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나라 없는 나라] 서평단을 모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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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기간 : 9월 24일 ~ 10월 5일 / 당첨자 발표 : 10월 6일

 

2. 모집인원:  10명 

3. 참여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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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당첨되신 분은 도서 수령 후, 10일 이내에 '알라딘'에 도서 리뷰를 꼭 올려주세요.

   (미서평시 추후 서평단 선정에서 제외됩니다)

* 이벤트 기간은 변동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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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나라가 아니다!”

전봉준을 현재성을 가진 매력적인 인물로 재창조해낸 역작

나라 없는 나라는 동학혁명의 발발부터 전봉준 장군이 체포되기까지의 상황을 다루고 있다. 등장인물들이 마주치는 시대적 상황과 각 인물이 겪는 사랑과 아픔 등을 묵직한 문학적 상상력으로 되살렸다. 역사에 바탕을 둔 소설이나, 담긴 이야기는 지금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을 적시고 다시금 뛰게 하는 힘을 갖고 있다. 전봉준은 이야기를 이끈다. 그리고 흥선대원군과 김개남, 손화중 등의 장군들은 이야기에 힘을 더한다. 여기에 주요 농민군들의 서사가 더해져 감동을 주고 있다.


 

작가소개 

이광재 1963년 전북 군산에서 태어났다. 전북대 철학과를 졸업했다. 1989년 무크지 녹두꽃에 단편 아버지와 딸로 등단. 소설집 아버지와 딸(1992)과 장편소설 내 가슴의 청보리밭(1993), 폭풍이 지나간 자리(1994) 등을 냈고, 전봉준 평전 봉준이, 온다(2012)를 냈다. 5회 혼불문학상을 수상했다.

 

 

작가의 말

이 소설은 위험하게 사는 자들에 관한 이야기다.

세상이 안전하지 않은데 개인이 안전하기를 바라는 것은 포탄이 날아다니는 전장에서 나만 안전하기를 바라는 일과 같다. 많은 사람들이 개인의 안락을 꿈꾸지만 당장은 안전해 보여도 제도화된 위태로움으로부터 조만간에는 포위될 게 뻔하다. 단언컨대, 세상은 지금 안전하지 않다. 사람, 산과 강, 저녁거리, 지역, 국가 모두가 위태롭다.

그러니 어떻게 할까?

이 소설은 이 질문과 무관하지 않다. 위험을 감수한 자들이 이룩한 공적 가치가 안전을 추구한 사람들의 그것보다 큰 게 아닐까, 나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서양의 어떤 철학자의 말처럼 지금보다 위험하게 살아보는 건 어떨까, 하는.

2012년에 동학농민혁명의 지도자에 관한 평전을 낸 일이 있는데 다시 그 무렵의 일을 소설로 쓴 것은 갑오년에 쏜 총알이 지금도 날아다니기 때문이다. 알다시피 그 시절 자주적 근대의 가능성은 부정되고, 조선은 식민지로 전락하여 타의에 의해 세계의 화염 속에 던져졌다. 그리고 책임을 져야 할 국가는 멀쩡한데 엉뚱하게도 이 나라가 반 토막 나는 것으로 사태는 끝나버렸다. 그러니 그 시절은 오늘의 첫 번째 단추가 분명하다.

근대적 문물을 재빠르게 수용했어야 한다는 잣대로 과거를 평가할 수는 없다. 그것은 몇 가지 가능성을 놓고 뽑기를 제대로 했어야 한다는 말과 같다. 서구적 근대가 반드시 우월하다고 볼 수도 없지만 그나마 조선이 접한 건 일본에 의해 굴절된 근대의 변종이 아닌가. 따라서 그를 추종하던 세력과 기득권 세력이 친일파가 된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바로 그들과 그 후손들이 지금 우리의 이다. 들이 한국사를 국정교과서로 만들겠다고 말하는 세상이다. 역시 그곳이 첫 단추다.

