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끌어안다 - 죽음과 마주한 과학자 게리 씨의 치유 여행기
게리 홀츠.로비 홀츠 지음, 강도은 옮김 / 행성B(행성비) / 2017년 6월
평점 :
절판


#1. 가만히 끌어안다.


제목이 주는 울림은 포근했다. 내쳐지고 밀리고 공격당하는 게 일상인, 그래서 때론 양육강식이라는둥, 적자생존이라는둥 하는 말이 어울리는 시대. 가만히 기댈 곳이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은 당연한 것일지도 몰랐다. 그저 기댈 수 만 있으면 좋겠다 생각하는데 끌어안는다. 누가 누굴?

제목에서 그런 기대를 하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위로. 지쳐있는 내게 '괜찮아'라고 거짓으로라도 귀뜸해 주는 위로 말이다.

한 때는 웰빙이 화두였고, 그러다 힐링이 화두였고, 이제는 위로가 화두가 된 싯점. 시기별 화두를 들여다보면 삶의 모습이 보이기도 한다. 지금은 위로와 인정일지도 모른다.

그런 기대로 읽는다. 나는 널부러져 있고 차고 흰 손으로 내 이마를 짚어주고 끌어안아줄 대상을 기다리며..그런 대상은 없다는 걸 이내 깨닫지만.

기분 좋은 제목이다.


#2.


잘나가는 물리학자 게리씨는 갑작스레 '다발성경화증'이라는 병을 앓게 된다. 난치병이 아닌 불치병. '치료법 없음'.이 대답인 병을 말이다.

병에 걸린 이유도, 병이 시작된 싯점도 모호한 채 자신의 의지대로 통제되지 않는 근육들을 이끌고(?) 호주로 떠난다. 그곳의 원주민들과 함께 지내며 자연 속에서 그들의 몸짓과 대화 속에서 조금씩 차도를 보이게 된다.

자신 안에서 문제를 보고 문제를 인정하고 자신의 상태를 확인하고 조금씩 치유되어가는 게리씨. 과학지 게리씨가 과학적으로 증명이 불가능한 이 경험을 인정할 수 밖에 없는 것은 체험이다. 자신이 증거였으니까.

사실 이런 류의 책들을 그다지 즐겨읽지 않는 편이었다.

결국 자신의 문제로 귀결되는 뻔하고 뻔한 이야기. 하지만 읽어가며 조급해하는 자신을 마주하게 된다.

왜?

지난 2월 병원 응급실의 전화를 받았다. 옆지기의 이름을 대며 그곳에 있다고 했다. 아침만 해도 깔깔 웃으며 출근한 사람인데, 사고가 난건가? 물었다.

사고는 아니고 직접 택시를 잡아타고 와서 응급실 앞에서 의식을 잃었다고 했다.

서둘러 찾아간 병원에 옆지기는 수십년을 살면서 보지 못했던 표정으로 누워있었다.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 같은 표정으로 낡은 기계의 불안하게 삐그덕 거리는 손잡이처럼 손짓을 하면서 말이다.

심장이 아팠다고 했다. 쥐어짜듯 아파서 이러다 죽는구나 싶어 타고가던 차에서 내려 택시를 타고 응급실로 왔다고 했다.

심장 초음파 검사를 하고 심전도 검사도 하고, 48시간 휴대용 심전도 검사기를 차고 나왔다.

의사 면담을 할 때, 의사는 몇몇 증상을 물으며 갸웃대기도 했다. 어쨌든  처방된 약을 받고 퇴원을 했다. 옆지기는 밤새 불안해했다. 결국 다음 날도 병원이라며 전화가 왔다. 또 증상이 있어서 왔다고 했다. 그리고 휴대용 심전도기를 떼고 의사가 물었다.

처음 병원에 왔을 때와 같은 통증이 있었냐고. 옆지기는 두번 있었다고 했다. 언제쯤이었는지 확인을 하고 그 시간이 맞냐는 되물음에 그렇다고 말했다.

심전도 그래프는 정상이었다. 이틀동안, 옆지기가 죽을 것 같아서 다시 응금실을 찾았던 그 시간에도 정상이었다.

그 후 심리치료를 받으며 공황장애라는 진단을 받았다.

언제 어떻게 발작을 하게 될지 모르는 상태. 그 원인을 알아채기 전엔 불안한 상태.

자기 자신도 왜 그런지 알 수 없다고 했다. 초조한 일도, 스트레스 받는 일도 없는데 왜? 라고 오히려 내게 물었다.

여전히 약을 먹고 있지만 조금 덜 불안한 상태일 뿐 여전히 발작의 위험은 있다.


