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말고사 대비 기간이 시작되었다. 수학강사지만 일부러 시간을 내 역사과목을 가끔 짚어주곤 한다.

지난 중간고사 기간..중3 아이들은 열강의 침략부터 독립운동까지..임시정부수립까지 시험을 봤다.

병인양요와 신미양요를 설명하고 간도지방을 이야기하다 윤동주 이야기를 했고, 문익환선생 이야기를 하다 문성근씨 이야기를 했고, 그것이 알고 싶다를 끼워넣고 그 때 뜨거운 감자였던 세월호를 이야기했다.

시험을 망하게 하려고 한 건 아닌데..늘 그런식이었다.

아이들과 이야기를 하다보면 어떻게든 삼천포로 빠지고 그렇게 들려주는 이야기를 아이들은 집중해서 듣곤한다.

기말고사는..해방부터 현대사다.

 

 

 

 

 

 

 

 

 

 

 

 

 

 

 

 

 

 

 

 

 

 

 

 

 

 

 

내가 가장 정확하게 이야기해 줄 수 있는 6.10 민주화항쟁의 이야기까지 시험범위이다.

대장정이 될것이지만 읽어내야겠다. 좀 더 정확하게 이야기해주기 위해서..아이들과 함께 빠진 삼천포에서도 우리가 알아야 할 이야기를 공유하는 비밀을 만들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교과서의 빈 행간을 채워줄 사실들을 이야기해주는 것. 그것은 선생이라서가 아니라 한 걸음 먼저 걸은 어른으로서의 의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다.

 

한사코 비밀스럽게 역사를 만들고 손대려는 자들이 그렇게까지 하려는 이유를 알려주어야할거다.

국정교과서 따위가 더럽힐 역사가 아니란걸 말해주어야 할게다.

역사는 오독되어서는 안되며 오기되어서는 더더욱 안되는 것임을 말해주어야 할게다.

 

이렇게 할미가 옛날이야기 해주듯 중얼거리는 이야기를 듣고 100점을 받아오는 녀석들이 신기하긴 하다.

-쌤, 이번에도 정리 해 주실거죠?

라고 당연한듯 묻는 녀석들과 역사를 공부하려한다.

 

 

 

덧붙여 읽을 책들이 더 많을것 같지만..일단 시작하자.

역사는 권력에게 귀속되는 것이 아님을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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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혹하는 식물의 뇌 - 식물의 지능과 감각의 비밀을 풀다
스테파노 만쿠소.알레산드라 비올라 지음, 양병찬 옮김 / 행성B(행성비)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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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펼치며 문득 식물이 되고 싶었던 여자 이야기가 생각났다. 모든 것을 거부하고 자연이 되고자 했던 여자의 이야기..그 이야기는 큰 상을 받았고 그 후 많은 이들에게 읽혀졌고 읽혀지고 있다. 상처와 분노와 절망 속에서 여자가 선택한 일, 쏟아지는 햇볕 아래서 가슴을 열어젖히는 일, 거꾸로 물구나무를 서서 뿌리가 내려지길 기다리는 일, 기어코 식물이 되어간 일..그 모든 일련의 과정들이 아름다웠다. 거칠게 조각된 목판화를 보듯 읽었다.

이 이야기에 대한 사람들의 첫 마디는 '맨부커상을..'이었고 '매혹하는 식물의 뇌'를 이야기하기 위해 나는 이 이야기를 끌어왔다.

가장 높은 곳에서 가장 단단하게 보호되고 있는 동물의 뇌가 벌이는 일이다.

아마도 내 신체의 윗부분은 지금 수없이 많은 신경물질들이 바쁘게 움직이며 반짝이고 있을것이다. 외부의 충격이 없는 한 그럴 것이다. 한순간의 공격으로 박살이 난다면 더 이상 그 어떤 연상도 사고도 하지 못할 것이며 운이 좋다면 '식물인간'이 되어 연명하게 될것이다.

그렇다면, 여자는 왜 이런 방법을 택하지 않았던 것일까. 식물이 되고자 했다면 이렇게 간단한 방법이 있었을텐데..위험부담이 컸던 탓일지도 모른다. 충격이 조금만 세도 식물인간이 되기 전 동물로 죽음을 맞이할 수도 있었을테니까..