 

중국은 세계를 향해 전승절이라는 이름으로 군사 퍼레이드를 벌였다. 말이야 어떻게 붙이든 일본에서는 침략도 하고 전쟁도 하도록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게 우리가 당면한 동아시아의 모습이다. 120여 년 전에 해양과 대륙이 힘을 겨뤄 폭압적으로 세력교체를 하는 바람에 조선이 크게 뒤틀렸는데 그 양대 세력이 지금 심상치가 않다는 뜻이다. 그나마 전에는 하나의 조선으로 대응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한반도가 두 쪽이다. 어째 우리만 난처한 지경에 빠진 것 같다. 어쨌든 이것도 왠지 첫 단추를 연상케 한다.

 

이런 이유로 실타래처럼 꼬인 난국을 그 시절에는 어떻게 이해했으며, 어떤 경로로 헤쳐가려고 했는지 살핌으로써 이 고장 난 근대에 관한 지혜를 얻고 싶었다. 최근에는 드라마와 영화를 역사교과서로 삼는 경향까지 있어 이 소설도 그렇게 여길까 몰라 혹세무민하지 않으려는 마음으로 공을 들였다. 역사가는 훌륭한 작가가 될 수 없지만 작가는 훌륭한 역사가가 될 수 있다는 말을 곱씹었다.

 

그런 마음을 격려하여 상을 주신 것 같아 책임감이 느껴진다. 혼불문학상을 제정한 전주문화방송과 현기영 선생님을 비롯한 심사위원께 어찌 감사를 드리지 않으랴.

현대사를 몸으로 쓰신 어머니의 주름살이 조금 펴지면 좋겠다.

소설을 쓰겠다고 가출하듯 뛰쳐나온 자를 묵묵히 견뎌준 가족이 든든하다.

술 사 먹이며 등 두드려주고 첫 독자 노릇까지 해준 벗들과 웃으며 술잔을 나누게 돼 기쁘다.

청년시절에 잠깐 써본 이래로 늘 소설을 쓰고 싶었다. 발라드와 래퍼의 중얼거림 사이로 들려오는 록의 쿵쾅거림 같은 소설.

 

이 소설은 내 문학의 프롤로그다.


 

본문

그렇다면 그대는 정치를 할 생각인가?

바르게 세상 이치를 펴는 일이라면 여항의 백성보다 적합한 이들이 없나이다. 때가 오면 흙을 갈고 비가 오면 물을 대니 그들이 어찌 순리를 모른다 하며, 함께 누리는 즐거움을 낙으로 아는 자들인데 그것을 다만 무지라 하겠습니까. 사대부들이 있다 하나 그들의 일이 노()니 소()니 벽()이니 시()니 풀뿌리 하나 나고 자라는 이치에 맞지 않으므로 노상 의리(義理)를 이야기한들 어찌 그것을 정치라 하오리까? _본문 중, 흥성대원군과 전봉준의 대화

내일은 큰 싸움이 날텐데…… 선생님은 안 무서우세요?

전봉준의 희미하게 웃었다.

너는 무서우냐?

무섭습니다. 무섭고말고요.

바람에 바닥의 눈이 송진 가루처럼 쓸려 다녔다. 어디선가 눈의 무게를 견지지 못한 소나무가 와지끈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고, 추위를 참지 못해 지르는 군사들의 신음이 꼭뒤에 닿았다.

받아먹지 못한 환곡을 갚고, 노상 부역에다 군포는 군포대로 내는 세상으로 다시 가겠느나? 양반의 족보를 만드는 데 베를 바치는 수령들 처첩까지 수발을 들면서 철마다 끌려가 곤장을 맞을 테냐?

을개의 목소리가 퉁명해졌다.

이제는 그렇게 못 살지요.

나도 그렇게는 못 한다. 우리는 이미 다른 세상을 살았는데 어찌 돌아간단 말이냐? 목숨은 소중하지만 한 번은 죽는 법이다. 조금 당길 때가 오거든 그리하는 것이 사내의 일이다.

