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1월.

작은 촛불이 켜지기 시작해 횃불이 되는 시간은 장엄했다.

모두가 벅찼던 시간, 하나의 목소리를 경험하던 시간. 다양한 사람들이 한 목소리로 모이기 시작했고 어느 덧 2월이 다 지나간다.

금방 끝날 것 같았다. 너무나 명확하고 분명해서 어떤 변명과 속임수도 통하지 않을 것이라고 순진하게 믿었다.

이 싸움을, 고상하기까지 했던 싸움을 진흙탕으로 만들고 같이 뒹굴자고 바짓가랑이를 당기는 세력들.

아슬아슬하다.

국민들의 서슬 퍼런 분노와 정의에 대한 갈구 이외엔 체제 안에서 시민들이 틀어쥔 것은 별로 없다.

저들의 법, 저들의 정부, 저들의 행정.

이름갈이만 하는 무리들.

특검연장이 거부당했고, 보란듯이 자유당인지 한국당인지는 지지선언을 했다.

 

민주주의는 어떻게 오는가. 청산되지 않은 과거가 끝끝내 가로막으려 애쓰는 민주주의는 얼마나 더 고된 시간을 담보로 요구할까.

생각이 많아졌다.

며칠 전 받은 이정희의 새 책을 읽는다.

진보정치에 대한 상상력. 어쩌면 지금 가장 필요한지도 모른다. 진보라는 말이 갖는 느낌. 단단하고 타협없는 냉정함 같은..

혁신과 혁명은 단단하게 굳어버린 것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닌 다양한 요구와 그 속을 관통하는 가치관을 기저로 다양하게 구상되고 시도되는 과정에서 다져질 것이라고 본다. 과연 우리는 그런 상상을 하는가.

다부진 그녀의 목소리를 들어보기로 한다. 내가 듣는 다양함 중의 하나의 채널이다.

 

 

 

 

 

 

 

 

 

 

 

 

 

 

폐허를 보다로 만해문학상을 수상했다. 사람의 인연이란게 우스워 어떻게 가닿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1년 전 쯤 우연히 알게되어 '인휘 형'이라 부르게 되었지만 그는 도대체 나이를 어디로 먹은건지 궁금할 정도로 천진난만하다. 때로 취하고 때로 울며 글을 쓴다. 글을 쓰는 동안 공장을 다닐 수 없어 생활비를 어찌 조달할꼬..걱정을 했더니 상을 받아 어찌저찌 충당이 된 것 같아 다행이라고 했다.

아내를 돌보며 최소한의 생계만 유지한 채 근 1년 가까이 몸부림치며 쓴 책이 나왔다.

 

 

 

 

 

 

 

 

 

 

 

 

 

3월 1일 광화문 광장 한광호 열사 분향소 앞에서 싸인회를 하겠다고 했다. 책 판매 수익 전부는 한광호열사 장례기금으로 쓰겠다고 한다. 누가 누굴..?

하지만 어쩌겠는가. 그는 평생 노동자였고, 노동자의 친구였고, 사람답게 살 권리를 찾는데 골몰했던 사람인데..

제 주머니 텅텅 비어 먼지 밖에 나올게 없어도 그 먼지라도 모아 시린 손등을 덮어줄 사람인데..

책이 나왔다는 문자를 받고도 축하합니다. 한마디를 건네지 못했다.

"이 책 쓰고 나면, 아마 글은 더 못쓸 것 같다. 다 쏟아부었어" 라고 했던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우리가 건너 온 시간들, 그리고 건너고 있는 시간. 그 속을 관통하는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이 오롯하다.

우리는 지금 어디쯤 와 있을까? 얼마나 더 가야할까? 이 소용돌이 치는 지점만 벗어나면 좀 나아질까?

'건너 간다'

어쨌든 이 시간을 이겨내고 견뎌내고 조금 더 나은 시간으로 한발짝 씩 움직여 간다.

 

매 순간 우리는 조금씩 건너 가고 있다.

눈물겨운 사람들과 천친하게 웃으며 둘러앉아 술 한잔 마실만큼은 팔렸으면 좋겠다.

세상을 떠난 이, 가는 길 초라하지 않을만큼 뜨겁게 보낼 수 있을만큼 팔렸으면 좋겠다.

뼛 속까지 후벼파서 써낸 책을 놓고 많이 팔리길 바라는 속물같은 지인도 하나쯤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어떤 각오처럼..책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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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2-27 17: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자유경제원’, ‘자유한국당’ 때문에 자유를 ‘가짜 보수의 가치’로 여겨질까 봐 걱정됩니다.

나타샤 2017-02-27 17:12   좋아요 0 | URL
이미 어버이와 엄마도 더럽혀졌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