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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킷 리스트
나태주 지음, 지연리 그림 / 열림원 / 2024년 8월
평점 :
올해 6월 20일에 국민시인 나태주 시인의 <오늘도 나는 집으로 간다>를, 5월에 김지수 에디터의 인터뷰 책 <나태주의 행복 수업>을 리뷰했었습니다. 이제 시인의 신작 시집 <버킷 리스트>를 펼치는데, 우선 그 제목부터가 독자를 숙연하게 합니다. 버킷 리스트라는 말 자체가, 이제 생의 여정이 얼마 남지 않으신 시니어분들만이 거론하실 만한 단어이기 때문입니다. 특이하게도 책은 3부로 나뉘었는데 1, 2, 3부가 모두 버킷리스트란 제목이며, 단지 각 부제가 "해 보지 못한 일", "가장 많이 해 본 일"," 꼭 해 보고 싶은 일"로 다를 뿐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이 시집에는 서시(序詩)가 따로 붙었는데 그 제목도 <버킷 리스트>입니다. 이 시에서도 그런 느낌을 받습니다만 시인께서는 참 젊고 발랄한 감각을 언제나 자랑하는 분입니다. 운문 중에 괄호를 거리낌없이 붙이는 것도 격식에 얽매이는 분이라면 그리 쉽게 시도를 못 할 일입니다. 또 우리 독자들도 익히 알듯 시인께서는 사모님과 참 금슬이 좋으신데, 서시의 버킷리스트에는 그분께 실연당하기도 포함되었습니다. 이런 달콤한 실연이라면 첫째 안전장치가 달려서 마음이 놓이고, 둘째 실연으로부터 그 달콤함만 뽑아서 창작의 자양분으로 삼을 수 있어서 좋습니다. 젊은이들도 이미 생의 결론을 다 알고 나서 당하는 실연이라면 겁 먹지 않고 더 과감하게, 사랑하는 상대에게 대시할 수 있겠습니다. 또 이 부분은 시인께서 은근히 험블브래깅을 하시는 대목이기도 한데, "난 생전 실연이라는 걸 당해 본 적이 없으니 애써 버킷리스트에 넣어야 할 정도"라는 것 아니겠습니까?
진짜 사랑은, 그(녀)를 접하고 나서야, 전에 그런 줄 몰랐던 걸 비로소 깨닫게 하는 효과 또한 없었습니다. 있습니다. p43의 <다시 제비꽃>을 보면, "널 보고 나서야 작은 눈이 예쁜 줄 알았다. 작은 키가 예쁜 줄 알았다"고 하시네요. 그러니 한번 사람이 lovestruck되면, 취향이고 뭐고가 전부 바뀌는 겁니다. 나이가 들고 나서는 이런 경험을 하기가 쉽지 않지만, 처음으로 내게 취향을 일깨워준 사람 앞에서 모든 게 리셋되는 행복한 느낌은 아스라히 누구나 다 기억합니다. 나태주 시인의 영원한 명구절,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가 다시 생각나기도 합니다. 그래서 진정한 사랑, 내 반쪽을 만나기 전, 사람은 아직 제대로 산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네 눈은 하늘로 열린 창문, 바다로 흐르는 강물...(p146 <어느 날>)" 참, 사랑에 빠진 사람들한테는 그이 말고는 눈에 들어오는 게 없고 그이 자체가 세상을 보는 채널이요 창구입니다. 그런데 블랙홀 같게도 느껴져서, "너 앞에서 빨려들어갈까 겁이 나고 부끄럽기도 했다"고 고백합니다. 젊은 시절의 이 설레는 감정을 노년에 이르러서도 같은 상대에게 고스란히 느끼거나 기억한다는 자체가 축복입니다. 마치 뮤지컬 <웨스트사이드 스토리>의 아리아 "Tonight"에서, "널 알고 나서야 이 삭막한 땅이, 그저 하나의 주소(address)였던 게 드디어 별(star)이 되었다"는 그 가사가 떠오르기도 합니다.
공교롭게도 p193에 나온 <눈 위에 쓴다>를 보면 시인께서 "지구라는 아름다운 별"을 노래하는 대목이 나옵니다. 눈 위에 뭘 쓴다는 걸까요? 물론 널 사랑한다고 쓰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구라는 별, 쉽게 떠날 수 없다는 것인데, 사랑하는 네가 아니었다면 이 시적 화자는 일론 머스크나 제프 베이조스 아니라도 벌써 여길 떴을지도 모릅니다. 이때 눈은, 눈[雪]일까요 아니면 눈[眼]일까요? 저는 어느 쪽으로 새겨도 상관 없다고 생각합니다. 눈(snow)이란, 이 태양계에서 오직 지구에서만 구경할 수 있는 아름다운 물질입니다. 눈이 내리면 사람들의 교통과 산업에는 도움보다는 방해 사항이 많음에도, 인간은 심미안과 감정이라는 게 있기에 눈에 환호하는 이들이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p249에는 <변명>이라는 재미있는 시가 있습니다(책에는 제목이 변명1이라고 되었지만, 이는 같은 제목의 시를 구별하기 위한 넘버링이라고 출판사측에서 밝히고 있으므로, 저는 이 후기에서 숫자를 생략하겠습니다). "귀가 작고, 코가 작고 눈이 작으나, 입술이 크고 붉은 아이가 보고 싶다. 실상 이것은 네가 보고 싶다는 뜻이다" 얼마나 간결하게, 그리움을 표현하며, 동시에 단순한 반전으로 모두에게 웃음을 머금게 합니까? 나태주 시인 아니고서는 누가 쉽게 흉내도 내기 어려운 공력이라 하겠습니다.
시인이 그 인생을 통달한 경지는, p294의 <흰 구름>을 보면 엿볼 수 있습니다. 예전엔 내가 그를 우러러보았는데, 지금은 그가 나를 굽어본다... 물론 이를 마치, 호손(N. Hawthorn)의 <큰바위얼굴>에서처럼, 성실히 살아 온 거대한 생애가 어느새 남들이 우러러봐 온 마일스톤과 같아졌다는 뜻으로 새길 수도 있겠으나, 저는 다르게도 읽혔습니다. 구름은 그저 하늘에 뜬 객체, 대상이었던 게, 이제는 처지를 전혀 바꾸어 내가 물(物)의 입장에 서서 나를 객관화하여 볼 수도 있겠다는 식으로 말입니다. 세상을 달관한 이에게는 천지가 모두 나이며, 내가 곧 자연이자 누리입니다.
지연리님의 일러스트가 책 곳곳에 적절하게 녹아들어 시화전(詩畵殿)을 방불케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