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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잔타 미술로 떠나는 불교여행 ㅣ 인문여행 시리즈 12
하진희 지음 / 인문산책 / 2013년 9월
평점 :
동양권 미술 작품을 대하는 우리로서 가장 유감스러운 건, 작자 미상의 작품이 너무 많다는 거죠. 특히 불교 미술의 경우 이런 예가 잦은데요. 우리도 전 세계에 자신 있게 내어 놓을 경주 석굴암이라는 조형 문화재가 있지만, 정작 작가, 혹은 건축 감독이 누구인지는 모르고 있죠. 불국사나 활룡사는 예전에 소실되었고(현재의 불국사는 복원물), 김대성 등의 발원이라는 점 외에는 전혀 authorship에 대해 아는 바 없습니다.

아 잔타 석굴의 경우는 차라리 운이 좋았던 편입니다. 오랜 동안 자연의 엄폐 덕을 보아서, 도굴꾼들의 약탈이나, 외부 침략자의 무자비한 파괴 행위로부터 자유로울 수 잇었으니까요. 실제로 날란다 승원이나 굽타 왕조의 유적은, 10세기 이슬람의 대거 동진 당시 흔적도 없이 파괴된 것이 많습니다. 최근에도 탈레반의 손에 의해, 바미얀 석굴이 전세계가 보는 앞에서 파괴되었으니까요. 비록 서양 제국주의자들에 의해서 발견되긴 하였어도, 이후 이 아잔타 석굴은 전 인류의 관심을 받게 되었고, 현재는 무려 10세기만에 들어선 힌두 본토인의 주권 정부 관할 아래, 첨단 기술이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최상의 보호를 받고 있습니다.

불교 미술은 불교 전래의 역사만큼이나 우리 민족의 정서에 깊은 뿌리를 내린 분야입니다. 지금도 아이들의 수학 여행 코스로 애호되는 법주사에는, "십우도(혹은 심우도)"라는 벽화가 단아한 색채를 빛내며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냅니다. 이 아잔타 석굴에는, 부처님의 전생 여러 장면을 이야기식으로 묘사한 "자타카(한자로는 "본생경"이라고 하는)"의 회화 표현이, 자연의 침식을 최소한으로 받은 채 보존되어 있습니다. 책 에 의하면, 아잔타 석굴은 단일 왕조에 의해 조성된 게 아니라, 거의 8세기에 걸쳐 지역 토착 왕조 여럿에 의해 건축되고 꾸려진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인도 최초의 통일 왕조는 마우리야 왕조이고, 이 왕조의 대표적인 호법 군주로서 "아소카 왕" 이 있습니다. 이분이, 전장에서 저지른 무수히 저지른 살생의 죄업을 참회하고자 불교 신도가 되었고, 그 이후 불교는 국가의 보호를 받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마우리아 왕조는 전통적인 인도의 중심지였던 델리~펀잡 일대를 중심으로 삼았지만, 그보다 남쪽인 지방에는 세력을 확고히 뻗치지는 못했습니다. 마하라슈트라 지방은 비자야나가르 제국, 그리고 이후에는 마라타 동맹 등을 형성하여 북부의 지배에 강하게 저항한 사실로 유명하죠. 이 마하라슈트라 지방의 토착 왕조였던 사타바하나 왕조가 처음으로 조성하기 시작한 게 아잔타 석굴입니다. 석굴이 쇠퇴한 건, 한편으로 굽타 왕조의 몰락(이 이후로는 이슬람 정복 왕조가 인도를 지배하였습니다), 다른 한편으로 불교 자체가 인도 민중에게 버림 받은 게 결정적 계기 아니었을까 짐작합니다.

이 책은 하진희 제주대 미대 교수님이 직접 현지를 답사하고 찍어 오신 사진이 가득 실려 있고, 재질 좋은 종이에 선명히 인쇄되어 있습니다. 회화에 적용된 미술 기법에 대한 상세한 해설도 미술 전문가의 솜씨답게 독자에게 유용합니다. 특히 p98~99에 나온 사진과 해설, 뱀의 왕으로 환생한 난다 소년과 왕비의 이야기는 그 자체로 흥미로울 뿐더러, 이렇게 앞선 시기(서양 회화의 발달보다 거의 천 년 이전이죠)에 발전한 테크닉이 존재하였구나 하는 사실을 알고 새삼 감탄하게 됩니다. 이 책에 실린 본생경 이야기는 너무 재미있는 것이 많아서, 아잔타 석굴 관련 아니라도 우리의 상상력을 만족시킵니다.

p121에 보면 "진실을 밝히는 마하소다 소년의 이야기"가 나오는데요, "마하소다"라는 이름은 오류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마호사드하महोसध"라는 이름이 맞을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우리가 아는 기독교 구약 성경에 나오는, 솔로몬의 명판결 에피소드와 너무 닮았습니다. 아마도 본생경이 시대순으로 더 먼저가 아닐까 학자들은 짐작한다는군요.
P37:8 "포현 → 표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