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해자들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31
정소현 지음 / 현대문학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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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이 일이 누가 중재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둘 중의 하나가 떠나야 한다는 것을 모른다. 한 번 트인 귀는 막히지 않고 사람은 쉽사리 변하지 않으며 상한 마음과 망가진 관계는 고치기 힘들다. 얼른 피하는 게 상책이라고, 당신들도 언제든 가해자가 될 수 있다고 말하려다가 입을 틀어막았다. (137페이지)


"우퍼를 하나 살까?"

형제자매들 모두 아파트에 살고 있다. 어디로 이사를 하여도 층간소음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평생 단독주택에 살던 나도 이제는 아파트에 살게 됐다. 신축이냐 구축이냐를 떠나서 공동주택의 특성상 어느 정도의 소음은 예상하였고, 감당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각오를 했음에도, 이사한 지 한 달 정도 지내면서 우퍼를 사자는 말을 꺼내고야 말았다. 평소에도 소리에 민감했지만 남의 집에서 며칠을 지내도 층간소음 정도는 충분히 감당했던 내가, 막상 계속 머물러야 할 집이라고 생각하니 이 소음에 자꾸 예민해진다. 왜 위층 사람들은 예의를 지키지 않는 거지?


처음에는 내가 참을성이 부족한 건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가 뛰고 소리를 지르는 데도 그걸 말리는 어른의 소리를 듣지 못했다는 것을 느꼈다. 정말 소음을 참을 수 없어서 화가 났던 어떤 날은 위층의 현관문 앞에까지 간 적이 있다. 혹시나 윗집이 아닐 수도 있으니까 확인하고 싶었다. 역시 나를 괴롭히는 소음의 범인은 윗집이었다. 집안의 소리가 현관문을 뚫고 계단 아래까지 들릴 정도였는데, 아이를 말리는 어른의 소리는 단 한 번도 나지 않았다. 오히려 아이보다 더 큰 소리로 말하고 아이의 응석을 받아주면서 같이 노는 소리가 나기도 했다. 어른의 발망치 소리는 기본이었다. 아, 나는 이 지점에서 화가 났던 거구나. 층간소음 자체가 아니라, 공동주택에 살면서 조심하려고 애쓰지 않는 이들의 태도에 대해 분노하고 있던 거다.


아파트 층간소음 문제로 다투거나 살인을 했다는 뉴스가 더는 새롭지 않을 정도로, 이제는 익숙한 사건·사고가 되어버렸다. 이해하면 되는 거 아니냐고, 사람 사는 곳이 다 그렇지 그 정도 소음을 못 참고 사는 게 이상한 거 아니냐고 말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층간소음은 단순히 소리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가 아니다. 이해하고 참기만 한다고 해결될 문제도 아니다. 감정적인 문제가 있다. 머리로는 무조건 참고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하다가도, 공동주택에서 어쩌면 이렇게 이기적으로 살고 있을까 싶어 화가 치미는 순간이 있다. 그 순간을 잘 넘기지 못하면 다툼이 되고 물리적인 폭행이나 살인이 된다. 불안하다. 혹시 나도 모르는 사이 언제 이 화가 폭발할지 무섭기까지 하다. 이 소설을 만나고 나는 더 불안하고 두려워졌다.


어느 오래된 아파트에서 살인 사건이 발생했다. 가해자는 1112호 여자였고, 피해자는 바로 위층 1212호에 잠시 머물던 조카였다. 모두가 층간 소음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뭔가 앞뒤가 맞지 않았다. 오랫동안 그 아파트에서 층간소음 문제를 제기하며 민감하게 굴었던 건 1111호, 작은 소음도 참지 못하고 바로 더한 소음으로 보복하곤 했던 여자였다. 그러니 1112호가 가해자라고 말했을 때 다들 의아해했다. 설마 1111호를 잘못 말한 거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1111호가 얼마나 힘들게 했으면 1211호와 1011호가 모두 이사를 나갔을까. 나중에 들어보니 어느 날 1111호의 여자도 정신병원에 입원했다고 한다. 도대체 그동안 이 아파트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던 걸까.


