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오 - 테러리스트의 탄생
윌러드 게일린 지음, 신동근 옮김 / 황금가지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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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1년 7월 폴란드의 예드바브네 지역에서는 이웃이었던 유태인을 하루 종일 학살하는 일이 일어났다고 한다.  그리고 마을의 성인 남성 중 약 50퍼센트가 적극적으로 그 일에 참여했다고 한다.  잔인한 인간의 본성을 드러낼 수 있는 것들 중에서는 증오라는 것이 있을 것이다.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증오는 결국 사람을 꺼리낌없이 잔악무도하게 살인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책의 저자는 바로 그 증오에 대해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증오를 인간의 본성이라고 단순히 치부하기 보다는 심리학적으로 논하고, 정신의학적으로 평하고자 말이다.

 

  누구나 격분하고 화를 낼 수 있다.  그러나 지속적이고 악의에 찬 증오와는 다르다고 말한다.  격분하고 화가 났다고 살인을 저지르지는 않기 때문이다.  미국의 9.11 테러에서 우리는 증오를 만날 수 있다.  미국인의 참상을 보며 기쁨의 함성을 내어지르던 아랍 군중들을 선명하게 기억한다는 저자, 이제는 증오에 대해서 이해하고 연구해야 하는 시기라고 말한다. 

 

  증오에 뿌리를 두고 있는 테러리스트들의 행동들을 경제적인 이유나 사회적인 이유로 설명하기를 거부하면서 팔레스타인 난민촌의 절망이 만들어낸 테러일지라도 정당화될 수 없는 것이라고 말하는 저자, 증오에 대해서 이해하기 위해 편견과 편협에 대한 언급을 한다.  그리고 격노는 단지 감정일 뿐이지만 증오는 격노와 화를 포함한 감정 그 이상의 것이라고 하며, 증오의 핵심 감정인 격노, 그것을 느끼게 하는 심리적 폭력들 즉, 박탈감이라던가, 불평등과 불공평에 대한 느낌들, 배신감, 좌절감 등등을 이야기하며 시기의 대상이 곧 적으로 간주 되는 증오의 순간, 그 행동으로 사회적 망상[사고 장애]이 존재하게 된다고 한다.  하여 증오자들은 편집증을 가지고 있게 마련인데, 편집적 인격자는 세상과 인생을 음모의 시선으로 바라보기에 그들의 세계관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적의 존재는 불가피한 것이라는 것이다.  예로 팔레스타인 난민촌은 편집적인 인생관과 증오의 문화를 키우기에 이상적인 곳이고, 그들의 자살 테러는 자행되고 있다.  테러의 세계에서는 정신병자들이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저자는 그러나 정신병자와 정신병질자의 구별이 필요하다고 한다.  혼자 행동하는 테러리스트들은 보통 편집형 정신 분열증 환자다.  그들 정신병자의 위험성은 암시에 걸리기 쉽고 조종당하기 쉽다는 것이다.  그래서 정신병자를 조종하고 이용하는 정신병질자와는 구분되어야 하는 것이다.  정신병질자는 양심 기제가 없는 사람들이며, 자신의 잔인함과 증오를 폭발시킬 기회만을 노리는 사람들이다.  저자는 이렇게 감정적인 증오를 설명해주면서 이어 애착적인 증오에 대해서도 살펴봐준다.  그리고는 증오의 문화에 대해서 언급해주고 있다.  나치 독일, 팔레스타인 해방주의자들이 증오의 문화라고 말하며, 설명을 이어준다. 

 

  증오는 하찮은 자기 존재의 고통과 불안을 합리화하기 위해 스스로 만든 적에 대해 품는 신경증적 애착이며 절망감에 대한 방어라고 저자는 말한다.  격노와는 차이가 있는 감정 이상의 것이며 병이라고 말하는 저자, 그가 심리학적으로 정신의학적으로 살펴준 증오에 대해서 읽으며, 사람의 증오를 자신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조장하고 이용하는 사람들이 없기를 바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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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림트 : 분리주의와 오스트리아 제국의 황금빛 황혼 마로니에북스 Art Book 19
타탸나 파울리 지음, 임동현 옮김 / 마로니에북스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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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클림트, 그를 알게 된 것은 키스라는 제목의 그림으로부터다.  그 그림을 보면서 화가의 이름을 알게 되었고, 그 작품 이외는 사실, 아는 그림도 없지만 그의 이름이 계속 맴돌았다.  솔직하게 말하면 구부정하게 키스하고 있는 모습의 그 그림이 그다지 맘에 들었던 것도 아니었는데도, 자꾸만 신경을 붙잡고 있는 그였다.   그래서 클림트라는 이가 누구인지, 차라리 알아버리는 것이 나을 듯 하여, 이 책을 들게된다.

