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 이야기 - 음식에 숨겨진 맛있는 과학
최낙언 지음 / 행성B(행성비)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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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밥투정을 할 때면 밥상 맞은 편에 앉아계시던 할머니는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시며 보릿고개 이야기를 하셨다.

'니들이 배고픈걸 몰라서 이러는거야. '라며..

조금 더 자라서 아무때나 틈이 날 때 급하게 밥을 먹고 공부를 하거나 일을 하곤 했다. 엄마는 늘 걱정이었다.

'규칙적으로 먹어야지. 집 밥을 먹어야지..'하며

아이들을 키우고 그 아이들이 독립해서 혼밥족의 대열에 합류하고 덩그러니 남은 내외는 머리를 맞대고 늘 회의를 한다.

'뭐가 맛있을까?'..


먹는 일의 의미가 시간에 따라 달라지기 시작했다는 것을 떠올린다. 포만감에서 건강으로 그리고 맛으로..먹는 행위는 이 세가지를 모두 담고 있지만 어디에 방점이 찍히느냐의 문제였던 것 같다. 먹을 것이 넘쳐나고 먹방이 대세이고 스타세프들이 티비를 평정하는 요즘. 그렇다면 '맛'이란 뭔가에 대한 의문은 자연스레 생기게 된다.

그 맛의 정체를 묻고 대답하는 책.

VJ특공대 같은 티비 프로그램에서 맛집을 취재하면 사람들의 대답은 어느 순간부터 한결같았다.

"담백하고 맛있어요."

자극적이지 않고 담백하고 맛있는 것.

"재료 본연의 맛이 살아있고 인공의 맛이 없어서 좋아요."

재료 본연의 맛은 있나? 인공의 맛의 경계는 어디지?

"시골 어머니가 해주시던 그 맛"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은 오로지 손맛으로만 음식을 하시나?

늘 갸우뚱 거리던 것들의 답을 찾는다.

의심하고 있던 맛의 비밀, 혹은 오해때문에 누명을 쓴 재료들. 설탕, 소금 같은 흰 가루들은 참 억울했을 것이다.


'맛'을 이야기하는데 다양한 의견들을 인용하고 여러가지 분야의 증명들이 첨가 된다.

식품영양학자나 요리전문가의 글이 아닌 생리학자와 인문학자, 철학자와 심리학자 작가의 이야기까지 모두 모아놓은 이야기는 한마디로 광대한 인문학이라고밖에.

맛의 인문학. 그렇게 정의해도 좋겠다.

과학적, 사회적으로 증명된 이야기들이 대부분이지만 그 속에 감성적인 부분들, 우리가 기억하는 '맛'의 왜곡점을 이야기 하는 대목에선 고개가 저절로 끄덕여졌다.

잘 조합되어지는 맛. 그 맛엔 맛과 맛 사이의 조화와 시너지 뿐 아니라 그걸 먹는 사람의 정서까지 포함되어야 한다면 정말 방대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아유, 정말 맛있네" 라는 말에 담기는 여러가지 의미들은 맛이 가지고 있는 여러가지 비밀들의 총합일지도 몰랐다. 따로 분리해서 짠맛이 어느 정도이고 단맛이 어떻게 배치되었으며 매운맛과 신맛의 첨가 정도는 얼마나 되어서 조합이 잘 되었다라고 말하지 않는 것. 그저 맛있다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 상황에 '맛'은 그 모호성만큼의 다양한 의미를 함축하고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책의 내용을 100퍼센트 동의한다고는 할 수 없겠다. 아직도 고집스레 오해하고 있는 부분이 있으며 그 오해를 철회할 만큼의 설득이 되지 않은 까닭이다. 너무 방대한 이야기여서 내 반론이 무참히 깨지는게 싫어서부리는 오기일지도 모른다.


얼마전 높으신 분들의 식탁이 세간에 회자되기도 했다. 비싼 재료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놓은 사람들. 단지 비싸다는 이유 뿐 아니라 그 음식이 식탁에 올라오기까지 비윤리적 행위에 대한 생각이 미치지 못한 것에 대한 지탄일지도..

사람들은 점점 '미식'을 탐닉하기 시작했다. 간단한 한끼조차 맛있게 먹고자 한다. 어쩌면 이것은 존중받고 싶어하는 심리의 발현이 아닐까? 생명을 유지하는 최초의 단계 섭식을 맛있게 해결함으로 위로받고 싶은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재미난 책이다. 도대체 안 다룬 분야가 뭐야? 싶게 방대한 분야에서의 분석이 흥미롭다.

가방 속에 언제든 시간이 나면 먹으려고 사발면 하나를 넣어다녔다던 청년을 생각하면 '맛'을 탐닉하는 것이 어쩐지 죄스럽기까지 하다.

어쩌면 가장 존중받고 보호받아야 할 시간은 노동의 시간이 아니라 식탁의 시간이며 밥상의 시간이지 않을까?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데 '맛' 따위가..라는 생각은 접어야겠다.

그 한끼 마저도 사람답게 '맛'있게 먹어야 할 권리가 있을테니까..


'미식의 가치는 행복에 있"다고 말하는(p315) 대목에서 무릎을 친다.

맛은 개인적인 행복일거라고..일본 드라마 '고독한 미식가'를 떠올려본다. 모든 맛을 분석하며 행복해하는 주인공..

'그래, 이맛이야!'

오래전 할머니의 손에 들려있던 천사모양의 용기..인공조미료 아이미의 기억을 용서하기로 한다.

맛있었다. 할머니의 손끝에서 적당히 계량된 그 맛 때문이 아니라 어떻게든 맛있게 음식을 해주려했던 그 마음을 기억한다.


맛과 행복의 인과관계를 이해한다면 이제 이렇게 인사해야겠다.

"늘 맛있으시길. "

삶의 맛은 오로지 자신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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