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김문수씨의 중단편들이 실려 있는 작품집입니다. 작품은 모두 아홉 편이며 정규웅 평론가의 작품론, 작가 본인의 다른 글 한 편이 있습니다. 


이 중 제가 눈여겨 본 작품은 <끈>입니다. 24기 37주차에 잠시 동네 대부업자에게 돈을 빌려 주는 구시대형 저축에 대해 언급한 적 있는데, 역시 이 작품도 1980년대를 배경으로 삼아서인지 돈을 떼이고 크게 타격을 입은 주부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 주부는 이 소설의 1인칭 화자, 주인공인 소설가, 기자의 부인이며, 정작 남편은 아무렇지도 않아하며 아내를 위로하지만 속은 당사자는 도통 마음을 가눌 수가 없습니다. 돈을 떼어먹고 잠적한 여자는 강화도로 향했다는 소문이 파다하지만 그 정도의 정보로는 방을 추적하기 어렵습니다. 


이 와중 주인공은 잡지사로부터 의뢰를 받아 강화도의 여러 풍속과 현황을 취재하러 갑니다. 왜 하필 강화도냐며 돈을 떼어먹힌 악몽이 자꾸 생각나게 되었다고 불평하는 아내를 달래 가며 그는 부부동반으로 떠납니다. 히말라야에는 짐을 날라 주는 셰르파가 있고, 1980년대 강화도의 마니산에도 약간의 돈을 받고 가이드 겸 짐꾼 노릇을 하는 어떤 남자가 있는데 약간은 사리판단이 부족한 분 같습니다. 등산을 온 주부들이 장난도 치면서 좋아하지만 주인공은 연민 가득한 눈으로 짐꾼을 보며 아내는 그런 데까지 신경을 쓸 여유가 없습니다. 


주인공은 등산로에서 웬 노인을 만나는데 이 노인은 강화도 현지의 사정이라든가 여러 인문적 지식에 대해 막히는 게 없습니다. 노인은 또한, 아까 그 짐꾼의 사정도 잘 알고 있습니다. 강화도의 여러 명소를 둘러보던 중 각시섬이라는 곳을 들르게 됩니다. 주인공은 노인으로부터 각씨서에 얽힌 전설을 자세히 듣습니다. 전설 속의 주인공 성(姓)이 각씨(閣氏)이며 "서"는 섬이라고 할 때의 嶼(서)입니다. 


"이곳에 왜 오자고 했죠? 나도 그 전설에 나오는 여자처럼 바다에 빠져 죽으라는 건가요?" 아주머니로서는 자신의 썩은 속도 몰라 주고 태평한 소리만 해 대는 남편이 답답하거나 야속하기도 했겠으나 이 말은 누가 들어도 너무 나간 것입니다. 주인공은 화가 나서 아내의 뺨을 치는데, 이 장면을 본 짐꾼은 몹시 화가 났는지 "나쁜 사람!"을 외치며 주인공에게 달려듭니다. 이 앞에, 짐꾼이 지나친 친절을 베풀려 들자 아내가 크게 무서워했던 대목이 있었습니다. 주인공은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해하지만 아주머니 입장에서야 그랬을 만도 합니다. 물정 모르고 자기 나름의 정의감을 표현하려는 짐꾼을 마냥 나무랄 수도 없어서 주인공은 난감해하고 노인이 개입하고서야 겨우 사태가 진정됩니다. 


알고보니 노인은 실향민이었으며, 마지막에 들려 주는 신세 타령 속에 왜 작품 제목이 "끈"이 되었는지 독자들이 짐작할 수 있는 사정이 나옵니다. 배경이 1980년대나 되니까 이처럼 실향민들의 절절한 애환이 작품의 핵심 제재로 등장도 하는 게 아니었겠나 싶습니다. 


이 작품에 대해서는 소설가 유응오 씨의 멋진 해설( http://www.buddhismjournal.com/news/articleView.html?idxno=15379 )이 있으니 참고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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