책의 첫머리에 '식물인간'이라는 말이 식물에게 얼마나 모욕적인 말인가에 대한 이야기가 전개된다. 어쩌면 가장 진화한 생명체일 수도 있는 식물.

모듈화 되어있는 감각기관과 생명장치는 일부가 훼손당한다해도 치유되고 확산된다. 동물계에서도 그런 경우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일반적인 것은 아니다.

재생되고 번성하는 힘. 지구의 식량이며 산소와 에너지의 창출존재로서의 식물의 이야기. 너무나 많은 곳에 너무나 다양하게 존재하지만 그 어떤 가치도 인정받지 못하는 식물의 참 가치에 대한 역설이라고 읽힌다. 때론 과하게 칭송하는 건 아닌가 싶어지기도 하지만 아무렇지도 않게 취급당하는 어찌보면 모든것이 파괴되고 부족해지는 현실에 인간과 지구의 생존에 마지막 보루처럼 남겨질 식물에 대한 문제제기로는 흥미롭다.


식물은 조너선 아이브(애플 디자이너)의 디자인 같은 것인지도 몰랐다. 세계의 완벽한 디자인.

'디자인이 사라져서 보이지 않는 것' 가장 완벽한 생태계의 디자인일지 모른다는 것이다. 눈치채지 못하는 것, 현혹되지 않는 것, 그래서 그 안에서 삶을 영위하는 모든 생물들이 생태계를 완벽하게 구성하도록 하는 디자인..그러려면 얼마나 많은 검증과 규명이 필요할까. 그것이 생각만큼 다각적으로 연구되지 않았던 것에 대한 지적이 이 이야기의 모티브는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200페이지가 조금 넘는 분량. 그리 딱딱하지 않은 문체와 간결하게 서술되는 식물의 이야기는 쉽게 읽혔다.

찬반의 격론이 일면 좋겠지만 그러기엔 알고 있는 것이 별로 없다. 전문적으로 파고든 사람이 아니라면 쉽게 반론을 제기하기 힘들겠다. 정말 이래? 라고 의문을 품게 만드는 구석도 분명히 있다. 하지만 그게 아니잖아. 라고 말하는 순간 식물에 대해 엄청나게 공부하고 학습해야할게 분명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막연하게 식물을 인식하길 선택했는지도 모른다.

자연. 이라고 말하는 순간 떠오르는 초록의 이미지. 그 정도로 ..


흥미로운 책이었다. 어쩌면 식물이 되고 싶었던 그녀는 이런 비밀을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모든것이며 아무것도 아닌, 죽었으나 결코 죽지 않는..그런 존재로서의 식물. 가장 완벽한 자유를 품은, 공생과 영생의 경계를 서성이는 식물의 비밀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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샹들리에
김려령 지음 / 창비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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샹들리에에 수록된 단편들중 무작위로 하나씩 읽을 수 있는 기회가 생겼고, '미진이'를 받았다.

미진이.

짧은 단편을 오래 읽는다.

살아내는 건 어른이나 아이나 모두에게 가혹한 일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가족을 만들고, 친구를 만들고, 연인을 만들어 견디는 것인지도 모른다.

성장할수록 나의 외부도 성장하며 여전한 힘으로 공격해 온다.

어른들은, 그나마 얄팍한 경험에 의지해 그 때는 그런거라고 말을 하지만, 지문처럼 각기 다른 삶의 형체를 단순하게 규정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분명한 것은 하나도 없는 시기. 미진이의 방황과 엄마의 우울증, 더이상 응석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상황, 하루아침에 밀려난 느낌.

미진이는 가출을 하고, 학교마저 자퇴를 하고 제 세상을 찾아보기 위해 애쓴다. 두려움.

혼자 서야하는 막막함. 서툴고 힘겹지만 해내야 한다.

당당하게 '내 삶이야.' 라고 말할 수 있으려면..


청소년기의 혼란과 정체성의 모호함 속에서 자신을 찾아가는 일. 김려령 특유의 섬세함이 담뿍 배어있다.

쌓인 경험치가 고스란히 드러나는..예상한 틀을 완전히 깬건 아니지만 그렇지..그래야지 응원하게 되고 어쩜 좋니, 덩달아 안타까워지는 단편이다.


