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이 얼마 남지 않았다. 해마다 서로에게 잘 태어났다며 '탄신 조공'이란걸 보내는 친구가 며칠 전 문자를 보냈다.

-리스트 줘.

-뭐?

-탄신 조공.

쑥대밭이 된 시간을 사느라 어디쯤에 내 생일이 있는지도 잊고 지냈는데 ..그제야 생각이 났다.

장바구니에서 곰팡이 피고 있는 책 몇권을 써서 보냈고,  그 중 아홉권의 책이 기프티콘으로 도착했다.

스페이스 오딧세이 세트.

그게 핵심이었다. 미리 알았으면..나는 이 전집을 선택했을거다.

 

 

 

 

 

 

 

 

 

어디 돈 나올데는 없고..보험을 해약했다. 약관대출 받은 걸 갚고 오만삼천원이 남았다.

고기 대신 생선으로 교체하고 나물반찬도 당분간 콩나물로 대체하면 뭐..살 수 있겠다.

 

책을 소개하고 싶은데, 출판사의 소개만큼 잘 할 자신이 없다.

조영관이 누구인지, 이 전집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여튼 책을 주문하기로 한다.

곧 사라질 것도 아닌데 마음이 바쁘다. 잘 안팔릴 가격과 인지도. 그래서 굳이 빨리 안사도 될 것 같지만..빨리 읽고 싶다.

조영관 전집을 주문한다.

 

 

여기 한 노동자가 있습니다. 푸른 작업복 차림으로 투박한 작업화의 끈을 매고 있는 중입니다. 끈을 다 매고 나면 이제 곧 고된 노동이 시작될 겁니다. 그 노동의 끝에서 무엇이 피어날까요?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유명 출판사에 취직했다가 스스로를 공장 노동자로 하방(下放)시킨 사람, 노조위원장을 하다 구사대에게 끌려가 갈비뼈가 부러졌던 사람, 건설노동자로 일하며 노동자들의 아름다운 공동체를 만들기 위한 꿈을 간직하고 분투했던 사람, 무엇보다 시인이면서 소설 쓰기에 매달렸던 사람.
생전에 그의 이름으로 된 시집 한 권 갖지 못했습니다. 타계한 뒤에야 『먼지가 부르는 차돌멩이의 노래』라는 제목을 단 유고시집을 그의 무덤에 바쳤을 뿐입니다. 그가 남긴 다른 모든 시와 소설들은 생전에 그가 홈페이지를 만들어 갈무리해둔 채로 이 세상 모든 당신들의 방문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제 그가 홀로 곳간에 쟁여두었던 작품들을 묶어 세상에 내놓고자 합니다. 그리하여 조영관이라는 이름과 함께 조영관이라는 한 인간의 영혼이 그러안고 지펴온 문학의 온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자 합니다.
_「발간사」 중에서

조영관 삶

대학을 졸업하고 공장노동자로 하방해 노동운동을 하면서 문학을 했던 고 조영관 시인의 전집이 나왔다. 조영관 시인은 구로공단과 인천지역에서 고 박영근 시인 등과 함께 학습모임을 하면서 노동자로 살기 위해 용접 기술 등을 배웠다. 그러나 1987년 안기부에 의해 학습모임 구성원들이 구속되자 수배 생활을 하기도 했다. 수배가 풀리자 조영관 시인은 인천의 동미산업에 취업해 노조를 세우고 위원장에 선출되었다. 그 후 임금인상 파업을 하다 구사대에 의해 갈비뼈가 부러지는 폭행을 당하고 해고되기도 했다.
결혼 후 노동운동을 하느라 멈췄던 시를 쓰면서 조영관 시인은 현장 노동자 생활을 이어나갔다. 해직 교사였던 아내가 복직했해 전남 완도에 기거하는 시기에는 일용직 노동자들의 삶과 열악한 노동현실을 소설에 담아내기도 했다. 상경하여 경기도 수원에 살면서는 일용직 노동자들의 일자리, 임금 체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동공동체를 구상하기도 했다.
2002년 『실천문학』에 「1998년 겨울, 영종도」 외 4편이 신인상으로 당선되면서 문학에 전념하게 된다. 한편으로 공사 현장 철골 공사를 하면서 노동자들의 공동체인 ‘햇살공동체’를 만들기도 했다. 2006년 수원과 춘천을 오가며 교각 점검대 설치 작업을 하다가 정신을 잃고 실족하여 병원에 후송되었는데 그는 거기서 간암 판정을 받았다. 간암 투병 중 2007년 2월 20일 새벽 5시 25분에 영면하였다. 친구였던 고 박영근 시인이 죽고 딱 1년 뒤였다. 실천문학사에서 첫 시집이자 유고시집인 『먼지가 부르는 차돌멩이의 노래』가 2007년에 발간되었다.

