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만 헤세 인생론 - 삶이 너의 꿈을 속일지라도
헤르만 헤세 지음, 송동윤 옮김 / 스타북스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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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 이 말 자체는 러시아의 시인 푸시킨이 했습니다만 워낙 보편타당한 진리를 전하는 명언인 까닭에 어느 누구에게 어떤 맥락에서 들려 줘도 효과가 큽니다. 푸시킨보다 130여년 후에 활동한, 독일의 문호 헤르만 헤세의 주옥 같은 산문들, 그 결론을 저 문장으로 요약한다 해도 아주 잘 어울립니다. 실제로 헤르만 헤세의 삶 역시 그의 뜻대로 술술 풀렸다든가 평탄한 것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그럼에도 그가 받았던 숱한 상처는 거꾸로 그의 영혼을 풍요롭게 만든 자양분이 되어 그에게 문학가 최고의 영예라 할 노벨 문학상까지를 안겨다 주었습니다. 

1920년에 그는 이런저런 에세이들을 모아 <Blick ins Chaos>라는 책을 내었는데 지금 이 책 제4장 "도스토옙스키에 대하여"가 그 주된 내용을 담습니다. 1920년은 일차대전이 마무리되고 다소 기반이 허약한 경기 호황을 맞아 전유럽(독일 제외)과 미국이 흥청거릴 무렵입니다. 1922년에 오스발트 슈펭글러가 그 유명한 책 <서구의 몰락>을 저술했는데, 제국주의적 팽창의 한계 노출, 사회 도덕의 해체, 성적 방종 풍조의 끝간데 모를 확산 등으로 이미 지성인들, 시민들 사이에 저런 위기감이 팽배했었습니다. 지고지순한 휴머니즘, 오염되지 않은 정교적 가치 등을 끝까지 믿었던 셋째 알료샤와 달리, 첫째 드미트리와 둘째 이반은 각각 폭력적 가부장주의, 더러운 육욕, 이성주의를 가장한 무신론, 유물론(p124) 등을 위험스러울 만큼 밀고 나갑니다. 

독특하게도 헤세는 이 대작에서 유럽 문명의 위기를 상징하는 장치를 발견한 셈인데... p255에서 헤세는 도스토옙스키의 해석(캐릭터 이반의 목소리로 표현됩니다)에 반대하며, 그런 악덕은 러시아적이기만 한 게 아니라 (자신의 고국인) 독일에도 얼마든지 있다고 냉소적으로 주장합니다. 아마 그는 이 근사한 이야기를 도스토옙스키에 앞서 자신이 했었으면 하고 아쉬워했을 듯합니다. 도스토옙스키가 죽기 4년 전에 헤세가 태어났습니다. 헤세가 이 글을 썼을 때 독일은 일차대전에서 패망했고, 전범 수괴로 지탄 받은 빌헬름 2세 황제는 그 독특한 개성과 기행(奇行)을 근거로 세계로부터 비판과 경멸을 받는 중이었습니다. 이 글에서 헤세는 빌헬름 2세를 신랄히 비판하며 "아마 그는 카라마조프를 몰랐을 것이다"라며 아쉬움을 표합니다. 이 대작을 생전에 그가 읽었더라면 자신을 돌아보고 내면의 악마성을 반성하여 끝내 전쟁을 일으키지 않았으리라는 기대로 읽힙니다. 

도스토옙스키는 또한 대작 <백치>를 통해, 평균보다 부족한 인간형 안에 내재한 어떤 신성(神性) 같은 걸 꿰뚫어 봤으며, 인간계의 질서와 가치가 어떻게 평소의 위엄을 잃고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타락하며, 그 내부의 모순을 수치스럽게 폭로하며 형해화하는지 놀라운 필치로 분석합니다. 헤세는 도스토옙스키의 의도가 무엇인지 이 난해한 작품을 유영하며 정확히 꿰뚫어보았으며, 천재의 문학 작품(겉으로 보아 혼란스럽기 짝이 없는)에서 건진 질서의 아름다운 요체를, 이제 전쟁을 통해 철저히 파괴되고 대안의 질서를 모색하는 유럽의 발돋움, 몸부림에다 투영합니다. 이 글은 이처럼 글이 쓰인 시대상을 감안해야 그 주제의식이 정확히 파악됩니다.  

