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뇌입니다 - 내가 누구인지 말해주는 뇌과학 이야기
캐서린 러브데이 지음, 김성훈 옮김 / 행성B(행성비) / 2016년 11월
평점 :
절판


며칠 전 티비 프로에서 어떤 어머님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아이들 교육비를 모아 여행을 간다는 어머니. 당신도 공부엔 취미가 없었고, 아이들도 당신을 닮았을게 분명하니 억지로 공부를 시키기보다는 같이 여행을 하며 더 큰 공부를 시키고 싶으셨단다. 둘째 아이의 버킷리스트에는 오로라를 보고 싶다는 리스트가 있었고 오로라를 볼 수 있던 그 때, 아이의 시험날짜가 겹치게 되었단다. 어머니는 시험을 포기하고 아이와 함께 오로라를 보러 떠나셨다고 했다. 그리고 요즘 고민이 생겼다고..둘째 아이가 공부하고 싶다며 과외를 붙여달라고 하는데 어쩌면 좋으냐고 눈물을 글썽이기까지 하며 진심으로 안타까워하셨다. 사회자는 교육비 모아서 여행가야하는데 안타까우시겠다며 우스개소릴 했다.

한참을 같이 웃었다. 아이와 함께 여행을 다니는 엄마. 세계를 보여주는 엄마. 아이들에겐 축복같은 엄마겠다.

경험은 자극이다. 몸으로 체험하는 것, 그것이 고스란히 저장되는 것. 이것은 아주 중요한 일이다. 단순히 저장만의 일이 아니다.

"인간의 뇌는 평생에 걸쳐 계속 적응하고 성장하지만 시냅스 형성, 수초 형성, 신경가지치기가 가장 폭발적으로 일어나는 시기는 유아기, 청소년기, 노년기다. (p215)"

뇌는 다양한 자극에 반응하며 성장하기도 하고, 소실되어지기도 한다. 뇌가 아무것도 안하는 순간이 있을까? 뇌가 아무것도 안하는 순간이란 아마도 제트파일더(마징가를 조종하는 비행체)가 없는 마징가같은 상황과 유사할지도 모른다. 그 상황은 '생명있음'의 상황일 뿐, '살아있음'의 상황은 아닐 것이다.


시절이 하수상하여 책이 잘 읽히지 않던 차에 읽게 된 책이다.

뇌에 대한 오해들, 예를 들면 '인간은 뇌의 10퍼센트만 사용한다'든가 '남성이 여성보다 공간지각력이 좋다'든가 하는 오해들에 대한 실증.

뇌의 구조와 작동법에 대한 이야기. 호르몬과 신경전달물질간의 관계. 뇌의 성장과 구축에 대한 이야기가 과학적이고 전문적인 (용어가 어렵긴 하다)서술과 일상적인 이야기들로 적절하게 정리되어 있다. 한번 소실되면 끝날 것 같은 뇌의 구축과 재구축의 이야기, 조현병과 우울증등의 정신과적 이상에 대한 이야기, 뇌에 관한 모든 이야기들이 어렵고(용어) 어렵지 않게(에피소드와 서술) 전개된다.


감각기관들의 자극을 수용하고 반응하는 이야기는 늘 놀랍다. 얼마나 순식간에 일어나는 작용인지, 지금 모니터를 보며 자판을 두르리는 이 행동을 얼마나 빨리 해내고 있는지 잠깐 생각해본다. 머릿속에 (기억장치) 저장된 이야기들을 찾아내고 신호로 바꾸어 자판 위에 올려진 손가락을 움직여 생각을 글로 적게 만드는 이 일련의 과정이 일어나는 '순식간'을 생각해보면 너무나 놀랍다. 모르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 . 

사실 뇌에 관한 이야기를 읽으며 제일 관심이 가는 부분은 뇌의 손상, 혹은 화학적 불균형 속에서 발현되는 오류와 관련된 부분이었다. 정신병이라고 치부되는 이야기들..

