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나는 뇌입니다 - 내가 누구인지 말해주는 뇌과학 이야기
캐서린 러브데이 지음, 김성훈 옮김 / 행성B(행성비) / 2016년 11월
평점 :
절판
며칠 전 티비 프로에서 어떤 어머님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아이들 교육비를 모아 여행을 간다는 어머니. 당신도 공부엔 취미가 없었고, 아이들도 당신을 닮았을게 분명하니 억지로 공부를 시키기보다는 같이 여행을 하며 더 큰 공부를 시키고 싶으셨단다. 둘째 아이의 버킷리스트에는 오로라를 보고 싶다는 리스트가 있었고 오로라를 볼 수 있던 그 때, 아이의 시험날짜가 겹치게 되었단다. 어머니는 시험을 포기하고 아이와 함께 오로라를 보러 떠나셨다고 했다. 그리고 요즘 고민이 생겼다고..둘째 아이가 공부하고 싶다며 과외를 붙여달라고 하는데 어쩌면 좋으냐고 눈물을 글썽이기까지 하며 진심으로 안타까워하셨다. 사회자는 교육비 모아서 여행가야하는데 안타까우시겠다며 우스개소릴 했다.
한참을 같이 웃었다. 아이와 함께 여행을 다니는 엄마. 세계를 보여주는 엄마. 아이들에겐 축복같은 엄마겠다.
경험은 자극이다. 몸으로 체험하는 것, 그것이 고스란히 저장되는 것. 이것은 아주 중요한 일이다. 단순히 저장만의 일이 아니다.
"인간의 뇌는 평생에 걸쳐 계속 적응하고 성장하지만 시냅스 형성, 수초 형성, 신경가지치기가 가장 폭발적으로 일어나는 시기는 유아기, 청소년기, 노년기다. (p215)"
뇌는 다양한 자극에 반응하며 성장하기도 하고, 소실되어지기도 한다. 뇌가 아무것도 안하는 순간이 있을까? 뇌가 아무것도 안하는 순간이란 아마도 제트파일더(마징가를 조종하는 비행체)가 없는 마징가같은 상황과 유사할지도 모른다. 그 상황은 '생명있음'의 상황일 뿐, '살아있음'의 상황은 아닐 것이다.
시절이 하수상하여 책이 잘 읽히지 않던 차에 읽게 된 책이다.
뇌에 대한 오해들, 예를 들면 '인간은 뇌의 10퍼센트만 사용한다'든가 '남성이 여성보다 공간지각력이 좋다'든가 하는 오해들에 대한 실증.
뇌의 구조와 작동법에 대한 이야기. 호르몬과 신경전달물질간의 관계. 뇌의 성장과 구축에 대한 이야기가 과학적이고 전문적인 (용어가 어렵긴 하다)서술과 일상적인 이야기들로 적절하게 정리되어 있다. 한번 소실되면 끝날 것 같은 뇌의 구축과 재구축의 이야기, 조현병과 우울증등의 정신과적 이상에 대한 이야기, 뇌에 관한 모든 이야기들이 어렵고(용어) 어렵지 않게(에피소드와 서술) 전개된다.
감각기관들의 자극을 수용하고 반응하는 이야기는 늘 놀랍다. 얼마나 순식간에 일어나는 작용인지, 지금 모니터를 보며 자판을 두르리는 이 행동을 얼마나 빨리 해내고 있는지 잠깐 생각해본다. 머릿속에 (기억장치) 저장된 이야기들을 찾아내고 신호로 바꾸어 자판 위에 올려진 손가락을 움직여 생각을 글로 적게 만드는 이 일련의 과정이 일어나는 '순식간'을 생각해보면 너무나 놀랍다. 모르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 .
사실 뇌에 관한 이야기를 읽으며 제일 관심이 가는 부분은 뇌의 손상, 혹은 화학적 불균형 속에서 발현되는 오류와 관련된 부분이었다. 정신병이라고 치부되는 이야기들..
조현병이랄지, 우울증이랄지, 환각과 망상에 대한. 아주 오래전엔 이런 현상을 마귀들림이라 진단하고 주술적 치료를 했었고, 의학이 어설프게 자리를 잡던 시기에는 전두엽을 잘라내는 시술도 했었고, 지금도 여러가지 화학적 치료들이 이어지고 있다.
이 현상들은 어째서 일어나는가? 사회에 복잡해지며 스트레스가 많아져서일까? 사실 모든 부정적인 현상에 대해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말하곤 하지만, 스트레스가 없다면 과연? 스트레스조차 뇌의 작용에 어떻게 순기능을 하는지 읽고 나니, 어쩐지 만능열쇠를 하나 잃어버린 느낌이기도 하다.
재미있는 책이다.
내 뇌 속에서 이런일들이 벌어지고 있었어? 하는 놀라운 현장점검(?) 과 내 뇌를 여태 오해하고 있었던거야? 하는 자책, 그리고 건강하게 내 뇌를 관리해야 할 당위 같은 것을 깨닫게 한다. 나는 어쩌면 이렇게 내 뇌를 혹사시키고 지냈던건지..
뇌가 시간을 감지하는 부분에서, "여유있는 삶을 지내기 위한 방법" 같은 걸 엿보았다면 그것으로 이 책을 읽은 값은 하겠다.
물론 다 아는 이야기지만..즐거울 때 시간이 빨리 가고, 힘들고 어려울 때 시간이 더디간다는 하나마나한 소리지만 그것이 뇌가 어떻게 작용하여 나타나는 현상인지를 알게 된다면 하나마나한 소리만은 아니란걸, 어떻게 조절할 수 있을지를 알게 된다는 말이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잘 모르는 사람이 있다.
뇌가 폭발적으로 성장하던 시기에 그 사람은 만족할만큼의 자극과 경험을 하지 못했을거다. 작고 작은 뇌 속에서 반복적으로 집중적으로 단련된 부분은 있겠지만 그것이 소통과 공감이라는 '뇌의 순기능'을 가로막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가엾지는 않다. 다만 그 사람이 제 뇌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못한다는 걸 끝끝내 모를 것이 안타깝다.
커다란 그림들이 선명하게 들어차있는, 내 뇌의 구조와 역할, 감각기관을 마주볼 수 있는 책.
오랜만에 집중해서 읽었다.
책상 한켠에 두고 궁금할 때마다 펼쳐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