_본문 중, 우금치 전투를 앞둔 전봉준과 을개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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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는 듯 천천히
고레에다 히로카즈 지음, 이영희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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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걷는 듯 천천히.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에세이집이다. 다큐멘터리작가로도 잘 알려져있던 그가 니시니폰 신문에 동명의 제목으로 연재했던 글을 중심으로 엮어낸 책이다.

간혹 케이블 TV에서 일본영화를 해 줄 때가 있다. 딱히 특정 나라의 영화를 즐겨하는 편은 아닌지라 별 거부감없이 보게 되곤한다.

그렇게 만나는 일본영화들은 대부분 운이 좋게도 청소년영화이거나 가족영화였다. 피가 튀고 영웅이 나오고 진한 로맨스가 아닌 아이들이 웃고 가족들이 서로를 부등켜 안게 되는 엔딩을 품은 영화들은 때론 말도 안되게 유치한 장면에서조차 웃음을 빼물게 했다.

아..내가 이런 영화를 좋아하나보다..생각하게 된 계기이기도 하다.

그런 와중에 만난, 그런 영화를 만드는 감독의 이야기는 그런 영화와 닮았다. 사실 닮지 않는게 이상하기도 하지만 말이다.

길지 않은 글들..그의 어린 시절의 추억과, 어머니와 주변의 사물. 그리고 영화와 배우들의 이야기, 그리고 "3월 11일, 지금부터"라는 제목을 단 챕터에서는 예상했던 지진의 이야기도 펼쳐진다.

낡은 앨범을 펼치고 '이건 말야..', '이 영화에서는..' ,' 이 배우의 진정한 가치는..'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동네 전파사 아저씨가 있다면 얼마나 재미있을까? 생각했다.

편안하게 세상을 읽어내는 것은 세상을 가볍게 보기 때문이 아니라 애정을 품고 보기 때문이겠다 싶어졌다.

조금은 더 세상과 인간에 대한 희망과 기대를 품어야만 보이게 되는 작고 미세한 먼지..엄마는 언제나 내가 눈치채지 못했던 옷깃의 얼룩을 찾아내곤 하셨다.

어느것 하나 건성으로 보지 않았기에 가능한 일이었을게다. 감독의 시선은 그런식이다. 유심히 애정을 갖고 들여다 보는 것..그리고 그것의 본질을 자신의 시선이 닿은 자리부터 하나씩 진술(?)하는 것이다. 더함도 덜함도 없이..풍경을 이야기하고 그 속을 걷는 자신을 이야기한다.

걷는 듯 천천히 말이다.


#2. 호기심


그의 영화들이 궁금해졌다. 결국은 찾아보게 되었는데..이런, 내가 본 영화들이 꽤 된다. 이 감독의 영화였구나..

책을 읽으면서도 작가나 제목은 대충 넘겨버리는 사람이다보니 유난히 길고 조용한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들은 제목도 어영부영 알고있고, 감독이 누구인지따위이 관심도 없었다.

그렇지만 일단 시작하면 끝까지 보게 되는 영화들이었다. 어쩐지 여기서 그만두면 안될것 같은..그런 기분이 들게 하는 영화들..그 결말이 짐작이 되면서도 확인하게 하는 영화들..

그런면에선 참 흥미로운 영화들이다.

 


아마 최근작일게다. "바닷마을 다이어리"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의 스틸컷이다. 아버지의 모습은 없다. "그렇게 영화가 된다"라고 엔딩을 보며 읊조렸다.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의 스틸컷이다. 책에서 감독의 어린시절 수영장에 다니던 기억이 스며든 장면이라고 했다.

전차의 창문을 열고 바람을 맞던것을 연출하려했으나 모든 전차의 창문이 열 수 없게되어있어 버스를 썼다고..

어린 배우의 짧은 머리카락이 낮게 흔들리는 것을 보고 싶었다. 이런 표정이었구나..