조영관의 소설세계

전집에 실린 조영관의 소설 「봄날은 간다」, 「따뜻한 방」, 「절집 고양이」, 「철강수첩」 모두 생전에 발표된 적이 없는 유작들이다. 그 중 「봄날은 간다」, 「절집 고양이」 두 편은 단편이고, 「따뜻한 방」은 중편, 「철강수첩」은 장편소설이다. 조영관 소설에 대해서 문학평론가 고명철은 이렇게 말한다.

조영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노동의 현실, 바꿔 말해 노동 안팎을 이루는 삶의 현실이다. 삶의 현실을 관념세계에서 개조하고자 하는 사유에 갇혀 있는 것도 아니고, 현실세계에서 변혁하고자 하는 욕망의 미망에 사로잡히는 것도 아닌, 그 현실을 온몸으로 정직하게 치열히 살아내면 되는 것이다. 21세기 한국사회의 노동자들은 이 지극히 상식적이고 기초적인 일을 수행하는 게 힘들었던 것이다.

「봄날은 간다」에서는 갯벌이 삶의 터전인 갯마을 사람들에게 간척지 공사로 인한 투기 붐이 닥치면서 공동체가 파괴되는 너무도 낯익은 풍경을 그리고 있다. 결국 갯마을 사람들은 자신들의 삶의 터전을 자본에게 빼앗기고 떠돌이로 전락하고 있는 현실을 냉정히 직시하고 있다. 이렇듯 공동체의 파괴는 삶의 파괴와 연결된다는 것을 알았기에 작가 스스로가 현실에서 노동공동체를 만들었는지 모른다.
우리의 삶이 위기에 처해 있다는 현실인식은 「따뜻한 방」에서도 전개된다. 하지만 위기에 처한 삶 속에서도 주인공인 경채가 “나는 나를 배반한 수 없어”라고 말하듯이 작가는 엄정한 자기윤리를 통해 ‘우정’을 추구한다. 이 ‘우정’은 단순한 낭만적 열정이 아니다. 그것은 어쩌면 모든 관계를 자본의 착취 중심으로 개편하는 현실 속에서 어디에도 의지할 수 없는 참담한 처지에 대한 작가의 현실 판단일 수도 있다.
이런 인식은 장편인 「철강수첩」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작품 해설을 쓴 고명철은 이 작품이 “21세기 한국소설의 주류에서 벗어나 있”으며 “이른바 노동소설의 낯익은 서사가 눈에 밟힌다”고 진단했다. 하지만 이 작품은 거꾸로 “21세기 한국사회의 노동 현실이 직면하고 있는 문제점들을 숙고하게 한다는 점에서 과소평가할 수 없다.” 특히 “용접 노동의 세밀한 서술과 묘사, 노동자들 사이에 주고 받는 생동감 있는 현장의 언어들” “후기자본주의 일상 속에서 우리가 외면하거나 망실하고 있었던 노동 현실의 낱낱을 해부해 보인다.”
조영관의 소설 작품들이 요즘 독자들에게는 역설적으로 낯설면서 동시에 낯익을지도 모른다. 낯선 것은 한국 소설을 포함한 우리의 문화가 지금도 엄밀히 존재하는 노동 현실을 외면하고 있는 사실에 익숙해져서일 테이고, 낯익은 것은 조영관이 그 현실에 너무 깊이 천착한 나머지 다른 양식의 추구를 미처 고민하지 못해서일 것이다.
재현의 양식을 너도나도 외면하거나 비방하고 있지만 일상의 재현마저 힘들어하는 노동자들의 서사는 아직도 널리고 널렸다는 것을 그러나 조영관의 소설들은 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조영관 전집의 의미

