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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것들의 과학 - 물건에 집착하는 한 남자의 일상 탐험 ㅣ 사소한 이야기
마크 미오도닉 지음, 윤신영 옮김 / Mid(엠아이디) / 2016년 4월
평점 :
# 물질의 세계
물질과 물질의 연관관계 속에서 살아간다. 나를 둘러싼 것들, 내가 살아내는 과정에 필요한 도구 혹은 목적으로서 작용하는 모든 물질들. 그것들을 사용하고 영유하는 나 조차도 물질이다. 존재론적인 구분이건 구조주의적 구분이건 분명한 건 물질이다. 그렇다면 살아낸다는 건 어쩌면 물질과의 연관성 속에서 진화하는 것은 아닐까? 좀 더 의미있는 물질로의 전환같은..
이런 엉뚱한 생각을 하게 하는 책이다. 과학이라는 것이 거창하고 복잡한 어떤 이론이 아니라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조건과 물질의 복합관계를 규명하는것이라면 소소할 필요가 있기도 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딱딱하지 않게 구체적으로 생활어로 쓰여지는, 단순한 과학적 지식뿐 아니라 그것이 어떻게 활용되게 되었는지에 대한 시초와 역사 사회적 특징까지 묻어난다면 더할나위 없이 흥미롭다. 그러기 위해서는 저자의 학문적 완성도와 사유가 요구될 것이 분명하다. 마크 미오도닉. 낯선 이름이다. 세상의 모든 유명인을 알지도 못하고 알고 있을 필요도 없지만 기억하고 싶어진다.
마치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개미를 처음 읽었을 때와 유사한 느낌이었다고 할까?
반박하고 싶지 않은, 아니 좀 더 정확히 반박하기 어려운 논리적이며 감성적이기까지 한 이야기이다. 과학이 인간의 삶에 어떻게 작용하게 되는지 그것에서부터 출발한 연구는 얼마나 치열하게 진행되고 있는지를 고스란히 읽어낼 수 있다.
# 열개의 물질, 혹은 재료
강철, 종이, 콘크리트, 초콜릿, 거품, 플라스틱, 유리, 흑연, 자기, 생체재료.
목차를 읽는다. 열개의 재료 앞에 붙은 수식어가 어쩌면 이 물질의 본질과 발전방향을 보여주고 있는건지도 모르겠다고 잠깐 생각했다.
불굴의 강철, 미더운 종이, 기초적인 콘크리트, 맛있는 초콜릿, 경탄할 만한 거품, 상상력이 풍부한 플라스틱, 보이지 않는 유리, 부저시시 않는 흑연, 세련된 자기, 불멸의 생체재료.
이 모든 재료들이 문명사적으로 시작하여 과학적으로 발전하게 되는 과정을 자신의 이야기와 버무려 위트있게 풀어낸다.
과학이라는 단어와 가장 닮아보이는 강철(개인적인 느낌, 혹은 이미지겠지만)로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에 수긍하며 읽어낸다.
하나의 사건으로부터 촉발되는 강철에 대한 집착. 그리고 깨닫게 되는 주변의 모든 쇠, 철들..우리가 인지하고 있든 그렇지 못하든 물질들은 주변을 가득채우고 삶의 내용을 채우는 도구로서의 역할을 훌융하게 하고 있다. 때때로 오해를 받기도 하지만 물질의 잘못이 아닌 사용의 부적절함이 가져온 결과일 뿐이다.
그렇다면 모든 물질은 순수한가? 라고 도덕적 반문을 해보기도 하지만 불필요한 허영이다. 모든 곳에 있다는 자명한 사실과 물질 스스로가 효용성을 드러내진 않았으니 말이다.
우연한 발견과 과학적 요구들이 빚어낸 결과물에 대한 책임을 물질에게 돌릴 수는 없다. 그렇다면 그 성과 또한 재료의 몫이어야 할테니까 말이다.
작가의 이야기 속에 스며들어있는 재료들의 이야기가 피상적일 수도 있겠지만 구체적인 성질과 원리를 조목조목 짚어내면서 어렵지 않게 몰입하게 하는 것이 이 책의 장점이겠다.
특히나 꼬마 아이가 그린 것 같은 정체불명의 삽화들이 오히려 쉽게 납득이 되기도 한다. 초정밀 현미경으로 본 사진보다 훨씬 설득력이 있다.
따라 그려보게 되는..그럼으로 좀 더 쉽게 이해하게 되는 장치처럼 말이다.
잠깐 둘러보니 차례에 있는 모든 재료들이 옆에 있다.
택배 박스를 뜯을 때 쓰는 안전칼 속에, 펼쳐둔 책에, 종종거리며 올라온 계단에, 책상 위에 놓인 비상식량 초코파이에, 핸드폰 케이스에 잡다한것들을 담아둔 트레이 속 연필에, 조금 전 마신 커피잔에..기타등등..
이런 물질들은 어떻게 발전의 방향을 잡게 될까? 암묵적 합의는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것에 맞춰져 있을게다.
좀 더 안전하고, 편리하고, 건강하게..
그렇다면 물질로서 인간은 어떻게 물질계에서 자신의 역할을 해내야 하는걸까? 소모와 소비의 주체가 아닌 리싸이클의 대안은 없는것인가? 하는 맹탕한 자문을 해본다.
# 현실적인.
사소한 것들의 과학이라고 했다. 사소함이란 의미없음이 아니라 의미의 시작이라는 말의 다른 표현이지 않을까?
아주 작은 발견에서 분석되고 활용되서 우주의 저편까지 상상하게 하는 힘. 그것이 사소함의 힘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카카오 열매에서 우주의 물질까지 늘 사용하는 것에서 어쩌면 사용하게 될지도 모를 것까지, 이미 알고 있던 것에서 이제 알게된 것까지. 열개의 에피소드(?)를 처음 글자를 배운 사람처럼 읽는다. 한 꼭지를 읽고나면 '오~~' 하는 소리를 내며 이걸 누구에게 말해줄까?를 생각하게되는 재미도 있다.
때때로 '쉬운'이라든가 '재미있는' 이라든가 '누구나 가능한'이라는 제목들을 단 과학도서나 수학도서를 집어들고 실망하기도 한다.
너무 가볍거나 절대로 재미있지 않아서 말이다. 그렇게 읽고 나면 점점 재미없는 것으로 과학이 밀려나고 수학이 밀려난다.
그런 면에서 '사소한 것들의 과학'은 꽤 유용하다. 조금 더 알고 싶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섬유, 물, 세제, 아! 알콜 같은 것들..
전문적이며 일상적인, 사소하지만 인상적인 책을..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