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어루만지다 - 닫힌 마음, 상처난 마음 치유 에세이
정도연 지음 / 홍익 / 2013년 11월
평점 :
절판


원불교 교무로 재직 중이신 정도연 님이 쓰신 수상록입니다. 원불교는 박중빈 대종사가 창도한 이래, 주로 전북 지방을 중심으로 활발한 포교 활동이 이뤄졌고, 현재는 홍라희 리움 미술관장 등 사회 곳곳에서 저명인사와 시민들이 신봉하는 한국 고유의 종교지요.


원불교의 가르침을 접하는 때가 보통 독자들이나 시민들이 가질 기회가 있을까요? FM 라디오 가청 주파수 중 가장 낮은 대역대를 사용하는 방송 중 WBC가 있습니다(권투 관련 세계 기구는 아닙니다). 이 방송이 원불교 포교를 목적으로 하는 곳이고, 아마 프로야구 중계를 자주 듣는 분들은 이닝 종료마다 나오는 "경전 말씀"에 익숙한 분이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그 말씀을 듣다 보면, 이규항 캐스터의 구수하고 그윽한 목소리 덕분인지는 모르겠으나, 그 은근하고 가슴을 울리는 가르침에 대해, 종교를 떠나 공감하곤 하던 경험이 있는 분들이 꽤나 될 것입니다. 토착 종교의 가르침이란 이처럼, 다른 언어의 필터를 거르지 않고 우리의 심성에 바로 어필하는 부분이 있어서인지, 외래 종교보다 더 깊은 깨우침과 영혼의 안식을 주는 일이 왕왕 있습니다.


정도연 님은 다양한 주제에 대해 수상록의 형식으로 가르침을 주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직장인들을 향해, 더 성장할 기회를 주지 않는다고 회사에 대해 투정 섞인 불만을 내지 말라는 가르침입니다. 이런 불만은, 잘못의 원인을 나 자신에게 찾지 않고, 외부에 돌리는 나쁜 버릇이 몸에 배인 탓이라는 거죠. 정 교무의 처방은 간단합니다. "업무 시간 짬짬이, 나 자신을 돌아 보고, 나 자신의 참된 모습을 발견할 기회를 가지라."는 겁니다. 나 자신이 누구인지 알고, 마음으로 원하는 바가 뭔지 알면, 세상과 타인에 대한 불만이 마음에 자리할 시간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는 "마음에 불을 안고 사는 사람들"이 외외로 많다고 진단합니다. 이 런 "불, 울화"란 보통 남이 나 자신을, 나의 생각대로 인정해 주지 않는 사람들이 자기 가슴에 품고 키우는 수가 많다는 건데요. 그런 사람들이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정해져 있다는 게 정 교무의 말씀이네요. "다른 건 다 참아도, 남이 내 자존심을 건드리는 건 못 참는다."  이에 대해 정 교무는 따끔한 일침을 놓습니다. " 나의 자존심이 왜, 다른 사람의 평가에 의해 영향을 받아야만 하나? 그런 사람은 자존심이 부족한 사람이다." 옳은 말이죠. 요즘은 이련 경우를 두고 "자존감"이라는 다른 용어를 만들어 쓰기도 합니다만, 결과는 큰 차이가 없습니다. 자기 확신이 부족한 인간들이, 남의 말에 일일이 신경을 쓰고 반응을 보이게 마련입니다. 어떤 경우는, 올바른 지적을 해 줬음에도 불구하고 발끈 화를 내면서, "이런 말에 감정이 상하고 한때나마 상대에게 굴하는 반응을 보이다니 나는 자존감이 왜 이리 부족한지 모르겠다."는 어처구니없는 반응을 보이는 경우도 봤습니다. "반성할 줄 아는 겸허한 마음"과 "낮은 자존감"을 혼동하는 어리석음의 발로죠. 이런 사람들은 원불교의 온화하고 평온한 가르침도 아무 소용이 없는 경우가 많더군요.


정 교무는 주문의 힘도 강조합니다. 예전부터 자기 암시라는 이름으로 많이들 강조되던 것입니다만, 정 교무의 주장은 주로 자기 긍정의 내용을 담은 것입니다. 차분히 입으로 되뇌고, 마음 속에 새기는 주문이란 그 자체로 강력한 원인의 발생이며, 최소한 정신 건강을 바르게 가지는 데에 도움이 됩니다. 이를 위해 저자는 "생각을 멈출 것"도 빼놓지 않습니다. 여기서 생각을 멈춘다는 건, 일체의 판단을 중지한다는 뜻입니다. 판단을 중지할 때, 마음 속의 모든 번뇌가 사라지고, 타인을 미워하는 마음이 자취를 감추며, 내 자신을 참되게 존중하는 심성이 싹을 틔우게 되죠.


결국 모든 것은 우리 마음에 달렸습니다. 부처님 눈에는 부처님만 보이고, 돼지의 눈에는 돼지만 보이게 마련입니다. 일체유심조라는 세존의 말씀, 그리고 타인과 세상을 아끼기를 나 자신처럼 하라는 대종사의 가르침을 현대인이 잊지 않는다면, 헬기 참사나 갑을 간의 분쟁은 어느 새 다른 세상의 사정이 되지 않을지, 이 평온한 글과 단아한 책(하드커버입니다)을 보고 깊이 묵상에 잠겨 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웃사이드 인 전략 - 와튼 스쿨 최고의 마케팅 명강의
조지 데이 & 크리스틴 무어먼 지음, 김현정 옮김, 이명우 감수 / 와이즈베리 / 2013년 11월
평점 :
절판


오디션 심사자들이 한결같이 하는 이야기가 있죠.

