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희
박유리 지음 / 한겨레출판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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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이 한번 무너져본 이들은 어느 날 또다시 살던 집이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공포를 느낀다. 어느 날, 어떤 이유도 없이, 또다시 감금되어 세상으로 돌아올 수 없을 것만 같은 두려움이 미연을 따라다녔다. 외출했다 집에 돌아오면 창문을 모두 잠갔고, 텔레비전 속의 평온한 얼굴을 보고서야 잠이 들었다. 미연은 공포를 딛고서 비틀거리며 아무렇지 않은 척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불량품 같은 삶, 정상으로 회복할 수 없는 삶이 뭔지 미연은 알 것 같았다. (79페이지)

 

삭제하거나 희미해질 수 없는 기억이 있다. 사건의 현장에서 4년을 보낸 미연의 현재는 지울 수 없는 기억에 영향을 받는다. 애써 감추려고 했던 과거는 그녀의 모든 일상에 끼어들었다. 아이의 성장 환경을 좌우했고, 남편과의 불화를 만들었다. 미연이라고 그러고 싶었을까.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표출되는 기억의 흔적들이 20년이 넘게 흘렀어도 그 힘을 휘두르고 있었다. 그녀에게 형제복지원에 머문 시간은 집으로 돌아와서도 끝나지 않았다. 미연의 말처럼 '기억은 그림자 같은 것'이어서 언제나 그녀를 따라다녔다. 아무리 애써도 하얗게 되지 않는 날들이 그녀와 함께했다. 그 기억에 소환되기를 거부하면서 버티던 그녀의 일상에 더는 물러설 수 없는 순간이 왔다.

 

폴란드에서 입양아로 사는 준에게 한 통의 편지가 도착한다. 출생의 진실을 몰랐던 준은 마주한 활자가 낯설면서도 무시할 수 없었다. 자기 엄마 은희가 어떻게 생활했는지, 어떻게 죽었는지 알려준 거였다. 대한민국의 과거에 있던 형제복지원에 은희가 머물렀으며, 그곳의 참상은 너무 잔혹했다고. 준은 은희가 그곳에서 강간당하고 생긴 아이였으며, 태어나서 입양 보내졌다. 그리고 은희의 죽음. 검안서에는 신부전증으로 사망했다고 기록되었으나, 사실 은희는 탈출하다가 붙잡혀서 폭행에 시달리다 사망했다. 준이 받은 편지에는 아우슈비츠로 간 미연을 만나라는 내용이었다. 편지를 보낸 이는 준이 미연을 만나서 엄마 은희의 죽음에 관해 듣기를 바랐던 걸까. 준은 미연을 만나러 갔지만 자기가 은희의 아들이라고 밝힐 수 없었다. 하지만 준은 그대로 되돌아올 수가 없었기에, 이미 마주한 어떤 사실 앞에서 모른 척하고 있을 수만은 없었기에 서울로 간다. 미연을 만나야 했다.

 

이야기는 1975년부터 1987년까지 운영되었던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이 바탕이 되어 그려진다. 그곳은 복지시설이라 불렸다. 거리의 노숙인이나 부랑자를 데려다가 잘 먹고 잘 보살펴 준다는 취지로 시작된 일에, 누군가는 이익을 취하느라 인간적인 선을 넘어선다. 인원수에 맞게 지급되는 수당을 챙기려고 과한 수를 맞춘다. 일반 시민과 어린이까지 눈에 보이는 족족 강제로 차에 실렸다. 동네 목욕탕에 다녀오던 미연, 등산 산책로에서 잠이 들어 늦은 밤까지 깨어나지 못했던 은수와 은희, 시시껄렁한 건달 등. 세상을 깨끗하게 만들겠다면서 거리의 사람들을 분별없이 데려갔다. 3천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강제 수용되었고, 513명이 사망에 이르렀다. 그곳에 인권이란 것은 없었다. 형제복지원의 원장은 나라를 위해 일한다면서 자화자찬하고 스스로 상을 주었다. 정부 보조금을 받고, 강제 수용된 사람들의 노동력의 그가 이루려는 일을 시켰다. 제대로 된 식사 한 끼 먹어본 적 없는 이들이 그곳에서 살아남을 방법은 오직 하나였다. 마치 없는 사람처럼, 그들에게 종속된 노예처럼, 숨죽이고 말 잃은 채로 살아가는 것.