 

  마로니에북스에서 나온 이 책은 클림트라는 화가를 알려주기 위해서 꼼꼼한 친절함을 보여주고 있다.  그가 살았던 시대의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인 모습들까지 설명해주기에 클림트라는 이를 이해하는 일은 더욱 쉽다.  그의 작품들이 보여주는 면모는 바로 그 시대의 배경들과 무관할 수는 없으니 말이다. 

 

  구스타프 클림트는 1862년 여름의 더위가 쨍쨍한 7월 14일, 빈의 외곽의 바움가르텐에서 7남매의 둘째로 태어났다.  가족에대한 깊은 유대관계를 평생 유지했다는 클림트, 미술교사가 되려했던 그에게 아이텔베르거는 화가가 되라고 조언한다.  그리고 우리는 화가 클림트를 만나게 되는 것이다. 

 

  분리주의의 리더가 된 클림트, 에로티시즘의 양면성을 화폭에 담았고, 1901년 금빛 장식으로 둘러싸인 여인 유디트의 모습은 관능미의 아름다움으로 숨을 멈추게 만든다.   그의 그림들 중에서 풍경화 역시도 무척 맘에 들었는데, 초기에는 상징주의적 해석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고 한다.  1905년 제작된 [여인의 세 시기]라는 제목의 작품 해설을 읽게되니 그 작품이 갖는 의미에 눈을 뜨게 되어 그림의 가치를 알게되기도 했다. 

 

  키스라는 작품 이외는 전혀 알고 있지 않았던 클림트, 하지만 이 책을 덮는 이 순간은 그의 다양한 작품들과 삶을 알게 되어 무척 만족스러운 시간이 된다.  키스라는 그의 그림이 그다지 맘에 들지 않았었다고 앞서에 밝혔었는데, 이제는 그의 작품들이 무척 맘에 들기 시작했다.  역시 누군가의 예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누군가가 살아왔던 시대와 연계하여 삶을 알고, 작품을 이해하는 일이 좋은 길라잡이가 되는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그 효과를 톡톡히 해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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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게 다 우울한 밤에
나카무라 후미노리 지음, 양윤옥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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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주인공인 나는 교도관이다.  어느날 주임이 술집으로 불러내어 사형집행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 자신, 딱 두 번의 사형 집행에 참여한 적이 있는데, 유족들을 생각하면 당연히 죽어 마땅한 살인자를 사형시키는 것이니 해야할 일인 것 같았지만 막상, 교도관으로 생활하면서 그 사형수랑 아침까지도 함께 대화하던 그 장면들이 생각나서 살려달라고 몸부림을 치는 사형수의 마지막을 집행하는 일이 무척 큰 트라우마로 남는다는 말을 한다.  주인공 역시 자신이 맡은 범죄인 중 이번에 사형을 언도받은 소년이 있다.  젊은 부부를 무정하게 살해한 야마이, 그는 사형수다.

 

  야마이는 어린시절 부모에게 버림을 받고는 보육원 앞에 버려졌다가 친척의 손에 입양되어 자라게 된다.  하지만 아동학대 속에서 우울한 인생을 살았던 야마이는 소년원을 들락여야 했는데, 열 여덟을 며칠 앞둔 폐렴으로 지친 몸이 되었던 날, 어둠 속의 달은 멀리에만 있고, 자신은 아파서 홀로 쓸쓸히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엄습하던 그 밤, 야마이는 한 젊은 여인을 죽였고, 곧바로 그 여인의 남편도 죽였다.  모든 세상이 자신과는 동떨어진 채, 움직이고 있는 듯한 느낌, 자신만이 외따로 있는 듯한 느낌, 원래 자신은 쓸모없는 쓰레기같은 존재니깐 그래서 그 자신도 무심해져버린 감정 속에 자신을 내동댕이 쳐버린 야마이, 물론 그는 죽어마땅한 살인범이었다.  사람을 죽이고도 그 어떤 미안한 맘을 전혀 갖지 않았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가 열 여덟이 되지 않았다면 그는 사형을 면할 수 있는 나이였고, 그 시기에 열광적인 여론몰이 속에 그가 있지 않았다면 역시 그는 사형을 면할 수 있었을 것이다.  사형 제도라는 것이 그때 그때의 상황에 따라 누구에게는 이루어지고, 같은 죄임에도 누구는 무기징역으로 살아가게된다면, 그건 좀 아니지 않느냐고 이 책은 처음을 그렇게 시작한다.  사형 제도에 대한 화두를 던져주는 것이다.  사형 제도를 찬성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반대를 적극적으로 피력할 수 있을 것 같지도 않다.  잔악무도하게 사람을 죽이고도 양심의 가책따위를 전혀 느끼지 못 하는 무정한 살인수들을 어떻게 옹호할 수 있다는 말일까.  물론 그런 너그러움이 나는 생겨나지 않는다.  하지만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을 기억하고 있고, 사람은 누구나 선하다는 성선설을 나는 잊지 않고 있다. 

