겪어보면 안다 - 김홍신의 인생 수업
김홍신 지음 / 해냄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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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김홍신 선생님은 1970~80년대 한국인들을 사로잡은 베스트셀러 장편소설을 여러 권 쓰신, 대한민국의 문필가 중 한 분입니다. 주인공 장총찬을 내세운 <인간시장> 연작은 거의 대하소설에 가까우며, 그 외에도 고속 성장을 거듭하던 한국의 어두운 이면을 예리하게 묘파한 걸작들을, 기업 소설 분야에서 많이 남겼습니다. 그의 소설을 읽고 저도 여태 여러 편의 독후감을 블로그에다 올렸는데, 전개가 박진감 넘치는 데다 엄청난 디테일을 담고 있어, 이게 과연 상상력만으로 커버가 되는 걸까, 어떻게 어디서 취재를 하셨기에 이런 실감과 설득력, 페이소스까지 전달될까 감탄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사실 선생은 체구도 아담하시고 인상도 유순한 백면서생 같은 이미지이십니다. 그런 분이, 젊은시절 한량, 풍운아로 유명한 삶을 살았던 영화배우 신성일(강신성일) 선생과 호형호제하는 친한 사이(p18)였다는 사실이 놀랍습니다. 김홍신 선생이 작고 아담한 체구라서가 아니라, 누가 봐도 잘생겼고 훤칠한 체격인 고 신성일 배우 같은 분을 누구 입장에서건 부러워하지 않을 수가 없죠. 아무튼 술자리에서, 또 이런저런 자리에서 틈이 날 때마다 "나는 형이 부럽소." 같은 말을 하셨다고 책에 나옵니다. 그런데 이에 대해 신성일씨가 했다는 말이 걸작입니다(무엇인지는 직접 책을 찾아 읽어 보십시오). 김홍신 선생의 결론은, 우리 모두는 각자 살아 숨쉰다는 사실 자체에 감사해야 하며, 가장 소중히 여겨야 할 것은 건강이라는 점입니다. 

김홍신 작가님의 글을 읽을 때, 만약 헤밍웨이가 한국어를 알았다면 이렇게 쓰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자주 듭니다. 문장의 길이가 길지도 않으면서, 묵직하고 강렬한 의미와 이미지가 독자의 눈에 팍팍 꽂힙니다. p61을 보면 무려 1980년대 중반에 리비아에 가서 경험했던 일이 회고됩니다. 1980년대 같으면 일반 국민의 경우 해외여행조차 자유롭지 않았던 시절입니다. 이 당시는 무아마르 카다피가 다스리던 때였는데, 카다피는 동아그룹(당시 명칭) 회장 최원석씨와 각별한 사이여서 대수로공사를 최 회장에게 발주 주기도 했습니다. 바로 앞 페이지 "한국 10대 재벌로서, 외환위기 때 큰 고생을 한 분"도 독자인 제 짐작으로는 아마 최원석 회장이 아닐까 싶습니다. 

1980년대에는 삼척동자도 그 이름을 알 베스트셀러 작가로 유명하셨고, 또 1990년대 말에는 국회의원 활동도 하신 분인데, 몇 년 전 코로나19가 크게 유행할 때에는(요즘도 갑자기 돈다고 하니 조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김홍신 작가님이 그 병에 감염되어 생사의 고비를 넘나드셨다는 말씀이 p65 이하에 나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아무 증상 없이 넘어가서 이젠 당시가 잘 기억도 안 납니다만, 이런 글을 읽어 보면 확실히 그때가 엄청난 난리가 났던 때였구나 싶습니다. 김홍신 작가님이 1947년생이시니 코로나 같은 전염병에 각별히 유의하셔야 할 연세이긴 합니다. 도스토옙스키도 사형 선고를 받고 그 집행 명령이 철회되기까지 온갖 생각이 다 오간 몇 시간이 마치 영원과도 같았다고 한 적이 있는데, 이 대목에서 당시 피안에 한 발을 들였다 나오신 듯한 선생의 회고담이 무척 생생하고 박진감 있습니다. 

"문학은 영혼의 상처를 향기로 바꾸는 행위입니다.(p104)" 어떤 다른 문호(文豪)의 명언이 아니라 김홍신 선생 본인의 준비된 명제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살면서 상처를 받습니다만, 그 상처가 덧나서 본인의 심성이 크게 어긋나게 될지, 남에게 상처를 그대로 옮기는 독사 같은 인간이 될지, 혹은 자신의 큰 그릇으로 모든 걸 감싸고 더이상의 악순환을 막을지는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김홍신 선생도 30대의 젊은 나이에 쓴 작품이 정부 당국자에게 불온시되어 큰 곤욕을 치른 적도 있었으며(p58), 사랑하는 부모님과 아내를 여의고 깊은 슬픔에 잠긴 일도 이 책에 나옵니다. 선생의 사진을 보면 사랑하는 사람, 생전에 깊은 정을 나눈 분들과 헤어질 때, 이런 단장의 슬픔을 어떻게 견디실까 싶을 만큼 정이 많은 분처럼 보입니다. 이 책에서도 선생의 빼어난 문장력 덕분에 독자에게 그 정서와 분위기가 그대로 전달되는 듯합니다.    

인생의 가장 좋은 시절을, 가족 혹은 연인과 헤어져 군대라는 특수 집단에 소속되어 고된 훈련을 견뎌야 하는 게 한국의 젊은이들입니다. p179를 보면 선생도 장교 임관을 앞두고 혹독한 훈련을 수행했고, 어느 후보생이 어머니!를 노래를 통해 외치자 모두가 울음을 터뜨렸으며 심지어 교관마저도 오열했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교관인들 훈련생들의 고충과 아픔을 어찌 모르겠습니까! 오히려 누구보다도 깊이 이해하는 게 그들이겠죠. 예전 군대를 두고 야만과 폭력이 난무하는 지옥으로 폄하하는 시선도 있으나, 그래도 그때는 저런 인간다움과 공감이 아직 살아 있었습니다. 야간에 떠들었다고 완전 군장 상태로 얼차려를 주어 기어이 사병을 죽음에 이르게 한 중대장에게는, 공감의 작은 씨앗도 이미 그 척박한 마음에서 시들어 버린 것입니다.  

이 책 곳곳에서 드러나는 중요한 교훈 중 하나가, 어머니를 향한 애틋한 마음과 효성입니다. 큰 인물은 이처럼 어려서부터 어머니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라야 하나 봅니다. 어머니의 사랑을 받고 자라난 영혼이라야, 이웃과 벗의 딱한 처지도 더 잘 이해하고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앞날도 더 너른 시야로 통찰할 줄 압니다. "내가 세상의 주인이라는 자긍심(p204)." 이야말로 천하를 마음에 품은 호연지기입니다. 헤겔도 예술가에는 군주의 기상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는데, 그런 예술가는 (책 p202 이하에 나오듯) 임금의 얼굴을 보지 않고도 어진(御眞)을 그리는 경지에 이릅니다. 한편으로, 내 존재나, 나아가 전 지구라 해도, 광활한 우주에 비하면 티끌과도 같다(p227)는 겸허한 마음을 또한 잃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를 통해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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