작가는 이 아파트의 각 호를 조심히 비추면서, 우리가 어떻게 소리에 더 귀 기울이게 되고 집중하게 되는지 그 과정을 선명하게 그린다. 집은 말 그대로 안식처가 되어야 한다. 아파트라는 공동주택 형식을 가졌지만, 이곳 역시 집이다. 누구나 마음 편히 쉬고 싶은 곳이다. 그런 공간이 나를 더 불안하게 하고 숨도 제대로 쉴 수 없는 곳이 된다면, 우리는 이곳에 어떻게 머무를 수 있을까? 소설 속 인물들은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환경에 놓여있다. 처음, 이 소음으로 문제를 삼던 1111호 여자는 알고 보니 재혼 가정이었다. 어린 아들이 있는 남자와 결혼해서 시어머니가 있는 집으로 들어와 살았다. 누구도 재혼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가정에 최선을 다했다. 아내와 엄마, 며느리 자리에서 충실했다. 예쁜 딸도 낳았다. 누가 봐도 행복해 보였다. 하지만 시어머니는 며느리에게 냉랭했고 언제나 의심했다. 그 마음을 숨기지도 않았다. 시어머니의 냉대와 언어폭력에 여자는 아이를 낳은 지 8년이나 지난 후에 산후풍에 걸리고, 조금만 바람이 닿아도 한기를 느낀다. 그때부터 여자는 시어머니가 생전에 친했던 위층 1211호의 소음을 느낀다. 참을 수 없었다.


옆집 1112호 여자 역시 어느 날부터 소음을 감지한다. 소리의 정체를 확인하던 여자는 위층의 소음에 1111호가 복수하는 행동임을 알지만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자기에게 하는 게 아니었으므로. 그러다 점점 옆집의 공격은 그녀를 향하고, 그녀도 더는 참지 않는다. 1011호의 아기 엄마는 1111호의 항의로 아기의 울음소리에 민감해진다. 아이가 우는 존재라는 것을 쉽게 인정하지 못하고, 오직 위층의 항의가 들어오지 않기를 바라며 아이를 돌본다. 아이가 조금만 울어도 아이에게 화를 냈다. 그러다가 점점 아이의 울음을 무기 삼아 1111호를 공격한다. 아이가 울 때마다 천장 가까이 아이를 들어 올리면서 그 소리가 위층으로 잘 들리도록 노력했다. 그러다 거울에 비친 모습을 보고 절규했다. 얼굴이 빨개지도록 우는 아이의 얼굴, 그에 반해 아이가 경기를 일으키는 것처럼 우는 소리에 기뻐하면서 웃는 자기 얼굴에 경악했다. 이 소음 전쟁의 가장 큰 피해자가 자기 아기였다는 것을 그때서야 알게 되고, 이사하는 것만이 답이 된다는 것을 알았다.


각 호의 사연을 들으면서 점점 보이는 게 있다. 언제 어느 곳이나 소음은 있었지만, 그것을 더 잘 느끼느냐 아니냐의 차이는 단순히 소음의 크기 때문은 아닌 듯하다. 사방팔방 모든 것이 연결된, 특히 오래되고 낡은 아파트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을 수가 없다. 일상생활의 모든 소리가 여기에서 저기로, 위에서 아래로 아래에서 위로 움직인다. 결국 소설 속의 사람들은 가정이 파탄 나고 병을 얻기도 하지만, 그게 꼭 소리 때문은 아닐 거였다. 이미 각자의 삶에서 불안과 불화가 깊숙이 뿌리 내려 있던 상태에서 민감하게 다가오는 소음은, 이들에게 갈등을 일으키고 폭발하게 하는 기폭제가 되었다. 언젠가는 터지고야 말 일이 아파트에서, 이웃들을 향했을 뿐이다. 나의 마음과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없는 현실과 답답한 벽을 마주한 채로 마음을 위로해야 하는 상황들. 날이 선 시어머니의 말들이 가슴에 꽂힐 때마다 쌓여가는 외로움, 혼자 아이를 키우는 어려움에도 도움을 청할 곳 없는 현실, 처음 하는 육아가 힘들지만 감당해야 한다는 의무감 같은 일들을 우리는 당연하게 받아들였는지도 모른다. 왜 그래야 하는지도 모르게 속으로 담아두기만 했던 고통스러운 마음이 소음이라는 매개로 폭발하고 말았을 때,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


누구나 피해자라고 하지만, 언제나 가해자가 될 수도 있는 이 아이러니한 상황을 나만 공감하는 건 아닐 테다. 소음이 만드는 문제에 앞서 그 소음에 민감해지는 이들이 모두 집에 있던 여자들이었고, 그 여자들이 어떻게 소음에 반응하기 시작하는지 그 과정을 보면서 가슴이 아프기 시작했다. 1111호 여자는 가정에서 일어나는 문제와 고민에 대해 남편과 상의했다. 아니, 여자의 일방적인 토로라고 해야 하나. 남편은 언제나 좋은 사람 흉내를 내면서 아내의 고통에 방관자였다. 괜찮겠지, 좋아지겠지, 아니겠지. 남편은 시어머니와의 갈등에 힘들어하는 아내를 보면서 자기 역할을 하려고 하지도 않았고 못 본 척 못 들은 척하며 살았다. 층간소음 문제까지 일어나자 해결하기는커녕 위층 남자와 술 한잔하고 기분 좋게 들어와서는 아내의 예민함을 탓한다. 혼자 아이를 키우던 옆집 여자 역시 무책임한 남편에 혼자 양육과 생활을 감당해야 하는 현실에 고통받았다. 이 팍팍한 일상에 마음은 너덜너덜해지고, 이해할 수 있었던 옆집 여자의 소음 공격에 더는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된 거다. 어쩌면 이해와 공감을 보여줘야 하는 건 아파트 내의 공동생활 대상자들이 아닌, 가정에서 서로에게 보여줘야 하는 게 시작 아니었을까. 내가 머무는 공간에서 가장 보살피고 이해하며 살아가야 하는 게 가족이니까. 바로 옆에서 나를 이해 못하고 상처받는 나의 마음을 들을 줄 모르는 이들에게 느끼는 배신감이, 소음을 참지 못 하고 공격에 이르게 하는 행동의 발단이 되어가는 건 아니었을까 싶다. 어쩌면 나만 고통받는 것으로 느끼는 그 배신감의 이름은 외로움일지도 모르지. 혼자서 감당해야 하는, 나만 힘든 이 상황 말이다.