"걸어도 걸어도" 다양한 포스터들 중에 (개봉된 나라마다 다른) 어쩌면 이 책의 표지여도 좋았겠다 싶은 포스터를 찾았다.


#3. 산다는 건.


"생명은

그 안에 결핍을 지니고

그것을 타자로부터 채운다.(p59)"


요시노 히로시씨의 <생명은>이라는 시의 일부분이다. 공기인형 시사회장에서 받은 편지에 적혀있던 구절이었다.

시의 주제와 영화의 주제가 멋지게 닮아있었다(p59)고 감독은 이야기한다.

"인간은 자신의 결점을 노력으로 메우려 한다. 그러한 노력은 현실에서도 영화에서도 미덕으로 그려진다. 꽤 오래전부터 말이다. 그러나 과연 인간이 혼자만의 힘으로 그런 극복을 이뤄낼 수 있을까? 해냈다 하더라도 그것은 정말 아름다운 일일까? 이 시는 이렇게 우리의 가치관을 되묻는 것 같았다(p59)" 라고 했다.

그리고 " 영웅이 존재하지 않는, 등신대의 인간만이 사는 구질구질한 세계가 문득 아름답게 보이는 순간을 그리고 싶다. 그러기 위해선 이를 악무는 것이 아니라, 금방 다른 사람을 찾아 나서는 나약함이 필요한 게 아닐까. 결핍은 결점이 아니다. 가능성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세계는 불완전한 그대로, 불완전하기 때문에 풍요롭다고 여기게 된다.(p60)" 고 마무리 한다.


일정부분 수긍하고 일정부분 수긍하지 못한다. 노력을 당연스레 강요하는 현실, 결핍을 인정하지 않고, 그 결핍을 같이 메꿔갈 타자로서의 지위는 망각한 채 어느 일방의 희생과 노력만을 강요할 수는 없는 일인것이다. 요즘 젊은 친구들의 '노오력'이라는 자조가 떠오른 대목이다.

그러나 결핍은 결점이 아니라는 것과 등신대의 인간이 사는 구질구질한 세계가 아름답게 보이는 순간을 꿈꾸는 감독의 시선에 동의한다.

그것이 '산다는 것'의 의미가 될지도 모른다는 판단에서이다.


위로가 된다는건..들어주는 것이다. 내 이야기를 누군가 들어주는 것이 큰 위로가 되기도 하지만, 다른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으며 천천히 자신의 삶을 되짚어가는 것도 큰 위로가 된다.

아버님이 돌아가셨을 때, 아가씨가 많이 울었다. 울면서 여러가지 이야기를 했었다.

아빠가 그랬잖아..라고 시작하는 말들을 하나씩 들으며 나도 그런 말씀을 들었었지, 그때의 아버님은..

뒤죽박죽 섞여버린 기억들을 다른 이의 이야기를 들으며 가지런히 정돈하게 된다. 이 말과 이 일은 이 때였어!


책을 읽으며 위로가 되었다.

아..나도 그래. 여기 잠깐 앉아서 들어볼까? 라고 자꾸 대답하게 된다.

천천히 걸을 수 밖에 없는 그런..


책장을 덮으며 친구의 벽장 속에서 꺼낸 앨범을 보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마친 느낌이었다. 살짝 퀴퀴하기도 하고 눅눅하기도 했던 냄새까지 나쁘지 않았던 그런 느낌..


음.. 이런 느낌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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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5-09-24 19: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바닷마을 다이어리, 보고 싶네요

파란놀 2015-09-25 06: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을 덮으면서 웃을 수 있는 즐거움을 누린다면
틀림없이 아름다운 책이리라 생각합니다.
구월이 살살 저물려 하네요.
 
별도 없는 한밤에 밀리언셀러 클럽 142
스티븐 킹 지음, 장성주 옮김 / 황금가지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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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해 유난히 스티븐 킹의 책을 자주 잡는다.

'복수'라는 키워드로 구성되었다는 네 개의 중단편.

