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비-스트로스의 구조주의문화이론과 사상
강학순 지음 / 인간사랑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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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학에 구조주의 사조를 도입하여 문화와 사회를 보는 시각 자체를 바꿔 놓은 클로드 레비스트로스의 사상과 그 현대적 의의를 강학순 박사가 독창적 관점에서 저술한 책입니다. 레비스트로스는 우리가 잘 알듯 걸작 <슬픈 열대>를 통해 사회에 기 구축된 구조가 개인의 의식과 가치관을 어떻게 지배하는지를 잘 보여 줬고, 이른바 자유의 영역이 우리 기대만큼 널리 확보된 게 아니라는 점을 확인시켰습니다. 장자크 루소는 "인간은 자유롭게 태어났으나 도처에서 사슬에 묶여 있다"고 개탄했는데 사실 그 사슬은 묶인 이들조차 그 제조와 유지에 기여했을 뿐 아니라 사슬로부터 풀려날 의지도 박약했던 셈입니다. 

흔히 구조주의 4총사라고 해서 푸코, 바르트, 라캉, 알튀세르를 드는데 그 기원은 프랑수아 도스의 <구조주의의 역사>이며 도스는 그에 덧붙여 이 네 사람의 아버지와 같은 존재가 레비스트로스라고 합니다(p213의 각주도 참조). 아니면 논자에 따라 알튀세르를 빼고 그냥 레비스트로스를 동렬에 넣습니다만 이는 도스의 워딩과 다르며 강학순 박사가 해당 페이지에서 쓴 바가 정확합니다. 다만 독특하게도 저자는 원어를 괄호 안에 병기하면서도 여기서 4인방이라는 번역어를 사용합니다(중요한 건 아닙니다만). 

p74 이하에서 강학순 박사는 영국의 B K 말리노프스키라는 기능주의 인문학자를 소개합니다. 마르크스가 죽은지 2년 뒤에 태어난 사람이고 클로드 레비스트로스의 거의 부친뻘 되는 연배입니다. 이분의 입장은 기능주의는 기능주의지만 보통은 심리학적 기능주의라고 규정됩니다(구조론적 기능주의와 대조하여). p77에 나오는 대로, 문화란 기본적으로 그에 속한 사람들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보는 게 그의 기본 입장입니다. 잔존 개념을 거부하고 당시적합성을 주장하는 점에서 그의 관점은 진화주의와 선명하게 대조됩니다. 

p114 이하에서 베르그송 식의 무기간(無期間) 시간을 설명하기 위해 저자는 한국식 비유를 드는데, 검술을 전혀 배운 바 없고 타고난 신체 능력도 특별할 게 없는 어느 고도의 무속인(그런 사람이 실제 있다는 게 아니라)은, 상대가 칼을 쥐고 치고들어오는 모든 동작을 오로지 직관으로만 예측하여 대응합니다. 이때 무속인은 자아가 없는 상태이며, 이 사람이 지금 겪는("내"가 없으니 "겪는다"는 말도 모순이지만 일단) 시간이 바로 무기간 시간입니다. 시간은 원래 무기간 시간이 개념으로서 순수했으나, 과학자들이 시공간(원어로는 space-time이라서 약간 순서가 바뀌기는 했습니다)을 물리학적으로 재규정함으로써 거꾸로 무기간 시간이 예외가 되어버렸습니다. 상대성이론을 만든 아인슈타인이 그 대표입니다. 

레비스트로스에게 열대가 슬프게 인식된 건, 말할 것도 없이 서구인들에 의해 철저히 타자화된 현지인들이 이른바 문명화한 서구 백인들에 의해 다뤄지는 참상을 본 결과였습니다. p144를 보면, 생전에 루소도 비유럽 트리컨티넨트로 향하는 이유가, 미개인들을 정복, 교화, 혹은 그에 대한 시혜를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을 거울삼아 백인들 자신의 참모습을 발견하기 위해서라고 저서 속에 밝혔다고 합니다. 저자 강학순 박사님은, 열대인이건 백인이건 아시아인이건 사람이라면 공통으로 갖고 있는 정신, 마인드의 공통 구조(structure)를 발견하는 게 인문학, 인류학, 철학, 나아가 모든 학문의 궁극적 목표라고 말씀합니다. 레비스트로스 역시도 같은 생각이었겠습니다. 

언어기호와 대상이 아무런 필연적 연계를 갖지 않고 임의성을 띠며(예외도 있습니다) 대상이 언어에 선존하지 않고 오히려 그 반대라는 드소쉬르의 언어학적 구조주의(구조주의의 원류)는 가히 코페르니쿠스적 발상의 전환이라고 할 만합니다. 수천 년 전 이미 지동설을 말한 아리스타르쿠스가 있었으니, 파천황의 주장을 전개 완성한 페르디낭 드소쉬르가 오히려 코페르니쿠스보다 더 혁명적인 사고가입니다. 

p236에서 저자는 칼 융 등이 논한 신화의 기능에 정면으로 반기를 들었던 레비스트로스의 관점을 설명합니다. 여기서 그는 이항대대(二項對待. p191, p204에 처음 나옵니다)라는 구조주의 고유의 방법론을 들어, 신화의 의의는 어떤 무엇을 설명하고자 하는 게 아니라, 반대로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인간의 마음에 과연 무엇이 들었는지를 탐구함으로 족하며 그를 통해 끄집어내는 담론이 더 중요하다는 취지입니다. 이항대대라는 용어는 binary opposition이며, 강 박사님이 특별히 이렇게 번역하시는 거고 보통은 二項對立이라고들 합니다. 인간의 사유가 구조에 의해 왜곡되고 비합리성을 띠게 하는 대표적인 통로입니다. 

클로드 레비스트로스가 결정적으로 영향받은 문화상대주의의 정초자 말리노프스키는 앞서 말했듯 심리학적 접근을 취한 학자였고 그 점에서 레비스트로스는 (구조조의의 대표자답게) 이를 거부하고 나왔습니다. p235에서 저자가 지적하듯 레비스트로스는 당대의 주류 입장들에 대해서는 물론, 레비브륄, 말리노프스키 같은 자신의 스승격 인물조차 부정하고 나선 반항아였습니다. 또 레비스트로스는 가뜩이나 동양 사상에 대해 생전에 자주 언급, 원용했었는데 저자는 특히 책에서 본인의 동양철학 지론에 바탕하여 레비스트로스를 쉽게 설명하며 이 부분이 독자 입장에서 흥미롭습니다(예컨대 p208의 복합이원구조와 불가의 염화시중을, p235에서 유학의 격물치지와 수퍼합리주의를 연결하는 대목. p495의 유교합리주의 논급도 참조). 7장에서 전개되는 서구 우월론자 길버트 로즈먼에 대한 반박, 극단적 페미니즘에 대한 타매도 독자에 따라 통쾌함을 느낄 수 있겠습니다. 인간사랑의 인문서답게 장정도 예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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