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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너를 본다 ㅣ 미드나잇 스릴러
클레어 맥킨토시 지음, 공민희 옮김 / 나무의철학 / 2017년 4월
평점 :
절판
우리는 페이스북이나 인스타 등에 얼마나 많이 우리 자신에 대해 자발적으로 무신경한 노출, 공개를 일삼을까요? 소설 중에도 그런 대목이 나오지만, 자신은 일기장에다 적듯 무심히 솔직한 느낌, 일상의 여러 순간,신상 정보 따위를 게시했는데, 전혀 기대 안 한 남이라든가, 때로는 지인이라도 뜻밖의 순간이나 장소에서 그 정보를 읽고 있다면, 당황하는 게 당연합니다. 물론 똑똑한 사람은 그런 당황, 후회의 순간을 만들지 않게 평소에도 주의를 기울여야 하겠습니다만.
"어떻게 내 계정에 접속할 수 있었죠?"
"이건 누구나 볼 수 있게, 당신이 게시해 놓은 것들이에요. 전체 공개로 해 두셨나 보죠."
상당히 분량이 두꺼운 이 스릴러는, 어떤 못된 X(들)이, 무작위(?)로 수집한 남(주로 여성)들의 정보를, 불법으로 개설한 사이트에 게시한 후 유료 회원들에게 팔아넘긴다는 끔찍한 음모, 사건을 주된 소재로 삼습니다. 물론 그 외에도 부수적으로, 이혼과 별거, 재결합을 둘러싼 가족들 간의 아픔, 갈등, 오해, 포용이라든가, 번잡한 만큼 위험하기도 한 런던 도심 생활의 여러 선명한 단면, 혹은 생계를 위해 치열한 경제 현장에 뛰어들어 여러 고충을 겪어야 하는 여성들의 노력을 생생하게 담아내고도 있습니다. 긴 만큼 독자들에게 전달되는 정보도 다양하고 그로부터 받을 수 있는 여러 연상, 감동, 혹은 그저 지식도 풍부하다는 게 매력입니다. 물론 이 소설의 최고 장점은, 제법 충격적인 반전, 그리고 마지막 페이지에 도사리고 있는 충격적인 진상이겠습니다.
이 소설은 여러 장면에서 스토킹, 미행, 성폭력(혐오스럽거나 구체적인 묘사는 전혀 없고 과거 회상 속에 사건 요약 형식으로 간단히 언급될 뿐이라서 안심하셔도 됩니다), 요즘 한국에서도 큰 문제가 된 묻지마 폭행 등, 주로 여성을 상대로 한 범죄(또는 범죄 미수)가 자주 등장하기 때문에, 아마도 여성 독자들이 읽으면서 오싹오싹해진다거나 마음을 쓸어내릴 대목이 많을 것 같습니다. 여성 작가가 다분히 의도한 바겠고요. 특히 (위에도 언급한) 마지막의 진짜 반전은, 아마도 주인공 "나(조 워커)" 또래의 중년 여성들이 읽으면 소름이 안 끼칠 수가 없을 것 같더군요. 물론 중년 여성이 아닌 독자 입장에서도 충분히 충격적입니다.
주인공 조 워커는 글쎄 평범하다면 평범하지만 객관적으로 보면 평범보다는 좀 더 여러 혜택을 누리고 사는 편에 속하는(이렇게까지만 써도 스포일러가 될 것 같아요) 이혼 후 새 애인을 만나 전 남편과의 사이에서 둔 두 아이(아들, 딸)을 키우고 사는 여성입니다. 전문직까지는 아니지만 먼데인 워크는 아닌 수준의, 부동산 중개인(한국과는 달리 영미에선, 잘나가는 분들은 꽤 고소득을 올리는 직종입니다. 한국도 서서히 그렇게 되어 가는 듯)의 사무 보조역을 맡았으며, 다만 고용주 헤일로(책에서는 "할로"로 표기)와는 관계가 좋지 못합니다. 여러 스트레스를 받아서, 특히 이 소설이 다루는 구간에서는 특히 현저한 위험에 노출되었기 때문에 정서가 불안해져서 그러려니 이해는 하지만, 제 생각에는 할로 사장은 충분히 합리적이고 공정한 사람 같은데 "나(조 워커)"가 너무 민감하게, 근거 없는 자기 감정에 따라 멋대로 판단하는 것 같았습니다. 주인공 조도 나중엔 지레 체념하듯 "해고되어도 할 말이 없는" 상황까지 가는데, 여튼 우리 독자들이 봐서 알듯 그는 결국 조를 배려하지 않습니까? 관대하게 휴가도 주고 말입니다.