조현병이랄지, 우울증이랄지, 환각과 망상에 대한. 아주 오래전엔 이런 현상을 마귀들림이라 진단하고 주술적 치료를 했었고, 의학이 어설프게 자리를 잡던 시기에는 전두엽을 잘라내는 시술도 했었고, 지금도 여러가지 화학적 치료들이 이어지고 있다.

이 현상들은 어째서 일어나는가? 사회에 복잡해지며 스트레스가 많아져서일까? 사실 모든 부정적인 현상에 대해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말하곤 하지만, 스트레스가 없다면 과연? 스트레스조차 뇌의 작용에 어떻게 순기능을 하는지 읽고 나니, 어쩐지 만능열쇠를 하나 잃어버린 느낌이기도 하다.


재미있는 책이다.

내 뇌 속에서 이런일들이 벌어지고 있었어? 하는 놀라운 현장점검(?) 과 내 뇌를 여태 오해하고 있었던거야? 하는 자책, 그리고 건강하게 내 뇌를 관리해야 할 당위 같은 것을 깨닫게 한다. 나는 어쩌면 이렇게 내 뇌를 혹사시키고 지냈던건지..

뇌가 시간을 감지하는 부분에서, "여유있는 삶을 지내기 위한 방법" 같은 걸 엿보았다면 그것으로 이 책을 읽은 값은 하겠다.

물론 다 아는 이야기지만..즐거울 때 시간이 빨리 가고, 힘들고 어려울 때 시간이 더디간다는 하나마나한 소리지만 그것이 뇌가 어떻게 작용하여 나타나는 현상인지를 알게 된다면 하나마나한 소리만은 아니란걸, 어떻게 조절할 수 있을지를 알게 된다는 말이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잘 모르는 사람이 있다.

뇌가 폭발적으로 성장하던 시기에 그 사람은 만족할만큼의 자극과 경험을 하지 못했을거다. 작고 작은 뇌 속에서 반복적으로 집중적으로 단련된 부분은 있겠지만 그것이 소통과 공감이라는 '뇌의 순기능'을 가로막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가엾지는 않다. 다만 그 사람이 제 뇌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못한다는 걸 끝끝내 모를 것이 안타깝다.

커다란 그림들이 선명하게 들어차있는, 내 뇌의 구조와 역할, 감각기관을 마주볼 수 있는 책.


오랜만에 집중해서 읽었다.

책상 한켠에 두고 궁금할 때마다 펼쳐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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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꼴이 말이 아니다. 스핑크스의 수수께끼에 나오는 모든 존재가 거리로 나섰다. 아침에 네 발, 점심에 두 발, 저녁에 세발..

저마다 서 있는 시점은 아침이며 점심이며 저녁이었지만 그 모든 시점사이를 흐르는 한마디 "씨발됨"

황정은의 야만적인 앨리스씨의 한 대목이다.

폭력적인 너무나 폭력적이고 비상식적이고 몰염치한 여자의 제정신이 아닌 폭주상태를 앨리시어는 '씨발됨'이라고 했다.

어쩐지 너와 나, 우리는 제정신이 아닌 여자의 폭력에 무참히 굴욕을 강요당하고 있는 중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 그럴 때 그녀는 어떤 사람이라기보다는 어떤 상태가 된다. 달군 강철처럼 뜨겁고 강해져 주변의 온도마저 바꾼다.

 씨발됨이다. 지속되고 가속되는 동안 맥락도 증발되는, 그건 그냥 씨발됨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씨발적인 상태다.

앨리시어와 그의 동생이 그 씨발됨에 노출된다. 앨리시어의 아버지도 고모리의 이웃들도 그것을 안다.

알기 때문에 모르고 싶어하고 모르고 싶기 때문에 결국은 모른다."(p40)

 

 

 

 

마치 비련의 주인공인양, 순수하고 순진하여 악한이들의 희생양인양 울먹이는 여자는, 어떤 것이라도 협조하겠다는 여자는, 결국 검찰조사에 협조적이지 않기로 마음을 굳혔고, 백만이 모인다고 대통력이 바뀌어야 하냐는 말로 자신의 거취를 분명히 했다

국민의 분노가, 하늘을 찌르자 간사한 야당것들은 눈치를 보기 시작했고, 기어이 뻘짓을 하고야 말았다.