1922. 빅 드라이버. 공정한 거래. 행복한 결혼생활.


어린 아들과 함께 아내를 살해하고, 그 죄책감에 조금씩 자멸해가는 남자의 이야기이다. 야금야금 쥐가 곳간의 문을 갉아먹듯 (쥐의 형상화는 압권이었다. )그렇게 공포는 시작된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결국 모든 것을 잃고 마는 남자.

빅드라이버는 상상만으로 어깨가 결리고 다리에 힘이 풀리는 이야기이다. 낯선 곳에서 호의를 베푼 남자에게 폭행당하는 여자. 그리고 그 남자를 찾아 복수하는 이야기.

공정한 거래. 정말 공정한가? 시기와 질투에 사로잡힌 사람들의 공정함이 얼마나 두려운것인지를 여실히 볼 수 있다.

행복한 결혼 생활.우연히 알게 된 남편의 비밀. 불쾌한 진실과 마주한 부부의 이야기.


우리가 복수라고 이름 붙이는 것들과는 사뭇 다른 상황이다. 막장 드라마에서 나오는 버림받은 여자의 복수. 부모의 억울한 죽음에 대한 복수..기타등등.

아주 작고 사소한 것에서 쌓여지는 분노가 불러오는 일종의 나비효과같은 복수들이다.

또한 이들의 복수는 성공하지만 결국 자신의 파멸이라는 댓가를 지불해야한다. 그렇다면 승자는 누구인가?의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다.


어릴 적, 복수는 복수를 부를 뿐이라며..용서가 가장 큰 복수라는 말을 귀에 딱지가 앉게 들었다.

그렇게 너그러운 용서로 상대의 죄책감이 무게를 늘리고, 그로 인해 복수의 상대가 평생을 참회하며 살아가게 하는 것이 가장 좋은 복수라고 말이다.

하지만, 세상은 그리 녹록치 않았고, 용서를 받은 상대는 오히려 기고만장해지는 것이 요즘의 정서 아닌가.


나를 불쾌하게 하는 것들, 나를 파괴하려 하는 것들, 그것들과 맞서 온 힘을 다해 싸우는 것. 그것으로 복수의 시작을 삼을 수도 있겠다.

어쩌면 세상에 태어나는 순간부터 세상의 구석구석에 포진해있던 온갖 부조리와 모순들은 나를 휘감았고, 알게 모르게 상처를 받은 '나'는 이 억울함을 어디에 풀어야 하는가.

피해와 불쾌함이 일상에서 온다면, 그 일상과 어떻게 대치해야하는가.


여기.

그 일상에서 만나지는 부조리와 전면전을 선언한 이들의 이야기가 이래도 되나 싶을만큼 구체적이고 잔혹하게 벌어진다.

스티븐 킹의 상상력과 필력에 고개를 끄덕인다. 상투적이지 않은, 지난 번 미스터 메르세데스를 덮으면서도 누가 피해자인가, 누가 가해자인가를 잠시 생각하게 하더니 이 책도 마찬가지다. 누가 피해자이고 누가 가해자인가.

선택의 책임은 있겠지만,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면..?


1922는 오랫동안 잔상이 남는 작품이었다. 심호흡을 하며 읽은 탓인지 사실 뒷편의 세가지 이야기의 감촉은 그렇게 차갑지 않았다.

아이가 자라며 망가지는 모습, 그 속에 품었을 원망과 두려움 결국은 제 목숨을 거두는 것으로 마무리를 지을 수 밖에 없었던 불행. 이 모든 것들의 처음 시작이었던 아버지.

조이스 캐럴 오츠의 섬뜩함과는 질감이 조금 다르다.

좀 더 예리한 칼로 한 꺼풀씩 저며내는 느낌이랄까? 올 여름을 스티븐 킹으로 넘길 수 있었던 것은 좋은 경험이었다.