"후보자들이 좋은 결과를 얻으려면, 자기가 제일 잘하는 솜씨를 보여야 해요. 하지만 다들, 어렵고 기교적인 곡, 남들이 '오블리가토'라 부르는 레퍼토리만 골라서 연습하고, 그러다가 콘테스트에서 무리를 범하곤 하죠."

오디션이란 대중 앞에 나서야 할 스타를 발굴하는 절차입니다. 이 연예인이란 직종은 일종의 축복을 받은 직책인 것이, 타인에게 사랑을 주는 위치가 아니라, 자신의 재능을 선보이고 타인으로부터 사랑을 받아 먹기만 하면 되는 자리라는 이유에서입니다.


하지만 이런 입장에 설 수 있는 이들은 극소수에 불과합니다.

우 리들 대부분은, 타인에게 더 많은 선택을 받기 위해, 외모도 단장하고, 솜씨도 더 열심히 닦고 벼르며, 웨어를 판촉하기 위해 하루도 긴장을 풀 새가 없습니다. 다니엘 핑크가 그의 저서에서 "인간의 속성은 파는 것이다."라고까지 규정했습니다만, 과연 우리들 모두는 단 하루도 쉴 날이 없이 남에게 팔리기 위해 뛰어야 합니다.

기 업이라고 해서 다를 바 없습니다. 기적 같은 특허를 보유하여, 그 유효기간 동안 시장에 정보와 시방을 제공하기만 하면 된다거나, 거대 규모를 무기 삼아 가격 세팅을 자유로 행할 수 있는 여유로운 처지라면 모를까, 그렇지 못한 입장에서는 시장이 설정해 둔 가격에 맞추어 자신의 물건, 서비스가 팔리기를 노심초사할 수밖에 없죠.

그래서 기업은, 다름 아닌 마케팅 쪽으로 갖은 술수와 머리를 짜 내는 겁니다. 프라이스 세팅의 재량이 기업에게 허용되지 않는 건 개별 플레이어의 숙명이기 때문이죠. 


내가 잘하는 걸 시장에 내어 놓고, 그것이 팬케이크처럼 팔리길 기다린다? 한가한 입장입니다. 한때, 시장의 그 누구도 생산할 수 없는 아이템을 양 산하는 데에 성공했다 하여, 한번 인정받은 상표 하나로 rent seeking을 종신토록 할 수는 없습니다. 계속 변해야 살아남습니다. 어떻게 변해야 하는가? 고객이 원하는 방향, 고객이 내심에서 욕망하는 바를, 고객보다 먼저 선수를 쳐서 알아내는 데에까지 변해야 합니다. "내가 잘하는 걸 그냥 줄기차게 반복할 게 아니라, 남들이 인정해 주는 트렌드에 뼛속까지 맞추어 적응하고, 선도해야 한다." 이것이 오디션 참가자들(나아가 스타가 될 지망자들)과 우리 일반인이 처한 처지가 크게 다른 점이라 하겠습니다.


조지 데이 교수가 이번에 내어 놓은 저서는, 마케팅 분야의 각론이 아니라 총론, 그 중에서도 메타적 담론을 섬세하고 자상하게 펼친 역작이라 할 수 있겠네요. 470여쪽에 달하는 분량이 보기만 해도 믿음직하지만, 그 내용 역시 현장에서 치열하게 승부하는 비즈니스맨들의 가슴에, 한 단어 한 단어가 절절히 와 닿는 유용한 지침으로 가득합니다. 이미 시장의 형편이란, 포식자로 가득한 가망 없는 레드 오션에 불과합니다. 가격경쟁이란 모두를 파멸로 이끄는(어쩌면 그 중에서도 자신을 가장 먼저 링에 나가떨어지게 할) 소모전에 불과합니다. 고객의 충성을 이끌어 내야 하고, 그러려면 그 충성의 대상이 될 가치를 창조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저 표지에도 나와 있듯 단순한 소비자, 조금이라도 금전적 유리함이 보이면 바로 발길을 돌리는 변덕스러운 고객이 아닌, "열광하는 팬을 만드는 비결"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저자들은 책 첫머리부터 "4대 고객 가치 요건"이라는 것을 제시합니다. 이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 번째 요건: 고객 가치 리더가 돼라

두 번째 요건: 고객을 위해 가치를 혁신하라

세 번째 요건: 고객을 자산으로 활용하라

네 번째 요건: 브랜드를 자산으로 활용하라


우선, 고객 가치 리더가 되라말은 무슨 뜻인가? 고객 스스로가, "돈이 아깝지 않다."고 느낄 만한 만족을 체험하게, 개발 단계에서부터 철저히 고객의 입장에서 감정 이입한 생산자가 되라는 주문입니다. 그 런데 위의 사진, 오른쪽의 도식에서 알 수 있듯, 이 과정은 일회성으로 종료되지 않고, 무한 루프상의 선순환 피드백을 밟는 알고리즘입니다. 조지 데이의 이 책에서 기존의 입장과 크게 달라진 부분은, 프로세스의 역동성을 강조하고 있는 점입니다. 화살표의 방향을 잘 보시면, 고객 가치 리더 부문이 모든 의사 결정 과정, 제품의 입안과 기획, 마케팅에 이르기까지 중추적 작용을 수행하며, 사실상 이 책에서 말하는 아웃사이드-인 전략의 핵심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이 그림을 보십시오. 저자들은 고객 가치의 본질을, 세 가지의 서로 다른(독립적인) 벡터의 조합으로 표시하고 있습니다.