링컨은 나이 사십을 넘으면 사람이란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했습니다. p110 이히에 나오는 대로, 사람의 태도, 거동, 표정, 분위기에 숨은 여러 족적은 학자나 지성인, 정치인 등보다 농부, 삼류 변호사 등이 더 직관적으로 정확히 읽어낼지도 모릅니다. 어찌되었든 자신의 인생이 얼마나 행복하고 가치있는 체험으로 꾸려졌는지는 당사자 자신만이 정확히 알 터이며, 나 아닌 다름 사람들에게 어떤 평가를 받는지에 대해 (설령 그것이 아무리 피상적인 판단에 근거했더라도) 지나치게 민감하게 굴 필요는 없습니다. 자신의 얼굴은 자신이 모르는 새에 누가 슬쩍 조각하고 간 낙서용 석고덩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런 말을, 다른 사람도 아닌 헤세가 담담한 어조로 표백하기에 더욱 설득력이 생긴다고나 할까요. 

소년 시절의 고통스러운 체험, 조국 독일의 어리석은 폭주와 패망, 성인이 되고나서도 여전히 겪곤 했던 또래집단에의 부적응, 친구의 배신 등에 대해, 헤세는 이 책 곳곳에서 솔직하게 털어놓습니다. 그래서 현재 남아 있는 그의 사진들을 보면, 인품이라든가 깊이 있는 혜안 같은 것과는 별개로 참 슬픈 삶을 산 분이겠다는 짐작이 절로 듭니다. 그의 거칠고 척박한 생이 거꾸러지지 않고 마침내 꽃을 피우게 도운 횃불은 톨스토이, 투르게네프, 졸라, 입센, 루터(p64) 같은 문학가, 사상가들의 책이었습니다. 아름다운 시(詩)가 간혹 공허한 아름다움 때문에 환멸(p146)을 안긴다 해도, 역시 그건 그것대로 고유한 효용이 있다는 문장을 보고, 헤세가 책을 얼마나 사랑한 인물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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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인류학 강의 - 사피엔스의 숲을 거닐다
박한선 지음 / 해냄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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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species. 種)이란 교배의 물리적 한계를 긋는 집단이라고 대략 규정할 수 있습니다. 물론 사자와 호랑이 사이에서도 혼종이 태어나는 등 예외가 없지 않습니다만 대체로 이 종이 다르면 후손이 안 생기거나, (그 후손에게는) 계속적인 생식이 어렵게 됩니다. 그러니 이런 종의 창조는 거룩한 신의 섭리라고 부를 만도 하겠는데... 찰스 다윈은 이 역시 자연선택의 결과일 뿐이며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고 구태여 종교를 개입시킬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진화론이나 자연선택설을 다윈이 최초로 고안한 것은 아니나, 다윈의 <종의 기원>은 이를 과학적으로, 철학적으로 체계화했으며 그 치밀하고 종합적인 논리를 접하고서야 당대인들이 비로소 세계관 전체를 이성적 존재에 어울리는 방식으로 수정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 인간은 기껏해야 백 년 정도를 살아내는 개체입니다. 그러니 개체 단위에서 일어나는 미세한 변화를 미처 알아챌 수 없습니다. p68에는 익투스라는 이름의 물고기를 가정하여, 자손 수만 대에 이르기까지 조금씩, 아주 조금씩 치아가 날카로워지는 변이가 쌓이고쌓인 끝에 어느 대에(代) 이르러서는 다른 물고기와 이빨 모양과 기능이 완전히 달라지는 기적 같은 결과가 나올 수 있음을 가르칩니다. 어디 "익투스"뿐이겠습니까? 몸 사방에 가시가 꽂혀 이를 쏘아내며 맹수로부터 자신을 방어하는 고슴도치, 피부가 크게 손상되어도 놀라운 재생력을 발휘하는 악어, 하늘을 자유롭게 나는 각종의 새 등, 오랜 세월에 걸쳐 개체의 피나는 노력이 쌓이고 쌓여 이뤄낸 진화의 기적은 끝도 없습니다. 물론 그 중에서도 가장 놀라운 건 생각하는 능력을 발전시키고 추상적인 통찰까지 수행하는 두뇌를 지니게 된 우리 인간의 사례일 것입니다.    

p71을 보면 성 선택(性選擇)은 자연의 입장에서 비용이 많이 드는 경로라는 말이 나옵니다. 이번 코로나19 사태에서도 보듯, 개체가 가장 빠르고 쉬운 방법으로 번식하는 방법은 단세포, 무성 생식입니다. 인류가 질병으로부터 해방되기 위해 항생제라는 놀라운 혁신을 이뤄냈으나, 바이러스나 세균, 혹은 벼룩 빈대 등 해충은 이에 내성을 길러 살아남는 데 어느 정도 성공했습니다. 핵전쟁의 결과로 유해방사능이 지표에 확산하면, 인류 대부분은 암 등의 질환으로 사망하겠지만 바퀴벌레 등은 상대적으로 간단한 변이만을 거쳐 기어이 살아남을 것입니다. 

