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것들의 과학 - 물건에 집착하는 한 남자의 일상 탐험 사소한 이야기
마크 미오도닉 지음, 윤신영 옮김 / Mid(엠아이디)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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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질의 세계


물질과 물질의 연관관계 속에서 살아간다. 나를 둘러싼 것들, 내가 살아내는 과정에 필요한 도구 혹은 목적으로서 작용하는 모든 물질들. 그것들을 사용하고 영유하는 나 조차도 물질이다. 존재론적인 구분이건 구조주의적 구분이건 분명한 건 물질이다. 그렇다면 살아낸다는 건 어쩌면 물질과의 연관성 속에서 진화하는 것은 아닐까? 좀 더 의미있는 물질로의 전환같은..

이런 엉뚱한 생각을 하게 하는 책이다. 과학이라는 것이 거창하고 복잡한 어떤 이론이 아니라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조건과 물질의 복합관계를 규명하는것이라면 소소할 필요가 있기도 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딱딱하지 않게 구체적으로 생활어로 쓰여지는, 단순한 과학적 지식뿐 아니라 그것이 어떻게 활용되게 되었는지에 대한 시초와 역사 사회적 특징까지 묻어난다면 더할나위 없이 흥미롭다. 그러기 위해서는 저자의 학문적 완성도와 사유가 요구될 것이 분명하다. 마크 미오도닉. 낯선 이름이다. 세상의 모든 유명인을 알지도 못하고 알고 있을 필요도 없지만 기억하고 싶어진다.

마치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개미를 처음 읽었을 때와 유사한 느낌이었다고 할까?

반박하고 싶지 않은, 아니 좀 더 정확히 반박하기 어려운 논리적이며 감성적이기까지 한 이야기이다. 과학이 인간의 삶에 어떻게 작용하게 되는지 그것에서부터 출발한 연구는 얼마나 치열하게 진행되고 있는지를 고스란히 읽어낼 수 있다.


# 열개의 물질, 혹은 재료


강철, 종이, 콘크리트, 초콜릿, 거품, 플라스틱, 유리, 흑연, 자기, 생체재료.

목차를 읽는다. 열개의 재료 앞에 붙은 수식어가 어쩌면 이 물질의 본질과 발전방향을 보여주고 있는건지도 모르겠다고 잠깐 생각했다.

불굴의 강철, 미더운 종이, 기초적인 콘크리트, 맛있는 초콜릿, 경탄할 만한 거품, 상상력이 풍부한 플라스틱, 보이지 않는 유리, 부저시시 않는 흑연, 세련된 자기, 불멸의 생체재료.

이 모든 재료들이 문명사적으로 시작하여 과학적으로 발전하게 되는 과정을 자신의 이야기와 버무려 위트있게 풀어낸다.

과학이라는 단어와 가장 닮아보이는 강철(개인적인 느낌, 혹은 이미지겠지만)로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에 수긍하며 읽어낸다.

하나의 사건으로부터 촉발되는 강철에 대한 집착. 그리고 깨닫게 되는 주변의 모든 쇠, 철들..우리가 인지하고 있든 그렇지 못하든 물질들은 주변을 가득채우고 삶의 내용을 채우는 도구로서의 역할을 훌융하게 하고 있다. 때때로 오해를 받기도 하지만 물질의 잘못이 아닌 사용의 부적절함이 가져온 결과일 뿐이다.

그렇다면 모든 물질은 순수한가? 라고 도덕적 반문을 해보기도 하지만 불필요한 허영이다. 모든 곳에 있다는 자명한 사실과 물질 스스로가 효용성을 드러내진 않았으니 말이다.

우연한 발견과 과학적 요구들이 빚어낸 결과물에 대한 책임을 물질에게 돌릴 수는 없다. 그렇다면 그 성과 또한 재료의 몫이어야 할테니까 말이다.


작가의 이야기 속에 스며들어있는 재료들의 이야기가 피상적일 수도 있겠지만 구체적인 성질과 원리를 조목조목 짚어내면서 어렵지 않게 몰입하게 하는 것이 이 책의 장점이겠다.

특히나 꼬마 아이가 그린 것 같은 정체불명의 삽화들이 오히려 쉽게 납득이 되기도 한다. 초정밀 현미경으로 본 사진보다 훨씬 설득력이 있다.