㉠ 성능 벡터: 간단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명품(사치품에 제한된 의미가 아닌)의 속성입니다. 얼마나 품질이 믿을만한가? 나는 잘 몰라도, 다른 (준거)소비자들 사이에서의 평판은 어떠한가? 이런 걸 걸치고 나가면 얼마나 선망의 눈길로 나를 바라봐 줄 것인가? 이 모든 고려 사항이 바로 "성능"에 포함됩니다. 

㉡가격 벡터: 산업 혁명 이래 가장 구매자에게 절실했던 요건은 바로 싼 가격(따라서 높은 접근성)이었습니다. 이에는 물론 싼 가격이 핵심이지만, 빠른 배송 조건도 포함된다는 게 저자의 설명입니다.

관계 백터: 말은 생소하지만 우리 모두가 공감하는 요건이에요. 한번 팔고 그만이 아니라, 제품의 유지 관리에 대한 욕구를 만족시켜주는 기업의 애티튜드, 혹은 그 결과물로서의 서비스를 말합니다. 가격이나 선능 모두에 만족하지 못해도 우리가 국내 가전을 사는 이유는 바로 AS 때문이죠.


이 벡터는 물론 출발점을 공유하는 세 개의 반직선이라서, 그 뻗는 반경이 길면 길수록 좋습니다. 그러나 소비자의 예산이라는 원초적 제약이 있으므로, 상품에 따라, 혹은 소비자 개인의 처지에 따라, 어떤 최저점을 만족시키는 선에서 타협할 것인지, 아니면 다른 성분에 무관하게 한 방향의 신장을 최고 역점에 둘 것인지는 일정하지 않겠습니다.


요즘 귀가 따갑도록 듣는 혁신의 가치 역시, 이 책에서 강조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 금까지의 논의에서도 알 수 있듯이, 혁신이라고 무작정 물량 투입 위주로 갈 것이 아니라, 그 방향성을 잘 잡아야 합니다. 시장과 고객에 철저히 눈을 주고 주시하되, 일단 고객이 원하는 핵심 가치를 파악한 후에는, 그 가치 설정에 있어 유리한 포스트를 선점하는 리더가 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비록 기업 내부에서 소중히 여기는 가치를 우선적으로 시장에 들이댈 수는 없지만(기업은 설사 탑 레벨의 선도자라 해도, 시장 지배적 사업자가 아닌 이상, 제 편할 대로 상품을 만들고 거둘 수는 없습니다. 이 책에 나와 있지는 않으나, 작년 처참한 실패를 맛보았던 불랙 신라면을 출시한, 그러면서도 '소비자의 인식 부족'을 탓하는 군소리를 남기며 퇴장한 농심의 경우가 그 좋지 않은 예라 할 수 있습니다), 눈치 빠르고 기민하게 선도가치를 선점한 후에는, 오로지 고객의 기호만 만족시키며, 상황에 끌려 다니지 않은 채 다른 경쟁자를 압도할 수 있습니다.


일 단 충성스럽게 확보된 고객을 확보한 후에는, 이를 자산으로 삼아 시장에서의 위치를 더욱 굳힙니다. 그 후, 대체 불가능한 독보적 존재가 된 브랜드를 최종의 자산으로 삼고, 이 불확실성으로 가득한 변덕스러운 경제 전장에서 그 어떤 인플레나 불경기에도 흔들리지 않는, 대차대조표 차변상의 최고 핵심 항목으로 올려 놓는 일에 성공한다면, 바로 그것이 일등 글로벌 기업의 미션 완수라고 하겠습니다.


2부에서 4대 원칙의 총론적 서술이 있었다면, 3부에서는 현장에서의 응용을 위한 방법론이 제시됩니다. 사례가 많아서, 앞에서 배운 원칙을 피부에 와 닿는 실감으로 복습할 수 있습니다.


아마 어떤 분들은 그런 의문을 가질 것입니다. 무려 그 예전의 피터 드러커가 한 말, "시장 중심(market orientation)과는 무엇이 다른가? 그 해답을 저자들은 특별히 배려한 편집으로 독자에게 설명해 줍니다.

사진을 보시면, 세 가지 항목으로 요약이 됩니다만, 보는 관점에 따라 상당 부분이 중복된다고 여겨질 수 있어요, 제가 제 개인적 관점에 따라 다시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시장 지향은 일회성이나, 아웃사이드-인은 (제가 앞에서도 말한 대로) 무한 반복 루프상에 존재한다.

