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 논란이 있긴 하나 이인직은 신소설을 창시한 거두 중 한 명이었으며 현대 독자가 읽어 봐도 그럭저럭 흥미롭게 읽히는 줄글을 잘 지어낸 작가입니다. 


<혈의 누>는 비록 왜색이 물씬 배어나는 제목을 달았지만(아예 血ノ淚라고 했으면 더 그럴싸했겠네요ㅋ) 내용은 진취적인 여성을 주인공을 삼았을 뿐 아니라 신교육을 받은 젊은이들의 우국충정을 가득 표현합니다. 물론 청일전쟁 당시 조선에서 많은 만행을 저지른 일본 측에 매우 우호적인 시선일 뿐 아니라... 뭐 소설 시작부터가 "일청전쟁" 운운하는 그런 문장입니다. 무엇보다 인물들이 평면적이고 프로파간다 스피커 이상의 그 무엇이 못 됩니다. 


다만 소설은 대단히 개신교에 우호적인데, 당시 조선에 파견 온 개신교 선교사들은 출신이 미국, 호주 등지였으므로 이때만 해도 일본과 꽤나 우호적인 괸계였던 미국을 친일 진영이 어떻게 보고 있었는지가 드러나는 대목입니다. 


우리가 유의해야 할 건, 청일전쟁 이후 러시아의 패배, 퇴각에 이르는 십여 년 간 반도를 지배했던 정치 지형은 민족주의와 친일사대의 대립이라기보다, 전근대적 인습을 타파하고 구미처럼 발전된 근대 국가를 확립하려는 세력의 몸부림과, 이를 불온시하는 수구의 대립이 더 뚜렷한 구도였다는 사실입니다. 불운하게도 근대지향의 몸부림이 친일과 더 밀접히 결합한 게 이후 역사를 꼬이게 했을 뿐이죠. 애국 계몽 운동이 민족주의 진영 안에서 더 확고한 기반을 가졌더라면 사정이 그처럼 나빠지지는 않았을 텐데 말입니다. 


<은세계>는 수구 세력과 민중의 대립 양상을 더 선명히 부각합니다. 황당하지만 소설의 내러티브는 근대화가 곧 친일이요, 이 길이 도탄에 빠진 민중을 더 잘 살게 하리라는 대단히 기만적인 비전을 제시합니다. 


이 책에는 한 작품이 더 실려 있는데 <모란봉>입니다. 역시 이인직의 작품이며, 원본 그대로 미완성인 텍스트입니다. 약간 성적인 내용, 거기다가 오늘날의 시각으로는 대단히 충격적인 내용이 있는데 이는 일본 특유의 성에 개방적인 무분별한 풍조의 수입 흔적이라 매우 안타깝다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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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규태 선생은 이 고전뿐 아니라 여러 작품을 번역했고 국문학 연구에 지대한 업적을 남긴 원로입니다. 이 문고판 시리즈 중에도 여러 권이 그의 필치를 거쳤죠.


흥부전에는 여러 코믹한 표현이 등장합니다. 이를테면 "영낙이 아니면 송낙이요" 같은 말이 있는데, 영낙은 "영낙없이" 같은 맥락에서 쓰였으며, 그 뒤에 나오는 송낙은 사실 전규태 선생도 역주를 달고 있지 않아서 무슨 말인지 모르겠습다만 아마 영(迎)의 반댓말인 송(送)이 아닐까 저 혼자 짐작합니다. 저는 이 책을 고교생 때 처음 읽었는데 지금 읽어도 정확하게는 뜻이 와 닿지 않네요.


우리가 어린이였을 때 읽은, 보다 깔끔하게 정돈된 버전의 "흥부전"이 사실은 현대인에게는 더 친숙하고 납득이 됩니다. 원본을 보면 약간 성적인 내용도 있고 당혹스러운 내용도 등장하죠. 뿐만 아니라 이런 완역본에서만 확인할 수 있는 게, "나는 비로다""아니, 비라뇨?"라며 등장하는, 캐릭터인 놀부뿐 아니라 우리 현대 독자들에게도 당혹스러운 장비(삼국연의의 캐릭터이자 후한말의 실존인물)가 등장하는 씬입니다. 


