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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혹하는 식물의 뇌 - 식물의 지능과 감각의 비밀을 풀다
스테파노 만쿠소.알레산드라 비올라 지음, 양병찬 옮김 / 행성B(행성비) / 2016년 5월
평점 :
책을 펼치며 문득 식물이 되고 싶었던 여자 이야기가 생각났다. 모든 것을 거부하고 자연이 되고자 했던 여자의 이야기..그 이야기는 큰 상을 받았고 그 후 많은 이들에게 읽혀졌고 읽혀지고 있다. 상처와 분노와 절망 속에서 여자가 선택한 일, 쏟아지는 햇볕 아래서 가슴을 열어젖히는 일, 거꾸로 물구나무를 서서 뿌리가 내려지길 기다리는 일, 기어코 식물이 되어간 일..그 모든 일련의 과정들이 아름다웠다. 거칠게 조각된 목판화를 보듯 읽었다.
이 이야기에 대한 사람들의 첫 마디는 '맨부커상을..'이었고 '매혹하는 식물의 뇌'를 이야기하기 위해 나는 이 이야기를 끌어왔다.
가장 높은 곳에서 가장 단단하게 보호되고 있는 동물의 뇌가 벌이는 일이다.
아마도 내 신체의 윗부분은 지금 수없이 많은 신경물질들이 바쁘게 움직이며 반짝이고 있을것이다. 외부의 충격이 없는 한 그럴 것이다. 한순간의 공격으로 박살이 난다면 더 이상 그 어떤 연상도 사고도 하지 못할 것이며 운이 좋다면 '식물인간'이 되어 연명하게 될것이다.
그렇다면, 여자는 왜 이런 방법을 택하지 않았던 것일까. 식물이 되고자 했다면 이렇게 간단한 방법이 있었을텐데..위험부담이 컸던 탓일지도 모른다. 충격이 조금만 세도 식물인간이 되기 전 동물로 죽음을 맞이할 수도 있었을테니까..
책의 첫머리에 '식물인간'이라는 말이 식물에게 얼마나 모욕적인 말인가에 대한 이야기가 전개된다. 어쩌면 가장 진화한 생명체일 수도 있는 식물.
모듈화 되어있는 감각기관과 생명장치는 일부가 훼손당한다해도 치유되고 확산된다. 동물계에서도 그런 경우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일반적인 것은 아니다.
재생되고 번성하는 힘. 지구의 식량이며 산소와 에너지의 창출존재로서의 식물의 이야기. 너무나 많은 곳에 너무나 다양하게 존재하지만 그 어떤 가치도 인정받지 못하는 식물의 참 가치에 대한 역설이라고 읽힌다. 때론 과하게 칭송하는 건 아닌가 싶어지기도 하지만 아무렇지도 않게 취급당하는 어찌보면 모든것이 파괴되고 부족해지는 현실에 인간과 지구의 생존에 마지막 보루처럼 남겨질 식물에 대한 문제제기로는 흥미롭다.
식물은 조너선 아이브(애플 디자이너)의 디자인 같은 것인지도 몰랐다. 세계의 완벽한 디자인.
'디자인이 사라져서 보이지 않는 것' 가장 완벽한 생태계의 디자인일지 모른다는 것이다. 눈치채지 못하는 것, 현혹되지 않는 것, 그래서 그 안에서 삶을 영위하는 모든 생물들이 생태계를 완벽하게 구성하도록 하는 디자인..그러려면 얼마나 많은 검증과 규명이 필요할까. 그것이 생각만큼 다각적으로 연구되지 않았던 것에 대한 지적이 이 이야기의 모티브는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200페이지가 조금 넘는 분량. 그리 딱딱하지 않은 문체와 간결하게 서술되는 식물의 이야기는 쉽게 읽혔다.
찬반의 격론이 일면 좋겠지만 그러기엔 알고 있는 것이 별로 없다. 전문적으로 파고든 사람이 아니라면 쉽게 반론을 제기하기 힘들겠다. 정말 이래? 라고 의문을 품게 만드는 구석도 분명히 있다. 하지만 그게 아니잖아. 라고 말하는 순간 식물에 대해 엄청나게 공부하고 학습해야할게 분명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막연하게 식물을 인식하길 선택했는지도 모른다.
자연. 이라고 말하는 순간 떠오르는 초록의 이미지. 그 정도로 ..
흥미로운 책이었다. 어쩌면 식물이 되고 싶었던 그녀는 이런 비밀을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모든것이며 아무것도 아닌, 죽었으나 결코 죽지 않는..그런 존재로서의 식물. 가장 완벽한 자유를 품은, 공생과 영생의 경계를 서성이는 식물의 비밀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