2. 시장 지향은 일단 균형점이 발견된 후에는 정체적이지만, 아웃사이드-인은 역동적이고, 따라서 혁신친화적이다.

3. 시장 지향은 수동적으로 시장의 눈치를 살피지만, 아웃사이드-인은 주체적으로 가치를 창출한다.


그 외에도 책에서는 강조하기를, 아웃사이드-인 조직은 관료적 경직성이 없고, 누구나 모든 방향에서 의사 개진, 아이디어 제안, 정책 결정에 자유로이 참여할 수 있다고 합니다. 요즘 어디서나 강조하는 의사 결정의 신속성과 직결되는 특성입니다. 고객에 밀착하여 정보를 얻어내고, 모든 직원이 정보원 구실을 하며, 얻은 정보는 첧저히 공유하여 생산성을 배가합니다. 아래 사진을 보세요.

인사이드-아웃 기업의 특징은, 경쟁 기업에 대한 통찰을 게을리한다는 데에도 있습니다. 하긴, 가치 창조를 소명으로 하는 기업이, 라이벌에 대한 주시라고 태만히할까요?


저자의 의도와 좀 어긋날지는 모르겠지만, 사실 영어의 일상용법에서 inside-out과 outside-in은 같은 의미입니다. 둘 다, "철저히 뒤집어서"라는 뜻이죠. 만약 어떤 기업이, 그 능력과 기량이 탁월해서 "나는 그저 내가 잘하는 것만 시장에 시혜를 베풀듯이 만들고, 내 영혼(기업도 영혼이 있어야 한다니까요!)에 거리끼는 바는 손대지 않고 살테야!"라고 한다면, 그게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 이상, 남 좋고 나 피곤하지 않아서 최상의 선택일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무한 경쟁의 시대입니다. 남 잘하는 점은 철저히 벤치마킹의 대상으로 삼아서, 나의 장점으로 만들고, 한 걸음 더 나아가 개량하여 절대 우위를 확보하는 세상입입니다. 내 장점은 하루만 지나고 나면 더 이상 나만의 장점이 아니라는, 시장과 세상의 역동성에 문제(?) 가 있는 것입니다. 저는 궁극적으로, 아웃사이드-인 프로세스 안에, "내가 잘하는 걸 남이 절대 따라하지 못하게 완성한다는 의미에서의" 인사이드-아웃이 포함된다고 봅니다. 이 원칙은, 요즘 자계서에서 귀가따갑게 강조하는 "온리원이 되라"는 명제와도 무관하지 않죠. 궁극적으로 기업은, 아웃사이드-인의 겸허한 자세로 자체 혁신을 기울이되, 그 소프트웨어의 창의성 면에서는 "인사이드의 순일성"도 유지해야, 그 독자성과 정체성을 대체 불가능의 것으로 만들 수 있을 겁니다. 싸이의 말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모두 연예인이 되는 맛에 사는 겁니다. 결과가 나오든 안 나오든 간에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케아, 북유럽 스타일 경영을 말하다
앤더스 달빅 지음, 김은화 옮김 / 한빛비즈 / 2013년 11월
평점 :
절판


우리는 흔히 그런 이야기를 합니다.

"착한 경영은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한 해답은, 제가 최근에 읽은 필립 코틀러의 책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사회적 책임이란 이미 선택이 아닌, 단순한 옵션이 아닌, 기업의 생존을 위한 필수 조건이다."


잘 알다시피, 이케아는 이른바 뷱유럽식 경영을 전세계에 전파하고, 특히 우리가 머리 속에 남은 대로 "불편을 파는" 경영으로 유명한 기업이기도 합니다. 이런 이케아의 성공은, 지나친 편익은 오히려 소비자에게 역감정, 반작용을 불러일으킨다는 오랜 진리를 확인시켜 준 데서 비롯했다고 많은 경영자들은 이야기합니다. 이 책은, 지난 20년 간 이케아를 이끌어왔던 CEO 앤더스 달빅의 육성으로 친히, 우리에게 참된 경영과 수익 높은 성공 매니지먼트가 무엇인지 알려 주고 있습니다.


흔히 성공하는 경영자는 두 가지 점에서 신뢰와 존경을 얻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소비자의 신뢰, 그리고 직원의 존경을 얻어야 한다고요.


그럼, 달빅이 이야기하는 경영은 무엇인가? 첫째 그는 훌륭한 비전, 강하고 역동적인 기업문화를 힘주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구체적으로, 단기의 이익 창출에 급급하지 않은, 보다 장기적이고 지속적이며, 현재의 이익이 미래의 그것과 상충하지 않는 지속가능한 기업 발전을 뜻한다는 게 달빅의 설명입니다. 보통 현재의 이익에 근시안적으로 집중하다 보면, 미래의 평판을 놓치게 됩니다. 경쟁의 장에서, 치열한 각축이 벌어지는 시장에서, 단기의 이익에 집착하다 보면, 결국 미래에는 "그 기업은 시장에서의 생존을 위해, 모든 다른 파트너의 이익을 경시하는 불건전하고 부도덕한 기업"이라는 악성의 평가를 면할 수가 없습니다.