왜 많고많은 인물들 중 장비인가. 정조 연간에 큰 인기를 끈 게 명말청초에 창작된 연의류였고 이런 흔적이 여기서도 나오죠. 다음으로는 형제 간의 의를 우습게 아는 못된 놀부를 혼내 줄 만한 인물이, 저승에서 돌아온 의리의 화신 장비라야 뭔가 어울린다는 생각이었겠습니다. 비라고 해서 무슨 비인가 했더니 장비였다는 설정이, 당대에 소리꾼을 중심으로 둘러앉은 조선시대 관객들을 무척 즐겁게 만들었을 듯합니다. 


조웅전은 <수호전>처럼 송나라가 배경입니다. 한번 권력 투쟁에 잘못 말려들면 누명을 쓰고 신세가 파탄나는 운명을 맞는 게, 조선이나 중국이나 비슷한 패턴이었죠. 사실 이런 화소는 강점기에 창작된 벽초판 <임꺽정>의 봉단편에도 등장합니다. 결국은 간신이 처단되고 충신이자 영웅이 제 명예를 회복한다는 건데 현실에서는 글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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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C 드라마 <셜록>의 코믹스 버전입니다. 의외로 한국에도 어떤 외국 컨텐츠가 큰 히트를 치고 나면 이를 만화 버전으로 그대로 옮기는 미디어믹스가 꽤 오랜 역사를 가졌습니다만 이 책은 2017년에 초판이 나왔다고 합니다. 드라마를 재미있게 보신 분들은 이 책으로 다른 포맷을 통한 복기(?)를 즐길 수도 있겠습니다.


드라마 <핑크 색의 연구>는 스칼렛이란 단어가 핑크로 바뀐 게 특이하죠. 이뿐 아니라 여러 패러디가 이뤄졌는데 처음에 발견된 시신 근처에 Rache...라는 글자가 적혀 있자, 필립 앤더슨이 "그 단어는 독일어로 복수라는 뜻으로서..."라며 일장 연설을 늘어놓으려 하죠. 이때 셜록이 말을 막고 "그냥 여자 이름 Rachel임!"을 외쳐 시청자를 폭소케 하는데, 도일 경 원작에는 정반대로 대사가 배치되어 있어 홈즈의 박학다식함을 드러내는 장치로 기능합니다. 이번에 이 책을 읽고 저는 "왜 전치사가, of가 아니라 in일까?"하는 점을 곰곰 생각해 보았습니다.


잘 눈에 띄지 않으나 어디에나 있을 수 있는 사람이 범인이라는 건 이 에피소드뿐 아니라 한참 후의 시즌 3의 2화에도 설정이 비슷하게 이뤄집니다. 다만 저는 1화에서, 어떻게 해서 범인은 셜록 같은 이와 지능 게임을 펼칠 생각을 감히 먹었는지, 또 그 특유의 지성은 어떻게 유래했는지가 명확히 해명이 안 이뤄졌다고 생각합니다. 드라마가 정말 스타이리시하게 찍혔고, 별 것 아니어 보이는 인물들도 참 각각 적소에 배치되어 자신만의 매력을 대체불가능으로 만든 그 연출의 힘에 주로 기대었을 뿐 플롯은 의외로 허점이 많지 않은가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이는 지금 든 생각이고, 본방 당시에는 완전히 홀린 채로 봤더랬습니다. 


끝까지 불만인 건 살인 트릭이 드라마에서는 제대로 해명이 안 된 채 끝난다는 거죠. 저는 2015년에 책좋사에서 윌리엄 골드먼의 해학 소설 <프린세스 브라이드> 서평단에 뽑혀서 해당 도서를 읽고 독후감을 남겼는데, 당연히 <셜록> 드라마가 나오기 훨씬 전에 쓰여진 이 소설에도 그 트릭이 나옵니다. 설화에 등장하는 아주 오랜 화소이죠. 이걸 드라마에서 직접 언급했다간 아마 매력이 떨어질 것 같아 드라마 제작진은 대충 얼버무리고 넘어간 듯합니다. 


