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베이스 관리 시스템 - 데이터 관련 요구 사항 파악에서 DBMS의 설계와 응용까지
조민호 지음 / 정보문화사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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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빅데이터 시대이기 때문에 어느 회사든 데이터 관리가 무척 중요합니다. 이 빅데이터 강조 트렌드가 늦어도 2018년 경부터는 이미 널리 퍼졌었으므로 어느 회사든 웬만해서는 지금은 다들 DBMS를 돌리고 있는 상태이겠습니다. 책 p20에도 나오듯이, 현재는 대세라 할 만한 것이 RDBMS입니다. 그런데 세상에 영원한 것이란 없고, 천하를 제패한 듯하던 RDBMS도 개별 기업의 상황에 따라 한계가 드러나기도 해서 지금은 살짝 개별화로 가는 추세입니다(그래도 여전히 RDBMS가 다수이긴 합니다. 아직은). p21을 보면 DBMS는 크게 현재 세 가지 부류가 쓰이고 있다고 합니다. 이 중 두번째인 NoSQL을 보면, 지금으로부터 6년 전쯤에는 이 유형이 대세가 될 것이라고들 했었습니다. SQL 그 이상을 지향한다는 뜻이었는데 당초의 기대와는 달리 현장의 수요에는 살짝 포커스가 어긋난 감이 있었습니다. 책에도 나오듯이 현재의 대세인 RDBMS는 어디까지나 SQL 기반입니다. SQL을 모르면 이 주제를 논할 수 없습니다. 

p31을 보면 부울형이 나오는데, 부울은 부울 대수(명제함수)의 개발자 이름(Boole)을 딴 것입니다. 요즘은 외국인 인명 표기에 장음을 쓰지 않기 때문에 불이라고 쓰는 게 맞으나 전산학에서는 시인성 때문인지 이렇게도 여전히 쓰는 것 같네요. 자신의 이름(과 학문적 성과)이, 당시에는 상상도 못했던 전산 시스템의 기본 원리 중 하나로 채택되어 이렇게 널리 쓰일 것이라고는 부울 자신도 아마 몰랐을 듯합니다. p33을 보면 저자는 "프로그램 언어에서 제공되는 데이터형을 모은 것, 클래스와 배열을 함께 사용하면 테이블형이 된다는 걸 눈치빠른 독자는 느꼈을 것이다"라는 문장이 있습니다. 우리는 초보 시절, 전산학 책이라면 그저 기술적 지시 사항만 기계적으로 묵묵히 따라배우는 것으로만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는 공부가 재미도 없을 뿐 아니라, 매뉴얼만 따라하다 몸에 익힌 것 말고는 아무 융통성도 응용력도 발휘 못하는 개발자는 요즘 같은 세상에 살아남기가 어렵습니다. 이 책은 저자가 책 곳곳에 심어 둔 유익한 팁도 빠짐없이 익히면서 나의 진짜 실력을 키우는 뚜렷한 장점이 있습니다. 

책 앞에서, 요즘은 꼭 RDBMS가 아니라 개별 기업의 사정에 따라 다양한 시스템을 채용한다는 점을 저자가 지적한 적 있습니다(우리들이 현장에서 보는 바로도 그렇습니다). 그것 관련해서 p48에 설명되는 내용을 유념해서 봐야 하는데, 프로세스 모델링의 필요성에 대한 논의입니다. 특히 이 부분을 보십시오. "단위 기능 수행을 함수로 표현하면 소스의 길이가 줄어들고, 전체 내용 관리도 편해진다." 요즘 나오는 데이터관리 시스템 논의는, 이처럼 가능한 한 소스를 최적화하여, 전체를 한눈에 개관할 수 있어야 함이 자주 강조됩니다. 이 페이지에는 그림2-3을 통해, 구조적 방법론을 위한 표현 기법을 정리합니다. 그림이라기보다는 표인데, 이 표를 통해 독자는 토픽을 일목요연하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 