제가 좀 불만이었던 부분은, 재미있긴 했으나 구태여 주인공을 1인칭으로 설정했을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점이었습니다. 조금 스포일러가 될지 모르겠지만, 주인공이 일방적으로(혹은 근거가 있든 간에) 의심하고 못미더워하는 인물은 진짜 범인으로 드러나는 게 드물죠. 여튼 불안해하고 흔들리는 주인공의 동요하는 시선과 화법 때문에, 독자들도 괜히 혼선을 빚으며(때로 멀미까지 느끼며) 힘들게 사건을 뒤쫓게 됩니다.
이 소설을 쓴 클레어 매킨토시는 전직 경찰로서 집필의 길에 투신한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입니다. 1인칭 주인공 조 워커 말고도, 켈리라는 진짜 경찰(여순경)도 한 명 등장하여 진행을 양분하면서 극을 주도하는데 글쎄요, 왜 켈리를 "나"로 세팅하지 않았는지는 여러 추측이 가능할 수 있겠습니다. 독자가 극중의 여성 경찰관을 (과거의) 자신과 행여 지나치게 동일시할 수 있다는 염려 때문일 수도 있고, 여튼 의도는 평범한 직장 여성, 엄마, 주부 들이 느끼거나 노출될 수 있는 가상 혹은 진짜 위험을 부각하는 쪽이기에 초점의 분산을 피하려는 것일 수도 있겠고요. 하지만 (위에서도 말했듯) 1인칭 화자가 공연히 여러 남성에게 불안한, 혹은 스테릭한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며 갈팡질팡하기에, 독자는 읽으면서 살짝 짜증이 날 수도 있습니다. 이런 불만은 결말을 다 보고서야 그 휘청거리는 진행에 납득하고서 어느 정도 잦아 듭니다.
중반 넘어가면 경찰들의 근무 패턴이나 구조, 내부 소통 등이 매우 상세히 묘사됩니다(그 훨씬 전에 주요 캐릭터로서 켈리가 선명한 인상을 남기지만). 아줌마들의 착각, 히스테리, 수다가 혹시 진상의 전부가 아닐까 하는 걱정(설마 그럴리가)은 여기서부터 확실히 해소됩니다. 작가가 중년 여성들의 실체 없는 수다와 패러노이아로 소설을 다 메꾸지는 않을지 하는 불안은, 아 이런 디테일이 나오는 거 보니 진지하고 본격적인 스릴러 맞구나 하는, 좋은 전조와 느낌과 함께 해소되는 게 보통이니 말입니다.
서평 맨 위에, 인터넷에 무방비로 노출된 개인 신상 등에 언급했지만, 그렇다고 이 소설이 온라인 프라이버시의 취약성 등에만 경각을 촉구하는 건 아닙니다. 오히려 끔찍한 범죄의 발단은 오프라인에서의 변화 없고 빤한 반복적 행태가 예비한 것 아닌가 하는 느낌도 듭니다. 기계 부품처럼 일정 경로를 오가는 우리네 평범한 사람들이 자초하기 쉬운(물론 나쁜 X들의 범죄적 행각이 더 결정적이지만) 비극을, 이 스릴러는 잘 꼬집고 듭니다.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자세히는 언급 못 하지만, 일상에서 매번 만나고 교감하고 사소한 불만이나 고민, 행복감 등을 거리낌 없이 털어놓는 소중한 관계가, 나의 부주의 혹은 상대의 악의나 우연한 불운의 개입으로 한순간에 망쳐질 수도 있음을, 섬뜩하게 소설은 지적합니다. 그리고 악(자기 입장에서는 이게 악이다, 범죄다 하는 인식이 없습니다. 언제나 말도 안 되는 합리화를 일삼는, 범죄 DNA가 존재의 본체를 이루는 비천한 자들의 공통점이죠)은 제 악행의 대가를 신랄하게 치르고 파멸합니다.
남의 정보를 불법으로 사 가며 비천한 변태적 성욕을 채우는 자들의 섬뜩한 행태는 현대 정보화 사회의 신뢰 근간을 근본에서부터 흔드는 원인이 아닐 수 없습니다(마지막에 범인이 제깐엔 변명이라며 지껄이는 헛소리를 한번 들어 보십시오. 이런 데 공감하며 앵무새처럼 따라하는 인생도 똑같이 비천하고 한심한 겁니다). 한국에서라면 글쎄요 이런 사이트 영업이 과연 가능할지, 경찰들이 상당히 부지런히 움직이고, 입소문이 빨라 어느 순간부터는 건전한 네티즌의 시민 정신 발휘로 한순간에 적발될 것 같아, 비즈니스 모델(이 표현이 직접 나옵니다)로는 좀 곤란할 것 같군요(실정법 위반은 둘째치고). 서버에 청소부가 아무 생각 없이 누군가로부터 돈을 받고 USB를 꽂아 한순간에 해킹 툴이 깔리고 지구대와 전철 CCTV 화면을 모두 가로챌 수 있었다는 대목은 좀 무리가 아니었던가 싶습니다(그 정도 사고면 서장이 갈려야 합니다. 켈리의 재소자 폭행은 유가 아니죠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