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욱하는 성질 잡는 뇌과학
가토 토시노리 지음, 고선윤 옮김 / 평단(평단문화사) / 2024년 5월
평점 :
사람은 아무리 정교한 이성이 작동하고 고용량의 뇌를 갖고 있어도 감정, 감정이라는 녀석에 휘둘리는 존재입니다. 이성이 아예 없다면 경솔한 사태를 빚고 나서 후회할 일도 없을 텐데, 나중에서라도 바른 판단이 돌아와서 과거를 반성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런 후회도 잠시, 이런 실수를 계속 반복하게 되는데 애초에 상황 당시에 욱하는 성질을 참고 나를 바로 통제할 수만 있다면 사후약방문의 오류, 우행을 탓할 여지도 없겠습니다. 어떻게 하면 나의 성격을 잘 다스릴 수 있을까요?
p21을 보면, 의학박사이자 기업 대표인 저자는 분노라는 감정, 반응에 대해 "원래 잘하지 못하는 것을 알려 줌으로써, 자기 자신을 지키는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저자는 자신이 만들어낸 용어로 뇌 번지(腦 番地)라는 말을 써서 논의를 이어갑니다. 번지는 우리가 아는, 등기부 등본이라든가 예전 지번 주소에서 쓰던 그 번지하고 뜻이 같습니다. 저자에 따르면 뇌의 번지는 사고, 전달, 이해, 운동, 청각, 시각, 기억, 감정 등의 8개가 있다고 합니다. 이 중 앞의 7개가 "나는 지금 이 상황을 감당 못 한다!"라고 느껴 스트레스를 받으면, 마지막 감정계 번지가 화를 냄으로써 폭발하게 된다는 게 저자의 이론입니다.
여튼 스트레스를 자꾸 받으면 골병이 들 테니 어떻게 해서라도 풀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할 수도 있는데, 그게 p77에 나옵니다. 7개의 번지 중 어느 하나라도 "용량이 초과"되었을 때 분노가 치솟아오르는 건데, 7개가 동시에 과부하에 걸리는 건 아니니까(물론 그런 경우도 있겠지만), 아직은 과부하 아닌 다른 번지로 이 무게를 이동시키면 된다는 게 저자의 제안입니다. 그 중 대표가 유산소 운동인데... 제 생각에 이 유산소 운동이라는 건 분노 조절 목적 외에도 좋을 것 같습니다. 현대인들은 식탐을 못 참고 과식했을 경우 죄의식(guilt)을 느끼는데, 운동으로 칼로리도 태워 없애고 스트레스도 날리니 일석이조입니다.
다른 책에서도 이 비슷한 조언을 읽은 적 있는데, 어떤 짜증나고 스트레스 주는 상황에 직면했을 때, 이를 곧바로 받아들이지 말고, 한 단계 필터링이랄까, 그 상황이라는 걸 말로 표현, 묘사해 보는 것입니다. 물론 입으로 내뱉지는 말고, 마음 속으로만 말입니다. p105를 보면, 나에게 회사의 과장(상사)이 막 화를 낸다, 이럴 때, 그의 감정에 집중하지 말고, 그의 외관 상태를 마치 연극 대본의 지문(地文)처럼 묘사를 해 보라는 겁니다. 이걸 저자는 "사실화"라고 하는데, 의사시다 보니 법정에 출석하여 검증 작업에 협조할 때가 있다고 합니다.
즉, 조서를 작성할 때 "화를 낸 피고인, 감정이 동요한 피해자" 등의 문구는 당사자가 삭제를 요청할 수 있는데, 그런 감정의 상태는 누가 객관적으로 측정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과장이 화를 낸다, 이 역시도 그게 화를 내는 건지 일시적으로 정신착란, 발작을 일으키는 건지는 내가 엄밀히는 알 수 없습니다. 후자라면 오히려 내가 그를 불쌍히 여겨야 합니다. 그러므로 나는 그의 분노 반응에 의미를 둘 게 아니라, 그의 얼굴이 붉어졌다, 목소리가 높아진다, 이 점에만 초점을 두라는 뜻입니다.
남녀의 뇌구조 차이(p129)도 저자는 강조합니다. 여자는 좌뇌의 언어 기능이 발달하다 보니 자신의 주관이 중시되고, 남자는 우뇌의 시각에 의존하다 보니 외부의 객관에 더 신경 쓴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자는 말에 민감하고, 남자는 남들이 다 지키는 규칙 위반을 하는 경우 이를 용납 못 한다고 저자는 지적합니다. 평소에 말을 할 때에도 남자는 어떤 권위자의 말을 중시하고, 여자는 누가 자기 의견을 물어 주면 적극적인 반응을 보인다고 합니다. 그러니 타인의 분노를 이해할 때 이 점을 유념할 필요가 있습니다.
앞에서도 말했듯 분노를 드러내어도 내게 무슨 불이익이 없다면 화를 내든 말든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현실적으로 피해가 내게 생기니 화를 내지 말라는 것입니다. p163을 보면 이성에 따른 계산을 평소에 행하는 습관을 들이라고 합니다. 직장에서 내게 월급을 주는 건 욕 먹는 값도 포함이라는 세간의 우스개도 있습니다만 사실 요즘은 특정한 인재들을 제외하면 조직의 시스템이 일을 하지 개인의 수고에 기대는 바가 예전보다는 적습니다. 나 없으면 회사가 안 돌아가고 이 정도가 아니니 상황을 객관화할 필요도 있습니다. p188에, 화를 잘 내는 사람은 뇌의 특정 회로가 굵어져서 그렇다는데, 책에 체크리스트가 있으므로 한번 점검해 보는 게 좋겠습니다. 키울 필요가 없는 걸 괜히 키워 봐야 나한테 이로울 게 없으니 말입니다.
책 말미에는 분노 회로를 리셋하는 방법이 나오는데 이 부분은 뇌과학을 떠나 처세의 방법으로도 유익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화 날 때마다 곁에 두고 참고할 만한 책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