데이터라는 게, 여기저기 파편화된 상태로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p63에서 저자는 "RDBMS에서 데이터를 다루기 위한 단위는 개체와 속성인데, 개체는 관계 있는 데이터를 묶어주는 게 바로 개체(entity)"라고 한 마디로 설명합니다. 우리가 회사에서 Db를 다루면서, 개체 인스턴스 참조 오류니 뭐니 해서 얼마나 짜증나는 일을 자주 겪었습니까. 이제 그 개체라는 게, 어느 정도 기초 레벨에서 큰 의의를 가지는지 책에서 확인하게 됩니다. 같은 페이지에서 저자는, 도대체 RDBMS에서 "관계"라는 게 어떤 종류가 있으며 그것들이 수행하는 기능이 무엇인지를 여섯 가지 유형으로 정리하여 설명합니다. 

정규화. 책 p90에서 저자는 E-R 모델링을 염두에 두고 "불필요하게 중복되거나 애매한 데이터를 제거하고, 이를 기반으로 정보의 무결성을 높이고자 개발된 기법"이라고 저 정규화라는 개념을 요약합니다. 제가 컴퓨터 책 리뷰 쓸 때마다 하는 말이, 소스나 프로그램이 다 같은 게 아니고, 이른바 "돌아가기만 하면 되는 것 아니냐" 같은 현장의 무책임한 주장을 단호하게 쳐내야 한다는 겁니다. 그런 말은 세기말의 어설픈 일부 PC통신 세대들이나 하던 소리입니다. 뜻밖에도 p102에서야 SQL 개념이 처음 언급되는데, 이미 이 책을 보는 독자들이라면 언어 체계 SQL에 대해 익숙하겠다는 전제 때문이겠네요. p118 이하를 보면 데이터타입에 대한 설명이 시작되는데 p119의 내용들은 절대 잊어버리지 않게 머리 속에 확실하게 정리를 해 두어야 하겠습니다. 

p133을 보면 행을 대상으로 사용하는 SQL함수의 사용법이 나오는데, 이 책에서 제일 유익한 대목이었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설명도 잘 되었을 뿐 아니라 실습 코너에 나오는 예제들이 참 좋습니다. 문자, 숫자, 변환, 일반 함수로 나누어 일일이 소스를 보여 주고, 다음에 바로 이어지는 "테이블을 대상으로 동작하는 SQL 함수" 설명은, 여태 서당개 풍월로 얻어듣던 바로만 일하다가 이제 체계를 잡는 느낌이었습니다. 너무 깔끔하고 유익한 공부였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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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2025 부동산 시장을 움직이는 절대 트렌드 7
권화순 지음 / 메이트북스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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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글로벌한 경기침체 여파로 부동산 시장이 더할 수 없이 좋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지금이 저점이라서 치고들어가야 하냐면 그건 또 확신할 수 없습니다. 주식도 저점 잡기가 힘들지만 부동산은 주식하곤 또 다르다는 견해도 있습니다. 그러나 과연 한국에서 부동산이 장기 우상향할 수 있는지도 이제는 확신할 수 없는데, 이건희 회장의 대도박이 멋지게 통했던 디램반도체 성공 같은 게 또다시 한국에서 가능할지부터가 의문이기 때문입니다. 경제성장 동력이 마련 안 되면 부동산 역시도 일본 꼴이 나기 십상이라서입니다. 

집없는 이들에게 내집마련의 기회도 주고 노령층 집값 방어도 시켜 주는 전세 대출이라는 게 취지는 좋았으나 변칙적인 갭투자가 만연하고 결국은 조작적이고 의도적인 전세사기 행태까지 만연하게 되었습니다. p80을 보면 어쩌다 이지경까지 오게 되었는지 분석이 나오는데, 사정이 이러다 보니 대출이 규제될 수밖에 없고 전 정부에서 신규 대출을 극구 억제한 건 타당했다고 생각합니다. 22년 대선 당시 각 후보가 대출완화를 공약한 건 포퓰리즘에 가까웠다고 생각합니다. 