어제 내내 '니가 뭔데?'라고 추미애에게 물었다. 도대체 니가 뭔데?

오늘 또 다시 묻는다. '당신이 뭔데?' 문재인에게 묻는다.

도대체 무엇인가? 어째서 이 엄중한 국민적 심판 앞에 의연하게 나설 생각을 하지 않고 권력의 부스러기라도 핥으려는 작태를 보이는가 말이다.

 

특검이 이야기되고 사람들은 '이정희'를 찾았다.

그녀를 찾지 말자. 두려움과 몰상식으로 그녀에게 돌을 던지고 정당이 해체되는 걸 지켜만 봤던 사람들..그 순간 민주주의는 심한 균열이 생긴거다. 정당해산이라니..

이정희라면 말 그대로 제대로 조져(?)버릴 수 있을거다. 하지만 그렇게 그녀를 소비해서는 안된다.

강요해서도, 압박해서도 안된다. 그녀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순간에도 노동자들과 싸우고 있었다. 김앤장이라는 거대한 탐욕의 집단을 상대로..

 

  그녀의 모습을 복기 한다. 그녀의 단단한 이야기를 읽는다. 우리는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던걸까, 혹은, 우리의 현 위치는 어디쯤이며 이 씨발됨의 상태를 벗어나기 위해 어째야 하는지..잠시 호흡을 골라야 할거다.

 

 

 

 

 

 

 

 

 

 

 

 

긴 싸움이 될것이 분명하다. jtbc가 버텨주고 있지만, 끝까지 함께 파헤치겠지만 국민의 권력은 아직 초보적이며 양질전환은 이뤄지지 않았다. 착하고 순한 군중..

오월대, 녹두대를 생각했다.

연희동에 전두환을 잡겠다고 밤낮으로 쳐들어갔던 소위 체포조 친구들도 생각했다.

비폭력 불복종이 한반도에서 얼마나 적절한 것인가도 생각한다. 군사정권의 그들이 깊은..이 땅에..

 

씨발됨의 한가운데를 걷는다.

낯익은, 혹은 낯선이들을 만난다. 이곳에서 벗어나고 싶지만,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는 걸 안다.

결국 여기서 싸울것이다. 앨리시어처럼..동생을 위해서, 친구를 위해서..가족을 위해서..

무언지도 모를 '위함'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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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인 조르바 더클래식 세계문학 컬렉션 (한글판) 11
니코스 카잔차키스 지음, 베스트트랜스 옮김 / 더클래식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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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희랍인 조르바. 그리스인 조르바. 어떤 이름이든 꽤 익숙하게 들어 온 책 이름. 니코스 카잔차키스.
중고등학교때, 책 깨나 읽는다는 아이들의 입에선 도스또옙스키가 나왔고, 까뮈, 지이드, 니체, 괴테, 사르트르가 줄줄 읊어지곤 했다. 실존에 대한 의문. 인간의 본성에 대한 의심. 그런것들이 파고들기에 사춘기란 시기는 너무나 좋은 서식지였다.
물론 책을 읽고 격론을 벌인다고해서 즉답이 나오는 문제는 아니었다. 그럴 수 없었고, 그럴리도 없었다. 실존의 문제는 삶의 과정 속에서 규명되어지는 개별적 과제일지도 모른다는게 요즘의 생각이다. 개인적으로 품고 있는 인식의 구조, 그 속에서 습득되고 발현되는 수없는 유동적과정들이 만들어내는 삶의 집약. 어쩌면 실존이란 건 끝없이 의심하는 과정일지도 몰랐다.
희랍인 조르바라는 책을 읽은 것도 그 즈음이었다. 조악한 번역. 지금처럼 눈에 감기고 입에 붙는 문장이 아닌 덜거덕거리는 문장과 문장 사이를 읽었다.
조르바의 성정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던 건 아마 그런 번역이었기에 가능했다. 다듬어지지 않은 기복이 심한, 의미없이 충실한 번역.
방탄소년단의 신곡이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에 기반을 둔 것이라고 하자 아이들이 서로 데미안을 읽는다고 난리도 아니다. 싱클레어, 베아트리체..
통치권력의 부패함을 마주보며 인간의 본성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실존을 이야기 하는 수많은 작품들 사이에서 그나마 웃음을 빼물며 읽을 수 있는 책. 다행이다.

