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를 처음 본 것은 기억나지 않는다. 쓰고 보니, 아버지를 처음 봤다는 말은 좀 이상한 데가 있다. 그것이 만남에 대한 이야기라면, 더욱 그렇다. 나는 아버지를 언제 처음 만난 것일까? 그것이 내 몸의 소용돌이가 시작된 기원이라면, 내가 까맣게 잊어버린 기억의 어디쯤에 다다라야 하는 것일까? 사실 ‘처음 본 기억’을 꺼낸 것은 이어서 이런 문장을 쓰기 위해서다. 아버지를 마지막으로 본 것은 2008년 7월 11일 대학병원 중환자실이었다. 그날의 날씨와 창밖의 여름과 분주한 간호사들과 가족들의 모습. 하지만 첫 문장이 다음 문장을 불러 알 수 없는 생각의 문을 열자, 나는 아버지의 마지막을 본 적도 없는 것 같다. (당신은 우는 것 같다, 14페이지)

 

시인의 첫 문장이 강렬하다. 아마도, 저런 말이 나올 것이라고 전혀 예상하지 않았기 때문이었겠지. 누구에게나 비슷하다. 부모를 처음 만난 그 순간을 기억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기억이라는 것을 소환하면 어디쯤에서부터 시작되는지는 알 것도 같다. 저마다 다른 시작점이겠지만, 그 시작은 누구에게나 있다. 우리의 아버지는, 어머니는 이랬다는 말을 할 수 있는 기억의 시작. 나에게도 그런 시작이 있다. 기억이라는 것이 시작될 무렵을 거슬러보니, 나의 기억 대부분은 엄마와 함께였다. 남들이 말하는 '부모'라는 이름은 거의 떠올릴 수 없었다. 나의 모든 일상과 성장에 있었던 건 부모가 아니라 엄마였다. 혹시 모르겠다, 기억이 없는 그 시절에는 아빠가 함께 있었는지도. 그러니까 지금 할 수 있는 말은, 내 인생에서 기억하고 있는 순간에 아버지와 나는 같은 시간 속에 없었다는 거다. 이런 말을 하는 게 가슴 아프다거나 속상하다거나 그런 건 아니다. 다만, 나에게 아버지란 이름의 개념이 없었다는 게, 남들이 말하는 ‘보통’과 달랐다는 게 조금은 아쉬울 뿐이다.

 

당신은 우는 것 같다... 제목만 보고 무슨 연애소설인지, 아니면 이별 후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하지만 이 책을 다 읽고 알았다. 누군가의 눈물은 차마 앞에서 흘리지 못해 뒤돌아서 우느라고, 그 등만 보이게 된다는 것을. 소개 글에서 보이는 것처럼, ‘아버지를 미워하거나 그와 불화해본 모든 이에게 건네는 위로의 시와 산문’이라고 하는 이유를 읽다 보면 느끼게 된다. 들려주는 시는 그렇다 치고, 산문은 그들의 기억과 시간에서 소환한 것이기 때문에 사실의 기록일 것이다. 아니, 그 사실에 미처 표현하지 못했던 감정을 더한 이야기겠지. 어쨌거나 두 시인이 말하는, 아버지를 향한 감정인 것은 그대로일 터이니.

 

처음부터 이 책을 읽으려고 마음먹은 건 아니었다. 그냥 조금은 궁금한 정도? 왜 아버지가 주제인지, 왜 두 사람이 기억하고 추억하는 아버지는 나와 다른지, 그냥 그들의 이야기를 조금 듣고 싶은 정도였다. 나에게는 없다고 생각한 대상을 굳이 책으로 내는 것까지 감행하는 이들의 이야기가 낯설지 않을까 걱정하면서도 한번은 만나고 싶은 이상한 느낌에... 호기심이라고 하는 게 맞을지도 모르겠다. 남들이 말하는 그들의 아버지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하는 궁금증. 하지만 곧 후회했다. 읽지 말 것을, 공감과 비공감 사이에서 갈팡질팡, 내가 자라온 시간에 없던 아버지가, 다른 이들에게는 왜 그리도 많았는지 속이 조금 상하더라. 사이가 좋지 않았어도 그가 기억하는 아버지는 그래도 아버지였다. 그녀가 기억하는 아버지는 추억이고 그리움의 대상이었다. 이들에게 아버지는 그런 존재인데, 나에게는 왜 그런 아버지가 없던 걸까.

 

아버지를 마지막으로 본 것은 요양병원의 중환자실이었다. 가족들과 사이가 좋지 못했던 아버지였다. 특히 나와 더 사이가 좋지 못했다. 한집에 살면서도 같은 밥상에서 밥을 먹어본 기억이 거의 없다. 아버지와 나는 그런 사이였는데, 아버지의 병원 생활을 하는 3년여의 시간 동안 나는 병원에서 아버지를 가장 많이 마주하는 가족이 되어 있었다. 집에서도 마주하기 싫어서 아무리 배가 고파도 같은 밥상에 앉지 않았는데, 어쩔 수 없는 상황이 되자 병원에서 보내는 시간은 그동안 아버지와 내가 함께했던 시간의 몇 배를 같이 보내고 있던 거였다. 괜히 억울했다. 화가 났다. 나는 그 병실에서 아버지와 같이 있고 싶던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그 순간에도, 나는 아버지를 마지막으로 본 사람이었다. 내가 아버지의 마지막을 볼 거라고 생각한 적도 없었다. 인생 참 아이러니하다. 절대 아닐 거라고 생각했던 일들은, 이렇게 그럴 일이 되어버렸다.