우리는 문학사에서 적잖은 분량의 문학전집을 가지고 있다. 그 문학사에서 『조영관 전집』이 어떤 의미를 갖고 어떤 가치가 있는지는 쉬 말할 수 없다. 다만, 노동자의 삶을, 그것도 세계의 변화를 바라마지 않았던 노동자의 글쓰기를 온전히 담고 있는 ‘문학’ 전집이 얼마나 있었는지에 대해서 우리는 되물어볼 필요가 있다. 이것은 매우 문학적인 문제 제기이며 정치적인 문제 제기이기도 하다. 현 세계가 다수자의 해석과 실천으로만 구성된 것이 아니라면, 다수자가 아니 소수자의 관점도 충분히 그 자격을 가지기 때문이다.
소수자의 기록과 표현들이 ‘밖으로’ 드러나지 못하고 배제되고 도외시될 때, 소수자의 꿈과 의지는 언제나 ‘나중에’로 분류된다. 이런 일들은 예전에도 꾸준히 있어 왔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는 언명은, 오늘날에는 비윤리적이고 반동적이기까지 하다. 기록 없이 해석과 평가는 요원하다. 해석과 평가가 없다는 것은 어떤 삶들은 그 가치를 온전히 부여받지 못한다는 말과도 같다.
이번에 펴내는 『조영관 전집』은 불꽃같았던 한 노동자 시인이 길지 않은 평생에 걸쳐 누구보다도 세계를 열정적으로 형상화내려고 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단언컨대, 이 같은 문학적 기록은 우리 사회의 기저에 면면히 흐르고 있지만 은폐되다시피 한 힘의 표현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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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너간다
이인휘 지음 / 창비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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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어릴 때, 나는 어른들의 이야기를 듣는것을 좋아했다. 옛날 이야기든, 뉘집 며느리 흉보는 이야기든, 길 가 만물상 아저씨가 바람 난 이야기든 어른들의 입에서 나오는 이야기면 무엇이든 들었다.

할미 얘기 해줘.

뭔 야그를 해달라고 그라냐? 할미가 아는 얘기는 다 해줬구, 더 해줄라캐도 엄따.

그냥 얘기 해줘.

뭔 이야기를 할꼬?

손주년의 칭얼거림에 못이긴 할머니는 일제강점기 이야기를 하셨다.

야마구친지 다마고친지 하는 앞잡이 이야기, 징집당한 사람들 이야기, 설사까지 나오다 질겁을 하고 도로 들어가게 했다는 일본순사 이야기를 했다. 할머니가 건너 온 시간은 그렇게 조마조마하고 허기졌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의 "얘기 해줘"는 엄마 몫이 되었다.

그 때는 조금 더 컸었고 조금 더 실감 나게 들었다.

얘는 무슨 얘기를 하라고, 책 읽어.

책 말고, 엄마 얘기 해줘.

엄마는 전쟁 이야기를 하셨다. 피난도 못가고 남산 밑에 숨어살던 이야기를 했다.

지금은 많이 늙어버린 이모, 삼촌의 천진한 웃음이 보이는 것 같았고 그 두려움과 막막함이 느껴지기도 했다.

엄마가 건너 온 시간은 '살아남기' 였다.

요즘 아이는 내게 '엄마는 젊을 때 어땠어?'라고 자주 묻는다.