 

 주인공 나는, 어린시절을 보육원에서 보냈다.  고아인 그는 사춘기 속에서 죽음으로 자신을 내던진 친구 마시타의 자살을 기억하고 있고, 자신 역시도 자살을 시도하려고 했던 적이 있다.  그때 보육원 원장의 말은 내가 이 책을 좋은 책이라고 손꼽게 만드는 이유가 된다.

["너는 아무 것도 모르지." -중략- "베토벤도 모르고 바흐도 몰라.  셰익스피어를 읽은 적도 없고, 카프카나 아베 고보가 얼마나 천재였는지도 알지 못해.  빌 에반스의 피아노도." -중략-  "구로자와 아키라의 영화도, 펠리니 감독의 영화도 본 적이 없어.  교토의 절도 안 봤고, 고흐도 피카소도 아직 모르지?" -중략- "너는 아직 아무것도 알지 못해.  이 세상에 얼마나 멋진 것들이 많은지.  내가 방금 말한 건 전부 다 보도록 해라."/158쪽]

  주인공은 사형을 언도받고 항소하지 않는 야마이에게 바로 원장에게 들었던 이 말을 실천하게 된다.  물론 야마이는 사형수고 항소한다고 해도 결국 사형을 언도받는 일이 변하지는 않을 것이지만 그는 야마이의 마지막 편지를 받으며 그 자신이 한 일이 무척 소중한 결실을 맺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 세상에는 훌륭한 것이 많다고 했던 당신의 말이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았습니다.  다양한 인간의 인생 뒤편에서 이 곡은 항상 흐르고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사실은 큰 파이프오르간으로 좀더 크게 연주된다고 합니다.  그것을 들을 수 있으면 정말 좋겠습니다.  하지만 그런 훌륭한 것을 감상할 기회를 빼앗아버린 것도 나입니다.  그 사람들의 모든 것을 빼앗은 것은 나이고, 그렇게 생각하면 나는 지금 바로 죽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나는 죽을 때까지의 기간 동안 내가 얻지 못 했던 것들을, 내가 사실은 어떤 마음으로 살았고, 어떻게 하면 지금과는 다른 인생을 걸을 수 있었는가를 알고 난 뒤에 죽자고 생각합니다./185쪽]

 

  삶이 우울하여, 세상에 대한 불만투성이만의 사춘기를 보내게 될 수도 있다.  그래서 그 표출이 자살이거나 타인을 향한 분노와 원망의 살인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때 꼭, 잊지 말고 생각해보아야 할 것 같다.  우리의 인생이란 멋지고 훌륭한 것들이 많아서, 그것들을 다 알지 못 한 채, 죽는다는 것은 억울한 일이라는 것을 말이다.  어둡고 힘든 시기의 길을 걷고 있어 혼란스러워하며 자신을 포기한 채 내동댕이 치는 인생을 살아갈 것이 아니라, 그래서 극단적인 선택들인 자살이나 혹은 살인과 같은 나쁜 행동을 하여 사형제도가 있는 나라에서는 사형수가 될 것이 아니라 말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역시 자살을 생각하던 힘든 사춘기를 보냈다.  그의 친구는 아예 자살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야마이라는 소년은 사형수가 되었다.  하지만 인생이란 그 힘겨움에 무릎꿇기에는 아직 하지 못 했던 너무나 멋진 일들이 있다.  아직 심금을 울리는 베토벤의 음악도 듣지 못 했고, 유명 작가들의 책도 읽어보지 못 했고, 언젠가는 만나게 될 온전히 자신의 편만이 되어줄 사람을 만나지도 못 했지 않은가.  지금의 힘겨움과 맞바꾸기 위해 자신을 포기하기에는, 자신의 인생을 포기하기에는 너무 밑지는 거래이지 않은가. 