50년 만기 특례보금자리론... 이런 상품은 과거라면 미국에서나 가능한 금융상품이라고 여겼는데 어느새 한국에서도 볼 수 있게 되었고, 책에도 나오지만 이게 작년에 폭발적인 인기를 끌어 한 달만에 1조원이 넘게 팔렸다고 합니다. 그러나 50년 만기라니! 석 달만에 판매가 전격 중지된 이 상품의 예를 보며, 과연 한국의 당국자들이 일을 제대로 하며 금웅기관에 모럴이란 게 있는지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몇 년 전 마치 돌아가면서 오르기라도 하듯 지방 부동산이 폭등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작년쯤 대구 아파트 과잉 공급 논란도, 마치 수주대토 각주구검처럼 이미 한물 지나가버린 투기수요가 다시 찾아오겠거니 하는 잘못된 결정에서 비롯했을지도 모릅니다. p127에서 저자는 정부가 투기과열지구 해제를 해 봐야, 이미 이런 지역에 눈길을 주는 건 때가 늦었을 수 있다고 합니다. 거꾸로, 해제가 되었다는 건 이미 이 지역이 별볼일없어졌다는 뜻으로, 일종의 낙인효과마저 발생할 수 있다고도 합니다. 이미 수도권, 경기 반도체 벨트 중심으로 나라가 돌아가는 판에 무슨 동인이 있어서 지방 부동산이 오르겠습니까. 영리한 중국인들 장난에 놀아날 뿐이죠. 

p146을 보면 1인 가구는 대단지 중소형, 60㎡(18평형) 이하를 노리라고 합니다. 1인 가구는 원래 청약 시장을 노리기 힘들었는데 이제 제도가 개편되어 이게 가능해졌다고 책에서는 말합니다. 85㎡(26평) 이상에서는 4050을 우대하기 위한 목적인데, 다만 책에서는 아무리 제도의 취지가 좋아도, 예를 들어 만점 통장을 갖고 7인(...) 가구가 74㎡에 입주한다는 게 현실성이 있겠냐며 당국의 사려 부족을 비판합니다. 

정책은 돌고돕니다. 한때 폐기되었던 정책도 시류가 바뀜에 따라 다시 채택, 집행될 수 있고, 정권의 좌우도 가리지 않습니다. p167을 보면 이명박 정부 때 실시되었다 이후 중단된 사전청약이 문재인 정부 들어(2021) 다시 도입되었습니다. 이 정책은 올해(2024) 5월 14일(불과 며칠 전입니다)  국토교통부에서 폐지를 발표했습니다. 이 제도 활용해 보려 했던 이들에게는 아쉽겠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공시가격이라는 게 만인에게 알려진 정보이므로 이를 적극 참조하여 의사 결정을 해야 합니다. 이는 한국부동산원이 산정하는데, 드물긴 해도 이의제기를 통해 정정되는 경우가 있긴 했습니다. 19년 성수동 주상복합 갤러리아포레의 경우가 그러했습니다. 다만, 모두가 알듯 이 아파트는 일반 서민이 감히 넘볼 수 없는 최고가상품이라는 점을 감안은 해야겠습니다. p219를 보면 공시지가 3억원 이하의 지방주택은 양도세, 종부세 산정 시 고려되지 않는다는 점도 유념해야 하겠습니다. 

"집값은 그래서 과연 떨어질까요 올라갈까요?(p273)" 2020년 이후 한국의 집값은 냉탕과 열탕을 오갔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지난 10년 간은 초저금리 시대였습니다. 그러던 게 코로나19를 거쳐 미국이나 한국이나 시중에 돈이 과하게 풀려 인플레이션이 유발되고, 우리가 지금 이처럼 "월급 빼고 다 오르는" 고초를 겪고 있습니다. 이 돈을 거두어들이려다 보니 미국에서는 40년 전 폴 볼커처럼 온갖 원성을 들어가며 고금리 정책을 펴는 것입니다. 금리가 높다는 건, 이른바 영끌로 무리하게 대출을 해서 내집 마련을 한다, 이런 선택은 매우 곤란해진다는 걸 뜻합니다. 

