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노벨레 문지 스펙트럼
아르투어 슈니츨러 지음, 백종유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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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하고 평범해 보이는 일상에서, 어딘가에 감춰있다가 머리를 슬쩍 내밀듯 욕망이 꿈틀댄다. 그렇게 감추어진 욕망이 예상하지 못했던 순간에 들춰졌을 때 우리의 감정은 꾹꾹 내리누르긴 하지만, 실제로는 폭발하기 일보 직전의 감정이 아니었을까. 아무리 순수하고 도덕적 기준에 철저하게 반응하는 인간이라고 해도, 언제 어디서 불어올지 모를 위험한 바람에 항상 노출된 거 아닌가. 다만, 그 바람을 맞으면서 버티고 있느냐 아니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남편 트리돌린과 아내 알베르티네는 겉으로 보기에 행복한 결혼생활을 이어간다. 보통 가정의 일상처럼 보였다. 하루를 마무리하고 난 후의 저녁 식사 자리.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고 아이는 곧 보모의 손에 끌려 잠자리에 든다. 그 자리에 남은 사람은 아이의 아빠와 엄마인 부부. 그 순간, 안정된 삶의 단란했던 부부에게 익숙한 일상을 조금 다르게 보내고 싶은 감정이 일었나 보다. 아니면 상대방에게 속마음을 솔직하게 보여주고 싶은 충동이 일었거나. 그래서 그들 각자 감춰왔던 욕망을 고백한다. 아내 알베르티네는 덴마크 휴양지에서 반한 장교를 언급한다. 그 장교가 전화를 받고 갑자기 떠난 게 아니었다면 무슨 일이 생겼을지도 모를 그때의 감정에 대해 말했을 때 남편 프리돌린의 마음은 어땠을까. 솔직하게 말하자고 서로 다짐하고 이야기를 꺼냈음에도 아내에게 처음 발견한 욕망을 가만히 듣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자존심이 상했다. 아내가 경험한 그 욕망의 순간이 자기에게는 없었다는 게, 자기 아내가 그런 욕망을 경험하고 감춰왔다는 게 말이다. 아무렇지도 않은 척, 그럴 수도 있다는 척하던 그는 내면의 혼란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풀어내려고 한다.

 

소설의 배경이 되는 19세기 말은, 소설 속 문장처럼 거리에는 창녀들이 그득했어도 자기 집안 여자는 절대 그럴 수 없다고 생각하는 시대였다. 17살의 순결했던 아내에게 그런 환상이 있었다니 용서가 안 된다. 그 자신은 욕망의 순간을 끊임없이 탐닉하면서도 말이다. 지인의 임종 소식에 달려 나간 그는, 죽은 이의 딸에게 고백을 듣는다. 이미 알던 시선이다. 그 집에 방문할 때마다 자기를 바라보던 지인의 딸이 아버지의 시체 앞에서 그런 말을 꺼냈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다고 여겼다. 무슨 감정의 변화였을까, 그는 지인의 집에서 나와 거리를 헤매고, 그러다가 우연히 만난 대학 동창 나흐티갈로부터 은밀한 파티 이야기를 듣는다. 초대받지 못한 손님이 되어버린 파티장에서 그는 금기의 유혹을 한껏 즐기지만, 그 위험을 떨치지는 못한다.

 

그가 경험한, 금지된 환락의 세계는 실재했을까, 아니면 그에게 찾아온 욕망의 판타지였을까? 그가 그런 환상의 실재에 고민하던 때, 새벽에 집으로 돌아온 그는 아내의 꿈 이야기를 듣는다. 아내의 꿈은 지독하게 에로틱했다. 그가 환상인지 아닌지 혼란스러웠던 경험보다 더 생생했다. 아내의 꿈 이야기를 다 들은 그는 어떤 꿈도 완전하지 않다고 말한다. 무슨 의미였을까? 당신이 경험한 그 꿈은 꿈에서만 머무는 욕망이라는 뜻일까?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상상쯤에서 그만 넣어두라는 경고였을까?