장편 원작 <4인의 서명>에 등장하는, 왓슨이 아프간 군 복무 경력을 언급한다거나 그때의 스릴이 충족 안 되어 다리를 전다거나 하는 내용이 이 에피소드에서 오마주됩니다. 생각할수록 도일 경 원작이 담은 내용과 함의의 폭과 영향이 참 컸구나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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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91155493205


서영은 작가는 故 김동리 선생과의 인연으로도 유명하며 1983년 <먼 그대>로 이상문학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풍부한 서사 속에 시대상의 이런저런 면모를 생생하게 담은 작풍이라서 다 읽고 나면 뭔가 머리까지 꽉 차는 느낌입니다. 


주인공은 벽지에서 어린 학생들을 가르치는 초등학교 교사입니다. 요즘 같으면 여교사가 최고의 직업으로 높이 평가 받습니다만 1980년대에는 근무지가 저렇게 벽지이면 박봉의 조건까지 겹쳐 그리 매력적이지 않았나 봅니다. 아니면 그저 주관적으로 불만이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여튼 그녀는 자신에게 더 밝고 풍요로운 미래가 열려야 마땅하다고 믿고 미인대회 출전을 결심하여 교사직을 그만둡니다. 


진의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이름난 미용실 원장님도 그녀를 적극 격려하는 등 객관적으로 보아도 그녀는 그런 꿈을 꿀 만한 자격이 되는 듯합니다. 원장은 이런저런 준비를 하려면 돈이 필요하다는데, 집안 형편도 어려울 뿐 아니라 가족들은 그녀가 펼치려는 꿈에 대해 무관심을 넘어 거의 반대 수준입니다. 현재 그녀를 답답하게 하는 건 이런 가족들의 몰이해가 더 큰 비중이라고 하겠습니다. 


어려운 환경에서 공부를 마치고 명문대 졸업장으로 대기업에 취직한(동료 교사의 말에 따르면 용모도 좋다고 합니다) 오빠 역시도 주인공을 전혀 이해해 주질 않습니다. 나이도 젊고 배울 만큼 배웠으며 세상도 널리 체험한 편인데 여동생이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다음 단계로 도약하려는 그 마음을 거의 멸시하는 수준입니다. 오빠가 좋은 신랑감을 소개해 준대서 만났더니 평범한 공장 직원인데다 귀도 잘 들리지 않는 걸 알고 주인공은 더욱 절망합니다. 인성이 나무랄 데 없이 좋다는 게 오빠가 댄 이유인데 대기업에 다니는 신분이니 훨씬 좋은 조건의 신랑감도 물색할 수 있었겠건만 말입니다. 


이 사람은 귀가 안 들린다거나 가난한 게 문제가 아니라, 아내 될 상대의 감정을 전혀 신경 쓰지 않고(자신의 주제도 모르고) 착각에만 빠져 있는 게 근본적인 문제 같습니다. 어리석을 뿐 아니라 이기적이기까지 한데, 우리 주변에는 안타깝게도 이런 유형의 인간들이 무척 많습니다. 넘볼 상대를 넘봐야죠. 


여튼 이모저모로 숨이 막힐 것 같았던 주인공은 단호히 결별을 선언하고 원장님의 주선(음모?)에 따라 중년 재일교포 사업가를 만나는데 나이도 많을 뿐 아니라 이미 한 번 결혼을 했다고까지 합니다. 그래도 자신에게는 경제적 안정이 우선 필요하다고 믿은 주인공은 결혼을 감행하려 드는데 상견례 자리에서 주인공의 부모는 어린 딸이 웬 중년 사내를 데려온 걸 보고 기겁을 합니다. 


결국 일은 틀어지고 주인공은 "뱁새가 황새를 따라가려다 가랑이가 찢어질 수는 있지만, 다른 뱁새가 새로운 인생을 열게 옆에서 돕는 건 의미 있는 일"이라며 어떤 결심을 합니다. 여기서 독자는 주인공이 혹시 그 공장 직공을 다시보고 인생 구제해 주는 셈치며 결혼이라도 하지 않을까 걱정하게 됩니다. 그러나 주인공의 결심은 그런 자기파괴적인 게 아니라, 자신이 원래 근무하던 초등학교로 돌아가서 벽지의 아동들이 현실에 좌절하지 않고 자신만의 꿈을 펴 나가게 조력하는 것이었으니 독자는 크게 안심하게 되네요. 좋아하지도 않는 데다 제 분수도 모르고 헛꿈을 꾸는 상대를 뭐하러 만나 평생의 연을 맺겠습니까. 게다가 이후 한국 사회에서는 교사의 처우가 크게 개선되기까지 하니 1980년대에 저런 결심을 한 주인공 여성은 아마 지금(2022)쯤 자신의 결정에 만족하며 풍요로운 노년을 보내고 있겠습니다. 아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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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김문수씨의 중단편들이 실려 있는 작품집입니다. 작품은 모두 아홉 편이며 정규웅 평론가의 작품론, 작가 본인의 다른 글 한 편이 있습니다. 