현재, 인간 같은 (이른바) 고등동물이 취한 번식 방법은 대단히 번거롭고 불편하며, 환경이 급변할 때 비효율적이기까지 합니다. 왜 우리는 이런 식으로 진화한 걸까요? 책에서는 매력적인 아들 가설, 비싼 신호 이론 등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 줍니다. 사실 사람만큼, 교배 행위 자체에서 커다란 쾌감을 찾는 동물은 없습니다. 이게 어떤 진화론적 필연 같은 건 아니고, 생존에 별 이득이 없어도 진화 과정에서 우연히 나타날 수 있는 현상이라고 보기도 한다는 것입니다(공작 수컷의 화려한 외관 등). 

p94를 보면 나리오코토메 소년 화석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소년의 키는 160cm 정도로 아직 성장이 덜 끝난 상태, 젖니가 빠진 후 턱에 생긴 염증이 낫지 않아 결국 어린 나이에 죽은 것으로 추측된다고 합니다. 인간이란 정말 강인한 존재인 듯하면서도, 이처럼 성장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겪는 몇 가지 장애물을 넘지 못해 허무하게 생을 일찍 마치기도 하는 슬픈 존재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수백만 년 전 인류의 조상들에게만 이런 안타까운 일이 생기는 게 아니며, 21세기의 우리들에게도 이런 일은 드물지만은 않게 닥칩니다. 호미닌(hominin)은 침팬지속(屬)과 사람아족(hominina)를 함께 이르는 말입니다. 화석으로 그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유력한 인류 조상들, 호모 에렉투스, 호모 게오르기쿠스 등의 필사적인 노력을 보면, 사람이 이처럼 두 손을 자유롭게 놀려 도구를 만들고, 숭고한 감정을 발휘하여 종교와 예술을 만들고 헌신하는 단계에까지 이르는 과정이 얼마나 경이로운지 새삼 생각하게 됩니다. 

오랑우탄, 침팬지, 심지어 곰도 가끔은 두 발로 서고 이동도 합니다. 그러나 사람만큼 사족보행과 확실히 결별한 종(種)은 없습니다. p137을 보면 사람은 이족보행을 시작하면서, 전신골격이 발달하고, 감각운동에 관련한 신경계가 진화했다고 나옵니다. 도구 제작 능력, 사회적 상호 작용도 이와 밀접하게 엮여 오늘날의 단계처럼 정교하게 발전할 수 있었다고 하네요. 두발걷기는 타 동물이 볼 때 대단히 어렵고 부자연스러울 만큼 까다로운 동작이고 신체 기능이지만, 인류는 이를 통해 에너지를 크게 절약하고 남는 활력을 정신 작용 쪽으로 돌릴 수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동물들은 여러 마리의 새끼를 쑴풍쑴풍 잘 낳고 출산 직후에도 잘 돌아다닙니다. 오직 인간만이 암컷이 매우 힘들게 아이를 낳고, (다른 동물들과 비교할 때) 일종의 미숙아 상태로 아이를 낳는다고 책 p140 이하에 나옵니다. 그래서 신생아 때에, 아기가 그리 귀엽지 않고 쭈글쭈글하다가 좀 커서야 예뻐지는 게 이런 이유가 있다는 것이지요. 그 이유에 대해 저자는 진화론적으로 그래야만 할 이유가 있다며 여러 흥미로운 가설과 이론을 들려 줍니다. p156을 보면 주먹도끼 등이, 기능상으로 꼭 그래야 할 이유가 없을 때에도 좌우대칭의 예술적, 심미적 형태를 띤다며, 이를 설명하기 위해 스티븐 미슨 등이 제기한 "섹시한 주먹도끼 가설(sexy handaxe theory)" 같은 것도 나왔다고 합니다. 책 앞부분에 나온 "성 선택 이론" 등과 결부하여 역시 흥미로운 맥락에서 읽힙니다. 

