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딴방
신경숙 지음 / 문학동네 / 199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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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구나 기억 속에 묻어두고 싶은 과거가 있다.  부끄러움에 얼굴을 붉히며, 꼭꼭 숨겨두고 싶은 과거의 잔상들, 그녀 역시 그 시절은 그렇게 기억하고싶지 않았던 지난 시간이었다.  하지만 "너는 왜 우리들 이야기는 쓰지 않니?"라는 옛 지인의 이야기를 듣고는 그녀는 자신의 그 애써 숨겨두려했던 과거 속으로 기억의 걸음을 놓게 된다.  그렇게 과거의 기억을 하나씩 힘겹게 끄집어내고 있다.

 

  이 책은 픽션과 논픽션의 중간이 될 것 같다던 그녀, 결국 그 예감은 사실이 되었다고 결말을 맺었다.  자전적 소설인 작가 신경숙의 그녀가 애써 침묵하고 싶었던 그 이야기, 그것은 그녀의 부끄러움이었다.  그래, 나는 처음에 그녀가 그 기억을 되새기고 싶어하지 않은 이유가 부끄러움에서였다고 생각했다.  10대 중 후반, 그 어린 나이에 공장에 다니면서 산업체 야간 고등학교를 나왔던 그녀의 과거가 있던 시간들에 대해서 느낀 부끄러움이라고 말이다. 

 

  가난했기에 모든 자녀를 가르칠 수 없었던 부모님은 그녀를 큰 오빠에게 딸려 보낸다.  그렇게 서울로 상경한 그녀, 회사를 다니면서 고등학교 수업을 받을 수 있는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공단 근처에 마련한 집, 그곳의 외딴방에서 큰오빠와 외사촌과 함께 시작한 서울 생활, 그녀는 그곳을 떠나고 싶다.  작가라는 꿈이 있었기에 떠나야 하고, 떠날 곳이었던 공단 근처의 외딴방.  산업체 야간고를 다니던 시절이라는 것은 열등감을 안겨주는 부끄러운 과거였기에 그녀 자신, 숨기고 싶었던 과거이기도 했다.  그 시절의 친구들이, 그 시절의 인연들이 부끄러운 것은 아니었지만, 낮에는 공장에서 일을 하고, 밤에는 학교에서 공부를 하며 공단 근처의 외딴방으로 고단한 그 몸을 뉘이려 가는 그 길들이 세상의 시선 아래 부끄러웠던 것이다.  그래서 대학을 가야했고, 꿈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곳을 떠나고 싶었기에, 그곳에서 안주할 수는 없었기에 말이다. 

 

  야간고를 다닌다고 하면, 낮게 보는 사회적 시선, 일명 공순이라고 하면 낮게 보는 사회적 시선 속에 자유로울 수 있는 그녀가 아니었다.  그녀 자신 역시 그들과는 다르다는 느낌으로 은연중에 그 시절을 보내고 있기도 했고, 그녀의 산업체 야간고 친구 역시 이해하지도 못 하는 헤겔의 책을 늘 끼고 살았던 것도 그들과는 다르다는 느낌을 가지고 싶어서 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들 스스로가 자신이 처한 그 상황들을 부끄러워했고, 사회는 그들의 상황을 부끄럽게 인식하게끔 의식화시켰다. 

 

  많은 공단의 그녀들은 자신의 인생이 그곳에 주저 앉혀져 있기를 바라지 않았다.  하지만 늦도록 일을 해도, 적은 월급은 그들을 그곳에서 벗어날 수 있게 만들어 주지 못 했다.  노조를 만들어 자신들의 권리를 찾고자 했던 그들, 하지만 회사측과의 마찰은 언제나 그들을 약자이게 만들었다.  그리고 공부를 해서 대학에 가고싶었던 그녀는 노조에 지속도록 가입해 있을 수 없었다. 

 

  저자의 자전적 소설인 <외딴방>은 1980년대의 시대적 아픔이 고스란히 담아져 있다.  시대의 소용돌이 속에 자의든 타의든 휩쓸려 살아가게 되는 우리들은 흐르는 울음을 속으로 삼키면서 그렇게 시대를 헤엄쳐 가야할 뿐인 것이다.  그녀가 애써 감추고 싶어했던 산업체 야간고를 다니던 시절의 이야기, 그러나 그것은 부끄러워서였던 것이 아니었다.  그녀가 차마 그 과거의 기억 속으로 걸어들어 갈 수 없었던 것은 희재언니에대한 그 일때문이었다.  공단 근처의 또 다른 외딴방에 살았던 희재언니, 그녀가 함께 있던 시절의 이야기라서였다.  그 시절에 대한 부끄러움에서 침묵하고 숨겼던 것이 아니라 그 시절에 대한 아픔이 덧날까 두려워서 침묵하고 감추고 싶었다.  그녀가 그토록이나 떠나고 싶어하던 그 외딴방, 희재언니 때문에 떠날 수 있게 된 그 애써 묻어두고 싶었던 과거의 기억은 아릿한 아픔이었지만 이제, 그녀는 글로 그 과거를 밝히면서 그 상처에 새살이 돋아날 수 있게 하려고 한다.  이제 더이상 그 과거의 상처가 통증으로 기억되는 일이 없도록 말이다. 

 

  이 책은 작가로 성장한 현재의 그녀와 과거 산업체 야간고를 다니며 공단 근처의 외딴방에 살았던 10대 후반의 소녀였던 그녀가 교차되면서 엮여져 있다.  큰 슬픔이 다가왔을 때, 차라리 소리내어 울어버리면 그 슬픔이 가라앉혀지듯이 묻어두고 싶었던 과거의 아픈 기억을 토해내면서 그녀는 벌어진 상처를 아물게 하고 있다.  이제사 생채기 내어진 그 살점이 쏟아내는 상처의 통증을 보듬어내고 있는 것이다.  긴 긴 세월을 돌아서 왔지만, 이제 그녀는 온전히 그 과거의 기억과 마주설 수 있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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