그런데 저자는 오히려 역으로 치고들어가서, 이럴 때야말로 내 능력에 맞게, 무리하지 않으면서 내 집 마련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고 합니다. 자신이 거주하는 지역, 직장,  자신의 잔고 등을 종합 고려하여 신중하게 결정한다면, 주식 시장도 그러하듯 역발상이 통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큰 돈이 걸린 선택이니만치, 모든 정보를 차근히 수집하여 현명한 선택이 되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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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내버려둬
전민식 지음 / 파람북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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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토피아 장르물이 계속 나오는 이유는 정말로 동시대인들이 현실에서 이 비슷한 공포를 느끼기 때문입니다. 현실이 너무도 만족스러워서 가상으로라도 지옥을 맛보고 다시 복귀하는 짜릿함을 체험하고 싶어서(마치 미국 상류층의 go slumming처럼)가 아니라, 까딱 잘못하면 이렇게 된다는 불안이 히스테리 아닌 카나리아의 울음 비슷하게 표현된다고 생각합니다. 전민식 작가의 이 신작 장편도 먼 미래가 접어든 가장 섬뜩한 평행우주라기보다 그저 우리가 사는 이 현실의 메타포어라고 저는 읽었습니다.  

주인공 탁수가 사는 세상은 이미 망해서 각 개인이 고립된 자기 위치에서 부품처럼 정해진 단순노동만 행할 뿐입니다. 맑은 물도 마실 수 없고 사방이 산성물(p156)입니다. 이미 수자원 자체가 부족해서 오수, 하수를 화학적으로 정화하여 마시기도 하고 변기도 내리고 몇 번을 반복해서 쓰지만 아무 문제 없다는 듯 다들 다람쥐 쳇바퀴 돌듯 잘 살아갑니다. 100세가 넘은 노인들이라야 "산에서 내려오는 물을 그대로 마실 수 있었다(p8)."고 회고할 수 있는 판입니다. 그런데 사실, 원래부터 전지구상에서 생수를 별 가공 없이 섭취해도 되는(되었던) 자연조건은 한반도 외에는 별로 없습니다. 여튼 주인공 이름부터가("濁水?") 예사롭지 않습니다. 이 세상은 맑은 물만 부족한 게 아니라 태양광도 부족한데 뭐 우리도 미세먼지 때문에 고생하는 건 같습니다. 아니 어쩌면 더 삼각한지도. 

젊은이들 다수는 페달러라고 해서 동력을 단순 육체노동으로 생산하는 직역에 속합니다. 사회가 크게 망가져서 화력, 수력, 원자력 등에 의존할 수 없게 되었나 봅니다. 쉽게 상상이 되지만 아무런 미래 비전도 없고 보람도 안 느껴질 일입니다. 다만 페달링이 없으면 그대로 사회가 멈춰 버리겠기에 체제에서는 젊은이들에게 일종의 세뇌를 통해 직업 헌신에의 이유를 부여하며, 비교 대상도 없으니 자신의 처지가 낫다 못하다 판단할 여건도 못 됩니다. 이는 미래 디스토피아의 풍경이라기보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어두운 한 단면으로 봐도 됩니다. 마실 물을 함부로 못 마신다는 것, 다수 젊은이들이 이륜이동수단을 통해 배달업에 종사하며 젊음을 소진하고 내일의 향상에 대한 비전을 거세당하는 게 지금 우리 사는 모습과 별반 다르지도 않습니다. 

