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 - 제20회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
장강명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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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우주 알 이야기를 해줘. 어떻게 해서 지구에 왔는지. 어떻게 해서 지구에 왔는지. 어떻게 당신 안에 들어왔는지. 여자가 화제를 돌렸다. 내가 이해할 수 있게. 인간적인 시간의 순서대로 이야기해줘.

 나는 '처음에는' 공간 사이에 그냥 흩어져 있었어. 그러다 외우주를 떠도는 혜성을 보았어. 혜성에서는 재미있는 노래가 들렸어. 반음들이 불규칙하게 섞여서 특이한 멜로디였는데 리듬은 단순했어. 노래는 모두 패턴이야. 그래서 나는 모든 노래에 익숙해. 나는 혜성에 올라탔어.(p11)


고교시절 동료를 죽인 한 남자와 그 사내를 기억하는 여자. 그리고 남자에게 아들을 잃은 아주머니의 삶이 뒤엉켜진 이야기이다.

상실과 절망 사이에 용서와 화해가 자리할 공간이 있을까? 시간은 아무리 흘러도 화해를 가져오지 않고, 불규칙한 흐름 속에서 서로를 교차하며 시간은 만남과 기억을 소환한다.

피해자인지 가해지인지도 모호한 시간 속에 서로의 시간을 되짚어가는 과정은 삶의 패턴을 규명하는 과정으로 이어진다.

정말 미워했을까? 정말 단죄하고 싶었을까를 묻게 된다. 그 역시 연민이었고 그리움의 다른 표현이었을지도 모른다.

끝이었다고 생각되는 순간은 시작으로 이어지고 시공간불연속의 과정 속에서 아무것도 아닌 것일수도 있었다.


#. 2

두 글자의 단어 세개가 한쌍이 되어 놓인 챕터 하나하나를 넘긴다. 열쇠처럼 놓인 단어를 어떻게 사용해야할지 한참을 생각하면서 말이다.

단지 그 단어를 앞에 둘 수 밖에 없었던 설명이었다면 심드렁했을 수 있다. 단어 세개가 주는 호기심. 짧은 글 짓기를 하듯 그 단어를 넣어 스토리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는 결국 그 단어를 낳는다.

각 챕터가 잉태되는 과정은 과거로부터 되짚어오다 현재와 만나는 싯점에서 태어나게 된다.

 

이들이 모두 기억하는 어느 한 순간.

그 순간의 시공간이 정말이었는지도 믿을 수 없다.

우주적 공간과 현실과 과거의 설화까지 끌어오는 말 그대로 시공간을 초월하는 이야기이다. 초월적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비초월적 존재. 오로지 한방향으로만 진행하는 시간을 사는 이들이 과거의 어떤 싯점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만으로 이렇게 서로의 패턴을 나누게 된다.

아직은 그 문양과 방향도 모호한 카오스같은 패턴이 서로의 모습에 투영되는 나의 모습과 만나며 고유의 패턴으로 자리잡게 된다.

그믐.

그믐이라는 말이 주는 한계. 이후로 어둠이 이어질 것이라는 예고와 그 어둠의 뒤에 다시 시작될 새색시 손톱끝같은 초승달을 기대하듯 삶이란 그렇게 뒤엉킨 채 형체를 알아볼 수 없어 더는 유지될 수 없을 것 같아보여도 또 다른 시작을 품을 여지가 있다는 귓속말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믐이 지나고 새로운 달이 태어나는 패턴.

나는 어디쯤을 서성이고 있는지 문득 창을 열어 달의 모양을 확인해본다.


어쩌면 비관적일 수도 있었다.

익히 알고 있는 해피엔딩이란 것이 어쩌면 프레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오래 헤어져있던 이들이 마지막까지 만나지 못했다면 아쉬워한다. 마지막 순간 숨이 넘어가기 직전 찰나의 순간 서로를 확인했을 때 그래도 다행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런 것이 과연 해피엔딩일까?

한 방향으로 이어지는 시간처럼..하나의 틀로 삶의 해피엔딩을 규정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충분히 학습되고 경험되어진 것들이 늘 옳고 행복한 것은 아니라는 것. 그렇다면 화해와 용서가 해피엔딩이라는 것도 다시 생각되어야 할 조건은 아니겠는가.

모든 부분이 시작이고 모든 부분이 끝인 우주 알의 시각에서 삶은 얼마나 단조로운 패턴으로 이어지고 있는지..


창을 열고 크게 입을 벌려보았다. 씨받이 여인이 음기를 빨아들이듯..그렇게 하면 단조로운 패턴에 지루해진 우주 알이 내 속으로 들어올것만 같았다.

그러면, 그러면..두글자 단어 세개씩 커다란 바둑판 위에 삶의 패턴 처럼 내려두고 멀찍이서 살펴보고 싶어졌다.

그럴 수 있을까?

순진했다.

이 이야기는 잘 짜여진 거짓말이었는데..


#.3

'한국이 싫어서'라는 다소 도발적인 제목의 책으로 장강명과 만났다. 기존의 소설과는 사뭇 다른 결.

기자를 했었다고 했다. 어디부터 사실이고 어디부터 허구인지 모호한 지점을 자주 파놓은 작가의 기지가 재밌다.

작품 말미에 달아놓은 주석들..누구의 무슨 책이 아니라 언제 어디에 쓰인 기사들. 참신하다.


"제가 소설을 쓰는 첫번째 이유가 돈인것은 아닙니다. 세번째 이유쯤 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인생을 걸고 어떤 일을 할 때, 세번째 이윤는 결코 작은 문제가 아닙니다. 이 밥벌이의 싸움을 피하면서 다른 방식으로 현실에 참여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 계속 싸워서 글과 돈을 열심히 벌어보겠습니다. 쓰고 싶은 소설을 다 써서 더이상 소설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때까지, 굶어죽지 않고 살아남겠습니다. (작가의 말 중)"

상찬에 가까운 심사평이 눈에 걸렸지만 나는 이 작가가 품은 우주 알의 이야기가 계속 궁금할 것 같다.

솔직하게 현실적인 수상소감. 그것이 그의 목소리인지 우주알의 목소리인지 모르겠지만 그의 삶의 패턴을 응원하고 싶다.

열심히 글로 돈을 바꿀 수 있기를 바란다. 글이 돈이 되는 것이 권력에 기대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진정성으로 실험정신으로 평범하지만 평범하지 않은 힘으로 이루어지길 간절히 바라게 되는 것이다.

올 한해.

문학이라 불리우는 것들에 상처를 입었던 우리들에게 우주알이 들려주는 위로였지 않을까?


한방향으로 의심없이 걸어 온 내 시간들 속에는 어떤 그믐들이 있었는지 문득 궁금해지는 그런 밤에 책을 덮는다.

창문은 여전히 열어놓은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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