이 중 제가 눈여겨 본 작품은 <끈>입니다. 24기 37주차에 잠시 동네 대부업자에게 돈을 빌려 주는 구시대형 저축에 대해 언급한 적 있는데, 역시 이 작품도 1980년대를 배경으로 삼아서인지 돈을 떼이고 크게 타격을 입은 주부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 주부는 이 소설의 1인칭 화자, 주인공인 소설가, 기자의 부인이며, 정작 남편은 아무렇지도 않아하며 아내를 위로하지만 속은 당사자는 도통 마음을 가눌 수가 없습니다. 돈을 떼어먹고 잠적한 여자는 강화도로 향했다는 소문이 파다하지만 그 정도의 정보로는 방을 추적하기 어렵습니다. 


이 와중 주인공은 잡지사로부터 의뢰를 받아 강화도의 여러 풍속과 현황을 취재하러 갑니다. 왜 하필 강화도냐며 돈을 떼어먹힌 악몽이 자꾸 생각나게 되었다고 불평하는 아내를 달래 가며 그는 부부동반으로 떠납니다. 히말라야에는 짐을 날라 주는 셰르파가 있고, 1980년대 강화도의 마니산에도 약간의 돈을 받고 가이드 겸 짐꾼 노릇을 하는 어떤 남자가 있는데 약간은 사리판단이 부족한 분 같습니다. 등산을 온 주부들이 장난도 치면서 좋아하지만 주인공은 연민 가득한 눈으로 짐꾼을 보며 아내는 그런 데까지 신경을 쓸 여유가 없습니다. 


주인공은 등산로에서 웬 노인을 만나는데 이 노인은 강화도 현지의 사정이라든가 여러 인문적 지식에 대해 막히는 게 없습니다. 노인은 또한, 아까 그 짐꾼의 사정도 잘 알고 있습니다. 강화도의 여러 명소를 둘러보던 중 각시섬이라는 곳을 들르게 됩니다. 주인공은 노인으로부터 각씨서에 얽힌 전설을 자세히 듣습니다. 전설 속의 주인공 성(姓)이 각씨(閣氏)이며 "서"는 섬이라고 할 때의 嶼(서)입니다. 


"이곳에 왜 오자고 했죠? 나도 그 전설에 나오는 여자처럼 바다에 빠져 죽으라는 건가요?" 아주머니로서는 자신의 썩은 속도 몰라 주고 태평한 소리만 해 대는 남편이 답답하거나 야속하기도 했겠으나 이 말은 누가 들어도 너무 나간 것입니다. 주인공은 화가 나서 아내의 뺨을 치는데, 이 장면을 본 짐꾼은 몹시 화가 났는지 "나쁜 사람!"을 외치며 주인공에게 달려듭니다. 이 앞에, 짐꾼이 지나친 친절을 베풀려 들자 아내가 크게 무서워했던 대목이 있었습니다. 주인공은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해하지만 아주머니 입장에서야 그랬을 만도 합니다. 물정 모르고 자기 나름의 정의감을 표현하려는 짐꾼을 마냥 나무랄 수도 없어서 주인공은 난감해하고 노인이 개입하고서야 겨우 사태가 진정됩니다. 


알고보니 노인은 실향민이었으며, 마지막에 들려 주는 신세 타령 속에 왜 작품 제목이 "끈"이 되었는지 독자들이 짐작할 수 있는 사정이 나옵니다. 배경이 1980년대나 되니까 이처럼 실향민들의 절절한 애환이 작품의 핵심 제재로 등장도 하는 게 아니었겠나 싶습니다. 


이 작품에 대해서는 소설가 유응오 씨의 멋진 해설( http://www.buddhismjournal.com/news/articleView.html?idxno=15379 )이 있으니 참고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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