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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의 서 - 제3회 황산벌청년문학상 수상작
박영 지음 / 은행나무 / 2017년 4월
평점 :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막연하게 죽음을 생각하면서 읽는 것과 가까운 이의 죽음을 지켜보고 읽는 것은 매우 다르다. 소설로 읽으면서 대비하듯 죽음을 대하는 건 전자에 가깝고, 현실에 가까이 있는 것처럼 공감하며 읽는 건 후자에 가깝다. 분명 둘 중 한 가지만의 공감이 따라올 것 같았는데, 나에게 『위안의 서』는 두 가지 경우를 모두 느끼게 했다. 최근 몇 년 동안 겪은 죽음을 떠올리게 한다. 갑작스레 몇 번의 죽음을 가까이서 지켜보면서도, 아직 다 모르겠는 죽음을 생각하게 하면서도, 경황없이 겪은 죽음이 실재라는 걸 각인시킨다. 누구에게든 죽음은 가까이 있으며, 매 순간 죽음과 협상하듯 오늘을 버티는 기분이 든다. 그건 아마도 소설 속 두 주인공 정안과 오상아가 감추려 애쓰는 것이 보여서일지도 모르겠다. 죽음의 속도가 너무 빠르게 다가와 더는 미뤄두지 못하는 시간을 사는 정안과 죽음을 경험한 이들에게 위로를 보내며 자기의 죽음을 미뤄두는 상은의 진심 때문에...
정안은 박물과의 보존과학자다. 모든 죽은 것의 시간을 복원한다. 죽은 사람의 흔적으로 생존의 모습을 최대한 살려내고, 사라지고 부서진 유물의 처음 모습을 찾아준다. 시간과 자연으로 빛을 잃고 원래의 생태를 잃은 것을 복원하는 일이 그의 업무다. 그에게는 안성맞춤이다. 밖으로 나가는 것도 싫어하고, 사람들과 어울리며 나누는 감정도 불편한 그가 찾은 마지막 희망일지도 모른다. 어느 날 그에게 주어진 또 한 번의 일, 미라 보존처리를 하게 된 그는 미라 특별전에서 관람객을 상대로 설명까지 하게 된다. 거기서 본 어떤 여자, 오상아. 오상아는 정부에서 비밀리에 파견한 공무원이다. 자살을 방지하거나, 가족의 자살로 남은 이들을 위로하는 게 그녀의 업무다. 타인의 죽음을 막는 일이라니, 그녀 자신이 생의 의지가 거의 없는데, 타인의 죽음을 막으며 그들이 겪은 죽음으로 더는 나아가지 못할 삶을 위로하고 용기를 주는 일을 한다니... 그녀의 삶은, 늘 삶과 죽음의 경계에 걸쳐있는 듯하다. 그러다 우연히 찾아간 박물관의 미라 특별전에서 여자 미라의 악수(幄手)를 간절히 바라보던 오상아는, 그 미라에게 빨려 들어갈 것 같은 순간을 느낀다. 그때 정안의 목소리를 듣는다.
“유리에 손을 대시면 안 됩니다.”
그 순간 정안은 무엇을 보았기에 오상아가 미라의 악수에 다가가려 했던 것을 저지했을까. 단순히 관람객이 전시물의 유리에 손을 대는 걸 막기 위함은 아니었던 듯하다. 다른 사람은 볼 수 없는, 오직 그에게만 보이는 어떤 것이 그녀를 부르게 했던 거다. 아마도, 비슷한 듯 다른 두 사람 사이에 부유하는 공기만이 설명해줄 수 있는 그 무엇이었을 것이다. 그가 소리 내어 타인을 부른 순간, 그녀가 미라의 악수에 다가가려 했지만 저지된 순간, 무언가가 깨졌다. 각자가 단단한 성벽처럼 세웠던 원칙들이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그는 보지 말아야 할 것은 본 것만 같고, 그녀는 감추고 싶은 것을 들킨 것만 같다. 그리고 며칠 후 박물관에서 만난 두 사람은 죽음을 사이에 둔 채로 진심을 듣는다. 여자 미라가 입고 있던 수놓아진 저고리에 이야기를 부여하고 아름다운 사랑으로 승화시킨 그의 설명에 반박하듯 그녀는 소리친다. 그녀가 매일 겪는 죽음의 모습은 그의 설명처럼 전혀 아름답지 않음을 진하게 새긴다. 그녀가 본 죽음은 얼마나 잔인하게 현실을 보게 하는지 그는 모른다는 것처럼 외친다. “죽음은 우리 인간을 어느 순간 냉정하고 잔인하게 덮쳐올 뿐이라는 거예요.”
그녀의 성장 기억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그녀가 매일 겪는 죽음의 양상들 때문이었을까. 그저 알 수 없는 누군가의 시간에 아름다운 기억을 부여한 것으로 여겨도 좋을 미라의 사연에 그녀는 현재 자기가 보는 죽음을 대입시켜 그들의 사연을 전혀 동의하지 않는 것으로 말한다. 죽은 여자에게 입혀진 남자의 옷에 아름다운 상상 따윈 집어치우라는 듯이, 수놓아진 그림 속의 새와 벌레의 생존에 그녀의 시선을 새긴다. “삶은 그래요. 새가 생존을 위해 벌레를 잡아먹은 것, 그렇게 벌레의 생이 끝난 것, 그렇게 하나의 죽음이 완성된 것. 그것뿐이에요.”라는, 그 이상의 의미는 없다고 말하는 것처럼... 우리의 현실은 그렇다는 것을 새삼 증명하는 것만 같다. 그렇게 아름답게 포장하려 애써도 결국 포장지도 낡고 찢어지기 마련이라는 듯이, 그 안의 내용물은 아무리 감추려 해도 감춰지지 않을 거라는 걸 강조하는 그녀의 목소리에 꺼져가는 그의 삶이 그대로 보인다. ‘그거 봐, 당신이 누군가의 죽은 시간을 복원하려고 해도, 아무리 깨끗하게 세척한 의복이어도, 잘 맞춰진 뼛조각이어도, 그뿐이잖아. 그들의 시간은 거기서 멈췄잖아.’