 

인간의 욕망이 어느 정도인지, 우리는 그 욕망을 얼마나 표출하고 살아가고 있는지 묻는 것만 같다. 실제로 소설 속의 비밀 장소에서는 가면을 쓰고 입장한다. 트리돌린이 선택한 가면은 수도사 복장이었다. 성스러운 종교에 바탕을 둔 이가 입는 옷이 그가 갈구하는 욕망과 대조적으로 보인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건, 그 비밀 장소에 모인 이들의 가면과 의상 대부분이 그런 분위기를 풍긴다는 거다. 여러 가지 위장술을 허용하는 장소였지만, 특히 고위층이나 도덕을 강조하는 이들의 신분을 나타내는 옷이 많았다. 수도사는 물론이고 수녀 복장, 여왕이나 기사, 법률가를 나타내는 의상이 대부분이었다. 욕망이 춤을 추는 난잡한 그곳에서 가장 금욕적이고 도덕적인 복장의 사람들이라니. 얼마나 웃긴가. 그런데도 그들이 선택한 의상이 이해된다면 너무 과장일까. 가장 쉬운 예가 그런 거 아니던가, 하지 말라면 더 하고 싶은 반발심이 끓어오를 때. 아마 시대와 환경이 만든 욕망의 억누름은, 그들이 만든 비밀 장소에서 도덕을 외치는 의상을 선택하게 했을 것이다. 자꾸만 드러내지 말라고 하니 그 안에서 더 팔팔 끓어오를 수밖에, 그러다가 결국 뚜껑은 들썩거리고 끓다가 넘치게 되겠지. 살면서 금기도, 서로에게 갖춰야 할 도덕도 필요하지만 어쨌거나 욕망의 보편성은 누구에게나 있다는 것을 증명한 것만 같다.

 

그럼 일상으로 돌아온 남편의 마음은 어떤 것일까? 그는 아내의 꿈 이야기를 듣고 이혼을 결심하면서 집을 나오지만, 막상 그에게는 신분을 들킬 위험이 기다리고 있었다. 비밀 장소에서 그를 구해준 수녀 복장의 여자를 찾고 싶지만 찾을 수 없었고, 가명을 쓴 부인이 호텔에서 자살한다. 혹시 수녀 복장의 여자와 자살한 여자가 동일인일까 하는 생각을 하지만 알 수 없다. 그에게는 미스터리한 비밀 파티와 그의 신분이 노출되어 경고를 받은 일만 남았다. 집에 돌아온 그는 잠들어 있는 아내를 본다. 그리고 잠든 아내의 옆에는 그가 비밀 파티에서 썼던 가면이 놓여 있다. (앗, 들켰군!) 그는 아내에게 지난밤의 모든 일을 털어놓는다. 두 사람은 화해했지만, 아내의 한 마디는 의미심장하다. “어떠한 꿈도 순전히 꿈으로만 그치는 게 아니”라고 말하는 남편에게 아내는 혼잣말처럼 속삭인다. “결코 미래를 속단하지 마.”(158페이지) 화해를 했으나 감정적으로 완전히 정리되지 않았다는 말인지, 이미 있었던 서로의 비밀이 없었던 일로 되는 건 아니라는 말인지. 결국, 진정한 화해도 아닐뿐더러, 결코 예전 같을 수 없다는 말이겠지. 그들이 각자 경험한 어떤 일은 지극히 개인적이면서도 사적이지 못하다는 모순에 얽매여 있을 테니까. 드러내지 말아야 할 욕망을 그렇게 드러내 버렸고, 꿈은 꿈으로만 머물지도 않았으니까 말이다.

 

 

부부가 가져야 할 도덕적 의무와 한 개인으로 느끼는 욕망 사이에서 벌어지는 경기를 보는 듯하다. 엎치락뒤치락, 결혼으로 맺어진 부부 관계가 서로에게 책임을 부여하면서도 그 책임을 말하는 제도의 규범이 부부의 마음을 가르기도 한다. 한편이었다가 서로 죽여야만 하는 원수가 되기도 하는 양면성. 그 양면성은 소설의 배경이 되는 시대의 분위기도 무시할 수 없을 듯하다. 하고 싶은 일을 포기하고 현실의 안정을 주는 직장, 집안에서 머물며 가정을 책임지는 아내의 역할, 서로가 잘 지키며 지내야 하는 규범적인 생활이 그들이 말하는 이상적 가정이었다. 가만히 보고 있다가 느끼는 건 오늘날과 얼마나 다를까 하는 의문이었다. 사랑으로 맺어지고 결혼이라는 선택을 했지만, 그게 부부 관계의 모든 것을 정의하지는 않는다는 것. 프로톨린과 알베르티네가 닿을 그 선택이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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