다음으로, 그는 품질을 어떤 경우에도 희생하지 않습니다. 보통 이케아가 성공한 이유로, 고객의 적극적인 참여와 성취 의식을 처음 소비자 스스로가 확인하게 해 준, "불편의 판매"에 있다고들 이야기합니다. 판매자와 제조가가 그저 일정한 가격과 정해진 품질에 공급하기만 하는 제품의 기계적인 소비에 싫증이 난 소비자를 향해, 이케아는 처음으로 공공연한 불편을 판매한 회사로 유명하죠.  그러나 단지 이것만으로 이케아가 그처럼 성공한 것은 아니라고 봐야겠습니다.


이케아가 성공한 것은 다른 데에 비결이 있습니다. 첫째는 성공적인 비즈니스 모델의 창출이고, 다른 하나는 독창적인 모델군을 만들었다는 것이죠. 이 말은 결국, 이케아는 다른 회사, 경쟁자들이 하지 않은 시도에 성공하였고, 다른 회사 경영자들이나 과거의 승리자들이 해낸 성취는 그것대로 다 이뤄냈기에 오늘의 성취가 가능했다는 뜻입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크게 와 닿았던 바는 이 명제였습니다.

"기업에는 영혼이 있어야 한다."

잉바르 캄프라드(1926~현재)는 처음부터 다음과 같은 점을 염두에 두고 회사를 창업했고, 현직에서 물러날 때까지 경영의 최고 방침으로 유지했습니다.

1) 어려운 사람들을 위한 기업 경영을 도모한다.

2) 매출 순이익을 최대로 하는 행위는 이케아의 목표가 아니다. 얻은 수익은 반드시, 고객을 위한 저렴하고 가치 있는 상품 제조를 위해 재투자된다.

3) 직원 사이에는 불필요한 직급 체제를 두지 않고, 관료제를 배격한다.

4) 직원은 현장을 알아야 한다.

5) 급여는 고정급이 가장 좋고, 성과급 등 가변 요소는 최소한으로 억제되어야 한다.

6) 고객이란, 시간은 많고 돈은 적은 법이다.

7) 새로운 도전을 위해 몸을 사리지 말고 용기를 발휘하라.


이상의 7가지 명제를 잘 종합하면, 결국 올바른 영혼을 가진 기업이 되어, 개별 고객, 시민 사회로부터 사랑 받고 공생을 꾀하는 우량 기업이 된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이케아는 지금도 비상장업체이며, 이것은 경영의 불투명성을 드러낸다기보다(한국 기업이라면 그럴 수 있죠),배타적인 주주나 이해관계자들의 입김에 휘둘리지 않고 오로지 초심을 유지하며, 고객만을 염두에 두는 경영을 펴나가겠다는 다짐입니다. 그러나 1998년을 기점으로, 이케아는 원했든 그렇지 않든(저자의 표현을 빌리면, "행운이든 불행이었든 간에") 국제적인 대규모 기업으로 탈바꿈했습니다. 


1)을 먼저 보겠습니다. 처음에 이케아는 스웨덴의 아주 작은 수공업체로 그 출발을 가진 업체였는데요. 창업주 캄프라드는, 철저히 다음의 원칙을 고집했습니다. "가구는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 생필품이다. 화려하고 비쌀 이유가 없다." 처음에 경쟁 업체들은 이런 괴상한 저가 정책으로 시장에 도전장을 내민 이 작은 초보자를 무시했습니다만, 소비자들의 니즈 핵심을 찌른 이런 전략은 금세 스웨덴 전역을 파고 들었습니다. 경쟁업체들은 원자재 공급자측에 압력을 가했습니다. "이케아라는 업체에 물건을 팔지 마라." 이 카르텔은 대단히 성공적이어서, 이케아는 스웨덴 국내에서 구매선을 찾을 수 없었죠. 여기서 이케아의 영혼의 특성 7)이 그 색깔을 드러내기 시작합니다. "위협이나 압력에 굴하지 말고, 반드시 출구와 활로를 찾으라!" 그 들은 발트해를 건너 공산주의 국가(그 당시) 폴란드에서 자재를 사기로 결정합니다. 이는 상당히 절묘한 위기 타개책이었는데, 우선 가격이 상당히 쌌다는 점에서입니다. 폴란드는 공산권과만 교역을 행했으므로, 외화 획득을 위한 마땅한 경로가 없었습니다. 이케아가 구매선을 확보하려 하자 대단히 반색하고 나섰고, 이케아 내부적으로도 "구매부서"가 여타의 다른 섹터를 누르고 가장 중요한 비중으로 떠오르게 된 계기라고 하는군요. 현재는 이케아가 자체 생산라인을 확보하고 있으므로 이는 이미 옛 시절의 사정이 되었지만요. 가격이 싸다는 점만으로 마냥 만족할 것은 아니었습니다. 공산권의 정책이라 시장 사정에 따라 융통성 있게 움직이는 게 아니고, 당국자의 변덕과 우연에 의해 공급량이 제멋대로이기가 쉬웠고, 무엇보다 품질이 열악했다고 합니다. 이 점은 향후 이케아의 평판을 "재고 부족, 품질 의문"이라는 취약 포인트에 오랜 동안 묶어 놓았습니다.