책 속에서 해답을 찾고 책 속에서 위안을 찾던 '나'는 우연한 기회에 조르바를 만나게 되고 그와 동행하게 된다. 텍스트 속의 인물들이 익숙한 '나'에게 조르바는 생경한 존재일 수 밖에 없다. 즉흥적이고 말초적이며 천박하기까지 한 그의 행동과 말을 이해하는 건 쉽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행위와 말 곳곳에서 드러나는 삶의 진정성과 자유에 대한 갈망은 반박할 수 없다. 어쩐지 부코스키가 생각나고 돈키호테가 떠오르기도 했다. 엉뚱하다 싶게 정의감에 불타던 돈키호테와 위악적인 허세가 보태진 부코스키의 글들이 새록새록 눈에 밟힌다. 돈키호테-조르바-부코스키의 어떤 계보를 적어봐도 좋겠다.
Vio kai poitia tou Alexi Zormpa -알렉시스 조르바의 삶과 모험. 우리가 알고 있는 Zorba the Greek -그리스인 조르바 와는 다소 거리가 있다.
알렉시스 조르바의 삶과 모험이라는 원제를 보면 더 확실하게 다가오는 조르바의 이야기.
도대체 안 해 본것이 없고, 못하는 것이 없는 조르바는 , 어떤 이야기든 당당하게 이야기 하는 조르바는, 자신의 감정과 충동에 충실한 조르바는 '나'에게 어떤 영감을 주는 존재이기도 하지만 또한 그토록 알고싶은 인간의 '원형'이다. 느껴지는 모든것에 솔직한, 진심으로 제 삶을 존중하고 즐기는 태도. '가치'라는 것이 인간과 삶에 어떻게 작용하는가에 대한 고민을 갖게 한다. 결국 '자유'
무엇으로부터 자유를 원하는 것인가. 되묻는다. 가식과 욕심의 굴레, 그 굴레를 벗어내기 위한 몸부림은 아닐까. 하지만 조르바의 자유는 말 그대로 자유다.
어떤 속박과 굴레를 지칭하지 않는 순수한 자유. 그것을 원하는 사람. 또한 그것을 누리는 사람. 그것은, 제 삶의 주인이 된 자만이 눈치챌 수 있는 인간성 가장 밑에 숨겨둔 비밀이 아닐까.

처음부터 밑줄을 긋지 않으려 했다. 귀퉁이도 접지 않으려 했다. 어릴 적 내게 '자유'라는 말을 화인처럼 박아 넣은 책의 잔상은 아직까지도 기어코 남아 눈보다 먼저 다음페이지를 뛰곤 했다. 여전히 가슴이 뛰는 조르바. 산투리를 연주하고 같이 춤을 추자고 손짓하는 조르바. 그 사이에 어떤 이성적 판단이 끼어들 수 있을까? 어떤 의심이 파고들 수 있을까. 다만 충실하게 뛰는 그의 심장, 그 심장의 건강한 박동에 고개를 끄덕이고 두 팔을 높이 들고 함께 겅중거리며 춤을 출 수 밖에..