"알고 보니 몸의 힘은 근육이 아니라 손가락 끝에서 나오더라.(p33)" 글쎄 어떤 비유적인 표현인지는 모르겠으나 우리 몸은 알고 보면 하나하나가 다 연결되어 있습니다. 체했을 때 손가락을 따면 갑자기 살 것 같아지는 이유도 같겠습니다. 콩은 비교적 쉽게 재배할 수 있고 단백질원이기도 해서 하층민들에게 권장해 온 게 실제 역사이기도 했는데 일제강점기에도 한반도에서 주식인 쌀은 일본으로 수탈하고 만주에서 잡곡을 대량 생산하여 식민지 주민들의 영양원으로 배분했습니다. 또 가난한 라틴 아메리카에서도 기층 농민의 주식이 콩이라서 beaner라는 말 자체가 비칭 멸칭입니다(지금도). 소설에서 콩 이야기(p71)가 나오는 건 아마도 이런 사정 때문이겠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콩은 정말 좋은 음식이니 우리들은 열심히 먹어도 될 듯합니다(ㅋ). "궤도에서 시작해 궤도로"는 이 소설에서 노동자들을 선동하는 일종의 구호인데, "기다리는 시간은 가지 않는다(p45)"는 아마 영어 속담 "A watched kettle never boils"의 변형인 것 같습니다. 

"페달러야 (또) 구하면 되지(p59)." 이 퉁명스러운 공장장의 말에서도 알 수 있듯 페달러는 언제 어디서나 대체 가능한 소모품일 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p36, p24에서 보듯 탁수는 마스터로 승진하는 걸 싫어합니다. 마스터는 그저 직급이 아니라 따로 군락지가 있을 만큼(p30) 아예 다른 계급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탁수는 승급을 싫어하는데 세뇌가 착실히 진행되어서? 혹은 지금도 한국 대기업 생산직이 그렇듯 오히려 현장일이 책임도 없고 대우가 더 나아서? 아니면 최고의 페달러(p163, p97)라는 자부심? 그건 아니고 감시와 통제라는 관리직의 비인간적 직무에 대한 거부감 때문입니다. 

소설 초반에는 브랜디가 장수 입에서 언급되었고, p65를 보면 사과주(p132)인 칼바도스가 나옵니다. 이건 독주에 속하는데 레마르크의 <개선문>에서 얘가 하는 일이 있죠. 본래부터가 노동자 입맛에 맞는 술입니다. 독한 술이 필요할 만큼 페달링은 충분히 고된데 공장장은 빈 자리를 베이지색 인아리라는 여성으로 채우고 "궤도에 적합한 몸(p79)"이라며 이상한 합리화까지 합니다. 궤도에 적합한 몸도 있고 더할수없이 깨끗하고 신성한 몸(p161)은 또 따로 있습니다. 그런데 p106에 나오듯이 여자는 괴력을 발휘하고... 과연 공장장 안목이 보통 안목은 아님을 증명하긴 하네요. 하지만 아직 멀었습니다. p122에 나오듯이 뒤의 동료 호흡이 들려야 하는데 아리는 안 들렸다고 하니 말입니다.   

"세상의 끝은 세상의 시작(p211)" 죽음은 어떻게 보면 또다른 삶의 시작일 수 있습니다. 꿈이 알고 보면 과거 기억(p219)의 변형된 잔해이기도 하듯이 말입니다. 하지만 오래 전에 시간의 순리를 배반했다는 게(p187)... 김히로의 죽음부터 해서 이 세계의 진실은 어쩌면 예상 외로 단순하며, 아마도 금기시된 지하로 가 봐야 알 수 있을지 모릅니다. H G 웰스의 <타임 머신>에서 지하에 또다른 세계, 지옥 비슷한 게 있었듯... 오류가 무서운 건 그 너머에 그보다 더한 오류가 도사릴 수 있어서이겠는데, 그래도 궤도 끝에 또 같은 위대한(p125), 또 고귀한(p149) 궤도가 있으리라고는 생각하고 싶지 않습니다. 징그러니우까 말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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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을 끊어내기로 했다 - 내 발목을 잡는 가족에게서 벗어나 죄책감과 수치심에 맞서는 심리학
셰리 캠벨 지음, 제효영 옮김 / 심심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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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상당히 충격적인데 우선 이 책의 영어 원제를 좀 볼 필요가 있습니다. adult survivors of toxic family members인데... 보통 "유해한 가족들로부터의~"가 붙으면 그 뒤(영어라면 그 앞이라고 해야 하겠습니다만)에 victim(희생자)이 오고, 이 희생자들은 대개 청소년, 미성년자, 유아, 어린이들입니다. 이 경우에는 국가 공권력이 나서서 해결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 책은 그런 내용이 아닙니다. 우선 adult라고 했으니 애들이 아니라 성인입니다. 보통 애들이 피해자이면 동정을 받고, 시시비비가 대개는 분명하게 가려집니다. 그런데 피해자가 성인이라면, 예를 들어 성인 자녀와 부모 사이의 갈등이라면, 아니 애도 아니고 다 컸는데 부모가 아무 이유도 없이 그러겠어? 지도 알아서 잘했어야지 라며 다른 평가가 나올 수 있습니다. 

