별일 없이 잘 있다가 나왔다고 안심시키는 목소리가 자꾸 겹친다. 여럿이 모여 있을 때 농담처럼 꺼낼 주제가 아니라고, 실질적인 문제 해결은 아직 제대로 시작도 못 했다고, 상명하복 시스템의 문제를 다시 꺼내야만 했다. 큰 조카가 군대 생활할 때 작은 조카들이 모이면 어떻게 하면 군대에 안 갈 수 있는지 자기들끼리 이야기하곤 했다. 고작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이 벌써 군대를 피하고 싶은 이유를 다 알 수는 없었지만, 자발적으로 원해서 입대하고 싶은 이는 드물 것이라는 확인. 남동생이 입대할 때가 거의 이십 년 전인데, 그때 엄마가 남동생 입대하고 들어와서 벽 보고 누워서 한참을 울었는데, 이십여 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와 다르지 않을 곳이 군대일 거라는 생각에, 도대체 군대의 존재는 무엇일까 묻고 싶어지는 순간이다.




군대가 바뀐다구요?

정말 그렇게 생각하세요?

있잖아요.

제가 쓰는 수통 밑에 1953이라고 새겨져 있어요.

육이오 때 쓰던 거예요.

하하하-

수통도 안 바뀌는데 무슨... (DP 개의 날4, 22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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