이 책은 호모(homo)는 어디에서 왔으며, 사피엔스(sapiens)는 우리를 어디로 이끄는 속성인지에 대해 재미있으면서도 깊이 있게, 우리 존재의 근원과 지향점을 깊이 숙고, 통찰하게 돕습니다. 서울대학교 교양 과정에서 학생들의 큰 호응을 받은 박한선 인류학 박사, 신경정신과 전문의의 유려하고도 치밀한 강의를 통해 우리들도 지식의 신세계로 즐겁게 인도됩니다.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를 통해 해냄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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겪어보면 안다 - 김홍신의 인생 수업
김홍신 지음 / 해냄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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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김홍신 선생님은 1970~80년대 한국인들을 사로잡은 베스트셀러 장편소설을 여러 권 쓰신, 대한민국의 문필가 중 한 분입니다. 주인공 장총찬을 내세운 <인간시장> 연작은 거의 대하소설에 가까우며, 그 외에도 고속 성장을 거듭하던 한국의 어두운 이면을 예리하게 묘파한 걸작들을, 기업 소설 분야에서 많이 남겼습니다. 그의 소설을 읽고 저도 여태 여러 편의 독후감을 블로그에다 올렸는데, 전개가 박진감 넘치는 데다 엄청난 디테일을 담고 있어, 이게 과연 상상력만으로 커버가 되는 걸까, 어떻게 어디서 취재를 하셨기에 이런 실감과 설득력, 페이소스까지 전달될까 감탄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사실 선생은 체구도 아담하시고 인상도 유순한 백면서생 같은 이미지이십니다. 그런 분이, 젊은시절 한량, 풍운아로 유명한 삶을 살았던 영화배우 신성일(강신성일) 선생과 호형호제하는 친한 사이(p18)였다는 사실이 놀랍습니다. 김홍신 선생이 작고 아담한 체구라서가 아니라, 누가 봐도 잘생겼고 훤칠한 체격인 고 신성일 배우 같은 분을 누구 입장에서건 부러워하지 않을 수가 없죠. 아무튼 술자리에서, 또 이런저런 자리에서 틈이 날 때마다 "나는 형이 부럽소." 같은 말을 하셨다고 책에 나옵니다. 그런데 이에 대해 신성일씨가 했다는 말이 걸작입니다(무엇인지는 직접 책을 찾아 읽어 보십시오). 김홍신 선생의 결론은, 우리 모두는 각자 살아 숨쉰다는 사실 자체에 감사해야 하며, 가장 소중히 여겨야 할 것은 건강이라는 점입니다. 

김홍신 작가님의 글을 읽을 때, 만약 헤밍웨이가 한국어를 알았다면 이렇게 쓰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자주 듭니다. 문장의 길이가 길지도 않으면서, 묵직하고 강렬한 의미와 이미지가 독자의 눈에 팍팍 꽂힙니다. p61을 보면 무려 1980년대 중반에 리비아에 가서 경험했던 일이 회고됩니다. 1980년대 같으면 일반 국민의 경우 해외여행조차 자유롭지 않았던 시절입니다. 이 당시는 무아마르 카다피가 다스리던 때였는데, 카다피는 동아그룹(당시 명칭) 회장 최원석씨와 각별한 사이여서 대수로공사를 최 회장에게 발주 주기도 했습니다. 바로 앞 페이지 "한국 10대 재벌로서, 외환위기 때 큰 고생을 한 분"도 독자인 제 짐작으로는 아마 최원석 회장이 아닐까 싶습니다. 

1980년대에는 삼척동자도 그 이름을 알 베스트셀러 작가로 유명하셨고, 또 1990년대 말에는 국회의원 활동도 하신 분인데, 몇 년 전 코로나19가 크게 유행할 때에는(요즘도 갑자기 돈다고 하니 조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김홍신 작가님이 그 병에 감염되어 생사의 고비를 넘나드셨다는 말씀이 p65 이하에 나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아무 증상 없이 넘어가서 이젠 당시가 잘 기억도 안 납니다만, 이런 글을 읽어 보면 확실히 그때가 엄청난 난리가 났던 때였구나 싶습니다. 김홍신 작가님이 1947년생이시니 코로나 같은 전염병에 각별히 유의하셔야 할 연세이긴 합니다. 도스토옙스키도 사형 선고를 받고 그 집행 명령이 철회되기까지 온갖 생각이 다 오간 몇 시간이 마치 영원과도 같았다고 한 적이 있는데, 이 대목에서 당시 피안에 한 발을 들였다 나오신 듯한 선생의 회고담이 무척 생생하고 박진감 있습니다. 