 

  이 책은 이렇듯 사형제도에 대한 문제를 다루고도 있지만, 힘겨운 사춘기 시절을 보낸 사람들이 선택한 인생의 이야기를 들려줌으로 젊은이들에게 극단적인 선택이 아닌 삶을, 자신을 더 사랑해보라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  지금의 섣부른 행동은 아직 하지 못한 인생의 멋지고 훌륭한 일들을 스스로 놓치는 후회막급의 피눈물을 흘리게 하는 선택이라는 것을 말이다.  나는 이런 느낌으로 이 책을 읽었고, 그러하기에 이 책이 무척 맘에 들었다.  인생이란 어떤 어려움과 절망 앞에서도 포기하기에는 너무나 감동적이라는 것을, 그 감동을 느껴보지 못 하고, 살인자가 되거나 비행청소년이 되거나 자살을 하기에는 너무 억울하지 않냐고..  굳이 성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인생이 안겨주는 곳곳의 감동을 담아내기 위해서 말이다.  사랑하는 이를 만났을 때의 감동도 느껴보고, 눈부신 햇살의 아름다움에 감동도 느껴보고, 누군가를 위해 눈물 흘릴 수 있는 감동도 느껴보고 말이다.  사람과 사람이 소중하다는 감동도 느껴보고 말이다.  메마른 슬픔과 절망만을 기억하면서 사라진다는 것은 너무 억울한 일이니깐...언제나 분노하고 있기만 한 삶을 살다 사라진다는 것은 너무 억울하니깐...아직 삶은 감동하고, 감동을 줄 많은 일들을 경험할 수 있는 곳이라는 것을 기억하기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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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딴방
신경숙 지음 / 문학동네 / 199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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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구나 기억 속에 묻어두고 싶은 과거가 있다.  부끄러움에 얼굴을 붉히며, 꼭꼭 숨겨두고 싶은 과거의 잔상들, 그녀 역시 그 시절은 그렇게 기억하고싶지 않았던 지난 시간이었다.  하지만 "너는 왜 우리들 이야기는 쓰지 않니?"라는 옛 지인의 이야기를 듣고는 그녀는 자신의 그 애써 숨겨두려했던 과거 속으로 기억의 걸음을 놓게 된다.  그렇게 과거의 기억을 하나씩 힘겹게 끄집어내고 있다.

 

  이 책은 픽션과 논픽션의 중간이 될 것 같다던 그녀, 결국 그 예감은 사실이 되었다고 결말을 맺었다.  자전적 소설인 작가 신경숙의 그녀가 애써 침묵하고 싶었던 그 이야기, 그것은 그녀의 부끄러움이었다.  그래, 나는 처음에 그녀가 그 기억을 되새기고 싶어하지 않은 이유가 부끄러움에서였다고 생각했다.  10대 중 후반, 그 어린 나이에 공장에 다니면서 산업체 야간 고등학교를 나왔던 그녀의 과거가 있던 시간들에 대해서 느낀 부끄러움이라고 말이다. 

 

  가난했기에 모든 자녀를 가르칠 수 없었던 부모님은 그녀를 큰 오빠에게 딸려 보낸다.  그렇게 서울로 상경한 그녀, 회사를 다니면서 고등학교 수업을 받을 수 있는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공단 근처에 마련한 집, 그곳의 외딴방에서 큰오빠와 외사촌과 함께 시작한 서울 생활, 그녀는 그곳을 떠나고 싶다.  작가라는 꿈이 있었기에 떠나야 하고, 떠날 곳이었던 공단 근처의 외딴방.  산업체 야간고를 다니던 시절이라는 것은 열등감을 안겨주는 부끄러운 과거였기에 그녀 자신, 숨기고 싶었던 과거이기도 했다.  그 시절의 친구들이, 그 시절의 인연들이 부끄러운 것은 아니었지만, 낮에는 공장에서 일을 하고, 밤에는 학교에서 공부를 하며 공단 근처의 외딴방으로 고단한 그 몸을 뉘이려 가는 그 길들이 세상의 시선 아래 부끄러웠던 것이다.  그래서 대학을 가야했고, 꿈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곳을 떠나고 싶었기에, 그곳에서 안주할 수는 없었기에 말이다. 