수많은 말들 사이에서 찾은 자유. 눈 속에 박힌 얼음 알갱이처럼 모든 글에서 자유를 찾아내고 자유에의 갈망을 찾아내고 자유롭고자 하는 본성을 찾아낸다.
모든 것을 놓아버리는 자유가 아닌 기꺼이 온몸으로 체득해 내는 자유. 삶을 마주볼 용기가 날 때까지 수없이 부딪고 깨지며 얻어내는 자유. 그렇게 틀어쥐고 기어이 품게 되는 자유. 한 사람의 자유가 사람과 사람에게 전이되고 증폭되는 그 한가운데 조르바라는 촉매가. 사람이. 순수가 있다는 것을 확인한다.
어쩌면 조르바를 통해 위로받고 싶었을거다. 이 혹독한 시기를 살아내기 위해, 사람에 대한 실망과 사람에 대한 불신과 그와 더불어 사람에 대한 감동과 사람에 대한 환상을 동시에 키워나가는 분열적인 일상에서 과연 인간의 존재의미는, 본성은 어디에 있으며 어떻게 발현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이 생기는 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문득 광장 한가운데서 조르바처럼 춤을 추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고통의 축제 그 한가운데서 '자유'로운 본래적 인간으로 말이다.

[ 그가 공중으로 뛰어올랐다. 팔다리에 날개가 달린 것처럼 바다와 하늘을 등지고 날아오르자 그는 마치 반란을 일으킨 대천사 같았다. 하늘에다 대고 이렇게 외치는 것 같았다. '전능하신 하느님, 당신이 날 어쩌시려오? 죽이기밖에 더 하겠소? 그래요, 죽여요. 상관 않을 테니까. 나는 분풀이도 실컷 했고 하고 싶은 말도 실컷 했고 춤출 시간도 있었으니...더 이상 당신은 필요 없어요!'
조르바의 춤을 바라보며 나는 처음으로 자기 무게를 극복하고 날고 싶은 인간의 처절한 노력을 이해했다. 나는 조르바의 인내와 그 민첩함. 긍지에 찬 모습에 감탄했다. 빠르고 맹렬한 스템이 남긴 발자국은 모래 위에다 인간의 신들린 역사를 기록한 것이었다. (p373-374)]

내가 가장 좋아하는 대목이다. 인간으로서의 삶. 가볍게 날아오를 자유. 이 땅에 살았던 흔적을 물고기의 비늘처럼 하얗게 뿌리고 조용히 바스라질 자유를 꿈꾼다.
바람이 불고나면 깔끔하게 흔적도 없이 사라질 어떤 역사를 잠깐 남기는 것으로, 바스라져 사라지는 마지막 순간에 걸죽한 욕 한마디쯤 내뱉을 수 있는 아름다운 천박함을 꿈꾼다. "잘 살았다. 그깟 자유따위~!"

본래적 인간 조르바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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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11-10 14: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윤기씨 번역이 넘사벽이라서 《조르바》 다른 번역본을 내는 역자와 출판사들은 심리적 부담감을 느꼈을 겁니다. 제가 알고 지내는 서재 이웃님들 대부분은 이윤기씨 번역본을 많이 보거든요. ^^;;

나타샤 2016-11-10 15:21   좋아요 0 | URL
성근 번역조차 읽을만한 책들도 잘 없죠^^ 이윤기씨 번역본 읽고 다른 번역본 읽는 맛도 나쁘지 않아요. 갓 구운 우유식빵 먹다 하루 지난 호밀빵을 씹는 느낌~
 
맛 이야기 - 음식에 숨겨진 맛있는 과학
최낙언 지음 / 행성B(행성비)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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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밥투정을 할 때면 밥상 맞은 편에 앉아계시던 할머니는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시며 보릿고개 이야기를 하셨다.

'니들이 배고픈걸 몰라서 이러는거야. '라며..

조금 더 자라서 아무때나 틈이 날 때 급하게 밥을 먹고 공부를 하거나 일을 하곤 했다. 엄마는 늘 걱정이었다.

'규칙적으로 먹어야지. 집 밥을 먹어야지..'하며

아이들을 키우고 그 아이들이 독립해서 혼밥족의 대열에 합류하고 덩그러니 남은 내외는 머리를 맞대고 늘 회의를 한다.