"문학은 영혼의 상처를 향기로 바꾸는 행위입니다.(p104)" 어떤 다른 문호(文豪)의 명언이 아니라 김홍신 선생 본인의 준비된 명제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살면서 상처를 받습니다만, 그 상처가 덧나서 본인의 심성이 크게 어긋나게 될지, 남에게 상처를 그대로 옮기는 독사 같은 인간이 될지, 혹은 자신의 큰 그릇으로 모든 걸 감싸고 더이상의 악순환을 막을지는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김홍신 선생도 30대의 젊은 나이에 쓴 작품이 정부 당국자에게 불온시되어 큰 곤욕을 치른 적도 있었으며(p58), 사랑하는 부모님과 아내를 여의고 깊은 슬픔에 잠긴 일도 이 책에 나옵니다. 선생의 사진을 보면 사랑하는 사람, 생전에 깊은 정을 나눈 분들과 헤어질 때, 이런 단장의 슬픔을 어떻게 견디실까 싶을 만큼 정이 많은 분처럼 보입니다. 이 책에서도 선생의 빼어난 문장력 덕분에 독자에게 그 정서와 분위기가 그대로 전달되는 듯합니다.    

인생의 가장 좋은 시절을, 가족 혹은 연인과 헤어져 군대라는 특수 집단에 소속되어 고된 훈련을 견뎌야 하는 게 한국의 젊은이들입니다. p179를 보면 선생도 장교 임관을 앞두고 혹독한 훈련을 수행했고, 어느 후보생이 어머니!를 노래를 통해 외치자 모두가 울음을 터뜨렸으며 심지어 교관마저도 오열했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교관인들 훈련생들의 고충과 아픔을 어찌 모르겠습니까! 오히려 누구보다도 깊이 이해하는 게 그들이겠죠. 예전 군대를 두고 야만과 폭력이 난무하는 지옥으로 폄하하는 시선도 있으나, 그래도 그때는 저런 인간다움과 공감이 아직 살아 있었습니다. 야간에 떠들었다고 완전 군장 상태로 얼차려를 주어 기어이 사병을 죽음에 이르게 한 중대장에게는, 공감의 작은 씨앗도 이미 그 척박한 마음에서 시들어 버린 것입니다.  

이 책 곳곳에서 드러나는 중요한 교훈 중 하나가, 어머니를 향한 애틋한 마음과 효성입니다. 큰 인물은 이처럼 어려서부터 어머니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라야 하나 봅니다. 어머니의 사랑을 받고 자라난 영혼이라야, 이웃과 벗의 딱한 처지도 더 잘 이해하고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앞날도 더 너른 시야로 통찰할 줄 압니다. "내가 세상의 주인이라는 자긍심(p204)." 이야말로 천하를 마음에 품은 호연지기입니다. 헤겔도 예술가에는 군주의 기상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는데, 그런 예술가는 (책 p202 이하에 나오듯) 임금의 얼굴을 보지 않고도 어진(御眞)을 그리는 경지에 이릅니다. 한편으로, 내 존재나, 나아가 전 지구라 해도, 광활한 우주에 비하면 티끌과도 같다(p227)는 겸허한 마음을 또한 잃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를 통해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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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익 점수가 높게 나온다고 그 사람이 꼭 영어를 잘한다고는 할 수 없겠으나, 영어를 찐으로 잘하는 사람이라면 토익 점수도 높게 나옵니다. 한국은 특히 영어 스펙이 필요할 때가 많은 나라이므로, 높은 토익 점수를 보유한 이들도 많은데, 단기간에 이 공인어학시험 점수를 획득해야 할 때에는 막막하기도 하고 걱정스러워지기도 할 것입니다. 토익도 과거와는 형식과 지향성이 크게 달라졌으므로 예전처럼 구태의연한 방식으로는 고득점을 올리기 어렵습니다. 