 

  야간고를 다닌다고 하면, 낮게 보는 사회적 시선, 일명 공순이라고 하면 낮게 보는 사회적 시선 속에 자유로울 수 있는 그녀가 아니었다.  그녀 자신 역시 그들과는 다르다는 느낌으로 은연중에 그 시절을 보내고 있기도 했고, 그녀의 산업체 야간고 친구 역시 이해하지도 못 하는 헤겔의 책을 늘 끼고 살았던 것도 그들과는 다르다는 느낌을 가지고 싶어서 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들 스스로가 자신이 처한 그 상황들을 부끄러워했고, 사회는 그들의 상황을 부끄럽게 인식하게끔 의식화시켰다. 

 

  많은 공단의 그녀들은 자신의 인생이 그곳에 주저 앉혀져 있기를 바라지 않았다.  하지만 늦도록 일을 해도, 적은 월급은 그들을 그곳에서 벗어날 수 있게 만들어 주지 못 했다.  노조를 만들어 자신들의 권리를 찾고자 했던 그들, 하지만 회사측과의 마찰은 언제나 그들을 약자이게 만들었다.  그리고 공부를 해서 대학에 가고싶었던 그녀는 노조에 지속도록 가입해 있을 수 없었다. 

 

  저자의 자전적 소설인 <외딴방>은 1980년대의 시대적 아픔이 고스란히 담아져 있다.  시대의 소용돌이 속에 자의든 타의든 휩쓸려 살아가게 되는 우리들은 흐르는 울음을 속으로 삼키면서 그렇게 시대를 헤엄쳐 가야할 뿐인 것이다.  그녀가 애써 감추고 싶어했던 산업체 야간고를 다니던 시절의 이야기, 그러나 그것은 부끄러워서였던 것이 아니었다.  그녀가 차마 그 과거의 기억 속으로 걸어들어 갈 수 없었던 것은 희재언니에대한 그 일때문이었다.  공단 근처의 또 다른 외딴방에 살았던 희재언니, 그녀가 함께 있던 시절의 이야기라서였다.  그 시절에 대한 부끄러움에서 침묵하고 숨겼던 것이 아니라 그 시절에 대한 아픔이 덧날까 두려워서 침묵하고 감추고 싶었다.  그녀가 그토록이나 떠나고 싶어하던 그 외딴방, 희재언니 때문에 떠날 수 있게 된 그 애써 묻어두고 싶었던 과거의 기억은 아릿한 아픔이었지만 이제, 그녀는 글로 그 과거를 밝히면서 그 상처에 새살이 돋아날 수 있게 하려고 한다.  이제 더이상 그 과거의 상처가 통증으로 기억되는 일이 없도록 말이다. 

 

  이 책은 작가로 성장한 현재의 그녀와 과거 산업체 야간고를 다니며 공단 근처의 외딴방에 살았던 10대 후반의 소녀였던 그녀가 교차되면서 엮여져 있다.  큰 슬픔이 다가왔을 때, 차라리 소리내어 울어버리면 그 슬픔이 가라앉혀지듯이 묻어두고 싶었던 과거의 아픈 기억을 토해내면서 그녀는 벌어진 상처를 아물게 하고 있다.  이제사 생채기 내어진 그 살점이 쏟아내는 상처의 통증을 보듬어내고 있는 것이다.  긴 긴 세월을 돌아서 왔지만, 이제 그녀는 온전히 그 과거의 기억과 마주설 수 있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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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현대문학 가가형사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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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이유없는 악의라는 것이 있을 수 있을까.  세상에 이유없이 이루어지는 일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냥 싫었다고 말하지만, 세상에 그냥 싫은 것이 있을까.  무엇인가 사소한 이유라도 그 그냥이라는 마음 안에 담겨져 있는 것이다.  딱 부러지게 그 마음을 설명하지 못 했을 뿐이지 그냥 이유없이 싫었다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사람들은 누구나 악의라는 것을 가질 수 있다.  미운 맘이 없이 오로지 선한 마음만으로 일평생을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 있을 수 있을까.  그렇다면 그는 사람이 아닐테지.  하지만 사람은 누구나 그 악의라는 것을 자제하고 다듬어 다시 선함으로 이끌어가려고 애써야 한다.  악의적인 마음이 생겼다고 해서, 그 마음이 행동으로 반영된다면, 그에 합당한 벌을 받아야 할 것이다. 