별 거 없었어. 라고 이야기하지만 사실 너무 많은 일들이 일어났고 어떤 것 부터 입을 떼야할지 몰라서 별 거 없었다고만 말했다.

에이 시시하다. 엄마. 파란만장한 시기였잖아?

그래.

 

건너 간다.

이인휘의 소설은 그 시기를 오롯이 담고 있다. 호떡 공장에서 일을 하던 박해운. 그 사람이 살아 온, 건너 온 시간들이 쓰여있다. 어느 날 선배에게 받은 씨디를 우연히 듣게 되며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쓰기 시작한다.

아무도 없는 차 안에서 들은 노래.

지난 겨울 광화문 광장에서 정태춘이 불렀던 종로 장마.

그가 무대 위에 선 것. 그가 입을 열어 노래 하기 시작 한 것. 훠이~라는 소리 앞에 툭 하고 떨어져 내렸던 가슴 한켠.

찌릿한 것이 스쳐갔다. 시작부터 심호흡을 하게 된다.

그의 전작 "폐허를 보다" 를 읽고 나는 그런 말을 했었다.

<누가 그랬다. 더이상 "노동 문학은 없다. 문학 노동만이 남았다" 라고 말이다. 현장으로 들어간 작가보다 작가의 책상으로 올라간 노동이 더 많았다. 노동문학이라는 가검을 들고 설치는 사람들 사이에 제대로 벼린 날 선 진검을 든 검객이 나타난 셈이다> 라고..

한 사람이 지나온 삶의 과정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글은 차라리 노동운동의 역사이다.

손이 덜덜 떨릴만큼 사실적인 묘사와 어떤 사건들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보여지는 행적은 커다란 격랑의 한 가운데 선 사람의 고통과 고뇌와 매 순간 결단해야하는 참담함을 극명하게 보인다.

왜 그렇게 살았냐고 물을 수 없다. 그렇게 살 수 밖에 없었으니까.

소설은 자전적이다. 그가 살아 온 과정, 그가 살아내는 현재와 맞닿아 있다.

자책하고 좌절하지만 끝내 놓지 못하는 그 가운데 '노동자'라는 뜨거운 이름이 있었다.

그 이름이 낙인이 아닌 세상을 떠받치고 같이 밀고 나가는 한 축으로서 불려지는 것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생각을 한다.

그것을 위해, 아직도 싸우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 아직도 죽어가고 있는 많은 사람들.

우리는 그 사이를 걸어 여기까지 온 것이다.

 

어디까지 왔니?

장승까지 왔다.

어디까지 왔니?

다리까지 왔다.

어디..까지..왔니?

골목까지 왔다.

어디..까...쌕쌕..

아버지 왔다.

 

어디까지 왔을까. 묻고 또 묻다 정작 기다리던 사람이, 시간이, 세상이 왔을 때 까무룩 잠이 들어버리지는 않을까 걱정이 될 때도 있었다. 소설을 읽으며 다시 묻는다.

'어디까지 왔지? 얼마나 더 가야하지?'

소설이 대답한다.

'조금 더 가면. 같이 건너 가면. '

 

소설은 가끔 숨차다. 순식간에 상황이 전개되고 사람들이 뛰어들고 헤어지고 다시 뭉친다.

그만큼 가쁘게 달려온 노동현장이다. 부분부분 낯익은 장면들도 있다. 얼마나 왔는지 숨고르며 뒤돌아 보는 일.

얼마나 남았는지 가늠해보는 일. 건너 간다를 읽으며 되짚는다.

세련되고 말끔하기보다 투박하고 거친 글. 그래서 이인휘답다.

그래서..함께 건너 갈 마음이 움직인다. 노동해방. 종국에 그렇게 쟁취되면 좋겠지만 조급하게 서두를 일은 아니다.

노동자의 힘. 사람의 연대. 얼마나 동력이 단단하게 채워졌는지 눈금을 세어본다.