따라 그려보게 되는..그럼으로 좀 더 쉽게 이해하게 되는 장치처럼 말이다.

잠깐 둘러보니 차례에 있는 모든 재료들이 옆에 있다.


택배 박스를 뜯을 때 쓰는 안전칼 속에, 펼쳐둔 책에, 종종거리며 올라온 계단에, 책상 위에 놓인 비상식량 초코파이에, 핸드폰 케이스에 잡다한것들을 담아둔 트레이 속 연필에, 조금 전 마신 커피잔에..기타등등..

이런 물질들은 어떻게 발전의 방향을 잡게 될까? 암묵적 합의는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것에 맞춰져 있을게다.

좀 더 안전하고, 편리하고, 건강하게..

그렇다면 물질로서 인간은 어떻게 물질계에서 자신의 역할을 해내야 하는걸까? 소모와 소비의 주체가 아닌 리싸이클의 대안은 없는것인가? 하는 맹탕한 자문을 해본다.



# 현실적인.


사소한 것들의 과학이라고 했다. 사소함이란 의미없음이 아니라 의미의 시작이라는 말의 다른 표현이지 않을까?

아주 작은 발견에서 분석되고 활용되서 우주의 저편까지 상상하게 하는 힘. 그것이 사소함의 힘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카카오 열매에서 우주의 물질까지 늘 사용하는 것에서 어쩌면 사용하게 될지도 모를 것까지, 이미 알고 있던 것에서 이제 알게된 것까지. 열개의 에피소드(?)를 처음 글자를 배운 사람처럼 읽는다. 한 꼭지를 읽고나면 '오~~' 하는 소리를 내며 이걸 누구에게 말해줄까?를 생각하게되는 재미도 있다.

때때로 '쉬운'이라든가 '재미있는' 이라든가 '누구나 가능한'이라는 제목들을 단 과학도서나 수학도서를 집어들고 실망하기도 한다.

너무 가볍거나 절대로 재미있지 않아서 말이다. 그렇게 읽고 나면 점점 재미없는 것으로 과학이 밀려나고 수학이 밀려난다.

그런 면에서 '사소한 것들의 과학'은 꽤 유용하다. 조금 더 알고 싶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섬유, 물, 세제, 아! 알콜 같은 것들..


전문적이며 일상적인, 사소하지만 인상적인 책을..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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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로들의 집
윤대녕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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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대녕의 신작 장편소설..기대가 컸다. 순전히 자의적 판단이겠지만 그와 나의 주파수가 잘 맞는다고 생각했다. 어떤 작가와 코드가 맞는다는 건 매우 흡족한 일이다. 책을 읽는다는 건 어쩌면 자신이 공명할 수 있는 주파수를 찾는 과정일거라고 늘 생각하는 까닭이다. 거기에 맞는 작가를 찾는다는 건..그래서 좋은일임에 분명하다.

오래 기다려 만나게 된 책.

기대는 한없이 부풀었고, 표지를 빤히 들여다 보다가 무의식적으로 '쓱~ 읽어보겠어요'라고 할만큼 좋았다.

마치 내 입맛을 아는 초콜릿 장인의 신작 초콜릿이 멋진 포장을 입고 내 손에 올려진 느낌..

 

 

#1. 분해된 군상

 

퇴락한 연극배우이자 극작가인 김명우가 아몬드 나무 하우스에 들어오며 사람들을 만난다. 거기 모인 사람들은 세상에 깊이 박혀있다 떨어져 나온 조각들이다. 우연과 인연의 루트로 재조합 된 사람들. 그들을 가족이라 부를 수 있을것인가에 대해 묻게 된다. 어떤 혈연적 연결이나 사회적 수긍이 있지 않은 다만 공간을 공유하며 교집합을 늘여가는 것만으로도 가족이라 할 수 있다면 넓은 의미의 가족일 수 있겠다. 넓고 넓어 희미한 가족일 수 있겠다. 그렇게 넓혀가다보면 가족이 아닌 대상이 있을까?

우연이라고는 하지만 직감할 수 있었다.

구성원 하나 하나의 이야기가 익숙하고 미리 그림이 그려졌다. 드라마나 소설을 너무 많이 본 탓이다.