'뭐가 맛있을까?'..


먹는 일의 의미가 시간에 따라 달라지기 시작했다는 것을 떠올린다. 포만감에서 건강으로 그리고 맛으로..먹는 행위는 이 세가지를 모두 담고 있지만 어디에 방점이 찍히느냐의 문제였던 것 같다. 먹을 것이 넘쳐나고 먹방이 대세이고 스타세프들이 티비를 평정하는 요즘. 그렇다면 '맛'이란 뭔가에 대한 의문은 자연스레 생기게 된다.

그 맛의 정체를 묻고 대답하는 책.

VJ특공대 같은 티비 프로그램에서 맛집을 취재하면 사람들의 대답은 어느 순간부터 한결같았다.

"담백하고 맛있어요."

자극적이지 않고 담백하고 맛있는 것.

"재료 본연의 맛이 살아있고 인공의 맛이 없어서 좋아요."

재료 본연의 맛은 있나? 인공의 맛의 경계는 어디지?

"시골 어머니가 해주시던 그 맛"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은 오로지 손맛으로만 음식을 하시나?

늘 갸우뚱 거리던 것들의 답을 찾는다.

의심하고 있던 맛의 비밀, 혹은 오해때문에 누명을 쓴 재료들. 설탕, 소금 같은 흰 가루들은 참 억울했을 것이다.


'맛'을 이야기하는데 다양한 의견들을 인용하고 여러가지 분야의 증명들이 첨가 된다.

식품영양학자나 요리전문가의 글이 아닌 생리학자와 인문학자, 철학자와 심리학자 작가의 이야기까지 모두 모아놓은 이야기는 한마디로 광대한 인문학이라고밖에.

맛의 인문학. 그렇게 정의해도 좋겠다.

과학적, 사회적으로 증명된 이야기들이 대부분이지만 그 속에 감성적인 부분들, 우리가 기억하는 '맛'의 왜곡점을 이야기 하는 대목에선 고개가 저절로 끄덕여졌다.

잘 조합되어지는 맛. 그 맛엔 맛과 맛 사이의 조화와 시너지 뿐 아니라 그걸 먹는 사람의 정서까지 포함되어야 한다면 정말 방대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아유, 정말 맛있네" 라는 말에 담기는 여러가지 의미들은 맛이 가지고 있는 여러가지 비밀들의 총합일지도 몰랐다. 따로 분리해서 짠맛이 어느 정도이고 단맛이 어떻게 배치되었으며 매운맛과 신맛의 첨가 정도는 얼마나 되어서 조합이 잘 되었다라고 말하지 않는 것. 그저 맛있다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 상황에 '맛'은 그 모호성만큼의 다양한 의미를 함축하고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책의 내용을 100퍼센트 동의한다고는 할 수 없겠다. 아직도 고집스레 오해하고 있는 부분이 있으며 그 오해를 철회할 만큼의 설득이 되지 않은 까닭이다. 너무 방대한 이야기여서 내 반론이 무참히 깨지는게 싫어서부리는 오기일지도 모른다.


얼마전 높으신 분들의 식탁이 세간에 회자되기도 했다. 비싼 재료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놓은 사람들. 단지 비싸다는 이유 뿐 아니라 그 음식이 식탁에 올라오기까지 비윤리적 행위에 대한 생각이 미치지 못한 것에 대한 지탄일지도..

사람들은 점점 '미식'을 탐닉하기 시작했다. 간단한 한끼조차 맛있게 먹고자 한다. 어쩌면 이것은 존중받고 싶어하는 심리의 발현이 아닐까? 생명을 유지하는 최초의 단계 섭식을 맛있게 해결함으로 위로받고 싶은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재미난 책이다. 도대체 안 다룬 분야가 뭐야? 싶게 방대한 분야에서의 분석이 흥미롭다.

