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이 얼마 남지 않았다. 해마다 서로에게 잘 태어났다며 '탄신 조공'이란걸 보내는 친구가 며칠 전 문자를 보냈다.

-리스트 줘.

-뭐?

-탄신 조공.

쑥대밭이 된 시간을 사느라 어디쯤에 내 생일이 있는지도 잊고 지냈는데 ..그제야 생각이 났다.

장바구니에서 곰팡이 피고 있는 책 몇권을 써서 보냈고,  그 중 아홉권의 책이 기프티콘으로 도착했다.

스페이스 오딧세이 세트.

그게 핵심이었다. 미리 알았으면..나는 이 전집을 선택했을거다.

 

 

 

 

 

 

 

 

 

어디 돈 나올데는 없고..보험을 해약했다. 약관대출 받은 걸 갚고 오만삼천원이 남았다.

고기 대신 생선으로 교체하고 나물반찬도 당분간 콩나물로 대체하면 뭐..살 수 있겠다.

 

책을 소개하고 싶은데, 출판사의 소개만큼 잘 할 자신이 없다.

조영관이 누구인지, 이 전집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여튼 책을 주문하기로 한다.

곧 사라질 것도 아닌데 마음이 바쁘다. 잘 안팔릴 가격과 인지도. 그래서 굳이 빨리 안사도 될 것 같지만..빨리 읽고 싶다.

조영관 전집을 주문한다.

 

 

여기 한 노동자가 있습니다. 푸른 작업복 차림으로 투박한 작업화의 끈을 매고 있는 중입니다. 끈을 다 매고 나면 이제 곧 고된 노동이 시작될 겁니다. 그 노동의 끝에서 무엇이 피어날까요?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유명 출판사에 취직했다가 스스로를 공장 노동자로 하방(下放)시킨 사람, 노조위원장을 하다 구사대에게 끌려가 갈비뼈가 부러졌던 사람, 건설노동자로 일하며 노동자들의 아름다운 공동체를 만들기 위한 꿈을 간직하고 분투했던 사람, 무엇보다 시인이면서 소설 쓰기에 매달렸던 사람.
생전에 그의 이름으로 된 시집 한 권 갖지 못했습니다. 타계한 뒤에야 『먼지가 부르는 차돌멩이의 노래』라는 제목을 단 유고시집을 그의 무덤에 바쳤을 뿐입니다. 그가 남긴 다른 모든 시와 소설들은 생전에 그가 홈페이지를 만들어 갈무리해둔 채로 이 세상 모든 당신들의 방문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제 그가 홀로 곳간에 쟁여두었던 작품들을 묶어 세상에 내놓고자 합니다. 그리하여 조영관이라는 이름과 함께 조영관이라는 한 인간의 영혼이 그러안고 지펴온 문학의 온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자 합니다.
_「발간사」 중에서

조영관 삶

대학을 졸업하고 공장노동자로 하방해 노동운동을 하면서 문학을 했던 고 조영관 시인의 전집이 나왔다. 조영관 시인은 구로공단과 인천지역에서 고 박영근 시인 등과 함께 학습모임을 하면서 노동자로 살기 위해 용접 기술 등을 배웠다. 그러나 1987년 안기부에 의해 학습모임 구성원들이 구속되자 수배 생활을 하기도 했다. 수배가 풀리자 조영관 시인은 인천의 동미산업에 취업해 노조를 세우고 위원장에 선출되었다. 그 후 임금인상 파업을 하다 구사대에 의해 갈비뼈가 부러지는 폭행을 당하고 해고되기도 했다.
결혼 후 노동운동을 하느라 멈췄던 시를 쓰면서 조영관 시인은 현장 노동자 생활을 이어나갔다. 해직 교사였던 아내가 복직했해 전남 완도에 기거하는 시기에는 일용직 노동자들의 삶과 열악한 노동현실을 소설에 담아내기도 했다. 상경하여 경기도 수원에 살면서는 일용직 노동자들의 일자리, 임금 체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동공동체를 구상하기도 했다.
2002년 『실천문학』에 「1998년 겨울, 영종도」 외 4편이 신인상으로 당선되면서 문학에 전념하게 된다. 한편으로 공사 현장 철골 공사를 하면서 노동자들의 공동체인 ‘햇살공동체’를 만들기도 했다. 2006년 수원과 춘천을 오가며 교각 점검대 설치 작업을 하다가 정신을 잃고 실족하여 병원에 후송되었는데 그는 거기서 간암 판정을 받았다. 간암 투병 중 2007년 2월 20일 새벽 5시 25분에 영면하였다. 친구였던 고 박영근 시인이 죽고 딱 1년 뒤였다. 실천문학사에서 첫 시집이자 유고시집인 『먼지가 부르는 차돌멩이의 노래』가 2007년에 발간되었다.

조영관의 소설세계

전집에 실린 조영관의 소설 「봄날은 간다」, 「따뜻한 방」, 「절집 고양이」, 「철강수첩」 모두 생전에 발표된 적이 없는 유작들이다. 그 중 「봄날은 간다」, 「절집 고양이」 두 편은 단편이고, 「따뜻한 방」은 중편, 「철강수첩」은 장편소설이다. 조영관 소설에 대해서 문학평론가 고명철은 이렇게 말한다.