<1922년 그 해에 내가 얻은 교훈이 있다면, 안 좋은 일에는 끝이 없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가장 끔찍한 상황을, 그러니까 모든 악몽을 합쳐서 현실에 빚어 놓은 섬뜩한 공포를 자기가 이미 겪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더 안 좋은 일이 일어날 수 없다는 믿음을 삶에 하나뿐인 위안으로 삼는다. 설령 일어난다고 해도 눈으로 본 순간 머리가 홱 돌아서 더는 알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더 끔찍한 일은 반드시 일어나고, 그때에도 당신의 머리는 멀쩡하다. 그래서 당신은 어떻게든 버텨야 한다. 그러다가 어쩌면 세상의 모든 즐거움이 사라져 버렸음을, 간절히 얻고자 했던 모든 것이 닿을 수 없는 곳으로 멀어졌음을 깨달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차라리 죽었으면 하고 바랄지도 모르지만...그래도 버텨야 한다. 스스로 만든 지옥에 빠진 것을 알아차렸다고 해도, 그럼에도 버텨야 한다. 그것 말고 다른 길은 없기 때문이다. (p77)>


어쩌면 이 단락이 별도 없는 한밤에를 설명하는 단락이 될것도 같다.

결정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결코 결정할 수 없고 버텨야 하는 상황의 공포...그것이 스티븐 킹의 복수에 관한 네가지 이야기 '별도 없는 한밤에'는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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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 - 제20회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
장강명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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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우주 알 이야기를 해줘. 어떻게 해서 지구에 왔는지. 어떻게 해서 지구에 왔는지. 어떻게 당신 안에 들어왔는지. 여자가 화제를 돌렸다. 내가 이해할 수 있게. 인간적인 시간의 순서대로 이야기해줘.

 나는 '처음에는' 공간 사이에 그냥 흩어져 있었어. 그러다 외우주를 떠도는 혜성을 보았어. 혜성에서는 재미있는 노래가 들렸어. 반음들이 불규칙하게 섞여서 특이한 멜로디였는데 리듬은 단순했어. 노래는 모두 패턴이야. 그래서 나는 모든 노래에 익숙해. 나는 혜성에 올라탔어.(p11)


고교시절 동료를 죽인 한 남자와 그 사내를 기억하는 여자. 그리고 남자에게 아들을 잃은 아주머니의 삶이 뒤엉켜진 이야기이다.

상실과 절망 사이에 용서와 화해가 자리할 공간이 있을까? 시간은 아무리 흘러도 화해를 가져오지 않고, 불규칙한 흐름 속에서 서로를 교차하며 시간은 만남과 기억을 소환한다.

피해자인지 가해지인지도 모호한 시간 속에 서로의 시간을 되짚어가는 과정은 삶의 패턴을 규명하는 과정으로 이어진다.

정말 미워했을까? 정말 단죄하고 싶었을까를 묻게 된다. 그 역시 연민이었고 그리움의 다른 표현이었을지도 모른다.

끝이었다고 생각되는 순간은 시작으로 이어지고 시공간불연속의 과정 속에서 아무것도 아닌 것일수도 있었다.


#. 2

두 글자의 단어 세개가 한쌍이 되어 놓인 챕터 하나하나를 넘긴다. 열쇠처럼 놓인 단어를 어떻게 사용해야할지 한참을 생각하면서 말이다.

단지 그 단어를 앞에 둘 수 밖에 없었던 설명이었다면 심드렁했을 수 있다. 단어 세개가 주는 호기심. 짧은 글 짓기를 하듯 그 단어를 넣어 스토리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는 결국 그 단어를 낳는다.

각 챕터가 잉태되는 과정은 과거로부터 되짚어오다 현재와 만나는 싯점에서 태어나게 된다.

 

이들이 모두 기억하는 어느 한 순간.

그 순간의 시공간이 정말이었는지도 믿을 수 없다.

우주적 공간과 현실과 과거의 설화까지 끌어오는 말 그대로 시공간을 초월하는 이야기이다. 초월적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비초월적 존재. 오로지 한방향으로만 진행하는 시간을 사는 이들이 과거의 어떤 싯점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만으로 이렇게 서로의 패턴을 나누게 된다.