 

거기는 시간이 흐르지 않았어. 그렇고 그런 날들이 무한히 반복됐지. 어제는 오늘이 되고 오늘은 내일이 됐어. 더 나아질 것도 더 추락할 것도 없는 불구덩이였어. 고통이 영원하다는 걸 알면서 살아야 하는 거. 그게 사람을 미치게 하는 거지. 미치지 않는 사람이 없었어. 미친 사람들은 빨간 약을 먹였어. (161페이지)

 

왜 그 많은 사람들이 말도 못하고 당하고만 있었느냐고 묻는 이가 있을까? 왜 3천여 명의 사람들이 그들을 쥐고 흔드는 몇 사람을 혼내주지 못했느냐고? 민주주의를 외쳐도 군대를 동원해서 사람들을 누르던 시절이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복지정책이라고 부르며 시작한 일에 누구도 반기를 들 수 없었으니, 그 든든한 배경을 등에 업고 나랏일을 한다는 사람에게 감히 대들 수 있는 사람 누구란 말인가. 그곳에 인권은 없었다. 폭력이 습관처럼 행해지고, 차마 사람이 먹을 수 없는 음식이 상 위에 오르는 일상이 당연한 곳이었다. 같이 있으면서 마음을 단단히 모으는 게 아니라 서로를 감시하며 긴장한다. 지금 내 옆에서 같이 잠을 자고 같이 버티는 한 사람으로 볼 수 없게 했다. 원장은 그곳을 군대식으로 정렬하면서 자기만의 세상을 견고히 했다. 같이 끌려왔지만 충성스러운 사람 몇 명을 뽑아 소대장으로 만들었다. 소대장에게 사람들을 감사하고 관리하게 조종했으며, 또 그 밑에는 조장을 두면서 잠자는 순간까지 감시를 멈추지 않았다. 소대장이 원생을 대상으로 하는 성행위를 못 본척했고, 원생들 사이에서도 생존을 위한 다툼이 있었다. 그곳이 사람 사는 세상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 아무도 없다. 그런데도 세상을 정화하겠다며, 노고를 위로한다며 정부는 형제복지원을 추켜세웠다.

 

내가 알 수 없는 시절의 이야기다. 그렇다고 소설 속 이야기만도 아니다. 언젠가 우연히 뉴스에서 봤던 장면이 스쳐 지나간다. 어떻게 저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싶어 현실이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세상은 그리 만만하지 않았다. 현실이라고 믿을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는 게 다반사였으니, 누군가의 입으로 들려오는 그 시간의 진실이 놀라울 뿐이었다. 분명 계속 진행 중인 이야기인데 생각보다 사람들의 시선을 끌지 못했던 듯하다. 작가가 이 소설을 쓸 수밖에 없는 이유에 이런 관심의 부재도 보태고 싶다. 저자는 형제복지원 사건을 취재하고 보도했던 기자다. 그곳의 참상을 드러내기만 하는 게 목적은 아닐 터였다.

 

인권이라고는 찾을 수 없던 그곳의 생존자인 미연이 형제복지원의 실상을 알리는 일에 참여하기를 바라는 이의 시도로 멀리 폴란드에 있는 준까지 끌어들였지만, 정작 그곳에서 벗어나 생존을 버티고 있는 이의 마음까지는 읽지 못했던 걸까. 준의 엄마 그곳에서 죽은 이가 513명이나 되고 그렇게 죽은 사람 중의 한 명인 은희를 주인공으로 그곳의 이야기를 펼치는 듯하지만, 한국 현대사에 비극으로 남은 사건의 현재를 비추려는 것이 아닐까 싶다. 절대 권력의 묵인 아래 펼쳐지는 인권 유린, 처벌받지 않고 희생자들의 기억에 파고든 가해자를 어떻게 봐야 하는가. 그곳에서 고통받고 현재까지 아파하고 있는 이들에게 그 시간은 과거가 아니라 현재 진행형으로 계속되는 기억이다. 그렇기에 생존자이자 멀쩡히 현재를 잘살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미연의 증언과 희생자가 낳은 아들이 입양아가 되어 찾은 이 땅의 현재를 비추고자 했을 것이다. 과거는 과거로 머물지 못하고 현재를 살아가는 이에게 고통이 되고 있다는 게, 끊어내려고 해도 그럴 수 없는 기억에 현재의 삶은 무너진다.

