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 E. W.
김사과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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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이한 인물들의 등장으로 소설은 독자의 눈을 사로잡는다. 정지용, 최영주, 이하나.
정지용은 아버지의 엄청난 힘으로 한량으로 사는 것처럼 보인다. 어린 시절부터 성인이 되어서도 마찬가지다. 아버지의 돈으로 부족함 없이, 아버지가 정해준 여자와 결혼을 하고, 아버지가 마련해준 집으로 들어가서 산다. 
최영주는 어릴 적부터 어머니에게 인형처럼 길들어 살아온 여자다. 성장하는 방식부터 결혼까지. 최영주 역시 어머니가 정해준 남자 정지용과 결혼한다. 별거 없다. 그렇게 정지용과의 결혼생활을 시작한다.
이하나는 앞의 두 인물과 정반대의 환경에 있는 인물이다. 가난하다. 비빌 언덕도 없다. 돈에 목이 마른다. 우연히 시작한 인터넷 BJ로 생활하고 있지만, 그것도 여유롭지 않다. 

 전혀 다를 것 같은 세 명이 한 공간에서 머무르게 된다. 정지용의 아버지 정대철 회장이 시의 외곽에 만든 '메종드레브'에 입주하면서부터다. 정지용과 최영주는 당연하게 신혼집으로 마련된 그곳으로 들어간다. 맨 꼭대기 층 200평짜리 펜트하우스다. 그럼 이하나는 이곳에 어떻게 들어가게 되었나? '메종드레브'는 좀 특이하다. 정지용과 최영주를 보면 상류층의 주거 공간 같지만, 그 안에서 5평짜리 원룸이 존재한다. 엄격한 심사를 거쳐 이하나는 '메종드레브'의 5평짜리 원룸으로 입주한다. 전혀 마주칠 이유가 없는, 전혀 다른 세상에서 사는 이들이었다. 하지만 최영주가 임신하고 정지용은 '메종드레브'에서 우연히 본 이하나와 불륜관계가 된다.

 여기까지만 보면 그저 그런 일일드라마의 소재 같은데, 계속되는 이들의 삶을 지켜보면서 섬뜩해지기 시작한다. 그냥 주어진 대로 사는 것 같은 최영주는 변한다. 남편의 외도를 보면서도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참다가 시아버지와 친정어머니에게 말한다. 하지만 달라진 것은 없다. 아니, 오히려 시아버지와 친정어머니의 반응이 최영주의 삶의 자세를 바꿔놓는다. 며느리의 입에서 나온 아들의 외도에, 딸이 호소하는 눈빛으로 구조를 요청한 남편의 외도에, 두 어른의 반응은 특이했다. '어, 그래서. 그게, 왜?' 이런 뉘앙스. 배우자를 두고 외도를 하는 게 아무렇지도 않은 세상을 받아들이며 살아온 그들이다. 최영주는 그들에게 새로운 삶의 방식을 배운다. 자기가 지금껏 지켜보면서 살아왔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방식을 배운 거다. 외도쯤이야, 그게 인생에 무슨 문제라도 돼? 그냥 일상의 한 부분이라고 여기며 자기만의 방식대로 살아간다. 정지용과 데이트를 하고, 하와이로 떠나고, 예정된 날짜에 귀국하는 게 아니라 LA로 간다.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살면 된다. 마음 내키는 대로 하면서 살면 된다. 최영주는 사는 게 뭔지, 이제야 제대로 배운 듯하다.