이 책은, 단 한 권의 교재를 마스터함으로써 900점 이상을 달성하게끔 독자를 이끄면서도, 신 토익의 경향성에 맞게 전략적이고 체계적으로 접근한다는 점이 단연 최고였습니다. 이 책은 고득점 달성을 위해, 고난도 문제 pool을 크게 마련하여 학습시킨다기보다는, 말그대로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치는 전략서"에 가깝습니다. 유형을 상세히 분석하여, 이런 유형은 이렇게 접근하여 파훼할 것을 가르치기 때문에, 독자는 저자 지연쌤의 의도를 철저히 내면화, 자기화하여 문일지십(聞一知十)의 성취도를 이뤄내야 하겠습니다. 

보통 영어 작문 시간에서 학생들에게 가장 역점을 두어 가르치는 포인트 중 하나는, 같은 표현을 두 번 반복하지 말고 paraphrase하여 글 안에 배치하라는 것입니다. 누군가의 작문 실력을 평가하는 하나의 척도는, 이 패러프레이징을 얼마나 다채롭게 해 내는지를 보는 것이죠. 교재 p36을 보면 이 패러프레이징이  실전 토익 문제 유형 안에 어떻게 녹아들어가는지가 상세하게 분석, 해설됩니다. 그 중에서도 난이도 [상] 유형이라면 상황 요약형 패러프레이징인데, p39를 보면 다섯 가지의 유형이 제시됩니다. 독자인 제가 이해하기로는, 오른쪽 두 대화자(남, 여)의 대화 중에 나오는 (구체적인) 핵심 상황을, 왼쪽 Q&A의 대답 파트에 나오는 것처럼 추상적인 문장으로 바꿔 표현하는 게 핵심인 것 같았습니다. 바로 앞 페이지(p37)에 보면 실전 토익에 자주 출제되었던 동의어 패러프레이징 리스트가 나오는데, 여기에는 안 나오지만 p39에서의 reassign과 allocate도 그런 관계에 해당하지 않을까 하고 혼자 생각해 봤습니다. 

p58을 보면, 저자 지연쌤의 표현을 그대로 인용하자면, "형태가 고정되어 있어 (문제를) 보자마자 바로 알 수 있는 유형이 바로 say about 유형이라는 것입니다. 이때 쌤이 특별히 강조하는 건, 첫째 주어의 성별(gender), 둘째가 전치사 about 바로 뒤에 무슨 말이 오는지를 빠르게 파악하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과거에 비해 토익이 크게 바뀌었다고 해도, 다중을 상대로 하는 공인어학능력시험인 이상 이처럼 유형의 파훼법이 빤하게 보이는 구석이 또 나올 수밖에 없고, 수험생은 이런 걸 놓치지 않아야 900점 이상의 성적이 가능하다는 것이겠습니다. 또, p61에 나오듯, 일반적인 say류 동사(mention, 넓게 do, be, want 등도 포함)일 때에는 신경쓰지 않아도 되지만, 그 외의 다른 동사가 들린다고 할 것 같으면 이건 거기서부터 뭔가 포인트가 새로 생기는 것이므로 정신을 바짝 집중할 것을 알려 줍니다. 역시 이런 시험은 키워드 중심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예전에 우리들이 중고등학교 시절에 배운 문법대로, just now는 완료시제와 잘 어울리지 않고, 대신 just와 now만으로는 완료 시제에 널리 쓰이는 부사들이 됩니다. 책 p94를 보면 recently의 경우 과거시제와도, 또 현재완료시제와도 두루 어울린다고 나옵니다. 여기까지는 타 교재와 큰 차이가 나지 않는 설명들이나, p97을 보면 감정동사의 능동/수동 구분법이 나오며 이 파트를 잘 공부해야 ~ing 꼴인지 ~ed 꼴인지를 잘 분별하여 채워넣을 수 있겠네요. 또 4형식 동사를 수동태로 바꿀 때, 그대로 종전의 직접목적어가 남아 있을 뿐인 걸 잘못 보고, 그대로 능동태인 줄 착각하기 쉽다고 지연쌤은 지적합니다. 

p119의 practice test 20번을 보면, 답은 (A) that이 맞으며 이때 that은 주격관계대명사입니다(따라서 which로 바꿔 써도 아무 지장이 없습니다). 블랭크 뒤를 보면 조동사구 will be가 따라오므로 주어 상당어구가 블랭크 안에 들어가야 함을 알 수 있으며, 따라서 관계부사 (B) where 같은 건 절대 올 수 없습니다. (C) what과 (D)whatever는 선행사를 포함하는 복합관계대명사인데, 이미 블랭크 앞에 topics라는 선행사가 왔으므로 이것들도 답이 될 수 없습니다. 