 

작가는 <수년 전부터 나는 도시 난민을 소재로 한 소설을 구상하고 있었다. 가족 공동체의 해체를 비롯해 삶의 기반을 상실한 채 실제적 난민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고 보았던 것이다. 이들은 근본적으로 타인과의 유대가 붕괴되면서 심각하게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존재들이다. 나는 이 훼손된 존재들을 통해 새로운 유사 가족의 형태와 그 연대의 가능성을 모색해보고 싶었다. 이는 삶의 생태 복원이라는 나의 문학적 지향과도 맞물리는 것이었다>라고 작가의 말에 덧댔다.

도시 빈민의 문제가 결국 도시 난민의 문제로 재구성된 것일지도 모를일이다.

나는 어쩌면 묻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들이 조각이 되고 도시난민이 되어지는 과정, 가족 공동체의 해체의 원인을 어디에서 찾아야하는가? 라고 말이다.

 

기대가 너무 컸다.

 

#2.

 

연극배우이자 극작가를 이야기의 중심에 두고 연극을 하듯 구성된 글은 독자를 관객으로 만든다.

도입부에서부터 다양한 소품들이 배치되기 시작한다.

고흐가 나왔고, 바흐가 나왔고, 셜리에 관한 모든 것이 나왔고, 에드워드 호퍼가 언급되고..

사실, 이 모든 것들을 알아야만 이 감성이 이해되고 공감하게 되는 것은 아니겠으나, 이것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면 어떤 허영으로밖에 보여지지 않을 소품들이었다.

나의 피폐한 상상력은 난민들이 모여든 시공간이 어쩐지 이질감을 갖게 한다.

이것이 치유와 연대를 위한 어떤 예시였다고 한다면 할 수 없는 일이겠지만..

작가의 글에 일대 변화가 생긴 작품이라고 했다. 담백하게..진솔하게..

읽는 동안 나는 자꾸 그의 전작들이 눈에 밟혔다. 윤대녕이라는 이름이 갖는 지문같은 그의 이야기들의 결이 내내 아쉬웠다.

깔끔하게 떨어지는 어떤 여운. 그런것이 그리웠는지도 모른다.

낯설게 펼쳐서 애매하게 혹은 서둘러 지어버린 마무리가 아닌..

 

예를 들면, 그의 전작 "호랑이는 왜 바다로 갔나"를 읽고 나서 나는 이런 리뷰를 썼었다.

 

<(어디선가 환청처럼 혀차는 소리가 들려온다. 집중한 수업시간에 부주의한 선생의 손톱이

칠판을 긁는것과 비슷한 느낌으로..)

쯧쯧..

 

영빈 : 씨익 (어깨를 토닥이며 웃는다)

해연 : 씨익 (마주보고 웃는다.)>

 

 

#3. 그래서..

잘 읽히지 않았다. 나는 자꾸 아쉬워서 책을 덮었다 펼쳤다를 반복하며 종내 이상한 짓을 하게 되었다.

기껏 책 껍데기를 벗겨서 읽다가 노랑을 칠하고 파랑을 칠하고 빨강과 검정을 칠해서 겉표지처럼 만들어대는 만행을 저지르고 말았다. 집중해도 모자랄판에 딴짓이라니..

 

 

 

 

호불호가 갈릴 게 분명하다.

어쩌면 작가가 시도한 변화에 독자들의 호불호가 큰 발화점이 될지도 모른다. 어떤 질적으로의 도약을 위한..

다음에 조금 더 쫀쫀하고 윤대녕스러운 글을 기대해 보기로 한다.

극찬의 리뷰들 속에 조금 민망하기도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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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의 나라, 브라질 빠우-브라질 총서 2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김창민 옮김 / 후마니타스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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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1년에 쓰인 슈테판 츠바이크의 브라질 이야기.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75년 전의 이야기인 셈이다.
2차 세계대전이 유럽과 세상을 휩쓸고 있을 때, 제국주의와 식민지배가 정점을 찍고 있을 때 희망이란 것을 어디에서 찾아야할지 망연한 그 때 브라질을 찾아 쓰게 된 글이다.
선민의식이 불러온 대 참사, 학살과 파괴로 들끓는 유럽에서 빠져나온 것 만으로도 숨통이 트였을거다. 게다가 다민족으로 이루어진 온전히 열려있는 나라 브라질은 화해의 파라다이스처럼 보였을게 분명하다. 천혜의 자원을 품고 있으며 아마존이 있고 삼바가 있는 나라, 특유의 낙천적인 여유를 가진 사람들..혼혈이 부끄럽지 않은 나라..그 곳에서 인류의 미래의 모습을 그려낸다.