나는 집에 혼자 남았다. 이렇게 되고 보니 엄마가 무슨 소리를 들었는지 알 것 같았다. 외로움이 만들어낸 실체도 없는 소리가 엄마의 삶을 잡아먹었다. 나도 머지않아 그것에 먹힐 거다. 옆집 아줌마는 무슨 소리를 듣는 건지 엄마처럼 계속 벽을 두드리고 있었다. (112페이지)


그럼 내가 경험한 소음의 시작은 어디일까. 이사를 온 지 한 달여, 아마도 나는 이 공간과 바뀐 환경에 적응하는 중이 아닐까 싶다. 이사를 오기 전날부터 몸이 불편했던 게 생전 처음 대상포진을 경험했고, 그 무서운 병은 언제 어디서나 통증을 느낄 수 있다는 끔찍한 후유증을 남겼다. 먹는 것마다 체해서 병원과 약국의 단골이 되었다. 몸은 여기에 있는데, 마음은 해결해야 할 문제들을 따라다녔다. 그런 날들이 계속되자 점점 문을 열어놓기가 싫어졌다. 아파트 주차장의 소음, 놀이터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 트럭에 물건을 싣고 와서 파는 장사꾼의 목소리까지 온갖 소리에 짜증이 났다. 환기한다고 습관적으로 문을 열어놓긴 하지만 그 시간이 길지는 않다. 내 마음이 불편하고 불안해지니 조금씩 주변의 것에 집중하게 되더라. 그중 하나가 소리였던 듯하다. 나와 상관없는 곳에서 전달되는 소리에 시간을 빼앗기게 되고, 이렇게 된 상황 하나하나가 못마땅했던 날들이었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시선을 조금 바꾸어야겠다고 생각한다. 여전히 위층의 아이들은 집에서 운동회를 하고 어른의 발망치 소리는 계속된다. 밖에서 들어오는 소음도 여전할 것이고, 사람들은 각자의 생활이 만드는 소리에 그러려니 할 것이다. 나 역시 내 생활에 적응하면서 타인의 소리가 아닌 내 삶이 만드는 소리에 집중하고 싶다. 그러고도 계속되는 소음이라면 또 다른 답을 찾아야겠지. 그거 말고 찾을 수 있는 현명한 답을 아는 이가 있다면 말해줬으면 좋겠다. 누구나 경험할 이 소음에 조금은 그 고통을 덜어낼 수 있도록.


너무 생생해서 작가가 이 소설을 어떻게 썼을까 궁금했다. 이건 경험하지 않고서는 절대 공감할 수 없는 이야기였으니까. 읽으면서도 가슴이 두근거리고 순간순간 올라오는 욱하는 감정을 참기 힘들 정도였다. 작가의 실제 경험이 담긴 이 소설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듯 이사하는 것만이 답이라는 결과를 보여줬다. 그게 정답은 아닐 테지만, 그 순간 우리가 찾을 수 있는 최선의 답이 이사라는 건 맞지 않을까? 고요할수록 더 잘 들리는 소리는 층간소음에서 빛을 발한다. 혼자 있을 때, 그 고요함에 집중할 수 있을 때, 외로움이 그 틈을 노리고 침투할 때.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층간소음이 누구에게 더 예민하고 고통스럽게 다가오느냐 하는 상황을 이렇게 소설로 확인한다. 명확한 답이 없는 현재진행형의, 피해갈 수 없는 현실의 문제일 때 우리는 어떻게 풀어가야 하는지 계속 묻게 된다. 피해자와 가해자를 구분할 수 없는, 얇은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생활하는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누구에게나 닿을 수 있는, 상처받은 이들의 모습에서 피해자와 가해자의 그 묘한 경계에 서 있는 우리의 모습을 발견하게 하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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