일단 가자. 같이 가자.

 

결국은 함께 건너 갈 역사이며 현장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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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만담 - 책에 미친 한 남자의 요절복통 일상 이야기
박균호 지음 / 북바이북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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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동네 한 집에 있던 TV. 마당이 너른 그 집 대청마루엔 언제나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손등이 반질반질하도록 코를 흘리던 개구장이들이 거의 대부분이었고, 점잖은 표정을 지으며 안 보는 척 안 웃는척 하는 어른들이 서너분 고정적으로 계셨다.

자꾸만 아이들에게 집에 가라하던 어른들. 꼴밤을 맞으면서도 꾸역꾸역 버티다보면 어른들과 한 편이 되는 순간이 왔다. 일주일에 한 번. 코미디프로그램을 하는 날. 아이들은 아이답게 웃었고 어른들은 어른답게 웃었다.

프로그램 중간쯤에 우스꽝스런 분장을 한 작은 남자와 여자가 나와 말을 주고 받을때면 그 이야기가 뭔지도 모르고 어른들을 따라 까르르 숨이 넘어가게 웃곤 했다. 아버지가 장에 소를 팔러 가다 낳아서 이름이 장소팔이 되었다는 남자와 고추처럼 매워서 고춘자라고 했던 그 사람들이 주고 받던 이야기가 '만담'이라는 걸 조금 더 커서 알았다.

무슨 내용인지는 잘 기억도 안나고 이해도 못했었지만 말을 탁구 치듯 던지고 받던 그이들의 숨가쁜 모습이 기억난다.

'이봐요 장소팔씨~'라고 여자가 불렀고 '이봐요 고춘자씨'라고 남자가 불렀던 것은 기억이 또렷하다.

만담은 내게 경쾌한 재미와 웃음이 보장된 이야기였고 작은 공연처럼 각인되었다.

서로에 대한 믿음과 빈틈없이 잘 짜여진 웃음. 그것이 받쳐주지 않으면 재미도 의미도 없어지는 아슬아슬하고 흥미진진한 곡예처럼 말이다.

 

독서 만담.

두 단어가 갖는 이질감에 살짝 갸우뚱했다. 가장 개인적이고 심지어 고독한 행위라고까지 하는 책읽기와 주거니 받거니하며 상호간 호흡을 들어야 하는 만담이라는 말이 엮인 제목.

어쨌든 배꼽을 잡았다는 소문이 자자하여 펼쳐 읽기 시작한다.

장서가이자 애서가인 한 남자의 에피소드들이다. 책 한 권을 구하기까지의 험난한(?) 과정, 때때로 비겁해질 수 밖에 없던 일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상대인 아내와의 이야기, 딸과의 이야기 일상의 모든 일들이 책 이야기와 연관되거나 책 이야기가 일상의 이야기로 연결된다.

옳지! 이래서 만담이로구나. 이해가 된다.

일상과 책이 주고받는 대화. 책을 구하거나 읽거나 하는 일이 일상 밖의 특별한 행위가 아니라 일상의 일이며 서로 드러나고 설명하고 이해하는 관계라는 것. 그래서 그 절묘한 호흡에 웃음이 지어지는 것.

 

'책을 참 좋아하시나봐요.'

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 그럴 때마다 선뜻 대답하지 못하고 반문하곤 했다.

나는 책을 좋아하나? 책이라는 물성을 지닌 대상을 좋아하는건가? 책 속에 있는 의미나 지식을 좋아하는 건가? 아님 문자를 읽고 해독하는 것이 좋은건가? 책을 좋아한다는 건 어떤거지? 하고 말이다.

안방을 서재로 쓸만큼의 여유나 배짱이 없기에 딸 아이가 쓰던 방에 책을 쌓아두고, 옷무덤과 책무덤을 번갈아 쌓고 부수고를 반복하지만, 나는 책을 좋아한다.