이게 형제 사이의 갈등이라면 더 심각합니다. 누가 쉽게 시비를 가릴 수도 없습니다. 형이 무슨 벼슬이나 된 양 동생에게 양보를 요구하고, 심지어 의붓부모와 결탁하여 재산을 가로채기까지 합니다. 최근 헌재(憲裁)에서 유류분 폐지(위헌, 헌법불합치) 결정까지 내려졌으므로 한국에서 이런 경향은 앞으로 더 심해질 수 있습니다.

이러면 마음 약한 쪽이, 에휴 나도 다 잘했다고는 못하지 같은 반응을 보이며 자포자기하는 마음으로 가해자의 의도에 말려들어갈 수 있습니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숯불을 피우고 자살까지 합니다. 이 책의 목적은, 피해자 입장에서 이렇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가족이라도 타인은 타인이고, 내 소중한 인생을 남의 책이나 악의에 제물로 바쳐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다음으로 survivors는, 당연하지만 그런 나쁜 의도에 무기력하게 말려들지 말고, 단호하게 끊어낼 부분은 끊어내라는 것입니다. victim이 되지 말고 살아남으라는 거죠. 마지막으로, 이 제목에는 정관사 the가 하나도 붙지 않았습니다. 나쁜 가족과 겪는 갈등이 당신만의 문제가 아니며 누구라도 겪을 수 있고, 이 책에 제시된 사례들이 특수한 경우에만 맞는 게 아니라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 있고 그렇게 되어야만 한다는 저자의 단호한 의지가 벌써 제목에서도 이렇게 드러나는 것입니다. 

이 한국어 번역판 제목은 의역이지만, 이런 관점에서 보면 참 잘 옮겨졌다는 생각이 드네요. 제목 보고 끌렸던 분이라면, 책 내용도 그 기대에 맞게 잘 저술되었으니 믿고 읽어도 되겠습니다. 첫째 이 책은 그런 가족이라면 절연해야겠다는 당신의 결심에 도덕적 근거와 정당성을 부여하며("가책 느낄 필요 없다! 잘못은 저쪽이 먼저 했으니!), 둘째 괜히 덤터기쓰거나 책잡히지 않고 그 수렁에서 빠져 나올 현실적인 팁을 제공합니다. 복수나 응징을 하라는 게 아니라 남의 나쁜 음모에서 그저 탈출하라는 겁니다. 미국 영화에서도 보면 피해자가 구태여 빌런에게 보복 폭행을 않고 그저 현장에서 도망만 치기도 하지 않습니까. 

항상 보면, 나쁜 상황보다 더 사람 잡는 게, 나쁜지 좋은지가 오락가락하는 상황입니다. 아예 나쁜 상황이면 대응책이라도 마련할 텐데, 아주 나쁜 것도 아니고 아리까리한 게 정말로 사람 골치아프게 만들죠. 이 책에서 말하는 toxic family member도 마찬가지입니다. 잘해줄 때는 또 눈물이 날 만큼 잘해줍니다. 이러니 사람 마음이 흔들리지 않겠습니까? 좀 그러는 듯하다가 바로 본래 모습으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또 가스라이팅을 시작하고 나의 골수를 뽑아먹으려 듭니다. 

