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의 나라, 브라질 빠우-브라질 총서 2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김창민 옮김 / 후마니타스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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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1년에 쓰인 슈테판 츠바이크의 브라질 이야기.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75년 전의 이야기인 셈이다.
2차 세계대전이 유럽과 세상을 휩쓸고 있을 때, 제국주의와 식민지배가 정점을 찍고 있을 때 희망이란 것을 어디에서 찾아야할지 망연한 그 때 브라질을 찾아 쓰게 된 글이다.
선민의식이 불러온 대 참사, 학살과 파괴로 들끓는 유럽에서 빠져나온 것 만으로도 숨통이 트였을거다. 게다가 다민족으로 이루어진 온전히 열려있는 나라 브라질은 화해의 파라다이스처럼 보였을게 분명하다. 천혜의 자원을 품고 있으며 아마존이 있고 삼바가 있는 나라, 특유의 낙천적인 여유를 가진 사람들..혼혈이 부끄럽지 않은 나라..그 곳에서 인류의 미래의 모습을 그려낸다.

개척자들에 의해 우연히 발견된 것이라고 알고 있는 아메리카 대륙과 브라질..포르투갈과 스페인의 식민정책의 한 가운데 브라질이 있었다. 서로 주도권을 쥐려고 하는 형국, 유럽의 침탈이 다각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다양한 대립도 있어왔다. 그때마다 주도권을 쥔 국가에 의해 새로운 정책들이 제시되고 새로운 사람들이 몰려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부족한 인구 수를 보충하기 위해 아프리카의 사람들도 유입되기 시작한다. 유럽과 토착민과 아프리카의 사람들까지 얽혀 살게 되는 묘한 형국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런 상황들에 순응하며 혼돈이 아닌 독특한 문화와 역사를 꾸려가기 시작한다. 이 지점이 묘하다. 문명의 역할로 들어온 강대국, 지배국들의 문명화 식민화의 계획과 그 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마치 천연자원처럼 주어진 특질들이 어우러지기 시작한다.

미래의 나라 브라질..미래에 대한 대안일 거라는 생각을 갖게 하는 제목이다.
처음 책을 보게 되었을 때, 어쩌면 자본의 시대에 뒤틀린 나라들에게 제시할 또 다른 정치경제적 모델로서의 브라질을 기대했는지도 모른다. 사실 다르지 않다.
전운이 감도는 한창 파괴가 시작된 유럽인의 시각으로 본 브라질은 망가진 유럽의 대안이 될 수 있을 것 같았을테니 말이다. 평등한..누군가를 비하하는 단어를 갖고 있지 않은 평등한 나라 브라질.
미래의 나라라는 말을 그런 대안적 국가로서 브라질을 이야기 하지만, 다른 한편 식민정책으로 브라질에 들어온 예수회가 만들고자 했던 공동체 브라질의 청사진이기도 했다.
장기적으로 그 혈맥을 만들어나가려던 사람들..그들의 계획이, 그들이 만들어 갈 미래의 브라질이 망가질까 노심초사하던 사람들..

환상적인곳, 굴곡진 역사와 침탈로 시작된 식민지배가 이어져 온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특유의 문화와 질감을 갖고 있는 나라 브라질. 음악과 문학과 (희곡은 그리 발전하지 못했던..) 미술과 다양한 아름다움을 표출해 내는 나라.
문득 강대국의 정복전쟁이 벌어지던 격동의 시대에 모든 것을 빼앗겨야 했던 나라와 독특한 역사만큼 다채로운 문화와 다양성을 확보한 나라에 대한 생각이 많아진다.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미래의 국가는 어떤 모습일까..기술과 문명이 고도로 발달한 그런..모든 분야에 알파고와 같은 인공지능이 배치되고 완벽한 정체체제가 구축되는 그런 모양일까?
아니면, 원시의 그것처럼 `사람`과 `공존`이 주장하거나 강요하지 않아도 구현되는 그런 모양일까..
미래는 인간성에 있을거라는 생각에 동의한다.
지구의 한 복판에서 벌어지는 참상과 상관없이 남미의 어느 곳에서 보여내는 사람과 사람의 미래는 매력적이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오래 전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낯설지 않다. 브라질 특유의 문화가 어떻게 생성되고 그들의 국민성과 발전의 근거가 무엇인지에 대한 회고처럼 읽힌다.
기반.
그런 기반을 확인한 것 같다. 어떤 기원을 본것 같다.

이곳에서 모든 것을 보는 것은 누구에게도 허용되지 않는다. 분별력이 있다는 것은 시간에 순응할 줄 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나는 내 자신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번에는 이것으로 충분하다!˝ (p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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