개척자들에 의해 우연히 발견된 것이라고 알고 있는 아메리카 대륙과 브라질..포르투갈과 스페인의 식민정책의 한 가운데 브라질이 있었다. 서로 주도권을 쥐려고 하는 형국, 유럽의 침탈이 다각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다양한 대립도 있어왔다. 그때마다 주도권을 쥔 국가에 의해 새로운 정책들이 제시되고 새로운 사람들이 몰려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부족한 인구 수를 보충하기 위해 아프리카의 사람들도 유입되기 시작한다. 유럽과 토착민과 아프리카의 사람들까지 얽혀 살게 되는 묘한 형국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런 상황들에 순응하며 혼돈이 아닌 독특한 문화와 역사를 꾸려가기 시작한다. 이 지점이 묘하다. 문명의 역할로 들어온 강대국, 지배국들의 문명화 식민화의 계획과 그 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마치 천연자원처럼 주어진 특질들이 어우러지기 시작한다.

미래의 나라 브라질..미래에 대한 대안일 거라는 생각을 갖게 하는 제목이다.
처음 책을 보게 되었을 때, 어쩌면 자본의 시대에 뒤틀린 나라들에게 제시할 또 다른 정치경제적 모델로서의 브라질을 기대했는지도 모른다. 사실 다르지 않다.
전운이 감도는 한창 파괴가 시작된 유럽인의 시각으로 본 브라질은 망가진 유럽의 대안이 될 수 있을 것 같았을테니 말이다. 평등한..누군가를 비하하는 단어를 갖고 있지 않은 평등한 나라 브라질.
미래의 나라라는 말을 그런 대안적 국가로서 브라질을 이야기 하지만, 다른 한편 식민정책으로 브라질에 들어온 예수회가 만들고자 했던 공동체 브라질의 청사진이기도 했다.
장기적으로 그 혈맥을 만들어나가려던 사람들..그들의 계획이, 그들이 만들어 갈 미래의 브라질이 망가질까 노심초사하던 사람들..

환상적인곳, 굴곡진 역사와 침탈로 시작된 식민지배가 이어져 온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특유의 문화와 질감을 갖고 있는 나라 브라질. 음악과 문학과 (희곡은 그리 발전하지 못했던..) 미술과 다양한 아름다움을 표출해 내는 나라.
문득 강대국의 정복전쟁이 벌어지던 격동의 시대에 모든 것을 빼앗겨야 했던 나라와 독특한 역사만큼 다채로운 문화와 다양성을 확보한 나라에 대한 생각이 많아진다.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미래의 국가는 어떤 모습일까..기술과 문명이 고도로 발달한 그런..모든 분야에 알파고와 같은 인공지능이 배치되고 완벽한 정체체제가 구축되는 그런 모양일까?
아니면, 원시의 그것처럼 `사람`과 `공존`이 주장하거나 강요하지 않아도 구현되는 그런 모양일까..
미래는 인간성에 있을거라는 생각에 동의한다.
지구의 한 복판에서 벌어지는 참상과 상관없이 남미의 어느 곳에서 보여내는 사람과 사람의 미래는 매력적이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오래 전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낯설지 않다. 브라질 특유의 문화가 어떻게 생성되고 그들의 국민성과 발전의 근거가 무엇인지에 대한 회고처럼 읽힌다.
기반.
그런 기반을 확인한 것 같다. 어떤 기원을 본것 같다.

이곳에서 모든 것을 보는 것은 누구에게도 허용되지 않는다. 분별력이 있다는 것은 시간에 순응할 줄 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나는 내 자신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번에는 이것으로 충분하다!˝ (p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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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3월 11일 법정스닙이 입적하셨다.

2011년 3월 11일 일본에 쓰나미가 왔었다.

2013년 3월 11일 북한은 한국전쟁 정전협정을 백지화한다고 했다.

2014년 3월 11일 한국과 캐나다의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했다.

작년? 작년엔 내 친구가 책 폭탄을 쏘았다.