그 사람은 말만 가족이지, 나를 이용해야 할 도구나 감정쓰레기통 이상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왜 이 사람이 가족한테 이런 몹쓸 짓을 하는지 이해하고 분석하려 들지 마십시오. 그건 당신이 할 수도 없고, 능력이 된다 해도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 사람이 도덕적으로 그렇게 망가진 건 당신의 잘못이 아닙니다. 

그 사람은 당신을 희생자로 삼고 괴롭히려고 작정한 상황이므로, 내가 이렇게 하면 그도 나를 이해하고 존중하겠지, 행여 이런 기대는 품지를 않아야 합니다. 당신이 이런 헛된 기대를 품는 이유는, 그래도 우리는 서로 가족인데 뭔가 통하는 게 있겠지, 관계가 이렇게까지 악화한 건 내 책임도 없다고는 못하지, 이런 착한 마음을 아직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 사람이 남도 아닌데(설령 남이라고 해도!) 이런 내 마음을 조금이라도 알아 주겠거니 했다가는 그 악몽의 수렁으로 다시 빨려들어갑니다. 이 세상에는 남보다도 못한 가족, 친척들이 얼마든지 있으며, 그런 사람들이 당신 옆에 있는 건 당신 잘못도 아니고 당신이 부끄러워하거나 죄의식을 가져야 할 일도 아닙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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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난 데미언 허스트 - 현대미술계 악동과의 대면 인터뷰
김성희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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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 있는 아티스트도 아티스트이지만 그를 알아보는 안목 있는 후원자의 역할도 매우 중요하다는 생각입니다. 이 책의 주제로 다뤄진 데미언 허스트도, p36에 나오듯 이름난 컬렉터인 찰스 사치(Sachi)의 발굴이 아니었다면 오늘날의 명성과 성취가 가능했을지 모를 일입니다. 그의 혈통이 이라크계 유대인이라니 이상하게 들릴 수 있으나 원래 이라크 땅은 시아파나 죽은 독재자 사담 후세인과 무관하게 특정 왕가가 다스리기도 했던 나라입니다. 

그러던 게 1948년 팔레스타인에 유대인들이 몰려와 독립 국가를 선포하고, 전 아랍에 걸쳐 반 유대 움직임이 일자, 이 찰스 사치의 일가가 영국 런던으로 이주했던 것입니다. 아랍 어디라도 유대인이 살지 않았던 곳이 없었고(새로 팔레스타인에 정착한 유럽 출신들과 이들은 정체성이 매우 다릅니다만) 그래서 역사의 격변기에 이런 일도 생겼겠구나 싶었습니다. 여튼 사치가 크게 성공한 분야는 광고업계였고, 이 섹터가 허랑한 기질의 직원들이 구름 잡는 소리만 하는 곳 같아도 정말로 센스 있는 소수는 크게 성공하는 분야입니다. 찰스 사치에게서 그 전형을 보는 듯합니다. 

유능한 이는 자신처럼 유능한 사람을 반드시 알아봅니다. 데미언 허스트는 (다른 사람이 보기에 매우 간단하게) 찰스 사치로부터 거액의 후원금을 확보하고 yBa는 그때부터 대중에 널리 알려졌다고 책 p39에 나옵니다. 데미언 허스트는 책 초반에 나오듯 가난한 가정에서 자랐으나, 예술은 물질적 풍요가 뒷받침되어야 싹을 틔운다는 통념을 비웃기라도 하듯, 그는 청년 시절부터 남다른 그의 개성과 가능성으로 주목을 끌었습니다. 책에서 설명하듯 그는 탄생부터 정말 큰 행운과 함께한 아이였는데, 하나는 그의 재능과 센스이며, 다른 하나는 그가 가족들로부터 받은 사랑이었습니다. 이 둘 중 어느 하나라도 결여되면 이런 인재로 성장하기 어렵지요. 