아직은 그 문양과 방향도 모호한 카오스같은 패턴이 서로의 모습에 투영되는 나의 모습과 만나며 고유의 패턴으로 자리잡게 된다.

그믐.

그믐이라는 말이 주는 한계. 이후로 어둠이 이어질 것이라는 예고와 그 어둠의 뒤에 다시 시작될 새색시 손톱끝같은 초승달을 기대하듯 삶이란 그렇게 뒤엉킨 채 형체를 알아볼 수 없어 더는 유지될 수 없을 것 같아보여도 또 다른 시작을 품을 여지가 있다는 귓속말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믐이 지나고 새로운 달이 태어나는 패턴.

나는 어디쯤을 서성이고 있는지 문득 창을 열어 달의 모양을 확인해본다.


어쩌면 비관적일 수도 있었다.

익히 알고 있는 해피엔딩이란 것이 어쩌면 프레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오래 헤어져있던 이들이 마지막까지 만나지 못했다면 아쉬워한다. 마지막 순간 숨이 넘어가기 직전 찰나의 순간 서로를 확인했을 때 그래도 다행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런 것이 과연 해피엔딩일까?

한 방향으로 이어지는 시간처럼..하나의 틀로 삶의 해피엔딩을 규정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충분히 학습되고 경험되어진 것들이 늘 옳고 행복한 것은 아니라는 것. 그렇다면 화해와 용서가 해피엔딩이라는 것도 다시 생각되어야 할 조건은 아니겠는가.

모든 부분이 시작이고 모든 부분이 끝인 우주 알의 시각에서 삶은 얼마나 단조로운 패턴으로 이어지고 있는지..


창을 열고 크게 입을 벌려보았다. 씨받이 여인이 음기를 빨아들이듯..그렇게 하면 단조로운 패턴에 지루해진 우주 알이 내 속으로 들어올것만 같았다.

그러면, 그러면..두글자 단어 세개씩 커다란 바둑판 위에 삶의 패턴 처럼 내려두고 멀찍이서 살펴보고 싶어졌다.

그럴 수 있을까?

순진했다.

이 이야기는 잘 짜여진 거짓말이었는데..


#.3

'한국이 싫어서'라는 다소 도발적인 제목의 책으로 장강명과 만났다. 기존의 소설과는 사뭇 다른 결.

기자를 했었다고 했다. 어디부터 사실이고 어디부터 허구인지 모호한 지점을 자주 파놓은 작가의 기지가 재밌다.

작품 말미에 달아놓은 주석들..누구의 무슨 책이 아니라 언제 어디에 쓰인 기사들. 참신하다.


"제가 소설을 쓰는 첫번째 이유가 돈인것은 아닙니다. 세번째 이유쯤 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인생을 걸고 어떤 일을 할 때, 세번째 이윤는 결코 작은 문제가 아닙니다. 이 밥벌이의 싸움을 피하면서 다른 방식으로 현실에 참여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 계속 싸워서 글과 돈을 열심히 벌어보겠습니다. 쓰고 싶은 소설을 다 써서 더이상 소설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때까지, 굶어죽지 않고 살아남겠습니다. (작가의 말 중)"

상찬에 가까운 심사평이 눈에 걸렸지만 나는 이 작가가 품은 우주 알의 이야기가 계속 궁금할 것 같다.

솔직하게 현실적인 수상소감. 그것이 그의 목소리인지 우주알의 목소리인지 모르겠지만 그의 삶의 패턴을 응원하고 싶다.

열심히 글로 돈을 바꿀 수 있기를 바란다. 글이 돈이 되는 것이 권력에 기대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진정성으로 실험정신으로 평범하지만 평범하지 않은 힘으로 이루어지길 간절히 바라게 되는 것이다.

올 한해.

문학이라 불리우는 것들에 상처를 입었던 우리들에게 우주알이 들려주는 위로였지 않을까?