 

아버지와 나의 불화는 고등학교 1학년 무렵부터 시작되었다. 그전까지는…… 글쎄, 내 기억엔 나쁘지 않았다. (당신은 우는 것 같다, 69페이지)

 

아버지와 나는 서로를 향해 무심한 사이였다. 적어도 내 기억에는 그렇다. 나는 아버지를 진지하게 생각한 적이 없고, 내 인생 안에 포함한 적도 없다. 기억을 더듬어보니 그러네. 언제부터인가 아버지라는 단어가 내 일상에서 사라진 것 같다. 내가 아버지를 타인처럼 여겼던 것은 중학교 졸업 무렵이었다. 고등학교 입학 원서를 써놓고 시험 날짜를 기다리던 때였다. 어느 날 담임선생님이 나를 부르더니 왜 입학 원서를 바꾸려고 하느냐고 물었다. 무슨 말인지 알지 못해 되물었더니, 아버지가 학교에 오셔서 입학 원서를 바꿔 달라고 했단다. 처음 듣는 얘기였다. 갑자기 왜? 의문이 들 수밖에 없던 게, 아버지는 내가 어느 학교로 원서를 썼는지도 몰랐다. 고등학교에 대해 서로 단 한 번도 이야기를 한 적이 없다. 중학교 생활 내내 어떻게 학교에 다니는지도 알지 못한 사람이 갑자기 학교에 찾아와 입학 원서를 바꿔 달라고 했다니. 그날 집에 돌아와 아버지한테 물었다. 이때껏 부모 노릇한 적 없는 사람이 왜 뜬금없이 내 일에 참견하려 드는 거냐고. 당신의 인생에 관여하고 싶은 마음이 없으니, 당신도 내 인생에 끼어들지 말라고 하면서 다음 날 담임선생님께 원래대로 진학하겠다고 말했다. 그때 이후로 나의 보호자는 더 확실하게 엄마뿐이었고, 나의 성장 시간 내내 함께한 것도 엄마뿐이었다. 그런데도 여전히 아버지는 옆에 존재했다. 가족들에게,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온갖 일의 뒤치다꺼리를 해야 하는 부담을 주는 존재로...

 

시인의 말이 솔직하게 들려서 계속 읽게 된다. 무슨 사전에 정의라도 해놓은 것처럼, 아버지는 무조건 존경해야 하고 아프게 여겨야 하는 대상으로만 말하지 않았다. 때로는 그 존재가 너무 버거워서 인정하고 싶지 않게, 때로는 그 존재가 너무 그리워서 얼굴을 그리고 싶게 하기도 하는...

 

종합병원의 응급실, 중환자실, 일반병실, 요양병원. 수시로 병원에 드나들면서, 엄마의 고충을 덜어드려야겠다는 것 말고는 이유를 찾지 못한 채로 아버지의 보호자로 사인하는 횟수가 늘어나면서, 나는 엄마를 원망하고 이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해 자꾸 화가 났다. 왜 엄마는 이런 사람을 나의 아버지로 만들어놔서, 왜 엄마와 나 단둘이 있을 때 이런 일은 자꾸 일어나서 나를 힘들게 하는 건지. 3년여의 세월을 어떻게 지냈는지 기억하고 싶지는 않다. 하루가 일 년 같았다는 상투적인 표현이 왜 나왔는지 비로소 알게 되었으니까. 양가감정이 수도 없이 부딪히면서 마음을 상처 나게 했다. 시인의 말처럼, '삶과 죽음이 싸우듯, 사랑과 미움이 서로를 찌르고 희망과 절망이 자리를 바꾸듯, 그리고 눈물이 왼뺨과 오른뺨의 길이를 재듯'이.

 

작년 4월,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평생을 사실 것처럼 보였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게 실감이 나지 않았다. 사람이 언젠가 한 번은 죽는 거지만, 내가 그 대상을 직접 보게 된다는 게 낯설었다. 누군가의 죽음을 가까이에서 본 게 처음이라 모든 게 어색했다. 날씨가 좋았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 날,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서 나들이 가기 좋았던 날, 손님을 초대하기에도 덜 미안했던 주말을 낀 날, 마침 들어가고 싶었던 장례식장에 자리도 있던 날, 화장터에서 오래 기다리지도 않게 예약도 순조로웠던 날. 한 사람을 보내는 일이 쉽지 않다는 것을 바로 알아버린 날이었다. 누군가, 결혼식이 너무 복잡하고 힘들고 피곤해서 두 번은 하고 싶지 않다는 우스갯소리를 했었지. 장례식도 마찬가지다. 힘들고 피곤하고 복잡했다. 하지만 결혼식처럼 한 번만 하고 싶다고 말할 수 있는 건 아닌 듯하다. 남겨진 사람은 또 누군가를 보내는 일을 겪어야 할지도 모르니까. 여전히 익숙하지는 않겠지만, 또 하고 싶은 일이 아니라 해야 할 일이 되겠지만 말이다. 장례식이 끝난 다음 날, 새벽부터 폭우가 쏟아졌다. 앞이 안 보일 정도로 비가 세차게 내렸다. 식구들이 각자의 공간으로 떠나고 엄마와 둘이 남아있을 때, '어제 비가 이렇게 왔으면 더 힘들었겠다'는 말을 계속했다.