 

  진실이 감추어질 수 있고, 꾸며질 수 있다는 사실은 너무나 슬픈 일이다.  아니, 참담한 심정이다.  아니, 분노스러운 일이다.  그것이 악의에 의한 것이라면 더욱 씁쓸하다.  조작된 거짓을 진실이라고 믿게 되는 것, 그렇게 진실이 진흙 구덩이 뒤로 널브러져 버리는 일, 그렇게 쉽게 거짓이 진실이 될 수 있다니, 사람의 능력이라는 것은 사람의 그 악의적 마음의 힘이라는 것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혀를 내두를만큼, 끔찍하게도 말이다.

 

  히다카라는 유명 작가가 죽었다.  용의선상에 오른 사람은 몇에 불과하다.  저자 히가시노 게이고가 탄생시킨 홈즈만큼이나 유능한 가가 형사가 이 사건을 해결하게 된다.  하지만 그 가가 형사조차 범인이 만들어낸 거짓의 진실 앞에 속아 넘어가고 있었다.  물론 마지막에는 가가 형사가 범인이 만들어낸 트릭들을 다 깨닫게 되어, 진실을 알게 되지만 말이다.

 

  히다카를 죽인 범인이 있다.  그 범인은 살인부터 저지르는 것이 아니라, 살인 동기부터 몇 개월 전부터 만들어낸다.  진짜 살인 목적을 감추기 위해, 가짜 살인 동기들을 계획적으로 꾸며내고 있는 살인자, 그 살인을 위해 많은 시간의 공을 들이고 있었던 것이다.  그 자신이 범인임을 은근쓸쩍 가가 형사에게 흘리면서, 그는 오히려 자신의 범행이 드러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가짜 살인 동기가 만천하에 공개되기를 말이다. 

 

  학원폭력의 이야기이다.  왕따를 당하고, 왕따를 시키고, 그렇게 사람이 사람을 소중히 하는 마음으로 대하지 못 하는 학창시절을 보낸 사람의 이야기.  그가 왕따를 당하던 그 학교에서 떠나고 싶었던 마음을 안다.  그래서 매번 무단결석을 했고, 히다카는 그런 그를 애처롭게 여기며 그래도 학생이기에 학교는 가야한다며 매번 등굣길을 함께 했다.  히지만 그일로 전학을 갈 수 없게 된 범인은 떠나지 못하고 남아진 학교에서 이제는 살기위해 왕따를 시키는 무리 속에 가담하게 된다.  그리고 그 일은 그에게 잊고싶은 과거를 만들어내었고, 그는 오랜 세월이 흐른 후, 살인자가 되었다. 

 

  히가시노 게이고, 그의 책들은 언제나 재미나다.  <악의>라는 이 책 역시 그 재미는 두말할 필요가 없다.  사람이 가진 악의, 작은 것에서 시작된 그 악의가 살인까지 만들어냈다.  히다카는 언제나 착한 사람이라는 주위의 평판을 들었던 사람이었는데도 범인에게 있어서 그는 죽이고 싶은 사람이었다.  히다카에 대한 열등의식과 엄마에게서 주입되어왔던  선입견이 결국 악의적인 마음을 일으켰고 자라나게 했다.  깨어진 거울을 바라보면, 아무리 다른 몸짓을 지어봐도 일그러진 모습만이 거울에 비칠 뿐이듯이, 아무리 히다카가 선의로 다가왔다해도 그에게는 히다카의 선의조차 악의의 눈빛으로 바라보였을 뿐이었다.  죽지 않아야할 사람이 죽었다.  조작된 거짓이 진실이 되어 그는 불명예의 죽음을 맞았다.  악의가 일으킨 결과였다.  인간의 악의가 말이다.  숨은 살인 동기 속에 감추어졌던 그의 진짜 살인 동기였던 악의, 여늬 추리물보다 더 기억에 남는 이유인 것 같다

 









  이유없는 악의라는 것이 있을 수 있을까.  세상에 이유없이 이루어지는 일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냥 싫었다고 말하지만, 세상에 그냥 싫은 것이 있을까.  무엇인가 사소한 이유라도 그 그냥이라는 마음 안에 담겨져 있는 것이다.  딱 부러지게 그 마음을 설명하지 못 했을 뿐이지 그냥 이유없이 싫었다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사람들은 누구나 악의라는 것을 가질 수 있다.  미운 맘이 없이 오로지 선한 마음만으로 일평생을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 있을 수 있을까.  그렇다면 그는 사람이 아닐테지.  하지만 사람은 누구나 그 악의라는 것을 자제하고 다듬어 다시 선함으로 이끌어가려고 애써야 한다.  악의적인 마음이 생겼다고 해서, 그 마음이 행동으로 반영된다면, 그에 합당한 벌을 받아야 할 것이다. 

