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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재벌과 권력 - 재력과 권력은 누구로부터, 언제, 어떻게 오는가
효제 지음 / 지식공방 / 2017년 3월
평점 :
절판
조상의 묘를 어디에 써야 후손들이 잘 살고 복된 삶을 누릴까 하는 고민은, 첫째는 유독 풍광이 아름답고 햇볕이 고루 드는 지형을 많이 갖춘 이 한반도의 탁월한 조건에서 비롯했고(삼국 시대 혹은 그 이전부터 존재했다고 여겨지는 풍류도, 낭가 사상 등), 다음으로는 아마도 원초적인 효도의 마음가짐이 그 원천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첫째는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이 소중한 국토에 대한 자부심과 애정, 경건히 여기는 그 자세와 관계 있으며, 둘째는 생전에 양친을 극진히 섬기던 공경의 정신을, 사후까지 이어간다는 극진한 효심의 발로로 못 볼 바 없습니다. 이렇다면 구태여 미신이나 세속적 구복에의 집착으로 폄하할 이유도 없습니다. 매사에 최선을 다하고 인륜에 정성을 쏟는 이가 현세에서도 복락을 누리는 윤택한 생을 누린다는 믿음이라면, 그것은 사회 질서 유지 차원에서도 건전합니다.
이 책은 조상의 묫자리를 명당으로 쓴 이가 과연 당대, 혹은 가까운 후세에 그 음덕을 누리게 되는지를 놓고, 유머러스한 대화, 혹은 우화 형식으로 그 인과적 이치를 논합니다. 저자 효재(본명은 이문호 박사. 영남대 신소재공학부, 응용전자학과 교수. 서울대 공대, 카이스트에서 학부와 석박사를 각각 마침) 선생은 물론 본인이 현대 첨단 공학의 최정수를 맛보고 현재까지 그 연구를 이어가는 대표적인 지성인이기 때문에, 소위 풍수지리의 엄격한 인과율에 대해 맹신하는 식으로 논의를 이어가지는 않습니다. 자신의 직접 화법이 아닌, (좀 의외지만) 조조, 유비, 손권(관우와 장비는 안 나옵니다) 등 가상 인물을 등장시켜, 풍수지리를 바라보는 대략 세 가지 정도의 시각을 대변하게 합니다. 세 인물 중 어느 누구도, 풍수학에서 말하는 인과율이 절대적이라며 목소리를 높이지는 않는다는 점에서 저자의 숨은 의도를 엿볼 수 있습니다.
조조는 사실상 이 우스꽝스러운 담론을 주도하는 위치인데, 시대를 추측한다면 아직 삼국이 정립하기 전, 중원에서 황제를 보필하며 제국의 명분을 형식상으로 대변하던 시절 같습니다. 유비와 손권은 직급상 물론 아랫사람의 예의를 다해 조조를 대하지만, 마치 신하가 군주를 대하듯 삼가는 태도가 역력하더군요. 물론 속에는 또한 원대한 포부를 한 자락 감추고 표현하는 정치적 제스처이겠지만 말입니다. 마음에는 다른 생각을 유보하면서, 일단 상대를 향해서는 열심히 주제에 몰입하는 품으로 대화를 이어가는 건, 우리 현대인들이 풍수지리에 대해 품는 태도를 어느 정도는 상징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뭔가 미심쩍고 아니다 싶지만, 한편으로는 조상 대대로 이어진 그 나름 비의를 갖춘 믿음에 뭔가 숨겨진 그윽한 진리, 혹은 "통계적, 과학적 인과율"이라도 결국 존재하는 게 아닌지 하는 삼가는(더 솔직하게는 뭔가를 기대하는) 자세가 슬쩍슬쩍 엿보이기도 합니다. 이는 가상의 3인, 혹은 저자 자신(?)뿐 아니라, 무심한 듯하면서 마음 한 구석에 여지를 남기는 우리 모두의 심리와 닮거나, 그를 대변하는 면이 있습니다.