책을 읽으며 나는 자신의 몸을 마주하는 게리씨와 자신의 상태를 마주해야 하는 옆지기가 오버랩되기 시작했다.

드러나는 불편함이 아닌, 아무도 모르는 그래서 오로지 혼자 견뎌내야 하는 불편함과 불안. 그것과 함께 살아내기란 녹록치 않을텐데 딱히 옆에서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원주민들의 지혜. 우격다짐으로 이것은 되고 저것은 안되는 것이 아닌 자연 속에서 하나씩 깨우쳐 가는 과정은 어쩌면 자연의 한 부분으로 되돌아가는 과정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치유의 요소..기꺼이 하려는 마음, 알아차리기, 받아들이기, 힘 부여하기..

자칫 오해하여 읽다보면 결국 마음의 문제라거나 개인의 의지의 문제로 읽힐 수도 있겠다.

극단적으로 읽어보자면 어떤 간증처럼 읽힐수도 있겠다.



삐딱하게 읽어보자면 선문답처럼 읽힐수도 있겠다.

건성으로 읽어보자면 어디서 많이 읽어본 거네. 라고 할 수도 있겠다.


#3.

자신에게서 근원을 찾는 것은 자칫 위험할 수 도 있다. 보통 자신에게서 근원을 찾는 행위는 절망의 끝에서 선택하게 되는 외통수같은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절반의 포기와 절반의 희망이 뒤섞인 불안정한 상태의 폭발물처럼 작동하기도 한다. 가만히 끌어안는 이 방법은 스스로 '기꺼이' 하려는 마음에서 시작한다. 그 시작점이 다르다. 잘 되면 좋고 아니면 말고의 요행이 작용하는 것이 아닌, 기꺼이 하려는 마음에서 시작하는 행위는 받아들이고 풀어가는 과정에서 만나게 되는 성취의 밀도를 더 높인다. 막연하게 나의 병이 낫는 과정이 아니라 병이 오게 되는 그 상황을 뒤짚어 그곳에 있던 자신과 자신의 상황을 마주하는 것.  생각만큼 쉽지 않을것이다. 자신의 숨을 따라가며 자신을 살피는 호흡법처럼 별스럽진 않지만 많이 어려운 과정임에 틀림없다.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닌, 인위적으로 자연 속에 파고 드는 것이 아닌, 처음부터 자연이었던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는 것.

참 멋진 일이다.


옆지기의 공황장애는 좀 진정되는 기미가 보이기는 하지만 여전히 불안한 상태다.

그 발작이 시작되던 시간과 장소, 그리고 옆지기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졌다. 그 상황까지 자신을 밀어붙여야만 했던..

책을 덮고 고양이를 쓰다듬는 옆지기의 등을 가만히 끌어안는다.


서두르지 않아도 돼. 가만히..천천히..기꺼이 하고 싶을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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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26 21: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6-26 23: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galmaenamu 2017-06-27 09: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따뜻하게 잘 읽었습니다. 남편의 치유를 기원합니다.

나타샤 2017-06-27 15:29   좋아요 0 | URL
힉..감사합니다.
 

어디에 물어봐야할지..
우체국 택배로 책을 받아왔습니다.
다른 택배사 배송시간과 안맞아서 말이죠.
외진곳에 사는지라 딱히 맡길만한 이웃도 없고 자주 맡기는 것도 미안하고..
어제 대여섯권쯤 주문을 하려고보니 우체국택배 선택칸이 없어졌더군요.
그래서 일반 택배(한두권쯤은 그냥 대문 안에 던져넣어 달라고 하니까) 밖에 안되나 싶어 두권을 주문하는데 우체국택배 선택란이 생겼습니다.
그렇다면 배송편의를 위해 두권씩 구매하고
굿즈는 이제 포기해야 하는구나 싶더라구요.
일정금액이 넘어가면 우체국 택배는 이제 안되는건가요?
그런 공지가 있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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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고객센터 2017-06-21 15: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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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안한 시간 보내세요. 감사합니다
 
고용 신분 사회
모리오카 고지 지음, 김경원 옮김, 김종진 해제 / 갈라파고스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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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지난 스승의 날 세월호 기간제 교사였던 ‘김초원’ 선생님의 순직을 인정한다는 보도를 보고 참 다행이다 싶었다. 아이들을 구하는데, 가르치는데 기간제 교사라서 소극적이었거나 적당히 거리를 둔 것이 아니었을텐데..기간제 교사라는 신분 때문에 순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비단 이 사안 뿐 아니라 다양한 불합리를 보아왔다. 그까짓 신분이 뭐라고.

