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나는 언제나 술래 - 과자장수가 골목에서 만난 바삭 와삭 와락 왈칵하는 이야기
박명균 지음 / 헤르츠나인 / 2016년 5월
평점 :
품절
#1. 맹긴이
점빵 할매가 평상에 앉아 계시다. 야윈 손목에 나비 팔찌를 감아드렸다.
-이게 뭐꼬?
-아, 위안부 할머니들 도와드리는 팔지에요.
-글라?
할매는 이제 많이 어둡고 침침해진 눈으로 팔찌를 요모조모 살피셨다.
-누가 맹기랐는가, 참하게 맹길었네. 맹긴이가 누군공?
-맹긴이요? 맹긴이는 과자장순데.
-뭐라카노?
맹긴이는 과자장수다.
#2.
점빵 할매네 작고 작은 가게에 매주 화요일이면 과자트럭이 온다. 백원짜리 막대사탕도 있고, 작은 당구공같은 색색 풍선껌이 다섯개나 들어있는 껌도 있고, 콜라맛 젤리도 있고, 이걸 진정 초콜릿이라고 해도 좋을지 모를 두개 백원하는 동전모양의 초콜릿도 있다. 이 과자트럭은 알록달록하고 맛있게 생겼다. 브랜드 로고가 큼지막하게 박힌 트럭에서 박스채로 꺼내지는 무슨무슨 칩이나 무슨무슨 깡과는 다른 작은 박스조차 알록달록한 과자트럭.
가끔 점빵앞 평상에 앉아 과자트럭이 올 때를 기다리기도 한다. 신선식품도 아닌데 과자트럭에서 바로 내려 진열한 과자의 포장을 뜯을 때의 기분이란..
과자장수는 참 좋겠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어릴때였다. 누구라도 과자에 대한 로망이 있을거다. 헨젤과 그레텔이라는 동화 이야기를 들어버린 후라면 더더욱.
과자장수는 마녀이거나 맘씨 좋은 사람이어야 한다는 생각은 잘 고아낸 조청처럼 저절로 굳어졌다.
그런 과자장수의 이야기다. 골목골목 과자트럭을 몰고 가 선물처럼 과자를 부려놓고 함박웃음을 올려 두는 이.
사람과 사람이 지나는 골목에 이름도 기억이 안나고 형태도 기억이 안나지만 그 맛만 오롯이 기억나는 과자들을 들이고 내는 일을 하는 사람의 이야기는 바삭바삭하다.
#3. 과자장수 박명균.
그는 고등학교때 무려 세 권의 책을 써낸 청년이었다고 했다. 참교육 1세대 선배라고도 했다. 민주학생회를 만들려고 고군분투하다 학교에서 쫓겨났다고 했다. 그는 고등학생이었다고 했다. 그 후로 오랜 시간이 흐른 뒤 그가 들고 나온 글.
그 공백의 시간 (글을 쓰지 않았던) 그는 시간을 묻히고, 사람을 쌓으며 살아가고 있었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지만 훌륭하게(!) 살아내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 고소하고 달콤한 과자를 배달하며 도무지 지워지지 않는 그리움의 맛을 깨우고 있었다. 아풀로 한 봉지에 천하를 얻은 기분이었던 그 때를 기억하듯..
명균이가 '맹긴이'가 되는 이야기. 아주 어릴 적, 그러니까 그의 기억이 남아있는 가장 어린 기억부터 천천히 적어간다. 맹긴이가 좋아하던 여자아이도, 골목을 주름잡고 놀던 친구들도, 군대의 선입과 동기도, 그의 사랑과 결혼, 가족들...결국 그가 과자장수가 되어버릴 수 밖에 없던 이야기들이 빼곡하다.
일부러 근엄을 떨지 않아도 되고, 일부러 조심하지 않아도 되고, 옆에 있으면 하나쯤 건내주게 되는 백원짜리 과자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맛있게..
엄마는 늘 그런말을 했다. '얘 내가 살아 온 이야기를 책으로 쓰면 소설책 열권은 쓸거다'
그럴 수 있다면, 가능한 말이다. 맹긴이처럼..
어쩌면 닮아있는 표정들을 발견한다. 누구라도 학교 앞 문구점에서, 동네 구멍가게에서 땀이 나도록 꼭 쥐고 있던 동전을 내밀고 입에 넣어봤을 맛.
투박하게 쓰여진 글들이 위로가 된다. 엉엉 울고 난 다음 질겅거리던 쫀디기처럼.
추억이 아닌 기억을 되짚어 오는 긴 여정을 유쾌하게 그려낸 나는 언제나 술래.
꼭꼭 숨어있을 때, 술래가 나를 안찾으면 어떡하지 싶어 빼꼼히 고개를 내밀만큼 겁이 많았던 친구를 위해 숨은지 얼마 되지도 않아 "못찾겠다 꾀꼬리"를 외쳐주던 착한 친구 현실이 생각도 났다. 한바탕 싸우고 '너랑 안놀아' 선언을 한 뒤 어쩔 수 없이 같이 하게 된 숨바꼭질에서 현실이는 보란듯이 외쳤다.
'안찾겠다 꾀꼬리. 집에 간다 꾀꼬리'
그때의 설움과 두려움을 나는 '술래'라는 말에서 읽었다. 착한 술래가 되어주겠다는..꼭 찾아서 같이 웃어주겠다는 약속같은 말..
#4.
-맹긴이가 누라꼬? 과자장시라캤나?
-네.
-여 오는 그 과자장시캉 아나?
-아뇨. 제가 아는 과자장순데요. 이름이 맹긴이래요.
-와이고 얄궂디. 팔찌 맹긴이가 누구냐캤디만 과자장수 맹긴이라카네. 야가 와이카노?
과자장수 맹긴이의 이야기를 유쾌하게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