실제로 풍수지리학을 둘러싸고는 아무리 늦게 잡아도 지금으로부터 20여 년 전, 엄격한 실증주의가 그 학풍이던 모 명문대 지리학과에서, 가장 유대 깊은 스승과 제자 사이에 큰 분란과 다툼이 벌어져 학계를 떠들썩하게 한 적이 있습니다. 좀 과장하자면 프로이트와 융 사이의 대립에나 비길 수도 있을, 방법론과 연구의 지향에 과연 전통의 풍수론이 포함될 수 있냐를 놓고 벌어진 알력이었죠. 현재는 이 책에서도 널리 인용되는 것처럼, 명당의 실체와 이론적 구조를 놓고 "박사학위 논문"만도 수십 편이 발표된 상황입니다. 이제는 최소한 이를 놓고 진지한 학문적 논의를 삼을지 말지에 대한 대립상은 어느 정도 정리된 형편이죠. 배척하는 쪽은 여전히 배척하되, 연구하는 인력은 스탠스와 지향을 분명히하고서 밀도 있는 연구를 이어가는 상황입니다. 이 책 저자께서는 공학도, 과학도이며 젊은 나이에 매우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은 분이지만, 이질적인 분야에 이만큼 천착하신 건 일단 소속 대학교에 이쪽(풍수학) 연구인력이 집중 포진한 사정도 한몫하지 않았을까 저는 추측합니다.
총 9장으로 이뤄진 구성인데요, 6장까지가 풍수지리학 일반 이론, 혹은 공식의 정립을 다룹니다. 저자께서는 구태여 가상의 인물들을 동원하여 이들 사이에 주거니받거니 하는 수다, 혹은 말벗 사이에 오가는 언어언의 교감 형식을 취하는데, 이는 그만큼 풍수지리론의 본체가 (어떤 이유에서건) 접근이 쉽지 않다는 점을 잘 드러냅니다. 저 역시 이 책 한 권만으로는 대체 그 논의체계가 어떤 구조인지에 대해 명확한 그림이 잡히지 않았고, 어쩌면 여태 근대적인 합리주의, 실증주의에 바탕을 둔 사고 방식이랄까 지적 소양이 이의 납득을 거부하고 드는지도 모르겠습니다(혹은 말입니다, 너무 깊이 파고들 생각은 말고 대략 이 정도라는 것만 알아두라는 저자의 [차라리] 배려일지도 모릅니다). 일개 독자가 이 정도인데, 공학의 특정 섹터에서 한국 최고 권위자들 중 한 분이라면 오죽하겠습니까. "좀 현대적 시각에서 알아들을 수 있는 개념으로 변환해서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소만?" 같은 해학적인 멘트가 등장인물들 사이에 자주 오가는 것도 이 같은, 어느 정도는 대상으로부터 거리를 두고 진지함의 강도를 조절하려는 저자의 의도 아닐까 싶습니다.
이 책의 7, 8, 9장은, 속된 호기심(?)을 가지고 이 책에 접근한 독자들을 위한 본론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아니, 거의 확실하죠). 책에서 명당을 잘 쓴 보람은 첫째 기준이 그 수가 얼마나 번성했느냐입니다. 한국은 지금의 어르신 세대가 소위 베이비 붐 제너레이션이라서, 또 그 성장기가 하필 세계적으로도 유례 없는 국가 차원의 고도발전기와 겹칠 때라, 자손 수가 늘어나는 게 무슨 큰 복이나 될지 의문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특별히 복 안 받아도 형제자매는 부담스러울 만큼 많음). 하지만 예전에는 출생 직후 질병, 부족한 영양 섭취 등으로 일찍 사망하는 비율이 높았고, 아이들을 성년이 될 때까지 양육하는 자체가 집안의 여력 없이는 불가능했겠으며, 그저 대를 잇는 사실로만으로도 부모님과 조상 볼 면목이 선다고 여겼기에 이 팩터는 비중이 크게 다뤄졌지 싶습니다. 앞의 1~6장에서 이런 이유로, 자손의 수효는 발복을 판단하는 중요 기준입니다.
