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도 주식에 투자해보지 않은 사람들이 시장에 참여하는 것은 물론, 빚을 내 투자 자금 규모를 불려 나가는 일(레버리지 투자)이 빈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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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말해 노동력이 비싸고 자본이 싼 곳에서는 기계를 사용하는 게 이익인데, 영국이 이에 해당되었다. 이 대목에서 잠깐 첨언하자면, 19세기 초반 일본과 중국의 상황은 대단히 비슷했다. 중국은 인구가 폭발적으로늘어나는 가운데, 노동생산성의 향상은 오히려 후퇴하고 있었다.  - P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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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왜 유독 진나라 이후 당나라가 들어설 때까지 한족이 세운 왕조는 내내 밀리기만 했을까?
여러 이유가 존재할 텐데, 그중 제일 먼저 드는 생각은 ‘군사 혁신‘이다. 북방민족은 강력한 신무기인 등자 子, Strus)의 발명 덕분에 ‘중기병(Hery Cavality)‘이 압도적인 무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 여기서 등자란말 안장에 달린 발 받침대를 말한다. 등자는 말에 오르거나 말 위에서 균형을 잡는 데 매우 유용한 발명품으로, 등자가 발명되기 이전에는 기마병의 주된 무기는 활이었다. 즉, 기동력을 이용해 상대를 화살로 공격한다음 후퇴하는 게 일반적인 전략이었다. 그러다가 등자가 발명되면서 기병의 전투법은 긴 창을 활용한 돌격전법으로 바뀐다. 실제로 8세기경 서양에 등자가 전해진 이후 본격적으로 중세 시대가 열렸음을 감안할 때,
‘등자로 인해 북방 유목민족이 우위를 점했다는 분석은 꽤 그럴듯하다.
- P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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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한 일이겠지만 등급이 낮은 채권일수록 불황이 올 때 부도 가능성이높아지기에, 회사채 인기가 떨어질 수밖에 없고 더 높은 금리를 제시하지 않으면 채권이 팔리지 않는다.
18세기 프랑스와 스페인 정부가 발행한 채권 금리가 높았던 이유는 이것이다. 신용등급이 부여되지는 않았지만, 부도가 빈번하게 발생했다는점에서 신용도가 낮은 회사채와 다를 게 없었다. 국가나 개인의 신용도가 낮을 때, 금리는 높아진다. 그리고 금리가 높은 나라(또는 기업이나 개인)일수록 불확실성이 높으며 자본시장이 발달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 P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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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암스테르담을 비롯한 네덜란드 대부분의 주에는 장원제도가발달하지 않았다. 네덜란드 육지 대부분이 바다나 늪지를 개간한 땅이다 보니 교회도 귀족도 소유권을 선뜻 주장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네덜란드 사람들은 다른 유럽 나라 사람들과 달리 직접 개척하거나 간적한 땅을 자유롭게 사고팔았다. 귀족이 소유한 땅은 지금의 네덜란드와벨기에에 해당되는 홀란트 주 기준으로, 단 5%에 불과했다. 
2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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