어쩌면 아이들은 미래의 희망이거나 보호해야만 할 대상이 아니라 어른과 다름없이 세상에 맞서는 동지이거나 전우일지도 모른다.

철없다고 말해버릴 수 없는 이유다.

조금 미숙하고 덜 단련되었을 뿐이며 타협하는 법을 모를 뿐이다.

중력이 모두에게 공평하듯, 세상은 모두에게 가혹하다.


미진이를 읽는다

미진이를 얻었다.

수많은 미진이가 어디든 있겠다.

같이 살아내자 친구!

어깨를 토닥이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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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한 녀석이 질문을 했다.
이차함수 식 만들기가 어려웠는지
-쌤, 이차함수 왜 배워요?
한다.
-모바일게임은 왜 해?
라고 되물었다.
-재밌으니까요.
-응, 이차함수는 어려우니까 해.
-아, 네. 네?

수학은 어렵다. 아이들은 계산과 정답에 집착하고 나는 식을 만들고 이해하는데 주력한다. 수식은 문장이다.
문장을 수식으로 바꾸고 그 수식에서 문장을 읽는건 대단히 재밌다. 수식으로 시를 쓸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가당찮은 생각도 종종한다.

아들과 아버지가 대화하듯 풀어가는 수학 개념과 풀이 수학자와 수학사. 고등과정의 수학을 쉽게(?) 풀었다고 한다. 순전히 직업적 호기심으로 읽은 책.

솔직히 말하자면..어렵다. 이렇게 책을 읽고 고개를 끄덕일 정도의 아이라면 수학 상위권이거나 대학 신입생 정도..
그렇다면 대상에 대한 문제가 생긴다. 아이들 보다는 수학교사나 수학강사들이 대상이라면 읽어볼 만 하다.
교수법에 일정 변화를 줄만한 팁이 있다.

아이들에게 들려줄 이야기를 많이 건졌다. 진도 안나가면 불안해하고 조바심치는 놈이 없어 다행이다. 그런 녀석이 있다면 삼천포로 빠지기 힘드니까..

두 권으로 이루어진 책..재밌네.
고1은 부담스러울거 같고 고3은 여유가 없을거고 고2즈음..읽어 보면 나쁘지 않겠다. 개념정리 차원에서..
혹은, 수학에 관심 있었던, 소시적에 수학 좀 했던 어른이 읽어도 재밌겠다..근의공식. 이런거 반갑지 않나? ^^

대화체여서 쉽진 않다. 산만하다. 생각이 집중되다 흩어지곤 한다. 일반적인 아이들의 질문 포인트를 아들이 하는 것인데..없어도 될 질문들이 좀 된다.
개념원리와 정석에 익숙한 아이들은 지루할수도..

여튼 난 재밌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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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을 꾸역꾸역 산다. 인터넷으로 지역서점에서 중고서점에서 어떤 이가 갖고 있다는 시집을 수소문해서..

이렇게까지 사들일만큼 좋은가?

그것은 아닌듯하다. 도대체 뭔가? 시가 뭔가? 감각되는 언어들의 정체를 알고 싶은 욕심때문이다. 찌릿찌릿하고 간질간질하고 욱신욱신한데 그 정체가 무엇인지 도무지 알 수 없는 미련한 머리통과 감성때문이다.

서툰 시선으로 자꾸만 읽다보면 알게 되겠거니 읽어대는 것일 뿐이다. 그 뿐이다.

다시 질문을 해 본다. 그렇게 정체를 알아내서 뭐할건데? 글쎄...세상에 살았다는 증명같은 걸 알 수도 있지 않을까?

다양한 시인선들이 시집출간의 묵직한 기둥역할을 하고 있다 창비시선, 문지시선, 문동시선, 실천시선, 민음시선...

아직은 문지의 손을 들어주고 있지만,..

시집들에도 패턴이 있다. 최근의 소위 세련된 시들은 어렵다. 또 서로 닮았다. TV에 나오는 어떤 노래 하나를 다양하게 편곡해부르듯 그렇게 닮아보인다. 솜사탕처럼 입 속에서 순식간에 사라져버린다. 예전 어떤 시들은 찐득한 엿처럼 오래 입속에 물고 우물거리다 치밀하게 잇새에 끼어든 마지막 한 조각까지 빨아먹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든든했다. 외할머니의 말처럼 근기가 있었다. 한조각을 먹어도 든든하고 만족스러운, 다음에도 또 먹고 싶은, 그것을 먹기 위해 착한 일을 기꺼이 하고 싶게 만드는..그런 것.