가방 속에 언제든 시간이 나면 먹으려고 사발면 하나를 넣어다녔다던 청년을 생각하면 '맛'을 탐닉하는 것이 어쩐지 죄스럽기까지 하다.

어쩌면 가장 존중받고 보호받아야 할 시간은 노동의 시간이 아니라 식탁의 시간이며 밥상의 시간이지 않을까?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데 '맛' 따위가..라는 생각은 접어야겠다.

그 한끼 마저도 사람답게 '맛'있게 먹어야 할 권리가 있을테니까..


'미식의 가치는 행복에 있"다고 말하는(p315) 대목에서 무릎을 친다.

맛은 개인적인 행복일거라고..일본 드라마 '고독한 미식가'를 떠올려본다. 모든 맛을 분석하며 행복해하는 주인공..

'그래, 이맛이야!'

오래전 할머니의 손에 들려있던 천사모양의 용기..인공조미료 아이미의 기억을 용서하기로 한다.

맛있었다. 할머니의 손끝에서 적당히 계량된 그 맛 때문이 아니라 어떻게든 맛있게 음식을 해주려했던 그 마음을 기억한다.


맛과 행복의 인과관계를 이해한다면 이제 이렇게 인사해야겠다.

"늘 맛있으시길. "

삶의 맛은 오로지 자신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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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곡의 할매들이 또 시집을 들고 나오셨다.

아침 뉴스에서 구미의 한 공장에서 폭발 사고가 났고 칠곡 인근까지 영향을 주었다는 말을 듣고 할매들을 생각했다.

사상자들과 미흡한 안전조치, 또 죽음으로 문제를 드러내는 현실. 이 노릇을 어찌하면 좋겠냐는 한탄보다 할매들이 먼저 떠오른건 안심하고 싶어서였는지도 모르겠다.

뭔가 부족하고, 뭔가 성에 안찰 때, "할머니~"하고 달려가면 어떻게든 해결해주던 신묘했던 경험이 불러낸 데자부 같은 것이었으리라.

 

 

 

 

 

 

 

 

 

 

 

 

 

 

 

 

시가 뭐고? 를 읽으며 찌릿찌리했던, 콤콤하지만 그리운 할매냄새를 떠올렸던 기억은 그 2탄일지도 모를 '콩이나 쪼매 심고 놀지머'의 출간 소식에 마음이 바빴다. 얼른 사야지 싶었고, 득달같이 주문을 했고, 겨우 받았다.

그저 시집인데..심심한 손주년에게 '콩 쪼매 심고 놀자'라고 말해주는 것 같아서..저절로 웃음이 지어진다.

할머니들의 시집이 종종 나온다.

할머니 시집들에서 서툴고 어설픈 이야기와 그 속에 녹아든 삶의 이력, 뭐 이런 것들을 찾아내며 애잔해하는 것.

그것만 볼 것은 아니다.

진정성이라는 묘한 말로 얼버무릴 일도 아니다.

절묘하게 떨어지는 리듬. 구석구석 파고드는 은유도 직유도 까짓 시적 작법 따위를 몰라도 기가 막히게 맞아떨어지는 시어들..신기하기도 하고 재밌기도 하다. 배우는 할매들, 그렇게 써내는 작품들..그것을 모으는 손길. 이 모두가 참 건강하다.

이 시집은..건강하다.

 

아, 얼마 전에 본 할머니시집 중에 인상 깊은 것들도 있었다.

칠곡 할매들과는 사뭇 결이 다르다. 그 나름의 맛이 있다.

 

 

 

 

 

 

 

 

 

 

 

 

 

 

 

 

 

일흔이 되면..시를 배워야겠다.

시나 쪼매 쓰고 놀지 머..하며 합죽하게 웃어보는 것도 이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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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10-19 17: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할아버지들도 시를 많이 썼으면 좋겠습니다. 연세가 많은 남성 어르신들은 몸을 움직이는 활동의 취미를 선호하는 것 같아요. 등산, 운동, 악기 연주를 좋아해요.

yureka01 2016-10-19 23: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할배들도 분발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