한편으로, 이케아는 이런 특이한 처지를 오히려 기회로 삼아, 스웨덴 국내에서 점차 시장 점유율을 높여 나갔습니다. 안정적인 재고 창고를 확보할 수 없었기에, 그들은 우편 주문 판매 방식에 의존하고, 고객에게 더 많은 일을 맡기는 대신 가격을 엄청나게 낮추는 데에 성공했죠. 여기서 발달한 플랫 팩 방식은 지금도 가구 산업을 떠나 전 분야에 걽쳐 강한 영감을 주었습니다.


평판이란 마케팅상의 미미한 요소에 그치지 않습니다. 더 넓은 의미로 지켜 보아야 합니다. CSR은 필립 코틀러나 고 피터 드러커의 명제에서만 유효한 게 아닙니다. 우리가 살아 숨쉬는 그 모든 비즈니스의 현장에서, 이 연대와 공유의 리더십은 유효하죠. 우리는 지금 경영학의 새로운 지평을 관찰하고 있습니다. 열띤 시선과 벅찬 가슴로 말이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잔타 미술로 떠나는 불교여행 인문여행 시리즈 12
하진희 지음 / 인문산책 / 2013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동양권 미술 작품을 대하는 우리로서 가장 유감스러운 건, 작자 미상의 작품이 너무 많다는 거죠. 특히 불교 미술의 경우 이런 예가 잦은데요. 우리도 전 세계에 자신 있게 내어 놓을 경주 석굴암이라는 조형 문화재가 있지만, 정작 작가, 혹은 건축 감독이 누구인지는 모르고 있죠. 불국사나 활룡사는 예전에 소실되었고(현재의 불국사는 복원물), 김대성 등의 발원이라는 점 외에는 전혀 authorship에 대해 아는 바 없습니다.


아 잔타 석굴의 경우는 차라리 운이 좋았던 편입니다. 오랜 동안 자연의 엄폐 덕을 보아서, 도굴꾼들의 약탈이나, 외부 침략자의 무자비한 파괴 행위로부터 자유로울 수 잇었으니까요. 실제로 날란다 승원이나 굽타 왕조의 유적은, 10세기 이슬람의 대거 동진 당시 흔적도 없이 파괴된 것이 많습니다. 최근에도 탈레반의 손에 의해, 바미얀 석굴이 전세계가 보는 앞에서 파괴되었으니까요. 비록 서양 제국주의자들에 의해서 발견되긴 하였어도, 이후 이 아잔타 석굴은 전 인류의 관심을 받게 되었고, 현재는 무려 10세기만에 들어선 힌두 본토인의 주권 정부 관할 아래, 첨단 기술이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최상의 보호를 받고 있습니다.


불교 미술은 불교 전래의 역사만큼이나 우리 민족의 정서에 깊은 뿌리를 내린 분야입니다. 지금도 아이들의 수학 여행 코스로 애호되는 법주사에는, "십우도(혹은 심우도)"라는 벽화가 단아한 색채를 빛내며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냅니다. 이 아잔타 석굴에는, 부처님의 전생 여러 장면을 이야기식으로 묘사한 "자타카(한자로는 "본생경"이라고 하는)"의 회화 표현이, 자연의 침식을 최소한으로 받은 채 보존되어 있습니다. 책 에 의하면, 아잔타 석굴은 단일 왕조에 의해 조성된 게 아니라, 거의 8세기에 걸쳐 지역 토착 왕조 여럿에 의해 건축되고 꾸려진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인도 최초의 통일 왕조는 마우리야 왕조이고, 이 왕조의 대표적인 호법 군주로서 "아소카 왕" 이 있습니다. 이분이, 전장에서 저지른 무수히 저지른 살생의 죄업을 참회하고자 불교 신도가 되었고, 그 이후 불교는 국가의 보호를 받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마우리아 왕조는 전통적인 인도의 중심지였던 델리~펀잡 일대를 중심으로 삼았지만, 그보다 남쪽인 지방에는 세력을 확고히 뻗치지는 못했습니다. 마하라슈트라 지방은 비자야나가르 제국, 그리고 이후에는 마라타 동맹 등을 형성하여 북부의 지배에 강하게 저항한 사실로 유명하죠. 이 마하라슈트라 지방의 토착 왕조였던 사타바하나 왕조가 처음으로 조성하기 시작한 게 아잔타 석굴입니다. 석굴이 쇠퇴한 건, 한편으로 굽타 왕조의 몰락(이 이후로는 이슬람 정복 왕조가 인도를 지배하였습니다), 다른 한편으로 불교 자체가 인도 민중에게 버림 받은 게 결정적 계기 아니었을까 짐작합니다.


이 책은 하진희 제주대 미대 교수님이 직접 현지를 답사하고 찍어 오신 사진이 가득 실려 있고, 재질 좋은 종이에 선명히 인쇄되어 있습니다. 회화에 적용된 미술 기법에 대한 상세한 해설도 미술 전문가의 솜씨답게 독자에게 유용합니다. 특히 p98~99에 나온 사진과 해설, 뱀의 왕으로 환생한 난다 소년과 왕비의 이야기는 그 자체로 흥미로울 뿐더러, 이렇게 앞선 시기(서양 회화의 발달보다 거의 천 년 이전이죠)에 발전한 테크닉이 존재하였구나 하는 사실을 알고 새삼 감탄하게 됩니다. 이 책에 실린 본생경 이야기는 너무 재미있는 것이 많아서, 아잔타 석굴 관련 아니라도 우리의 상상력을 만족시킵니다.


p121에 보면 "진실을 밝히는 마하소다 소년의 이야기"가 나오는데요, "마하소다"라는 이름은 오류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마호사드하महोसध"라는 이름이 맞을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우리가 아는 기독교 구약 성경에 나오는, 솔로몬의 명판결 에피소드와 너무 닮았습니다. 아마도 본생경이 시대순으로 더 먼저가 아닐까 학자들은 짐작한다는군요.