 

  진실이 감추어질 수 있고, 꾸며질 수 있다는 사실은 너무나 슬픈 일이다.  아니, 참담한 심정이다.  아니, 분노스러운 일이다.  그것이 악의에 의한 것이라면 더욱 씁쓸하다.  조작된 거짓을 진실이라고 믿게 되는 것, 그렇게 진실이 진흙 구덩이 뒤로 널브러져 버리는 일, 그렇게 쉽게 거짓이 진실이 될 수 있다니, 사람의 능력이라는 것은 사람의 그 악의적 마음의 힘이라는 것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혀를 내두를만큼, 끔찍하게도 말이다.

 

  히다카라는 유명 작가가 죽었다.  용의선상에 오른 사람은 몇에 불과하다.  저자 히가시노 게이고가 탄생시킨 홈즈만큼이나 유능한 가가 형사가 이 사건을 해결하게 된다.  하지만 그 가가 형사조차 범인이 만들어낸 거짓의 진실 앞에 속아 넘어가고 있었다.  물론 마지막에는 가가 형사가 범인이 만들어낸 트릭들을 다 깨닫게 되어, 진실을 알게 되지만 말이다.

 

  히다카를 죽인 범인이 있다.  그 범인은 살인부터 저지르는 것이 아니라, 살인 동기부터 몇 개월 전부터 만들어낸다.  진짜 살인 목적을 감추기 위해, 가짜 살인 동기들을 계획적으로 꾸며내고 있는 살인자, 그 살인을 위해 많은 시간의 공을 들이고 있었던 것이다.  그 자신이 범인임을 은근쓸쩍 가가 형사에게 흘리면서, 그는 오히려 자신의 범행이 드러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가짜 살인 동기가 만천하에 공개되기를 말이다. 

 

  학원폭력의 이야기이다.  왕따를 당하고, 왕따를 시키고, 그렇게 사람이 사람을 소중히 하는 마음으로 대하지 못 하는 학창시절을 보낸 사람의 이야기.  그가 왕따를 당하던 그 학교에서 떠나고 싶었던 마음을 안다.  그래서 매번 무단결석을 했고, 히다카는 그런 그를 애처롭게 여기며 그래도 학생이기에 학교는 가야한다며 매번 등굣길을 함께 했다.  히지만 그일로 전학을 갈 수 없게 된 범인은 떠나지 못하고 남아진 학교에서 이제는 살기위해 왕따를 시키는 무리 속에 가담하게 된다.  그리고 그 일은 그에게 잊고싶은 과거를 만들어내었고, 그는 오랜 세월이 흐른 후, 살인자가 되었다. 

 

  히가시노 게이고, 그의 책들은 언제나 재미나다.  <악의>라는 이 책 역시 그 재미는 두말할 필요가 없다.  사람이 가진 악의, 작은 것에서 시작된 그 악의가 살인까지 만들어냈다.  히다카는 언제나 착한 사람이라는 주위의 평판을 들었던 사람이었는데도 범인에게 있어서 그는 죽이고 싶은 사람이었다.  히다카에 대한 열등의식과 엄마에게서 주입되어왔던  선입견이 결국 악의적인 마음을 일으켰고 자라나게 했다.  깨어진 거울을 바라보면, 아무리 다른 몸짓을 지어봐도 일그러진 모습만이 거울에 비칠 뿐이듯이, 아무리 히다카가 선의로 다가왔다해도 그에게는 히다카의 선의조차 악의의 눈빛으로 바라보였을 뿐이었다.  죽지 않아야할 사람이 죽었다.  조작된 거짓이 진실이 되어 그는 불명예의 죽음을 맞았다.  악의가 일으킨 결과였다.  인간의 악의가 말이다.  숨은 살인 동기 속에 감추어졌던 그의 진짜 살인 동기였던 악의, 여늬 추리물보다 더 기억에 남는 이유인 것 같다











  이유없는 악의라는 것이 있을 수 있을까.  세상에 이유없이 이루어지는 일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냥 싫었다고 말하지만, 세상에 그냥 싫은 것이 있을까.  무엇인가 사소한 이유라도 그 그냥이라는 마음 안에 담겨져 있는 것이다.  딱 부러지게 그 마음을 설명하지 못 했을 뿐이지 그냥 이유없이 싫었다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사람들은 누구나 악의라는 것을 가질 수 있다.  미운 맘이 없이 오로지 선한 마음만으로 일평생을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 있을 수 있을까.  그렇다면 그는 사람이 아닐테지.  하지만 사람은 누구나 그 악의라는 것을 자제하고 다듬어 다시 선함으로 이끌어가려고 애써야 한다.  악의적인 마음이 생겼다고 해서, 그 마음이 행동으로 반영된다면, 그에 합당한 벌을 받아야 할 것이다. 