올해도 여전히 책 폭탄이 날아왔다.

장바구니에서 가격때문에 자꾸 밀리던 것들과 못 읽고 쌓아둔 것이 미안해서 차마 구입하지 못하고 머뭇대던 책들을..

받게 되었다.

지인으로부터 시집도 ..

이 모든걸 기프티북으로 받는다. 세상 좋아졌다고 혼자 고개를 주억인다.

 

 

 

 

 

 

 

 

 

 

 

 

 

 

 

 

 

 

 

 

 

 

 

 

 

 

 

 

 

 

 

 

 딱히 먹는 것을 좋아하지도 않고, 노는 것도, 치장을 하는 것도, 돌아다니는 것도 좋아하지 않는 히키코모리의 지인들 답게 다양한 책들을 보내주었다. 기억조차 가물거리는 생일이라는 말..어쩐지 쑥스럽고 어쩐지 민망한 날이다.

축하해요..라는 메시지를 들여다보며 감사해요..라는 답장을 보내놓고, 뭘 축하받아야 하는거지? 라고 한참 생각했다.

한 사람 분의 공기를 축내는 것 외에 달리 보탬이 되는게 없는데 말이다.

 

멀리 있으며 얼굴도 모르지만 '지인'이라 칭해지는 사람들의 선물..이런 선물을 받을 수 있다는 건 축하받을만 했다.

자신도 기억해두지 않는 날짜를 기억해 주는 이들이 있다는 건 축하받을만 했다.

그래..잘 태어난거네..

내가 잘 태어났다고 생각하게 해주는 사람들에게 감사할만 했다.

감사할 충분한 이유이다.

 

미역국도 안먹고 아침도 점심도 건너뛰었지만..저녁은 챙겨먹기로 한다.

잘 살아보자고..그래야 잘 읽을 수 있다고..잘 태어났다고..그냥 고개만 끄덕이며 수긍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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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대륙기 1 블랙 로맨스 클럽
은림 지음 / 황금가지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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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식물, 나무, 그리고 사람.


책을 받아들고 얼마전 읽은 간절히 나무가 되고 싶어한 여자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 여자가 살만한 나라가 여기일까? 나무대륙..

빨간 꿀이 있는 꽃 서미 꽃이지만 꽃이 아닌 무화. 여기서 출발하는 이야기는 작은 화단이나 동산의 이야기가 아닌 우주와 사람과 권력과 탐욕의 이야기로 번진다.

나무와 꽃의 이름을 빌려온 사람들. 그래서였을지 '거기 단풍이 있었다'라는 문장을 읽으며 우직한 캐릭터 단풍과 함께 그의 그림자처럼 투영되는 빨간 잎새의 단풍나무를 같이 떠올리게 된다. 그림자를 품은 이름들..덕분에 입체감과 생동감이 더 풍성해졌다. 2D의 캐릭터들이 3D의 위치를 얻은것처럼..

은림이라는 작가도 낯설고, 소녀소녀한 일러스트도 낯설다. 하지만 읽기로 한다. 조금은 여성스러운 문체와 고전이 연상되는 시간 속에서 느껴지는 현대적 시니컬함 같은 묘한 부조화가 오히려 매력적이다.

설핏, 몇 해 전에 보았던 화벽이라는 영화의 이미지를 자꾸만 덮어씌우며 읽어나가기도 한다. 그러자 우습게도 익숙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이런 잔꾀를 끌어들여 읽어댈만큼 나쁘지 않았다.

자연이라고 통칭하여 이야기 할 때, 본래의 자리라고 이야기 할 때, 부지불식간에 떠올리게 되는 식물들과 나무들과 꽃들..거기가 시작이었기에 낯섬은 이내 사그라들었을지도 모르겠다.


#2.

반공주 서미와 호위무사이자 시녀인 무화. 궁중에서 쫓겨난 녹옥공주의 혼외자식 서미, 서미의 오랜 친구인 무화. 녹옥공주의 회궁길에 사창가로 끌려가 죽을 고비를 넘기고 난 후 서미와 무화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가 된다. 비밀을 공유한 관계. 이름없는 산에서 자란 두 여자아이의 이야기는 여러번의 지레짐작을 무위로 돌리며 긴장감있게 진행된다.

