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배처럼 텅 비어 문학과지성 시인선 485
최승자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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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자가 돌아왔다. 빈 배처럼 텅 비어버린 채. 그녀는 어디에 있는걸까? 빈 배였나? 배에서 내려버린 여인이었나? 배를 싣고 온 강물이었나? 그녀는 어디있을까?
호흡이 짧아진 시만큼 그녀는 무뎌졌고 승자(勝者)의 패기는 노쇄해졌다. 후배시인의 발문은 영리했다. 예쁘게 치장을 했지만 깊어진 주름 사이에 부담스럽게 끼어버린 파운데이션처럼 최승자의 시가 서걱인다. 어디있어요? 거기 있긴 한 것 같은데..확실히 보이지 않아요. 승자를 돌려주세요. 울고 싶다. 차라리 미쳐버리지 그랬어요. 모진말을 하고 싶어졌다. 이기적이다. 최승자의 최승자다운 시가 어딘가에 있을텐데..열흘 굶은 거렁뱅이마냥 순식간에 시집을 훑어보며 샅샅이 찾아도 없다. 세상에..
이러지 말아요. 제발..어쩌면 좋아. 당신을 위해 꺼내려던 심장을 도로 넣어야겠어요. 길게 가른 가슴팍이 민망해요. 쏟아지는 핏덩이가 낯설어요. 갈비뼈 사이사이에 손가락을 넣어 부러뜨리고 싶어져요. 심장을 방광옆에 붙여둘까봐요. 혹시 알아요? 시가 마려울지..

다시 읽어야겠다. 최승자를 못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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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6-23 19: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6-23 19: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limbo2003 2016-07-25 03:0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님의 이 짧은 글을 스무번쯤 정독했습니다. 아무리 읽어도 마음이 가라앉지가 않아서 원 시집을 다시 읽고,후배시인의` 예쁘게 치장`했다는 `영리한 발문`이라는 것도 다시 읽어보았습니다. 그래도 믿을수 없어서 최승자시인의 지난 시집들을 죽 다시한번 읽었습니다. 너무 화가나고 슬퍼서 좀 울다가, 님이 쓰신 다른 책의 리뷰들도 훑어 보았습니다.
질문 하나만 할게요. 꼭 대답해주세요.
`차라리 미쳐버리지그랬어요`- 정말 이렇게 꼭 이야기해야했나? 이렇게나 함부로 이야기해도 되는건가? 지난 최승자씨의 상태를 알고도 이렇게 이야기하는건가?
오랜 병상에서 마침내 일어나준, 오래 아팠던, 이제는 많이 늙어버린 시인에게,
당신의 입맛에 달달했던 예전의 그 맛이 안난다고, 당신의 취향과 즐거움을 위해 다시한번 미쳐달라고? 이런 시발.




가가 2020-09-23 16: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 참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