 

기억하지 않는다고 죄가 사라진 것은 아냐. 기억나지 않는다고 없던 일이 되는 것도 아니고. 죄책감이란 게 없군. 기억도, 과거도, 죄의식도 아무것도 없이. (109페이지)

 

준의 엄마 은희의 이야기가 하나씩 들려오면서 형제복지원의 실상은 생생하게 묘사된다. 인간의 삶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는 곳이었다. 이유도 모른 채로 끌려와서 희생된 이들의 시간과 인생은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다. 그걸 보여주는 게 미연이었다. 미연의 아버지는 국가 고위직이었다. 4년 만에 딸이 돌아왔을 때 미연의 가족은 모든 것을 잊고 새로 시작하면 된다고 한다. 그 기억을 지우고 이제부터 잘 살면 된다고. 아마 가족으로 할 수 있는 최선의 태도였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궁금하다. 가족들은 그냥 잊으라고만 하고 그 시간의 이야기는 묻지도 않았을까? 미연의 가족에게 수치스러운 일이 된다고 여겨 모른 척하고 싶었을까? 왜 내 딸의 억울한 시간을, 고통을 제대로 들여다보려고 하지 않는 걸까. 내 가족의 상처보다 남들이 내 가족을 볼 시선이 더 중요했던 걸까. 잘 지내고 있다고 가면이라도 쓸 수밖에 없는 미연은 공부를 잘하는 학생으로 자라면서 모두에게 그 기억을 지워주려고 했다. 형제복지원의 희생자였지만 이렇게 멀쩡하게 정상적으로 잘 살아가고 있다고 증명해야 했다. 치유되지 않은 내면의 상처는 저기 멀리 밀어두고 말이다. 애써 기억을 지우겠다고 다짐해도, 있었던 일이 없었던 일이 되지는 않는다. 소설의 끝부분에서 박장대소했다. 미연은 평생을 그 기억 때문에 현실을 제대로 살아갈 수 없었는데, 그들에게 가해자였던 형제복지원 원장은 치매로 기억을 잃었다고 한다. 죄지은 자는 그 죄를 스스로 다 잊고 오늘을 살아간다. 마치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지금 자기 앞의 피해자가 누구였다고 해도 상관없다는 듯이. 하루하루, 오늘만 기억하는 이에게 피해자들의 울부짖는 목소리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 밤, 우리는 세상 밖으로 달려나갔다. 모두와 이별한 밤이었다. 우리가 버려진 그날 이후 지금까지 누구도 폐기의 이유를 설명하지 않았다. (69페이지)

 

소설 속 캐릭터들은 실제 형제복지원의 희생자가 모티브가 된다. 실제와 소설의 구성이 엮여서 태어난 한 권의 소설이 오늘에 묻는 의미는 크다. 저자는 결코 드라마로 머물지 않는, 군사정권 시대가 만들어낸 실체를 마주함으로써 위태롭게 그 시간을 버틴 이들과 이 사건을 묵인하는 사회를 고발하듯 묻는다. 죽은 은희, 생존했지만 온전히 살 수 없던 미연, 우연히 출생의 진실을 마주한 준의 현재를 재현하면서 그 물음을 다진다. 513명이 죽었다는데 아무도 잘못한 사람이 없다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느냐고. 한 시대의 고통은 아직 끝나지 않은 기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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