 

  진실이 감추어질 수 있고, 꾸며질 수 있다는 사실은 너무나 슬픈 일이다.  아니, 참담한 심정이다.  아니, 분노스러운 일이다.  그것이 악의에 의한 것이라면 더욱 씁쓸하다.  조작된 거짓을 진실이라고 믿게 되는 것, 그렇게 진실이 진흙 구덩이 뒤로 널브러져 버리는 일, 그렇게 쉽게 거짓이 진실이 될 수 있다니, 사람의 능력이라는 것은 사람의 그 악의적 마음의 힘이라는 것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혀를 내두를만큼, 끔찍하게도 말이다.

 

  히다카라는 유명 작가가 죽었다.  용의선상에 오른 사람은 몇에 불과하다.  저자 히가시노 게이고가 탄생시킨 홈즈만큼이나 유능한 가가 형사가 이 사건을 해결하게 된다.  하지만 그 가가 형사조차 범인이 만들어낸 거짓의 진실 앞에 속아 넘어가고 있었다.  물론 마지막에는 가가 형사가 범인이 만들어낸 트릭들을 다 깨닫게 되어, 진실을 알게 되지만 말이다.

 

  히다카를 죽인 범인이 있다.  그 범인은 살인부터 저지르는 것이 아니라, 살인 동기부터 몇 개월 전부터 만들어낸다.  진짜 살인 목적을 감추기 위해, 가짜 살인 동기들을 계획적으로 꾸며내고 있는 살인자, 그 살인을 위해 많은 시간의 공을 들이고 있었던 것이다.  그 자신이 범인임을 은근쓸쩍 가가 형사에게 흘리면서, 그는 오히려 자신의 범행이 드러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가짜 살인 동기가 만천하에 공개되기를 말이다. 

 

  학원폭력의 이야기이다.  왕따를 당하고, 왕따를 시키고, 그렇게 사람이 사람을 소중히 하는 마음으로 대하지 못 하는 학창시절을 보낸 사람의 이야기.  그가 왕따를 당하던 그 학교에서 떠나고 싶었던 마음을 안다.  그래서 매번 무단결석을 했고, 히다카는 그런 그를 애처롭게 여기며 그래도 학생이기에 학교는 가야한다며 매번 등굣길을 함께 했다.  히지만 그일로 전학을 갈 수 없게 된 범인은 떠나지 못하고 남아진 학교에서 이제는 살기위해 왕따를 시키는 무리 속에 가담하게 된다.  그리고 그 일은 그에게 잊고싶은 과거를 만들어내었고, 그는 오랜 세월이 흐른 후, 살인자가 되었다. 

 

  히가시노 게이고, 그의 책들은 언제나 재미나다.  <악의>라는 이 책 역시 그 재미는 두말할 필요가 없다.  사람이 가진 악의, 작은 것에서 시작된 그 악의가 살인까지 만들어냈다.  히다카는 언제나 착한 사람이라는 주위의 평판을 들었던 사람이었는데도 범인에게 있어서 그는 죽이고 싶은 사람이었다.  히다카에 대한 열등의식과 엄마에게서 주입되어왔던  선입견이 결국 악의적인 마음을 일으켰고 자라나게 했다.  깨어진 거울을 바라보면, 아무리 다른 몸짓을 지어봐도 일그러진 모습만이 거울에 비칠 뿐이듯이, 아무리 히다카가 선의로 다가왔다해도 그에게는 히다카의 선의조차 악의의 눈빛으로 바라보였을 뿐이었다.  죽지 않아야할 사람이 죽었다.  조작된 거짓이 진실이 되어 그는 불명예의 죽음을 맞았다.  악의가 일으킨 결과였다.  인간의 악의가 말이다.  숨은 살인 동기 속에 감추어졌던 그의 진짜 살인 동기였던 악의, 여늬 추리물보다 더 기억에 남는 이유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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