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내버려둬
전민식 지음 / 파람북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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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토피아 장르물이 계속 나오는 이유는 정말로 동시대인들이 현실에서 이 비슷한 공포를 느끼기 때문입니다. 현실이 너무도 만족스러워서 가상으로라도 지옥을 맛보고 다시 복귀하는 짜릿함을 체험하고 싶어서(마치 미국 상류층의 go slumming처럼)가 아니라, 까딱 잘못하면 이렇게 된다는 불안이 히스테리 아닌 카나리아의 울음 비슷하게 표현된다고 생각합니다. 전민식 작가의 이 신작 장편도 먼 미래가 접어든 가장 섬뜩한 평행우주라기보다 그저 우리가 사는 이 현실의 메타포어라고 저는 읽었습니다.  

주인공 탁수가 사는 세상은 이미 망해서 각 개인이 고립된 자기 위치에서 부품처럼 정해진 단순노동만 행할 뿐입니다. 맑은 물도 마실 수 없고 사방이 산성물(p156)입니다. 이미 수자원 자체가 부족해서 오수, 하수를 화학적으로 정화하여 마시기도 하고 변기도 내리고 몇 번을 반복해서 쓰지만 아무 문제 없다는 듯 다들 다람쥐 쳇바퀴 돌듯 잘 살아갑니다. 100세가 넘은 노인들이라야 "산에서 내려오는 물을 그대로 마실 수 있었다(p8)."고 회고할 수 있는 판입니다. 그런데 사실, 원래부터 전지구상에서 생수를 별 가공 없이 섭취해도 되는(되었던) 자연조건은 한반도 외에는 별로 없습니다. 여튼 주인공 이름부터가("濁水?") 예사롭지 않습니다. 이 세상은 맑은 물만 부족한 게 아니라 태양광도 부족한데 뭐 우리도 미세먼지 때문에 고생하는 건 같습니다. 아니 어쩌면 더 삼각한지도. 

젊은이들 다수는 페달러라고 해서 동력을 단순 육체노동으로 생산하는 직역에 속합니다. 사회가 크게 망가져서 화력, 수력, 원자력 등에 의존할 수 없게 되었나 봅니다. 쉽게 상상이 되지만 아무런 미래 비전도 없고 보람도 안 느껴질 일입니다. 다만 페달링이 없으면 그대로 사회가 멈춰 버리겠기에 체제에서는 젊은이들에게 일종의 세뇌를 통해 직업 헌신에의 이유를 부여하며, 비교 대상도 없으니 자신의 처지가 낫다 못하다 판단할 여건도 못 됩니다. 이는 미래 디스토피아의 풍경이라기보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어두운 한 단면으로 봐도 됩니다. 마실 물을 함부로 못 마신다는 것, 다수 젊은이들이 이륜이동수단을 통해 배달업에 종사하며 젊음을 소진하고 내일의 향상에 대한 비전을 거세당하는 게 지금 우리 사는 모습과 별반 다르지도 않습니다. 

"알고 보니 몸의 힘은 근육이 아니라 손가락 끝에서 나오더라.(p33)" 글쎄 어떤 비유적인 표현인지는 모르겠으나 우리 몸은 알고 보면 하나하나가 다 연결되어 있습니다. 체했을 때 손가락을 따면 갑자기 살 것 같아지는 이유도 같겠습니다. 콩은 비교적 쉽게 재배할 수 있고 단백질원이기도 해서 하층민들에게 권장해 온 게 실제 역사이기도 했는데 일제강점기에도 한반도에서 주식인 쌀은 일본으로 수탈하고 만주에서 잡곡을 대량 생산하여 식민지 주민들의 영양원으로 배분했습니다. 또 가난한 라틴 아메리카에서도 기층 농민의 주식이 콩이라서 beaner라는 말 자체가 비칭 멸칭입니다(지금도). 소설에서 콩 이야기(p71)가 나오는 건 아마도 이런 사정 때문이겠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콩은 정말 좋은 음식이니 우리들은 열심히 먹어도 될 듯합니다(ㅋ). "궤도에서 시작해 궤도로"는 이 소설에서 노동자들을 선동하는 일종의 구호인데, "기다리는 시간은 가지 않는다(p45)"는 아마 영어 속담 "A watched kettle never boils"의 변형인 것 같습니다. 

"페달러야 (또) 구하면 되지(p59)." 이 퉁명스러운 공장장의 말에서도 알 수 있듯 페달러는 언제 어디서나 대체 가능한 소모품일 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p36, p24에서 보듯 탁수는 마스터로 승진하는 걸 싫어합니다. 마스터는 그저 직급이 아니라 따로 군락지가 있을 만큼(p30) 아예 다른 계급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탁수는 승급을 싫어하는데 세뇌가 착실히 진행되어서? 혹은 지금도 한국 대기업 생산직이 그렇듯 오히려 현장일이 책임도 없고 대우가 더 나아서? 아니면 최고의 페달러(p163, p97)라는 자부심? 그건 아니고 감시와 통제라는 관리직의 비인간적 직무에 대한 거부감 때문입니다. 

소설 초반에는 브랜디가 장수 입에서 언급되었고, p65를 보면 사과주(p132)인 칼바도스가 나옵니다. 이건 독주에 속하는데 레마르크의 <개선문>에서 얘가 하는 일이 있죠. 본래부터가 노동자 입맛에 맞는 술입니다. 독한 술이 필요할 만큼 페달링은 충분히 고된데 공장장은 빈 자리를 베이지색 인아리라는 여성으로 채우고 "궤도에 적합한 몸(p79)"이라며 이상한 합리화까지 합니다. 궤도에 적합한 몸도 있고 더할수없이 깨끗하고 신성한 몸(p161)은 또 따로 있습니다. 그런데 p106에 나오듯이 여자는 괴력을 발휘하고... 과연 공장장 안목이 보통 안목은 아님을 증명하긴 하네요. 하지만 아직 멀었습니다. p122에 나오듯이 뒤의 동료 호흡이 들려야 하는데 아리는 안 들렸다고 하니 말입니다.   

"세상의 끝은 세상의 시작(p211)" 죽음은 어떻게 보면 또다른 삶의 시작일 수 있습니다. 꿈이 알고 보면 과거 기억(p219)의 변형된 잔해이기도 하듯이 말입니다. 하지만 오래 전에 시간의 순리를 배반했다는 게(p187)... 김히로의 죽음부터 해서 이 세계의 진실은 어쩌면 예상 외로 단순하며, 아마도 금기시된 지하로 가 봐야 알 수 있을지 모릅니다. H G 웰스의 <타임 머신>에서 지하에 또다른 세계, 지옥 비슷한 게 있었듯... 오류가 무서운 건 그 너머에 그보다 더한 오류가 도사릴 수 있어서이겠는데, 그래도 궤도 끝에 또 같은 위대한(p125), 또 고귀한(p149) 궤도가 있으리라고는 생각하고 싶지 않습니다. 징그러니우까 말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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