조영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노동의 현실, 바꿔 말해 노동 안팎을 이루는 삶의 현실이다. 삶의 현실을 관념세계에서 개조하고자 하는 사유에 갇혀 있는 것도 아니고, 현실세계에서 변혁하고자 하는 욕망의 미망에 사로잡히는 것도 아닌, 그 현실을 온몸으로 정직하게 치열히 살아내면 되는 것이다. 21세기 한국사회의 노동자들은 이 지극히 상식적이고 기초적인 일을 수행하는 게 힘들었던 것이다.

「봄날은 간다」에서는 갯벌이 삶의 터전인 갯마을 사람들에게 간척지 공사로 인한 투기 붐이 닥치면서 공동체가 파괴되는 너무도 낯익은 풍경을 그리고 있다. 결국 갯마을 사람들은 자신들의 삶의 터전을 자본에게 빼앗기고 떠돌이로 전락하고 있는 현실을 냉정히 직시하고 있다. 이렇듯 공동체의 파괴는 삶의 파괴와 연결된다는 것을 알았기에 작가 스스로가 현실에서 노동공동체를 만들었는지 모른다.
우리의 삶이 위기에 처해 있다는 현실인식은 「따뜻한 방」에서도 전개된다. 하지만 위기에 처한 삶 속에서도 주인공인 경채가 “나는 나를 배반한 수 없어”라고 말하듯이 작가는 엄정한 자기윤리를 통해 ‘우정’을 추구한다. 이 ‘우정’은 단순한 낭만적 열정이 아니다. 그것은 어쩌면 모든 관계를 자본의 착취 중심으로 개편하는 현실 속에서 어디에도 의지할 수 없는 참담한 처지에 대한 작가의 현실 판단일 수도 있다.
이런 인식은 장편인 「철강수첩」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작품 해설을 쓴 고명철은 이 작품이 “21세기 한국소설의 주류에서 벗어나 있”으며 “이른바 노동소설의 낯익은 서사가 눈에 밟힌다”고 진단했다. 하지만 이 작품은 거꾸로 “21세기 한국사회의 노동 현실이 직면하고 있는 문제점들을 숙고하게 한다는 점에서 과소평가할 수 없다.” 특히 “용접 노동의 세밀한 서술과 묘사, 노동자들 사이에 주고 받는 생동감 있는 현장의 언어들” “후기자본주의 일상 속에서 우리가 외면하거나 망실하고 있었던 노동 현실의 낱낱을 해부해 보인다.”
조영관의 소설 작품들이 요즘 독자들에게는 역설적으로 낯설면서 동시에 낯익을지도 모른다. 낯선 것은 한국 소설을 포함한 우리의 문화가 지금도 엄밀히 존재하는 노동 현실을 외면하고 있는 사실에 익숙해져서일 테이고, 낯익은 것은 조영관이 그 현실에 너무 깊이 천착한 나머지 다른 양식의 추구를 미처 고민하지 못해서일 것이다.
재현의 양식을 너도나도 외면하거나 비방하고 있지만 일상의 재현마저 힘들어하는 노동자들의 서사는 아직도 널리고 널렸다는 것을 그러나 조영관의 소설들은 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조영관 전집의 의미

우리는 문학사에서 적잖은 분량의 문학전집을 가지고 있다. 그 문학사에서 『조영관 전집』이 어떤 의미를 갖고 어떤 가치가 있는지는 쉬 말할 수 없다. 다만, 노동자의 삶을, 그것도 세계의 변화를 바라마지 않았던 노동자의 글쓰기를 온전히 담고 있는 ‘문학’ 전집이 얼마나 있었는지에 대해서 우리는 되물어볼 필요가 있다. 이것은 매우 문학적인 문제 제기이며 정치적인 문제 제기이기도 하다. 현 세계가 다수자의 해석과 실천으로만 구성된 것이 아니라면, 다수자가 아니 소수자의 관점도 충분히 그 자격을 가지기 때문이다.
소수자의 기록과 표현들이 ‘밖으로’ 드러나지 못하고 배제되고 도외시될 때, 소수자의 꿈과 의지는 언제나 ‘나중에’로 분류된다. 이런 일들은 예전에도 꾸준히 있어 왔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는 언명은, 오늘날에는 비윤리적이고 반동적이기까지 하다. 기록 없이 해석과 평가는 요원하다. 해석과 평가가 없다는 것은 어떤 삶들은 그 가치를 온전히 부여받지 못한다는 말과도 같다.
이번에 펴내는 『조영관 전집』은 불꽃같았던 한 노동자 시인이 길지 않은 평생에 걸쳐 누구보다도 세계를 열정적으로 형상화내려고 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단언컨대, 이 같은 문학적 기록은 우리 사회의 기저에 면면히 흐르고 있지만 은폐되다시피 한 힘의 표현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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