 

신선한 기획으로 나오는 시집들을 구매했다.

  등단시인들이 여러 지면에 발표한 시를 묶어내는 기존의 방법이 아닌 한권 분량을 한꺼번에 투고받아 검토하고 시집으로 묶어낸다고 한다. 등단의 조건인 신춘문예당선, 기타 공모를 통한 등단, 서너편의 시를 읽고 시인을 발굴하는 것의 비합리성(?)에 대한 문제제기였을지도 모른다. 공모전 출품작 서너개를 읽는 것과 한 권 분량의 시를 읽어냈을 때 찾아지는 시의 결을 보겠다는 의도 같은 것일게다.

 

유진목, 문학과 죄송사라는 독립출판사에서 시집을 냈었다고 했다.

조인선, 이미 다섯권의 시집을 낸 경력이 있지만 다시 등단한다는 자세로 시집을 엮었다고 한다. 안성에서 소를 키워 팔고 있다는 시인의 소개는 슬쩍 웃게한다.

 

 

 

시들이 탄탄하다. 재미도 있고, 오래 고아 만든 엿까지는 아니더라도 단단한 눈깔사탕만큼은, 아니 할배 제사상에 놓였던 무지개사탕만큼은 되고도 남는다. 내가 이런 평을 할 깜냥이 되는 사람은 아니지만 그랬다. 그런 느낌이다.

 

 삶창의 시선집에 뒤늦게 꽂혀서 역주행하듯 하나씩 사들이고 있다.

 대체로 투박하다, 표지는 늘 단촐하다. 문동시선의 컬러풀과 대조된다. 문동시선은 빠진 색을 채우듯 하나씩 구비하게 된다. 대체로 파랑계열의 색들이 내 책장엔 많다. 기호탓이다.

 '무명시인"이라는 제목에 끌렸다. 어쩌면 요즈음의 시인들은 모두 무명시인일지도 모른다.

노태맹의 시집. 시집 끝에 자리한 산문을 읽는다.

 

 

뜨겁다.

 

 

 

 

며칠 전, 유희경 시인은 시집전문 서점을 냈다고 했다.

그것이 시의 해방구가 될지 훼방구가 될지는 아직 미지수다.

시의 뜨거운 폭력을 견딜만한 독자들이 얼마나 있을지..등단이 아니더라도 만나게 될 시들의 힘을 얼마나 지지해 줄 수 있을지..그저 또 다른 유통창구가 될지..

 

시여..시를 낳아라.

간절히 주문하고 싶다.

시를 찍어내고, 시를 가공하고, 시를 포장하지 말고..

벌거숭이 핏덩이로 불덩이로 낳아라. 온 힘을 다 해 낳아라..라고 말이다.

 

아직도 시가 뭔지 왜 좋은지 나는 모르겠다. 아, 좋은게 아니라 궁금한거였지..

시를 읽는다. 가만히 읽는다. 읽기만 한다. 그래야 할 것 같다.

10-6-2
그러나 앞서 들뢰즈의 말을 빌리자면 "시의 임무는 보이지 않는 힘을 보이도록 하는 시도"에 가깝다고 나는 생각한다. `바람직한 소통`은 가능하지도 않고 이데올로기적으로도 옳지 않다. 보이지 않는 힘을 보이도록 하는 시도는 소통이 아니라 폭력에 가깝다. 존재하지 않던, 보이지 않던 힘들이 독자들에게 폭력을 가한다. 과거의 예언자들이나 사제들처럼 소통이 아니라 불덩어리 하나를 던져준다.

10-6-1

그렇다. 시는 소통이 아니라 불덩어리다.

(벽암록을 불태우다/ 벽암록을 읽다(산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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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6-03 14: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나타샤 2016-06-03 14:47   좋아요 0 | URL
읽으려고 펴보니 페이지가 서로 붙고 울고 난리도 아니네요..이 또한 무명시인의 표정인가? 하고 웃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