비슷한 일상에 비슷한 정보들 속에서 살아가지만 새록새록 새로운 의미와 지식을 알아가는게 재밌는 나는 책을 좋아한다.

늘 쓰던 단어들을 조금은 비틀어 읽고 좀 다른 의미와 붙여서 읽어보는 것이 흥미로운 나는 책을 좋아한다.

오래전 부터 고리타분할 정도로 오래전부터 나의 취미는 '독서'였고 여전히 '독서'다.

 

일상과 연결되는 책들. 희귀본에 대한 이야기들. 그런 책들 속에 내가 읽은 책이 툭 튀어나올때면 격하게 반갑다.

내가 어렵게 구했던 책이름이 나오면 고개까지 끄덕이며 동의하게 된다.

책 좀 읽었다는 사람들은 '맞아 맞아' 하며 오래 웃을 이야기다.

책 읽는 사람들이 궁금한 사람들은 '정말 그래?'라며 호기심이 들 만한 이야기다.

 

'이봐요 박균호씨~' 장소팔 고춘자의 만담처럼 불러보고 싶어졌다.

오랜만에 오래 웃으며 읽어냈다. 책 읽기가 부담스러워서..라고 말하는 사람에게 꼭 쥐어주고 싶은 책이다.

괜히 만담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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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균호 2017-02-28 19: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글을 저보다 더 정겹게 잘 쓰시네요. 박균호씨라는 사무적인 호칭이 정답게 느껴질 정도로요.
 

2016년 11월.

작은 촛불이 켜지기 시작해 횃불이 되는 시간은 장엄했다.

모두가 벅찼던 시간, 하나의 목소리를 경험하던 시간. 다양한 사람들이 한 목소리로 모이기 시작했고 어느 덧 2월이 다 지나간다.

금방 끝날 것 같았다. 너무나 명확하고 분명해서 어떤 변명과 속임수도 통하지 않을 것이라고 순진하게 믿었다.

이 싸움을, 고상하기까지 했던 싸움을 진흙탕으로 만들고 같이 뒹굴자고 바짓가랑이를 당기는 세력들.

아슬아슬하다.

국민들의 서슬 퍼런 분노와 정의에 대한 갈구 이외엔 체제 안에서 시민들이 틀어쥔 것은 별로 없다.

저들의 법, 저들의 정부, 저들의 행정.

이름갈이만 하는 무리들.

특검연장이 거부당했고, 보란듯이 자유당인지 한국당인지는 지지선언을 했다.

 

민주주의는 어떻게 오는가. 청산되지 않은 과거가 끝끝내 가로막으려 애쓰는 민주주의는 얼마나 더 고된 시간을 담보로 요구할까.

생각이 많아졌다.

며칠 전 받은 이정희의 새 책을 읽는다.

진보정치에 대한 상상력. 어쩌면 지금 가장 필요한지도 모른다. 진보라는 말이 갖는 느낌. 단단하고 타협없는 냉정함 같은..

혁신과 혁명은 단단하게 굳어버린 것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닌 다양한 요구와 그 속을 관통하는 가치관을 기저로 다양하게 구상되고 시도되는 과정에서 다져질 것이라고 본다. 과연 우리는 그런 상상을 하는가.

다부진 그녀의 목소리를 들어보기로 한다. 내가 듣는 다양함 중의 하나의 채널이다.

 

 

 

 

 

 

 

 

 

 

 

 

 

 

폐허를 보다로 만해문학상을 수상했다. 사람의 인연이란게 우스워 어떻게 가닿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1년 전 쯤 우연히 알게되어 '인휘 형'이라 부르게 되었지만 그는 도대체 나이를 어디로 먹은건지 궁금할 정도로 천진난만하다. 때로 취하고 때로 울며 글을 쓴다. 글을 쓰는 동안 공장을 다닐 수 없어 생활비를 어찌 조달할꼬..걱정을 했더니 상을 받아 어찌저찌 충당이 된 것 같아 다행이라고 했다.