그는 문화재를 복원하고 보존하는 일에 매달리면서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에게 시간이 동일하게 흐르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금속이나 돌처럼 물성이 본래 차갑고 단단한 것들은 그만큼 시간이 파고들 틈을 쉽게 내주지 않는다. 그러나 생명을 지녔던 닥나무를 원료로 한 종이나 비단, 모시, 삼베 등의 부드러운 것들은 너무나 쉽사리 자신의 틈새를 열고 시간을 흡수한다. 결과는 처참하다. 본래의 치열하고 매혹적이었던 빛깔은 빠르게 제 빛을 잃고 퇴색해버린다. 뿐만 아니라 부후균이나 벌레에 의한 공격까지 받는다. (59~60페이지)
매일 죽음의 시간이 다가오는 그와 매일 타인의 죽음을 보는 그녀가 사는 오늘을 떠올려본다. 누구의 위로가 필요하지 않은 삶이었다. 그는 거부할 수 없는, 유전적인 병으로 다가오는 죽음에 맞서 싸울 필요도 느끼지 못한다. 그저 담담하게, 혹시 내일 내가 돌아오지 못할 순간을 맞이한다면 누군가가 자기 삶을 깨끗하게 정리해주길 바라는 부탁을 할 뿐이다. 생존을 위해 타인의 죽음을 보고 들으며 위로를 업으로 삼는 그녀는 그들의 죽음을 저지할 수 없음을 알면서도 형식적인 위로를 건넨다. 그게 그녀의 일이다. 그녀가 진심을 담아 건네도 아무것도 나아질 게 없는 그들의 삶에서 죽음을 배제하라고 강하게 말하지 못한다. 그녀는 안다. 다행이라며 살아남은 그들은 곧 다시 죽음에 가까이 다가갈 거라는 것을. 그런 두 사람의 만남이 무엇을 전할 수 있을까. 한 사람은 죽음을 기다리는 것 외엔 할 수 있는 일이 없고, 한 사람은 타인의 죽음을 관조하는 진심을 숨긴 채로 건네는 위로밖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는데?
소설은 그녀의 갑작스러운 문자에 그가 답하면서, 그가 유물 발굴 현장으로 그녀를 이끌면서 분위기를 전환한다. 죽음에 끌려가는 것처럼, 자조적인 웃음으로 죽음을 마주하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들의 시선에 빛을 비춘다. 구덩이 안으로 들어간 두 사람이 고개를 들고 바라본 환한 달빛, 온몸으로 건네는 위안이 보여준 동트는 아침. 그는 죽어가는 시간을 잊은 듯 그 순간을 보내고, 그녀는 관조하듯 타인의 죽음에 위로를 건네는 것을 그만두겠다는 듯이 눈빛을 빛낸다. 그녀는 처음으로 전화벨이 울리길 기다린다. 새벽에 울리는 그 죽음의 전화벨 소리가 아니라, 그녀가 이제야 비로소 알게 된 게 사랑과 위안이 될 타인의 시선을... 여자 미라에게 입혀진 남자의 저고리가 말하는 의미를 이제 다른 시선으로 보게 된 그녀다. 혼자가 아닌, 시간을 공유하는 사이에서 만들어지는 유대감, 이제야 비로소 내 삶에 타인을 들일 수 있게 된 순간의 희열.
누군가의 죽음을 유기하기 위해 파놓은 깊은 구덩이 같은 발굴 현장에 내리고 있는 눈송이들이 그는 죽음처럼 보였다. 죽음은 눈에 보이지는 않아도 언제나 우리 머리 위로 일정하게 떨어져 내려 삶의 윤곽을 뒤덮어버리는 선뜩한 비늘들인 것이었다. (115페이지)
외로움은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삶의 모든 순간이 풍성한 안도로 채워져 있지는 않을 테니까. 가까이서 멀리서 겪는 죽음에 두려움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우리 모두의 시간에 공존하는 죽음이다. 정안과 상아가 비슷한 상처로 고통받고 비슷한 바람을 품고 있다는 것을 알아챈 순간 그들의 두려움이 옅어졌던 것처럼, 순간적으로 찾아오는 위안도 비슷할 것이다. 계획하지 않았지만 찾아오고야 말았던 위로의 순간은 서로를 보듬는 손길로 온도를 가진다. 죽음을 사라지게 할 수는 없지만, 죽음이 삶을 갉아먹지 않도록 죽음으로부터의 공격을 막는 일은 가능하게 하지 않을까? 그게 사랑이라면 더없이 아름답겠지. 상아가 기다리는 전화벨 소리는 울리지 않겠지만, 그래도 충분하다. 그녀는 이제 죽음이 삶을 잠식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