화장실 한 칸을 휴게실로 사용한다는 비정규 청소 노동자들, 근로자의 날에도 일을 하다 사고를 당하신 협력업체 직원. 언젠가는 그런 기사를 본 기억도 있다. 복날이었던가? 정사원들은 삼계탕을 먹고 협력업체 사원들은 그러지 못했다는 기사.

너무 많은 사례들을 보아왔다. 처음에 들었을 때는 화가 났지만 너무 자주 듣게 되는 차별의 소식에 이제는 무뎌진 것도 같다. 아니, 다들 그렇지 뭐. 라고 체념한 것인지도 모른다. 점점 세분화되는 사회의 구성체계의 탓으로만 돌리기엔 무리가 있는 상황이지만 취업이 어려운 때 뭐라도 하고 있다는 건 어쩌면 작은 돌파구를 가진 기분일지도 몰랐다. 적잖이 손해를 보더라도 당장 손에 쥘 급여가 있다는 건 물 속에서 겨우 잡은 지푸라기일지도 몰랐다는 말이다.

하지만, 과연 그것이 온당한가라는 물음엔 자신이 없다.

 

책은 일본의 사례를 분석하여 정리했다. 하지만 어째서 이렇게 낯설지 않은지..어쩌면 이런 왜곡된 고용의 형태는 신자유주의 시대, 혹은 자본이 권력인 시대에서 소모품이 되어가는 ‘사람’의 일반적인 양태인가 싶기도 했다.

신분이라는 것. 역사적으로 신분의 철폐를 위한 다양한 싸움들이 있었고 이제는 신분이라는 것이 없다고도 믿는 사람들이 많지만, 우리는 더욱 세분화된 신분제 속으로 파고들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정규직, 계약직, 아르바이트, 시간제, 정사원, 협력사원..고용의 형태가 어떠한가에 따라 보장되는 복지의 차별이 있고, 급여의 차별이 있고, 권리의 차별이 있다.

자신이 원해서 얻게 된 것도 아니고 태생적으로 갖게 된것도 아닌데 고용의 형태에 따라 동일한 노동을 하면서-또는 더 많은 일을 더 오래 하면서-그에 합당한 대우는 커녕 재계약이라는 굴레 때문에 정당한 요구를 하지 못하는 악순환이 계속 되고 있다.

고용형태는 더 세분화되고 더 교묘해지고 적은 임금으로 이익을 내는 구조가 일상이 되고 있는 것이다. 거기에 사람은 없고 자본의 증식만이 남았다.

이것이 자본의 힘 만으로 되는 일인가? 이렇게 증식된 자본은 권력의 뒷배가 되고 권력은 다시 자본의 증식에 복무하게 된다.

단적으로 가난이 대물림되고 부가 상속되는 구조. 그래서 노동의 가치는 추락하게 되는 것은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존중받지 못하고, 극단적으로 생존이 보장되지 못하는 상황.

이 끝없는 굴레를 어찌해야할지를 고민하게 한다.

 

일을 할수록 가난해지고, 그 일조차 얻지 못하는 현실. 같은 근로자 사이에서도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에 암묵적으로 인정하게 되는 차별. 자신의 빵을 나누지 않겠다는 이기주의라고 비난하기에는 서로가 가진 빵이 너무 작다.

노동은 정당한 댓가로 교환되어야 하고, 존중받아 마땅한 인간의 행위이다.

싸게 팔아넘기는, 싸게라도 팔아넘겨야 하는 행위가 아니다. 생존을 위해 노동과 더불어 인간의 권리를 얹어 팔아버려서는 안된다. 어째서 ‘사람답게 살고 싶다’는 구호는 아직도 유효해야만 하는가.

착취.

자본은 정당한 교환 속에서 창출되어야 함에도 착취와 차별을 통해 증식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생각보다 많고 생각보다 교묘한 고용형태와 그 속에서 그것이 신분이 되어버리는 신카스트제도 같은 극단의 상황이 더 유지되어서는 안된다.

 

고용되지 않은 사람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자영업자들, 프리랜서..

나의 경우도 이상한 고용형태이긴 하다. 학원 강사는 개인사업자로 분류되지만 엄연히 고용된 전임강사이다. 정해진 페이를 받고 있지만 그 어떤 보장도 없다. 고정된 페이에 유동적인 수업시수. 분단위까지 페이 계산을 하는 마트 계산원들. 경력이 단절된 여성들, 잔업과 특근이 없으면 생활비가 어려운 가장들. 우리는 너무 오래 너무 많이 일하며 너무 많은 차별과 너무 작은 임금을 받고 있는 셈이다.