아내를 돌보며 최소한의 생계만 유지한 채 근 1년 가까이 몸부림치며 쓴 책이 나왔다.

 

 

 

 

 

 

 

 

 

 

 

 

 

3월 1일 광화문 광장 한광호 열사 분향소 앞에서 싸인회를 하겠다고 했다. 책 판매 수익 전부는 한광호열사 장례기금으로 쓰겠다고 한다. 누가 누굴..?

하지만 어쩌겠는가. 그는 평생 노동자였고, 노동자의 친구였고, 사람답게 살 권리를 찾는데 골몰했던 사람인데..

제 주머니 텅텅 비어 먼지 밖에 나올게 없어도 그 먼지라도 모아 시린 손등을 덮어줄 사람인데..

책이 나왔다는 문자를 받고도 축하합니다. 한마디를 건네지 못했다.

"이 책 쓰고 나면, 아마 글은 더 못쓸 것 같다. 다 쏟아부었어" 라고 했던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우리가 건너 온 시간들, 그리고 건너고 있는 시간. 그 속을 관통하는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이 오롯하다.

우리는 지금 어디쯤 와 있을까? 얼마나 더 가야할까? 이 소용돌이 치는 지점만 벗어나면 좀 나아질까?

'건너 간다'

어쨌든 이 시간을 이겨내고 견뎌내고 조금 더 나은 시간으로 한발짝 씩 움직여 간다.

 

매 순간 우리는 조금씩 건너 가고 있다.

눈물겨운 사람들과 천친하게 웃으며 둘러앉아 술 한잔 마실만큼은 팔렸으면 좋겠다.

세상을 떠난 이, 가는 길 초라하지 않을만큼 뜨겁게 보낼 수 있을만큼 팔렸으면 좋겠다.

뼛 속까지 후벼파서 써낸 책을 놓고 많이 팔리길 바라는 속물같은 지인도 하나쯤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어떤 각오처럼..책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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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2-27 17: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자유경제원’, ‘자유한국당’ 때문에 자유를 ‘가짜 보수의 가치’로 여겨질까 봐 걱정됩니다.

나타샤 2017-02-27 17:12   좋아요 0 | URL
이미 어버이와 엄마도 더럽혀졌죠..
 
한 치 앞도 모르면서
남덕현 지음 / 빨간소금 / 2017년 1월
평점 :
절판


남덕현의 질펀한 충청도 이야기를 읽는다.충청도의 힘에서 읽힌 수수한 이야기들이 갖는 힘, 슬픔을 권함에서 읽힌 슬픔. 유랑에서 읽힌 섬세한 결, 이 모든것을 읽었어도 읽지 않았어도 한 치 앞도 모르면서는 이 모든 이야기들이 스며있다.

해학과 풍자라고, 향토어로 쓰여진 현장감, 요즘 말로 '웃픈'이야기라고 사람들은 이야기 한다.

까르르 웃고 넘기게 되는 엉뚱함과 발랄함. 대부분 어르신들의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어디로 튈지 가늠이 되지 않는 이야기의 흐름은 긴장감마저 갖게 한다. 작가의 섬세함이 드러나는 부분이다. 그저 주고 받는 이야기들을 듣고 서술하는 것이 아닌, 그 이야기가 그려내는 큰 그림을 보아내는 능력, 그리고 그것을 고스란히 써내는 진심. 웃음이 지어지는 건 바로 그 대목이다.

 

충청도가 아니더라도 어느 곳에서든 만날 수 있는 오랜 삶의 경험을 가진 사람들의 흔한 이야기다. 그냥 허투루 뱉어지는 말이 아닌 삶의 문제, 현실의 문제, 관계의 문제를 고스란히 드러내는 글. 덮어놓고 윽박지르듯 사설을 풀어내는 것이 아닌 나의 이야기와 너의 이야기, 그리고 그 이야기를 듣는 사람의 귀가 만들어내는 나름 장엄하고 진득한 앙상블인것이다.