P37:8 "포현 표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밤의 여행자들 오늘의 젊은 작가 3
윤고은 지음 / 민음사 / 2013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타인의 재난- 그것이 과거 한 때의 상흔이어서, 다시는 반복될 우려가 없는 고정된 박제라고 해도 말이죠- 을 관광상품으로 만든다는 발상, .... 좀 잔인하기도 하고, 곳곳에서 혁신을 강조하는 작금의 비즈니스 세태에 비추어 한편으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면도 없진 않네요. 여태 몽환적이고 초현실적인 작품 세계를 주로 붓끝으로 빚어왔던 윤고은 작가의 작풍에 비추어, 이 신작은 다소 충격으로 다가왔다는 말을 하고 싶기도 하고요. 재난 여행이 컨셉이라고 해서, 마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같은 설정이나 펼쳐질 것을 기대했던 저로서는, 첫 페이지부터 폭풍의 연발로 쏟아지는 리얼리즘 터치 탓에, 초점과 시야를 어디에 둬야 할지가 난처했을 정도였습니다.

"이게 뭐지? 이러다가 또 화성인 등장하는 시츄에이션일까?"
"벌써 '고요나'라는 이름부터가 도로시랜드 진입 예고 제스처란 말이지."

그래도 이런 기대를 접진 않았습니다. 우리가 윤고은이라는 이름, 상표로부터 지레 떠올리는 작풍이란, 다 알고 있던 대로 특유의 풍만하고 풋풋하면서도 선명한 채도의 원더월드, 바로 그의 전개와 담백한 드라마의 버무림이었죠. 그런데 이거 첫 페이지부터가 영 심상치 않습니다. 30대 초반, 모르긴 해도 아직 미모가 시들진 않았을, 동시에 그만큼이나 세계와 자아에 대한 찌들지 않은 시선, 눈빛을 간직했을, "브레인레벨" 과장 고요나, 주인공은 그 등장의 댓바람부터 직장 내에서의 퇴출 위협 전조로 여겨진다는, 김 모 부장의 저열한 성추행 피해자로 우리 앞에 대뜸 디밀어집니다. 이건 그냥 읽어도 좀 충격입니다. 뭐 작품이 첨부터 김영하표나 달고 있었다면 모르지만, 윤고은은 문단에서의 지위나, 우리 일반 독자로부터의 평균적 대접으로나, "아직 애" 레벨 아니었습니까? 갑자기 왜 이러는 걸까요? 뭐 나중에 그녀다울 새콤한 반전을 예비하고 있을지는 모르겠지만요(전 소설을 다 읽은 후라 결론을 알고 있지만 일단 짐짓 모르쇠 모드로 나가겠습니다) , 그것도 뭐 나쁠 것 같지만은 않습니다. 아직 젊은 그녀라서이죠. 만약, 지극한 나이의 방송작가 임성한이 이런다면 어떨까요? 가정법이 아니라 지금 실제로 그러고 있으며, 대충 시청자들의 공감은 이뤄진 바라서 저 질문에 대한 대답은 구태여 하지 않겠습니다.

암튼 윤고은은, 재롱을 부려도 괜찮은 나이입니다. 좀 안 하던 짓을, 진지열매를 따 먹고 우리 앞에서 퍼폼 좀 하기로서니, 우리가 이해 못 할 것도 없습니다. 좀 어색하고 안 어울리기는 하지만, 애가 어른짓좀 하기로서니 당혹할 것까진 없습니다. 어른이 체신 없이 애들 짓거릴 하면 그게 문제고 큰일이지만요. 본디 (어린) 여자의 변신은 무죄고, 작가의 변신은 더더군다나 결백합니다. 아닐까요?

거참, 아무리 그러려니 해도, 대뜸 회사(그 이름도 정글이랩니다)에서의 살벌한 분위기를 배경으로 깔질 않나, 질 나쁜 중년남성이기가 당연할 직장 상사의 성추행 모티브가 등장하질 않나(수위도 별반 낮다고 말 못합니다), 이거 아무래도 책을 잘못 골랐나 하는 주저함이 떠나질 않네요. 그녀가 풀어주는 이야기 보따리의 외관이 어떠하건, 이런 자락에서, 통상 가질 법한 엉큼한 상상의 부력을 받아 가며 계속 책장을 넘겨도 되는 걸까요? 조금 가책이 느껴집니다.