한방향으로 의심없이 걸어 온 내 시간들 속에는 어떤 그믐들이 있었는지 문득 궁금해지는 그런 밤에 책을 덮는다.

창문은 여전히 열어놓은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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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

 

< 소설가 김훈의 산문집. 오래전에 절판된 후 애서가들이 헌책방을 찾아헤매게 한 김훈의 전설적인 산문 <밥벌이의 지겨움>, <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 <바다의 기별>에서 기억할 만한 최고의 산문들만을 가려 뽑고, 그후 새로 쓴 원고 400매가량을 합쳐 묶어냈다. >

 

단단한 김훈의 글. 라면을 끓이며라는 제목 때문에 라면을 주니 냄비를 주니 싸인본을 주니..말이 많다.

새롭게 혁신하겠다는 문학동네의 별로 다르지 않은 어수선함이다.

저희 이런 것도 드려요..라는 이벤트.

그런 이벤트 대상 도서가 무려 '김훈'이라는 것이 사실은 좀 못마땅하다.

그의 글이 이렇게 라면과 냄비와 싸인이 동원되어야 할 만큼 경박스럽지 않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자전거 페달을 밟듯 묵묵히 단단히 제 길을 가는 것으로 김훈의 모습은 족하다.

갑자기 자전거에서 내려 개다리 춤이라도 추는 듯한 이 기분은 뭘까?

늙다리의 기우이길 바랄 뿐이다.

 

http://blog.naver.com/munhakdongne/220484953370

문학동네 블로그(?) 에서 묘한 것을 본다. 김훈의 말.

 

< 이 책은 오래 전에 절판 된 산문집, '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 ,'밥벌이의 지겨움','바다의 기별'에 실린 글의 일부와 그 후에 새로 쓴 글을 합쳐서 엮었다. 이 책의 출간으로 앞에 적은 세 권의 책과 거기에 남은 글들은 모두 버린다 - 김훈>

 

이 말을 읽으며 잠시 멍해졌다. 앞선 세 권의 책들이 버림받았다는건가? 이미 절판되어 더는 구하기 힘들고, 새로 찍을 이유도 없으니 그 책들의 글들 중 적당한 것들과 새로 쓴 것들만 끌어안고 나머지는 버린다는 말일까?

혹은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버리고..하는 어떤 말처럼 소유하지 않고 깨달아감을 이야기 하는걸까?

하지만 어찌되었든 오해의 소지는 있겠다 싶다.

 

어떤 의미일지가 사뭇 궁금해졌다. 그렇게 비장하게 버려진 아이들의 이땅에 있었던 흔적들과 더한 것들을 내어주며 이렇게 깽깽소리나는 이벤트가 가당키나 한건가? 글을 버리는 작가의 마음은 어떤걸까? 버린다는 의미는 무엇일까?

이 해명을 들을 순 있을까?

행간에 새겨진 우아한 의미가 있는데 내가 못 찾아내고 있는걸까?

 

어쨌든..나는 그냥 세권의 책을 끌어안기로 한다. 부모에게 버림받은 아이들처럼 처량해보이는 까닭이다.

대신..라면은 당분간 끓이지 않기로 한다. 이 부글부글한 열기가 한 김 빠지고 뭔가 김훈이 김훈처럼 보일 때..그때 냄비소리도 없이 끓는 소리도 없이 데려와도 늦지 않겠다.

 

뭔소릴까? 아직도 궁금하다.

 

  에고 불쌍한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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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놀 2015-09-18 18: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인출판사를 하는 제 이웃님도 ˝거기에 남은 글들은 모두 버린다˝라는 대목에
대단히 마음이 아팠다고 이야기했어요.

왜 `그런 표현`을 굳이 써야 했을까 싶은데,
저는 <밥벌이의 지겨움>이라는 책을
1판 1쇄로 저희 도서관에 두는데
그 책을 `버릴` 생각이 없답니다...
버릴 수가 없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