먼저 책을 읽은 사람들이 그랬다.

너무 웃었다.

정말 재미있었다.

충청도 사투리가 이렇게 맛깔날지 몰랐다. 등등..

 

그의 전작들을 읽은 탓일지도 모르겠지만 읽는 내내 나는 자꾸 슬프고 아팠다. 그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눙치듯 뱉어내는 말들이 사무치게 들렸던 것이다. 어디가서 쉬이 하지 못할 말들, 가슴 속에 응어리처럼 단단하게 굳어지는 말들을, 들을 줄 아는 사람을 만나 신명나게 풀어낸 것은 아니었을까? 어디서든 언제든 말할 수 없었던 사람들의 비나리처럼 읽혔다.

 

방 안 가득 튀밥을 허옇게 흩뿌리고 손끝에 침을 발라 꼭꼭 찍어 먹는 손주년을 보며 외할미는 입버릇처럼 그랬다.

'저기 이 세상을 우예 살아갈끼고, 천지를 모리고 깨춤을 출낀데..한 치 앞도 모리는걸 우야면 좋겠노.'

할미의 말이 무슨 뜻인지 어떤 걱정인지도 모르는 해맑은 것 밖에 할 줄 모르는 손주년은 그저 튀밥만큼 뽀얗게 웃으며

'잘 살꺼야'했다.

누군들 살아온 시간 속에 소설 같은 이야기 한자락 꺼낼 것이 없을까? 누구에게나 기구하고 누구에게나 아득한 삶의 공평성(이런 것에 있어서만..). 어디가서 딱히 꺼내기 어렵고, 꺼내기 거시기하고, 꺼내기 매깔스럽고, 꺼내기 민망해서 장~다물고 있는 이야기를 들어줄 귀가 있다면 고해성사하듯 주절주절 이야기할게 뻔하다.

듣는 귀 앞에서 신명이 나는 건 그래서 당연한 일일거다. 열심히 들어주고 끄덕여주는 고개, 한마디씩 거들며 이야기를 끊기지 않게 부추기는 입까지 있다면 더 없이 좋을게다.

부지런히 이야기하고 부지런히 들은 세상에 더없는 '사람'의 이야기. 너와는 조금 다르고 나와도 조금 다르지만 결국 맹탕처럼 한 치 앞을 보지 못한 사람의 이야기는 그래서 애틋하다.

 

저절로 리듬을 타게 되고, 저절로 장단을 두드리며 읽게 되는, 충청도식 그루브. 충청도식 라임.

한 치 앞을 모른다한들 뭐 대수겠는가.

아주 예전에 은하철도 999라는 만화영화 주제가를 불렀던 가수가 그런 노래도 불렀었다.

'한 치 앞도 모두 몰라 다 안다면 재미없지.'

그래도 가끔 알고 싶긴 하다. 정말 재미 없는지..

 

 

"잉 사램이 한꺼번에 다 울구 마는 게지, 슬플 때마덤 새루 우는 중 아남? 사램 사는 일이 다 거기서 거기구, 애통이구 절통이구 난리를 치나마나 다 빤한 일인디, 뭐가 맨날 새루 슬프다구 그때마다 새루 눈물이 난댜? 사램이 맨날 새루 우는 중 알지만서두 내가 볼 띠는 한번이 다 울구 마는겨. 울기는 다 울었는디 미련이 남아설랑 차마 다 못 떨구구선 장 매달구 사는게지. 우는게 일인중 아는디, 우는 건 일두 아닌겨! 매달려 있는 눔의 거 미련 읎이 다 떨구구 가는게 일이지.(....)"

"그랴 사램 한핑생 사는 게 헛비에 헛꽃 피구 지는 건디, 헛으루 우는거맨치 대간헌 일이 또 읎네.(....) 필요헐 띠마다 한두 방울썩 얼굴이다 지리다 간다 생각햐. 헛눈물에 고연히 헛심 쓰지 말구" (p247-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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