 그들 못지않게 특이한 인물이 정지용이다. 아버지와 아내가 붙인 감시자가 있는 줄 알면서도 외도를 하고, 동선을 숨기려고 하지도 않는다. 감시자들과 한 몸처럼 다닌다. 누군가 자기를 지켜보고 있으니 오히려 안심이라고 생각한다. 자기가 위험에 빠지는 순간 구해줄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아이러니라니. 거기에 등장한 이하나는 이들의 삶을 이해하지 못한다. 아내가 있는 남자를 만난다는 게 불륜인 걸 알면서도 정지용이 보내는 관심이 싫지 않다. 그가 주는 집, 돈, 선물, 모두 거절하기 싫다. 그러한 생활에 익숙해지면서도 불안함은 사라지지 않는다. 특히 정지용은 좀 어리바리한 인물로 보였다. 아버지가 꾸려가는 회사나 세상일에 별 관심 없는 것 같았다. 그저 아버지가 쌓아놓은 부를 누리면서 사는 게 전부인 것처럼 행동했다. 하지만 그게 이 책을 읽으면서, 사람을 제대로 보지 못한 가장 큰 착각이었던 것 같다. 부자와 가난한 사람의 차이를, 그저 돈이 있고 없고 하는 것으로 생각했는데, 이들의 머릿속의 사고방식 자체가 인간이라고 부를 수 없을 만큼의 악이었는데, 그걸 감지하지 못했던 거다. 드러내놓지 않고 굳이 말하지 않으면서 교묘하게 인간을 대하는 이들, 이 부분을 정지용의 생각이나 말에서 바로 확인할 수 있다. 불륜 상대인 이하나를 개로 생각하는 정지용이다. 잘 먹고 잘 자고 잘 키우고 싶은 개로 생각한다. 잘 돌봐주면 그만인 대상이라고, 그러다가 남에게 피해를 주면 그 피해를 주는 것들을 하나씩 제거하면 된다는 것. 개와 인간이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는 그 방법밖에 없다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소설의 마지막에 이르면 정지용이 이하나를 개로 생각한다는 것을 증명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작가는 우리 모두가 유령이라고 말한다.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는 동거가 이루어지는 그곳, 정대철이 말하기를, 부자와 가난한 사람은 한 공간에서 머물 수 없지만, 또 너무 떨어져 있어도 안 된다는 목적으로 만든 '메종드레브'는 유령들의 동거 공간이다. 그리고 그 공간에서 만난 이들은 영원히 유령으로 살아간다. 그걸 증명이라도 하듯 정지용은 말한다.

“한번은 이렇게 말한 적이 있어요. 뭔가 대단한 것이라도 발견한 사람 같은 표정으로, ‘엔, 이, 더블유, 뉴N. E. W.가 현대 세상을 결정했다.’ 그게 무슨 약자인지 아세요? 신경학neurology, 전기electricity, 제2차 세계대전World War 2. 믿어지세요? 제 아버지가 이렇게 황당할 정도로 유치한 사람이라는 것이? 그런데 사람들은 아버지를 두려워하죠. 그게 다 아버지의 연기에 속고 있는 거야.” (201~202페이지)

정지용은 자기 아버지 정대철의 기이한 성장 방식을 인정하면서도 비웃는다. 아버지가 삶의 철칙처럼 말하던 NEW를 이해한다. 정대철은 신경학, 전기, 제2차 세계대전이 자기를 성공하게 만들었다면서 자기만의 방식인 것처럼 설파한다. 하지만 정대철이 놓친 게 있다. 시간은 흐르고, 세상은 변한다는 거. 자기가 이루어낸 세상을 이어갈 정지용이 또 다른 NEW를 만들어갈지도 모른다는 것을, 정대철은 몰랐다. 정지용이 아버지의 방식을 유치하다면서 비웃는 게 이해가 된다. 정지용과 최영주는 급이 다른, '레벨 업'된 수준의 유령이 되었으니까. (최영주는 아이를 낳았지만 엄마가 되지 않았다. 정지용은 이하나와 불륜을 저질렀지만 이하나를 인간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더 많은 이야기는 스포일러가 될까 봐 생략한다. 마지막에 이하나 앞에 놓인, 돈이 든 쇼핑백 두 개가 이들 불륜의 말로였다. 착각에 빠진 채로, 인생을 바꿀 수 있다고 믿었겠지...)

 화해도 없고, 아름다움도 없고, 인간으로의 감정도 바라지 못하게 하는, 참 특이한 소설이다. 나아질 거라는 희망도, 서민으로 살아가는 게 바뀔 거라는 바람도 없다. 오히려 너무 적나라하게 비추고 있는 현실, 현실을 넘어서서 그들(부자) 삶의 방식을 보여줬다는 게 맞겠다. 우리가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궁금하다가도, 이런 소설을 읽고 나면 그 궁금증은 바로 해결되고 답까지 얻는다. 우리는 언제나, 영원히, 누군가의 속임수에 빠져들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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