 

아직도 나는, '당신은 우는 것 같다'는 그 순간을 완전히 공감하지 못한다. 나는 아버지가 우는 걸 한 번도 본 적이 없고, 혹시라도 아버지가 혼자 울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다만, 두 시인이 말하는, 그 교차하는 마음은 한없이 공감한다.

 

나를 상처 입힌, 죽이고 싶을 만큼 미운 사람을 향해 일어나 걸어가라고 말하는 것이 얼마나 가파른 사랑인지 모르지 않는다. 하지만 당신은 이미 알고 있기도 하다. 창과 방패처럼, 팽팽하게 맞서는 미움이 있어 또 다른 사랑은 태어나고 사랑은 또 사랑을 낳는다는 것을. (당신은 우는 것 같다, 144페이지)

 

첫 페이지를 펼치는 순간부터 아버지를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당연한 일 아닌가. 아버지를 생각하면서 쓴 이야기들 속에서 어떻게 나의 아버지를 떠올리지 않을 수가 있나. 누구라도 그러겠지. 기억 속 아버지를 소환하며 추억하거나, 지우고 싶은 기억으로 남아 있거나 하는 순간을 떠올리겠지. 한때는 아버지와 관련된 모든 일이 세상 전부인 것처럼 여겨져 이렇게 세상이 끝날 수도 있겠구나 싶었는데, 지금은 전부라고 생각했던 그 시간이 점점 조각이 난다. 하나둘씩 기억 속에서 사라져가는 느낌이다. 악에 받쳤던 감정은 마치 남의 일처럼 조금씩 흐트러진다. 이대로 계속 흐트러져 완전히 사라져가는 기억이도 좋을 것 같다.

 

오늘처럼 비가 많이 내리던 날이었다. 집으로 가는 골목에 들어섰는데, 앞서가는 사람의 등이 눈에 들어왔다. 아버지였다. 비가 오는데 우산도 없이, 그 비를 맞으며 추적추적 걸어가고 있었다. 다른 사람 같으면 얼른 가서 우산을 씌워드리고 집으로 가는 그 길을 같이 걸었을 텐데, 나는 그러지 않았다. 앞서가는 사람의 뒤를 따라 걷는, 그냥 모르는 사람과 같은 방향을 걸어가는 것처럼, 가만히 걷기만 했다. 집 대문을 열고 들어가는 그 모습을 볼 때까지, 나는 천천히 걸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작정하고 뒤를 따라 걸었던 게 아니라 조금은 주저하고 있었던 듯하다. 평생 해보지 않은 일을 하려니 머쓱하고, '아버지' 하고 부르며 가는 걸음을 멈춰 세울 수가 없었던 것 같다. '같이 가요' 그 말을 하기가 어색했던 건 아닐까 생각한다. 아버지와 화해하지 못한 것, 이해할 수 없었던 그 시간을 아쉬워하는 건 아니지만, 오늘처럼 비가 내리면 그날이 자꾸 생각난다. '내가 당신을 좋아한다거나 이해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그날은 우산을 같이 써야 했던 게 아닐까?' 하고 말이다.

 

모든 일은 지난 일이 된다. 시간은 세상의 전부였던 일들을 기억의 일부로 돌려놓는 재주가 있다. (당신은 우는 것 같다, 85페이지)

 

기억이라는 단어는 이상하다. 너무 많아 버거운 것이기도, 때로는 텅 빈 것이기도 하니까. 기억은 호리병처럼 생겼을까, 핀셋으로 집어야 하는 작은 칩처럼 인간의 몸속 어딘가에 심어진 부품일까. 기억의 모양은 알 수 없지만 그것이 시간과 밀접한 연관이 있고 인간의 의지로 결별을 제안할 수 없는 것임은 분명해 보인다. (당신은 우는 것 같다, 188페이지)

 

가족은 뜨겁고도 차갑고, 성기면서도 질긴 이름. 어느 가족이건 가만히 들여다보면 상한 부분이 조금씩은 있게 마련. 기타노 다케시의 말마따나 “누가 안 볼 때 쓰레기통에 갖다 버리고 싶은 존재”가 가족이라는 건 이제, 그리 특별한 비유도 아닌 것 같다. 그런데 참 이상하지. 너무 구질구질해서 갖다 버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아도, 결국 가족이고 끝내 가족이니까 마지막까지 당신 곁에 남는 게 또한 가족이라는 거. (당신은 우는 것 같다, 199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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