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물리학 필독서 30 - 뉴턴부터 오펜하이머까지, 세계를 뒤흔든 물리학자들의 명저 30권을 한 권에 필독서 시리즈 22
이종필 지음 / 센시오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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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우리가 존재하고 활동하는 물리 세계가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는지를 가장 객관적인 방법으로 설명하는 학문 체계가 물리학입니다. 물리학을 오늘날 우리가 아는 모습으로 만드는 데 가장 크게 기여한 사람은 4백년 전의 아이작 뉴턴이지만, 그 이전의 학자들이 쓴 저술들 중에서도, 흥미롭고 참고할 만한 것, 영감을 주는 책들이 많습니다. 이들은 고전의 위치를 차지하며, 후대인들에게 길을 잃지 않게 배려하는 등대와도 같은 역할을 합니다. 한편, 아인슈타인이나 하이젠베르크 등 뉴턴의 이론에 근본적인 수정을 가하거나 아예 다른 지평을 제시한 인물들이 쓴 걸작들도 있는데, 진리의 발견을 위한 인간 지성의 끝없는 발걸음이 얼마나 위대한지를 증명한다 하겠습니다. 

p18에는 20세기 철학자 앨프리드 화이트헤드의 명언이 나오는데 "유럽 철학의 전통은 플라톤에 대한 주석에 지나지 않는다."가 그것입니다. 고전(classic)의 정의에서, 모든 생각의 기초와 틀을 처음으로 만들었다는 게 핵심이니 저 말도 과장이 아닙니다. 가던 길이 막힐 때 잠시 숨을 돌리고 고전을 다시 살피면 의외로 바른 좌표가 시사될 때가 많습니다. 우리의 생각도 우리가 그를 의식하건 않건 그 고전의 언어와 발상에 일일이 토대를 두기 때문입니다. <티마이오스>를 소개하며 저자는 오늘날의 공학, 의학 등 모든 학문의 기초가 플라톤, 또 그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얼마나 크게 빚지고 있는지를 상기합니다. 저자는 비록 수천 년의 간격을 두었지만 여전히 근본적인 생명력을 발하는 이들 고전을, 현대의 독자들도 꼭 한 번쯤은 읽어 볼 것을 권합니다. 

19세기의 위대한 물리학자 볼츠만(p89)은 엔트로피의 개념을 현대적으로 재정의, 정립한 업적이 있지만 당대에는 물론 현대의 우리들에게도 그리 인지도가 높지 않습니다. 과거 물리학자들이란 대개 논문이나 교과서로 자신의 생각을 표현했기에, 요즘 학자들처럼 대중과의 소통을 위한 책을 따로 내지는 않았습니다. 볼츠만의 경우 19세기~20세기 초에 걸쳐 자신의 중요한 저술을 출간했으나 일반 독자들이 읽기에는 너무 어렵고, 오늘날 이 분야의 교과서들이라면 그간의 성과를 반영하여 훨씬 이해하기 쉬운 포맷입니다. 그래서인지 저자는 볼츠만 본인의 책이 아닌, 데이비드 린들리라는 우리 시대 과학저술가의 대중서로 저 위대한 정신의 업적을 소개합니다. 아마도 어린 독자들은 제레미 리프킨이라는 저널리스트가 이 개념의 창시자쯤인 걸로 오해할 수도 있지만, 사실 그는 과학자조차도 아니죠. 

하이젠베르크의 생을 보면, 천재가 걷는 길의 한 전형을 보는 것 같습니다. 젊디젊은 나이에 파천황의 업적을 (자신도 정확한 의미를 모른 채) 이뤄 내고, 자신들과 비슷한 천재들과 교류하고 그들로부터도 최고라고 인정받고... 하이젠베르크는 아인슈타인과 달리 정규 교육 과정 이수 내내 언제나 최고로 인정받았으며, 아인슈타인과 달리 기존의 프레임이 전혀 담지 못하는 완전히 새로운 생각도 거리낌없이 떠올리고 받아들였습니다. 하이젠베르크는 아마 생전에, 양자역학 발전의 최대 수혜자로, 부존 자원 하나 없는 21세기 극동의 한 나라가 오로지 반도체 하나로 먹고살 줄이야 전혀 몰랐겠습니다. 아무리 그가 천재였다고 해도 말입니다. 저자께서는 토론이 끝없이 이어지는 듯한 그의 책이 독자들에게 지루하게 여겨질 수도 있겠다고 걱정(p113)하시나, 사실 그같은 천재가 쓴 책치고는 일반인들을 꽤나 배려하는 편이기 때문에 (각오를 미리 한 독자들에게는) 생각보다 재미있습니다. 

자연과학은 대개 누구라도 객관적으로 같은 걸 보고 정리하며 통일된 결론에 동의할 수 있는 체계라고 여깁니다. 또 p149에서 저자가 설명하듯 칼 포퍼의 반증주의까지 포섭하며 반증의 여지가 높을수록 더 과학적이라는 컨센서스까지 있으니 이 믿음은 더욱 강화되는 듯합니다. 증명도 안 되고 그렇다고 반박도 힘들기 때문에 끈이론 같은 것도 과학의 범주에서 배제하는 측도 있다는 서술에 이르면 독자가 할 말을 잃게 됩니다. 그러나 노어우드 러셀 핸슨의 <과학적 발견의 패턴>을 소개하며 저자는 "뭘 본다는 행위 자체에 이미 사상과 관점이 개입함"을 지적하며, 자연과학에서도 완전한 탈(脫)주관은 불가능하다는 책의 결론을 강조합니다. 불확정성의 원리도 이런 핸슨의 관점에서라야 (아인슈타인처럼 갈등을 겪지 않고) 완전히 받아들일 수 있다는 건데, 물리학의 온전한 이해는 그로부터 몇 발짝 떨어져서 대상을 바라봐야 가능하겠다는 심오한 진실을 다시 확인하게 됩니다. 

이 책에 소개된 상당수의 고전은 한국어로도 (고맙게도) 이미 번역되었으며 저자는 각 번역서의 이런저런 특징까지도 세심하게 짚어 독자에게 일러줍니다. 아마 이 중에서 한국 독자들에게 가장 친숙한 책은 킵 손이 쓴 <블랙홀과 시간여행>일 텐데, p187에 나오듯 영화 인터스텔라 자문을 맡았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책도 한국에서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사실 대중에게 더 잘 이해되는 포맷, 스타일로 (남의 생각을 이리저리 짜깁기하는 게 아니라) 독창적인 책을 쓰는 것도 큰 재능인데, 킵 손은 이미 당대 최고 과학자이면서도 이런 영역에서까지 다시 성공을 거두는 걸 보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자께서 이미 최고의 두뇌를 지닌 분이며 해당 분야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달성하셨기에 책이 편안하게 읽히면서도 내용을 신뢰하며 진행하는 독서가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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