다음으로, 저자께서도 그런 집안 출신이시겠습니만, 어려서부터 좋은 교육을 받고 자라나 남들이 부러워하는 벼슬자리(이분 세대라면 문과는 고시 합격, 이과는 이름난 의사나 저자처럼 대학 교수직 취임 등)를 일찍부터 거치는 게 또한 "명당을 쓰는 보람" 중 하나가 아닐 수 없죠. 여기서 저자는 "어떤 기준을 충족해야 명당"인지, 묫자리가 명당/흉당의 이분법이 아닌(예전에는 그런 오해가 있었다고 합니다) 명당/비명당으로 가를 수 있는지, 기존의 풍수론이 혼란스럽게 논하는 바를 "논리적으로 정리"합니다. 여기서 "논리적"이란 말은, 풍수론 자체가 과학적이고 논리적이란 뜻이 아니라, 종래 혼란스럽고 알쏭달쏭하게 전개된 풍수론의 패러다임을, 그나마 현대인들이 알아들을 수는 있게 공식화, 체계화했다는 의미입니다.
자 그래서 결국 우리 속된 독자들이 궁금한 건, 어디다가 묘를 써야 현재 잘나가시는 재벌들처럼 후손들이 떵떵거리고 사느냐, 혹은 (저자께서 아주 심혈을 기울여 분석하시는 것처럼) 대통령 같은 지극히 존엄한 자리에 오를 수 있느냐, 나아가 이제 두 주 앞으로 다가온 대선에서, 어느 분이 묫자리를 기막히게 쓰셨기에 당선이 되실 전망인가, 뭐 이런 문제겠습니다. 명확한 답은 없고, 다만 한국의 재벌가나 정치사의 소소한 구석에 밝은 지식을 갖춘 독자라면, 풍수론 그 자체의 결론이라기보다 최소한 저자께서 누굴 염두에 두었는지는, 두고 이런 말씀을 하는지는 아마 감이 올 겁니다.
왜 어떤 사람은 잘나가다가 말년에 운이 크게 어그러지는가, 명당이 사후적 요인으로 명당의 조건을 잃기도 하는가? 여기에 대해서는 기존의 이론이 명확히 구명한 바가 미진한지, 혹은 저자께서 확신이 아직 없으신지 여러 의문으로만 의견을 표명합니다. 이 중에는 "한때 총기가 넘치던 인생이 갑자기 그 총기를 잃기도 하는지"에 대한 고민도 있는데, 혹시 저자 자신의 사정을 은근 반영하신 문장은 아닌지 궁금해지기도 했습니다, 묫자리를 어느 지관에다 물어봐도 명당이라는 품평을 듣는데, 왜 자손이 복을 못 받는는가를 놓고 통박이 벌어질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저자가 "명당은 충분조건이나 필요충분조건이 아니라, 그저 필요조건일 뿐"으로 정리하고 넘어갑니다. 즉 "묘만 잘 쓴다고 저절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다" 정도죠. 이것도(이 말이 절대진리라고 아주 기냥 곧이곧대로 받아들인다면) 뒤집어 해석하면, "묫자리를 비명당으로 쓴 이는 복을 못 받는다."란 결론이 (논리적으로!) 나오니 그리 허술한 규정도 아닙니다. 뭐 제 생각을 곁들이자면, 조상의 묘를 명당으로 쓰고 안 쓰고를, 여러 전문가(?)들에게 묻고 다니는 분들 같으면, 이미 경제적으로 성공하여 그 나름 여유있게 사는 이들이 많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꼭 인과관계라기보다는, 상관관계(나아가 역 인과관계, 즉 돈이 있으니 묫자리도 잘 쓰게 된다ㅋ) 정도를 보여 주는 자료, 사례가 아닐까 , 뭐 그런 느낌을 가져 봤습니다. 책 속지는 최고급 용지를 써서 읽고 넘기기에 상쾌하며, 재미로 읽어 넘기건 진지하게 운명(?)을 해석하는 도구로 쓰건 이야깃거리는 충분히 제공하는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