고요나는 정말 냉정한 플레이어입니다. 브레인으로 평가는 받아 왔으나, 나이도 들고 감각도 떨어져가는 게 말로는 표현 안 해도 본인이나 타인에게나 어느 정도 살을 쑤시는 현실로 다가오는 판인데, .... 미국의 오랜 격언 중에 그런 게 있죠. "직구가 더 이상 통하지 않으면 체인지업을 시도하라." 대체로, 정직한 실력의 발휘로 직장 내 입지를 다져 왔던 그녀였고, (더 젊은 나이에 벌써 퇴물 취급을 받기 시작하는) 하급 직원들로부터는 존중과 선망의 대상으로 아직도 꼽히는 그녀지만, 심상치않은 분위기는 도처에서 감지됩니다. 퇴물만 골라 괴롭힌다는 오랜 상사(유능한 부하)로부터 더 뚜렷한 신호를 받은 그녀는, 이제 승부수를 던집니다. 일단 고충처리부서에 분위기를 타진하였으나, 차분히 주판알을 팅궈 보니 섣불리 몸을 담글 분위기가 아닙니다. 그 길이야말로, 사내의 퇴물로 자타공인의 낙인을 찍는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너는 채널임을, 그녀는 예민하게 캐치해냅니다.

제가 리얼리즘의 징그러운 발현이라고 한 건, 성희롱을 사내 정치, 약육강식의 수단으로 삼는 타락한 중년 사내의 등장 따위를 두고 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30대 초반의 미혼 여성이라면, 작중에서 어떤 옷을 입고 있더라도 작가 윤고은의 페르소나 반영 의혹을 벗기 힘듭니다. 이, 아직은 젊고 순수한 태를 털어내지 않은 고요나라는 주인공이, 이런 감당 못할 분위기의 옥죔 속에서, 저런 냉정한 계산 하에 행동 방침을 정할 수 있다는 그 세팅이 섬뜩했고, 이것이 역사와 자연의 정면 투입이라는 본격 장편 구성을 위한 대담한 시도보다 제게는 더 큰 이물감으로 다가왔어요.

김과 고요나는 묘한 지점에서 타협점을 잡습니다. 김 역시 오랜 부하이자 만만찮은 비중의 프로그래머를 함부로, 내키는 대로 다뤘다간 그간의 곡예 진로가 앞을 점치기 힘든 국면으로 접어들 수 있음을 압니다. 고요나는 물론 회사에서의 최소한 현상 유지를 도모하기 위해, 김과의 절연이 엄청난 모험임을 이미 진단한 상태고요.

일종의 냉각기 마련, 혹은 포상을 가장한 전선 재포진을 위해, 김과 고요나는 부하의 해외 여행( 바로 그녀의 솜씨인 재난 여행 코스) 주선 쪽으로 대립 해소의 실마리를 잡습니다. 감당 못할 스트레스로 다가오는, 직장과 인간관계의 대파국이라는 재난을, 가상의 설정으로 엔터테인먼트화한 코스 상품을 통해 모면하겠다는 발상, 이는 도피라고 치부하기에는 지나치게 영악합니다. 쉽게 말해, 재난으로 재난을 중화하겠다는 거죠.

고요나는 자의반타의반으로, 자신의 기획에 몸을 맡겨 먼 타국으로 떠나는데, 역사적 재난인 인종청소와 때맞춰 일어난 싱크홀 디재스터로 유명한, 베트남 남단의 무이 섬이 그 배경입니다. 여행 중 일행에게는, 프로그래머로서의 신분을 철저히 숨깁니다. 이는 타인들에 대한 일종의 배려이기도 하고, 업무 수행을 위한 방편, 그리고 무엇보다 여행 자체의 의미를 다지기 위한 수단입니다. 이러니 그 영악함에 혀가 내둘러질 밖에요.

제가 자꾸 찜찜한 마음으로 되뇌는 건, 이 고요나가 정녕 작가 윤고은과 무관한 존재일 수가, 그럴 리가 없다는 점에서입니다. 아니, 대체 그녀의 어느 정신 한 구석에서 이런 캐릭터를 창작해 낼 생각이 났던 걸까요? 거듭 이야기하지만, 김 같은 이는 차라리 피해의식의 발로이건, 모종의 상해 예방심리이건 여성들이 떠올리고 상상하기 쉬운 캐릭터입니다. 그런 자라면 지나치게 현실적이어서 비현실적인, 어찌 보면 흔해서 드문 파충류 같은 존재입니다. 헌데, 고요나 같은 페르소나는 다른 이도 아닌 윤고은의 솜씨로부터 빚어졌기에, 정말이지 실감과 해독이 어려운 미궁 같은 영혼입니다. 미궁이 가는 곳에 미궁의 얽힘이 빚어지고, 곳곳에 파인 싣크홀은 그 미궁의 굽이와 요철을 맞춥니다. 적당히 갈등이 봉합되고 균열이 가라앉았다 싶은 바로 그 순간, 자초한 낙오(낙오야말로 쿨하게 영악한 그녀와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상태어입니다. "여행사 직원이 어떻게 낙오를 하죠?" 많이 부족한 이야기입니다. "왜 고요나라는 존재가 낙오할 수 있는 상황이 생긴 거죠?" 이 정도는 되어야 격에 맞습니다)와 끔찍한 재앙은 기묘한 반전과 충격으로, 재앙 이상의 쇼크를 독자에게 안깁니다. 저는 책을 덮으며 그저 이 의문이 떠올랐습니다. "도대체 윤고은에게 무슨 일이 생겼던 걸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