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난 데미언 허스트 - 현대미술계 악동과의 대면 인터뷰
김성희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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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 있는 아티스트도 아티스트이지만 그를 알아보는 안목 있는 후원자의 역할도 매우 중요하다는 생각입니다. 이 책의 주제로 다뤄진 데미언 허스트도, p36에 나오듯 이름난 컬렉터인 찰스 사치(Sachi)의 발굴이 아니었다면 오늘날의 명성과 성취가 가능했을지 모를 일입니다. 그의 혈통이 이라크계 유대인이라니 이상하게 들릴 수 있으나 원래 이라크 땅은 시아파나 죽은 독재자 사담 후세인과 무관하게 특정 왕가가 다스리기도 했던 나라입니다. 

그러던 게 1948년 팔레스타인에 유대인들이 몰려와 독립 국가를 선포하고, 전 아랍에 걸쳐 반 유대 움직임이 일자, 이 찰스 사치의 일가가 영국 런던으로 이주했던 것입니다. 아랍 어디라도 유대인이 살지 않았던 곳이 없었고(새로 팔레스타인에 정착한 유럽 출신들과 이들은 정체성이 매우 다릅니다만) 그래서 역사의 격변기에 이런 일도 생겼겠구나 싶었습니다. 여튼 사치가 크게 성공한 분야는 광고업계였고, 이 섹터가 허랑한 기질의 직원들이 구름 잡는 소리만 하는 곳 같아도 정말로 센스 있는 소수는 크게 성공하는 분야입니다. 찰스 사치에게서 그 전형을 보는 듯합니다. 

유능한 이는 자신처럼 유능한 사람을 반드시 알아봅니다. 데미언 허스트는 (다른 사람이 보기에 매우 간단하게) 찰스 사치로부터 거액의 후원금을 확보하고 yBa는 그때부터 대중에 널리 알려졌다고 책 p39에 나옵니다. 데미언 허스트는 책 초반에 나오듯 가난한 가정에서 자랐으나, 예술은 물질적 풍요가 뒷받침되어야 싹을 틔운다는 통념을 비웃기라도 하듯, 그는 청년 시절부터 남다른 그의 개성과 가능성으로 주목을 끌었습니다. 책에서 설명하듯 그는 탄생부터 정말 큰 행운과 함께한 아이였는데, 하나는 그의 재능과 센스이며, 다른 하나는 그가 가족들로부터 받은 사랑이었습니다. 이 둘 중 어느 하나라도 결여되면 이런 인재로 성장하기 어렵지요. 

이 책에서도 다시 확인할 수 있었던 게, 생전 철의 여인이라 불렸던 마거릿 대처가 참 여러 모로 큰 영향을 남겼구나 하는 점입니다. 물론 그녀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이들에게는 포클랜드 전쟁을 승리로 이끈 지도자, (책에 나오듯이) 1970년대 말 국가 부도 직전까지 가서 IMF로부터 구제금융까지 받아야 했던 한심한 과거의 초강대국을 오늘날 정도로까지 애써 살려 놓은 불세출의 영걸로 기억됩니다. 하지만 노동자, 특히 광부들과 그 가족, 후손 사이에서는 아직도 원성이 자자하며, 이 책에도 나오듯 예술인에 대해 정부 긴축 정책 때문에 지원을 확 줄이기도 했습니다. 

yBa(Young British Artists)도 역설적으로 대처의 아이들(p46)이라 불릴 만큼, 이런 긴축 기조에 "자생적으로" 젊은이들이 대응하여, 사치 형제 같은 후원자를 만나 대성할 수 있었던 것이죠. 그저 우연이 아닌 게, 정부가 밀어주지 않으니 스스로 대중이 찾아오게끔 더 쉬운 소통을 시도하고 표현의 허들을 낮추며, 전시회의 기획, 운영, 홍보에 기업의 시스템을 도입한 것입니다. 이 책에서 오히려 제가 인상깊게 본 건, 데미안 허스트의 상업적 기업가적 센스였습니다. 문제적 작품도 예술성도, 아티스트 본인의 의도를 대중이 자발적으로 알아주지 못한다면 이런 시대에는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지금은 안목 높은 귀족이나 많이 배운 교황, 어려서부터 좋은 것만 보고자란 왕족이 예술가를 챙기는 시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데미언 허스트가 제작하거나 그가 도와 제작된 예술품들, 그가 용케도 모아 한자리에 모신 작품들은 지금 봐도 쇼킹합니다. 배웠건 못 배웠건, 돈이 있건 없건 그걸 누구한테 보여 줄 때 "와! 이게 뭐야" 싶은 찬탄이 관객의 입에서 바로 나올 수 있어야 그게 찐으로 예술인 것입니다. 책 표지에 나온 상어 작품을 보십시오(정확한 이름은, <살아있는 자의 마음속에 있는 죽음의 물리적 불가능성>입니다. p40). 뭐 죽고 싶어도 못 죽을 것 같은 상황인데, 중요한 건 저 (이미 죽은) 백상아리가 죽을 수 있냐 여부가 아니라, 우리들 살아있는(일단 지금은요) 자들의 생각과 의도입니다. 백상아리가 저 수조 안에서 포름알데히드를 뒤집어쓰고 곤혹스럽게 죽은 채로 유영하는 게 녀석에게 원하는 바이건 말건 무관하게, 우리는 그에게 불멸이니 뭐니 하는 표상을 뒤집어씌워 아이돌 비슷하게 만드는 중이며, 상어 혹은 불멸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러고 노는(?) 우리가 더 중요해지는 거죠. 

p100에 나온 <그릇을 든 악마>를 보십시오. 그 질감만 보면 그리스 시대의 쉬고 있는 권투 선수 조상(彫像) 같습니다만 사실은 플라스틱 제작이라고 해서 김이 샙니다. 그러나 우리는 잠시 즐겁게 속지 않았습니까. p135에 나오는, 아무 의미도 없어 보이는 약장 모습 전시는 그 제목이 <신>이라고 합니다. p167도 함께 보십시오. 데미언 허스트 본인의 해명이 더 걸작입니다. p180에서 허스트는 <다이아몬드 해골>을 들고 있는데 아무런 착시는 없어도 마치 살바도르 달리의 어느 작품이 연상되는 모습입니다. 한국인인 김성희 관장님과의 인터뷰가 함께해서 더 뜻깊고 예쁜 책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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