이 책에서도 다시 확인할 수 있었던 게, 생전 철의 여인이라 불렸던 마거릿 대처가 참 여러 모로 큰 영향을 남겼구나 하는 점입니다. 물론 그녀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이들에게는 포클랜드 전쟁을 승리로 이끈 지도자, (책에 나오듯이) 1970년대 말 국가 부도 직전까지 가서 IMF로부터 구제금융까지 받아야 했던 한심한 과거의 초강대국을 오늘날 정도로까지 애써 살려 놓은 불세출의 영걸로 기억됩니다. 하지만 노동자, 특히 광부들과 그 가족, 후손 사이에서는 아직도 원성이 자자하며, 이 책에도 나오듯 예술인에 대해 정부 긴축 정책 때문에 지원을 확 줄이기도 했습니다. 

yBa(Young British Artists)도 역설적으로 대처의 아이들(p46)이라 불릴 만큼, 이런 긴축 기조에 "자생적으로" 젊은이들이 대응하여, 사치 형제 같은 후원자를 만나 대성할 수 있었던 것이죠. 그저 우연이 아닌 게, 정부가 밀어주지 않으니 스스로 대중이 찾아오게끔 더 쉬운 소통을 시도하고 표현의 허들을 낮추며, 전시회의 기획, 운영, 홍보에 기업의 시스템을 도입한 것입니다. 이 책에서 오히려 제가 인상깊게 본 건, 데미안 허스트의 상업적 기업가적 센스였습니다. 문제적 작품도 예술성도, 아티스트 본인의 의도를 대중이 자발적으로 알아주지 못한다면 이런 시대에는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지금은 안목 높은 귀족이나 많이 배운 교황, 어려서부터 좋은 것만 보고자란 왕족이 예술가를 챙기는 시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데미언 허스트가 제작하거나 그가 도와 제작된 예술품들, 그가 용케도 모아 한자리에 모신 작품들은 지금 봐도 쇼킹합니다. 배웠건 못 배웠건, 돈이 있건 없건 그걸 누구한테 보여 줄 때 "와! 이게 뭐야" 싶은 찬탄이 관객의 입에서 바로 나올 수 있어야 그게 찐으로 예술인 것입니다. 책 표지에 나온 상어 작품을 보십시오(정확한 이름은, <살아있는 자의 마음속에 있는 죽음의 물리적 불가능성>입니다. p40). 뭐 죽고 싶어도 못 죽을 것 같은 상황인데, 중요한 건 저 (이미 죽은) 백상아리가 죽을 수 있냐 여부가 아니라, 우리들 살아있는(일단 지금은요) 자들의 생각과 의도입니다. 백상아리가 저 수조 안에서 포름알데히드를 뒤집어쓰고 곤혹스럽게 죽은 채로 유영하는 게 녀석에게 원하는 바이건 말건 무관하게, 우리는 그에게 불멸이니 뭐니 하는 표상을 뒤집어씌워 아이돌 비슷하게 만드는 중이며, 상어 혹은 불멸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러고 노는(?) 우리가 더 중요해지는 거죠. 

p100에 나온 <그릇을 든 악마>를 보십시오. 그 질감만 보면 그리스 시대의 쉬고 있는 권투 선수 조상(彫像) 같습니다만 사실은 플라스틱 제작이라고 해서 김이 샙니다. 그러나 우리는 잠시 즐겁게 속지 않았습니까. p135에 나오는, 아무 의미도 없어 보이는 약장 모습 전시는 그 제목이 <신>이라고 합니다. p167도 함께 보십시오. 데미언 허스트 본인의 해명이 더 걸작입니다. p180에서 허스트는 <다이아몬드 해골>을 들고 있는데 아무런 착시는 없어도 마치 살바도르 달리의 어느 작품이 연상되는 모습입니다. 한국인인 김성희 관장님과의 인터뷰가 함께해서 더 뜻깊고 예쁜 책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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