p155 하단을 보면, 어떤 단어가 일반적으로 갖고 있는 의미가, 하필 이 문제에서는 맥락상 그 뜻이 아닌  되어 오답처리된 예가 표로 정리됩니다. 예를 들어 folded를 그냥 bent(접힌)으로 보고 아 이게 답이겠구나 아무 생각 없이 기계적으로 찍을 수도 있겠지만, 문제의 context를 볼 때 added(섞인)을 고르게 하는 점에 특히 주의해야 하겠습니다. 

이 책은 크게 보아 두 파트로 나뉘었는데, 칼로 잘 자르면 두 권이 분책도 되게끔 제책되었으므로 수험생들은 자신의 편의에 맞게 선택할 수 있습니다. 제1부에서 practice test 끝에 정답이 몇 페이지에 있다고 안내가 나온 건, 이 제1부 기준이므로 행여 전체 책의 맨뒤 페이지를 찾아가서는 안 될 것입니다. 해설도 꽤나 상세한 편이므로, 수험생들은 어디가 진짜 나의 약점인지 정확하게 파악하고 보완해야 하겠네요.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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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렌즈 미국 동부 : 뉴욕·워싱턴 DC·보스턴·시카고 - 최고의 미국 동부 여행을 위한 한국인 맞춤형 가이드북, 2024~2025년 개정판 프렌즈 Friends 24
이주은.한세라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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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동부는 유럽인들이 일찍부터 건너와 독자적인 생활권을 건설한 곳이며, 따라서 외부인의 시각에서 매무 독특하고 개성적으로 보이는 요소가 많습니다. 21세기 세계 경제 수도 기능을 수행하는 지역이라든가, 지구 최고의 명문대들이 밀집한 고장이라든가 하는 점들과는 별개로, 그만큼 관광객 입장에서는 마음이 끌릴 만한 매력을 많이 갖춘 지역이라는 뜻도 됩니다. 한국인들도 많이 살고 어지간히 익숙한 땅이지만, 지금도 변화와 발전을 꾸준히 이어가는 만큼 여행자로서는 최신 사항을 꼼꼼하게 체크할 필요가 있기도 합니다. 이주은 한세라 두 분 최고의 북미 여행작가의 작품이니 만큼 올해판도 역시 든든하게 다가옵니다. 뉴욕, DC, 보스턴은 물론 좀 서쪽에 떨어진 시카고까지 커버되었습니다. 

여행을 가다 보면 별의별 돌발상황이 다 벌어집니다. 막상 일이 터지면 머나먼 이국에서 도움을 청하거나 정보를 얻기도 막막하고, 사전에 더 꼼꼼하고 더 빈틈없이 준비를 해 두는 수밖에 없습니다. 프렌즈 시리즈에서 제가 언제나 만족하고 감탄하는 부분은, 그야말로 온갖 상황을 다 염두에 두고 다양한 정보들이 책 한 권에 다 마련되었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p84를 보면 자동차로 이동할 때를 위해, 주유나 주차시 참고, 유의사항들이 나오는데, 그야말로 온갖 팁들이 다 실렸습니다. 까딱 잘못해서 난감한 상황에 처했을 때, 이 컴패니언북을 휴대하고 내게 필요한 부분만 참조할 수 있다면, 여행의 맥(脈)과 희열을 꺼뜨리지 않고 계획대로 일정을 지속할 수 있겠습니다. 

p136을 보면 월스트리트가 소개되고, 그 구역 안의 대표적인 시설인 뉴욕증권거래소가 사진들과 함께 제시됩니다. 요즘은 한국인들도 미장을 많이들 하기 때문에, 월가의 이런저런 특징적 시설이나 건물들이 그리 낯설게 다가오지만도 않습니다. 사실 요즘은 주식거래를 하는 이들도 거래소를 직접 찾거나 증권사의 객장 의자에 앉아 시황을 체크하고 주문을 넣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p136을 보면 이 NYSE에 일반인이 직접 방문하여 일을 처리하거나 견학 목적으로 마구 출입할 수는 없다고 안내합니다. 911 테러 후에 방침이 그리 바뀌었다고 하며, 혹시 아주 예전 상황만 알았던 이들은 이 점 유의할 필요가 있겠네요. 뉴욕은 맨해튼이라는 섬도 딸려 있고, 본디 항구 도시로 발전했었습니다. 과거에 항만이었으나 현재는 관광지로 더 많은 사람들을 모으는 명소 중 한 곳으로 사우스 스트리트 시포트도 소개되네요. 