반공주 서미의 신분회복을 위해 암투를 벌이는 이야기일까? 싶다가, 반하를 사이에 둔 로맨스일까? 싶다가 그녀들을 팔아넘기려했던 자들에 대한 복수일까? 했다가 신비한 어둔과 밤, 옥이 마주서는 어떤 우주적 기운의 대립인가?..끝없이 확장되는 이야기의 구조는 다소 어지럽기까지 하다.

다만 상황에 이끌려다니는 것이 아닌, 그 중심에서 이야기를 끌어가는 단단한 축으로 서미와 무화가 흔들림 없이 서 있다는 것이 흥미롭다.

나무의 대륙에서 꽃과 나무의 이름을 가진 인물들의 동물적인, 말 그댇로 너무나 동물적인 사고와 행위들이 이질감 없이 읽힌다는 건 식물계를 동경하는 동물계의 로망같은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소외된 존재일 수 있는, 내몰린 지위의 사람들이 세상의 책무를 짊어지게 되는 태생적, 후생적 조건과 사건들이 결국은 우주의 어느 것 하나도 그냥 있는 것은 없다는 말의 반증이다. 그것이 다분히 감각적이거나 분석적인 서사가 아닌 신분과 사랑과 빛과 어둠, 선과 악같은 신비한 이야기와 맞물린 서사로 매력적인 가독성을 확보하게 된다.

길 가의 작은 들꽃조차 품고 있는 전설, 그런 전설들이 '세상'을 엮는 얼개의 한 부분임을 인식하게 하는 것이다.

삶은 외부의 어떤 힘에 통제되는 것이 아니라 목숨걸고 지켜내야 하는 자신의 서사이며 유일한 내 것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된다. 가로막는 무수한 장애물들, 탐욕과 이기심이 빚어낸 단단한 바리케이트를 뚫고 나가는 힘은 결국 내 속에서, 나와 손 잡은 이에게서 나오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지켜내야 마땅할 의미들..

슬픔과 상실은 어쩌면 살아있는 동안은 해소되지 않는 천형의 흔적으로 남는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혼란 속에서 요구되는 많은 선택들의 결과는 자신의 몫일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섬세한 문장들, 내면의 동요와 비열한 수작들이 고스란히 그려진다. 현재의 시간, 인간계의 한 부분인 내게 반감없이 읽힌다는 것이 한편 고맙고 한편 의아하다. 빠른 진행으로 숨가쁘게 읽어낸 후, 아..근데 아까 그건 뭐였지? 하게 되는 부분도 있었다. 숲을 보고 달리다 나무를 놓치는 셈이다. 조금 더 식물의 언어일 수는 없었을까? 조금 더 인간의 마음이 아니었으면 어땠을까? 생각해보지만 어차피 사람이 읽을 글..대안이 없었겠지..라고 혼자 중얼거려본다.


환상문학..환상인데 실제 같다. 볼 수 있었던, 가능하리라고 생각하는, 어딘가에서도 봤던, 그런 이야기들이 뒤엉켜있다는 느낌도 받는다. 귀신 이야기가 어슷비슷 비슷한 것처럼..

표지의 일러스트때문인지 곱고 고운 여인 서미를 자꾸 생각하게 된다. 이미지가 규정된 채 읽다보니 답답하기도 하다.


#3.

알지 못하는 세계를 엿보는 건 재미있다. 환상문학이라 명명되는 작품들의 매력이 거기 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RPG게임의 스토리같기도 한 나무대륙기. 작가는 이 글을 써야만 했다고 했다. 쓰지 않으면 아무것도 못할 것 같아서..

그렇게 간절하게 써낸 이야기..풋풋한 호흡으로 읽어내는 것으로 예의를 다하고 싶었다. 나무의 잎새에 가려진 태양..풋풋함의 댓가로 감당해야 하는 그림자..

겪어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성취감과 그 성취감을 갖기 까지 감내해야 하는 혼돈과 고통. 굴복하지 않는 신념. 비법하고 우람하고 잘생긴 남자가 아닌 세상에서 밀려난 꽃의 이름을 가진 여자들이 중심에 선 이야기.

책을 덮고 생각해본다. 내 어둔에게도 이름을 붙여줘야겠다고...숨을 오래 참고 무화에게 다녀와도 좋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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