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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너간다
이인휘 지음 / 창비 / 2017년 2월
평점 :
아주 어릴 때, 나는 어른들의 이야기를 듣는것을 좋아했다. 옛날 이야기든, 뉘집 며느리 흉보는 이야기든, 길 가 만물상 아저씨가 바람 난 이야기든 어른들의 입에서 나오는 이야기면 무엇이든 들었다.
할미 얘기 해줘.
뭔 야그를 해달라고 그라냐? 할미가 아는 얘기는 다 해줬구, 더 해줄라캐도 엄따.
그냥 얘기 해줘.
뭔 이야기를 할꼬?
손주년의 칭얼거림에 못이긴 할머니는 일제강점기 이야기를 하셨다.
야마구친지 다마고친지 하는 앞잡이 이야기, 징집당한 사람들 이야기, 설사까지 나오다 질겁을 하고 도로 들어가게 했다는 일본순사 이야기를 했다. 할머니가 건너 온 시간은 그렇게 조마조마하고 허기졌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의 "얘기 해줘"는 엄마 몫이 되었다.
그 때는 조금 더 컸었고 조금 더 실감 나게 들었다.
얘는 무슨 얘기를 하라고, 책 읽어.
책 말고, 엄마 얘기 해줘.
엄마는 전쟁 이야기를 하셨다. 피난도 못가고 남산 밑에 숨어살던 이야기를 했다.
지금은 많이 늙어버린 이모, 삼촌의 천진한 웃음이 보이는 것 같았고 그 두려움과 막막함이 느껴지기도 했다.
엄마가 건너 온 시간은 '살아남기' 였다.
요즘 아이는 내게 '엄마는 젊을 때 어땠어?'라고 자주 묻는다.
별 거 없었어. 라고 이야기하지만 사실 너무 많은 일들이 일어났고 어떤 것 부터 입을 떼야할지 몰라서 별 거 없었다고만 말했다.
에이 시시하다. 엄마. 파란만장한 시기였잖아?
그래.
건너 간다.
이인휘의 소설은 그 시기를 오롯이 담고 있다. 호떡 공장에서 일을 하던 박해운. 그 사람이 살아 온, 건너 온 시간들이 쓰여있다. 어느 날 선배에게 받은 씨디를 우연히 듣게 되며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쓰기 시작한다.
아무도 없는 차 안에서 들은 노래.
지난 겨울 광화문 광장에서 정태춘이 불렀던 종로 장마.
그가 무대 위에 선 것. 그가 입을 열어 노래 하기 시작 한 것. 훠이~라는 소리 앞에 툭 하고 떨어져 내렸던 가슴 한켠.
찌릿한 것이 스쳐갔다. 시작부터 심호흡을 하게 된다.
그의 전작 "폐허를 보다" 를 읽고 나는 그런 말을 했었다.
<누가 그랬다. 더이상 "노동 문학은 없다. 문학 노동만이 남았다" 라고 말이다. 현장으로 들어간 작가보다 작가의 책상으로 올라간 노동이 더 많았다. 노동문학이라는 가검을 들고 설치는 사람들 사이에 제대로 벼린 날 선 진검을 든 검객이 나타난 셈이다> 라고..
한 사람이 지나온 삶의 과정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글은 차라리 노동운동의 역사이다.
손이 덜덜 떨릴만큼 사실적인 묘사와 어떤 사건들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보여지는 행적은 커다란 격랑의 한 가운데 선 사람의 고통과 고뇌와 매 순간 결단해야하는 참담함을 극명하게 보인다.
왜 그렇게 살았냐고 물을 수 없다. 그렇게 살 수 밖에 없었으니까.
소설은 자전적이다. 그가 살아 온 과정, 그가 살아내는 현재와 맞닿아 있다.
자책하고 좌절하지만 끝내 놓지 못하는 그 가운데 '노동자'라는 뜨거운 이름이 있었다.
그 이름이 낙인이 아닌 세상을 떠받치고 같이 밀고 나가는 한 축으로서 불려지는 것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생각을 한다.
그것을 위해, 아직도 싸우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 아직도 죽어가고 있는 많은 사람들.
우리는 그 사이를 걸어 여기까지 온 것이다.
어디까지 왔니?
장승까지 왔다.
어디까지 왔니?
다리까지 왔다.
어디..까지..왔니?
골목까지 왔다.
어디..까...쌕쌕..
아버지 왔다.
어디까지 왔을까. 묻고 또 묻다 정작 기다리던 사람이, 시간이, 세상이 왔을 때 까무룩 잠이 들어버리지는 않을까 걱정이 될 때도 있었다. 소설을 읽으며 다시 묻는다.
'어디까지 왔지? 얼마나 더 가야하지?'
소설이 대답한다.
'조금 더 가면. 같이 건너 가면. '
소설은 가끔 숨차다. 순식간에 상황이 전개되고 사람들이 뛰어들고 헤어지고 다시 뭉친다.
그만큼 가쁘게 달려온 노동현장이다. 부분부분 낯익은 장면들도 있다. 얼마나 왔는지 숨고르며 뒤돌아 보는 일.
얼마나 남았는지 가늠해보는 일. 건너 간다를 읽으며 되짚는다.
세련되고 말끔하기보다 투박하고 거친 글. 그래서 이인휘답다.
그래서..함께 건너 갈 마음이 움직인다. 노동해방. 종국에 그렇게 쟁취되면 좋겠지만 조급하게 서두를 일은 아니다.
노동자의 힘. 사람의 연대. 얼마나 동력이 단단하게 채워졌는지 눈금을 세어본다.
일단 가자. 같이 가자.
결국은 함께 건너 갈 역사이며 현장이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