이탈리아인들은 특히 19세기 말, 20세기 초에 미국으로 대거 이민왔고, 차별과 편견을 극복하며 현재는 아무도 무시못할 ethnic group으로 미국 사회 안에서 일정 발언권을 행사합니다. 그들이 보급한 문화 중에 여러 다채로운 음식 풍습도 있겠는데, 피자라든가 파스타 등이 대표적인 예들이겠습니다. p186 이하에는 "뉴욕의 먹거리 걱정을 해결해 주는" 푸드코트 여러 군데가 소개되는데, 그 중에는 이름이 재미있게 붙은 Eataly(이탈리)도 있습니다. 이 체인점은 근래 서울 곳곳에 생기기도 해서 그 이름이 눈에 익은데 대형백화점인 더*대 안에 입점한 경우가 많죠. 버치, 스텀프타운 등 이름난 커피 프랜차이즈도 소개됩니다. 

p88에 잘 나오듯이 호텔에는 레지덴셜 타입이 따로 있는 게 원칙인데, 책의 설명대로 이 유형은 객실에서 취사가 가능한 게 특징입니다. 한국에서도 이런 숙소를 따로 레지던스라 부르기도 하죠. 숙소 문제는 막상 현지에 도착해서 해결하려면 이런저런 당혹스러운 문제가 생기기 일쑤이므로, 이 책을 보고 미리 철저하게 계획을 세우는 편이 바람직합니다. p132를 보면 로어 맨해튼(Lower Manhattan)을 커버한 아주 미려한 지도가 나오는데, 이처럼 여행에 필요한 사항들이 조목조목 표기되면서도 지도 본연의 기능에 충실한 자료가 많다는 게 이 프렌즈 시리즈의 대체 불가능한 장점들 중 하나입니다.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명작 중 하나인 <뉴욕 뉴욕(1976)>에 삽입된, 라이자 미넬리가 멋들어지게 부른 "뉴욕뉴욕" 가사 중에 to find I’m king of the hill, top of the heap 어쩌구 하는 부분이 있죠. p154에 보면 바로 그 대목이 연상되기도 하는, 맨해튼 전경이 내려다 보이는 여러 전망대에 대한 소개가 나옵니다. 

이 책은 미국 동부를 두루 다루므로, DC에서 조금 떨어진 리치먼드도 추천 관광지 중 하나로 소개합니다. 항상 역사를 읽을 때마다 느끼는 바이지만, 미국 남북 전쟁(1861~65)은 아무리 내전이었다고 해도 양 진영의 수도들이 정말 가까이 붙었었다는 사실 확인에 놀라게 됩니다. 건국 초기에는 버지니아 주가 워낙에 정치 중심지로서의 기능을 열심히 수행했었던 이유가 있습니다. p336 이하에는, 이른바 히스토릭 트라이앵글이라고 해서, 윌리엄스버그, 제임스타운, 요크타운 등 유명한 세 도시를 따로 설명해 주는데 이 역시도 비단 여행서로서의 효능을 떠나 인문적 읽을거리로도 가치가 있다고 생각이 들었네요. 

제가 이 책의 작년판 리뷰에서도 언급했듯이 이 책은 남쪽으로 죽 내려와 플로리다 여러 명소들도 자세히 안내해 주는 장점이 돋보입니다. p492 이하에서는 포트 로더데일(Fort Lauderdale)에 대해 유익한 설명들이 나오는데, 책에서도 말하듯이 이곳의 별명은 "미국의 베네치아"로서 운하 중심의 도시 구조가 명물로 꼽혀 관광객들 사이에서 이름이 오르내리곤 하죠. 마이애미 근교에는 다른 명소도 많은데 근래 한국인들도 자주 다녀오곤 하는 에버글레이즈 국립공원(p500) 그 중 한 곳입니다. 프렌즈 다른 시리즈도 그렇지만 책 맨뒤에 가나다순 색인이 있어서 궁금한 걸 찾아보기가 매우 편합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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