 

표와 수치로 비교하기 좋은 책을 후루룩 읽었다.

다시 꼼꼼하게 읽어봐야할 것 같다.

자본의 노예가 돼서 사는 건 사람의 노예가 되는 것보다도 더 참혹한 일이다.

이웃들을 생각해본다.

택배 기사 일을 하는 사람. 마트 계산원을 하는 00이 엄마. 시간제 식당 알바를 하는 xx엄마. 아파트 관리 일을 하는 한씨 아저씨. 협력업체 직원인 **이 아빠. 버스 기사님. 일이 너무 많은 집배원. 편의점에서 일하는 ##이. PC방 알바를 하다 알바비를 못받고 나온 xx.

적지 않은 서러운 신분을 가진 이들이 나의 이웃이다.

동일 노동 동일 임금의 꿈은 말 그대로 꿈인건가. 생각이 많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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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6-17 08: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위험한 환경에서 일하는 직업군은 노동의 대가를 많이 받아야 해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반대라서 위험한 일을 하는 노동자는 생계 걱정, 목숨 걱정을 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이런 일을 정식 직업으로 인정하지 않아서 천대 받습니다.
 
몬스트러몰로지스트 1 - 괴물학자와 제자
릭 얀시 지음, 박슬라 옮김 / 황금가지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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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여름엔..


여름엔 뭔가 머리를 쓰거나 깊이 생각하는 책을 피하는 편이다. 딱히 이유가 있어서라기보다 어떤 조건에 따른 적응이라고 보는 것이 옳다.

도무지 집중이 안되는 여름. 어떤 이들은 오히려 깊이 생각하는 책을 읽는다고 했다. 그렇게 몰두하다보면 더운것도 잊는다고..나는 아직 그정도 경지는 아닌가보다.

그래서인지 판타지를 읽거나 추리물을 읽거나 범죄소설이랄지 장르물 중심으로 읽곤 하는것 같다.

올 여름도 변함없이 그 기제가 발동했다.

그 첫 책이 몬스트러몰로지스트 시리즈. 일단 그 첫번째 책을 읽는다.이 이야기를 끌어가는 도입부인 셈이다.

괴물학자와 어린 제자가 만나게 되는 괴물들.

이 괴물이란 것이 책의 묘사처럼 떠올라주질 않는다. 기억은 자꾸만 몬스터 주식회사, 몬스터 대학교의 귀여운 캐릭터들을 떠올린다. 이 잔혹한 괴물을 읽으려면 더 흉칙해야하지 않아? 라고 생각하다 기껏 생각이 미치는 것이 오크였다.

비슷하려나? 어쨌든 이 잔혹한 괴물 '안트로포파기'의 형상을 오크를 기본으로해서 중세의 괴물 이미지를 더하여 날렵하고 재빠르며 자비심이라곤 없는 포악한 이미지로 만들어 본다.

가슴 한가운데 날카로운 이를 가진 입이 있는 괴물. 어깨에 눈이 달리고 머리가 없는 괴물.

있을 수 없는 곳에 나타난 수십의 괴물을 맞닥뜨린 괴물학자와 제자(어리지만 영민하고 섬세한)를 중심으로 이야기는 전개된다.


#2.

워스롭 박사와 어린 제자(라기 보다는 조수에 가까운) 윌 헨리의 괴물 탐색, 퇴치라는 큰 줄기를 따라 이야기는 전개된다.

안트로포파기의 출현 이후엔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끈적하고 물컹한 살점의 느낌이, 비릿한 피의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저절로 얼굴이 찡그려질 만큼 섬세한 묘사가 이야기의 속도감을 내는 기묘한 이야기다. 때로 이런 류(?)의 책을 읽다보면 속된말로 너무 징그러워서, 혹은 너무 적나라해서 덮어버리기 십상이었다.

그런데 그런 묘사가 오히려 속도감을 더해주다니, 뭔가 있는건가? 하는 의심을 하게 된다.

두 사람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이야기는 이들의 성장소설 같은 느낌도 준다. 매 순간 묻고 의문을 갖고 묻지 않아도 가르치려 드는 관계.

아버지를 잃은 두 사람이 괴물을 매개로 동지가 되고 가족이 되는 이면이 있다는 것이 그 속도감을 끌고 가는 힘일지도 모른다.

본능. 가장 본능적인 움직임 같은..

괴물을 사냥하는 액션 보다는 괴물을 찾아다니는 그 이면..워스롭과 윌 헨리의 상실과 고통이 더 헛헛하게 읽힌다.


<우리의 적은 두려움이다. 맹목적이고 비이성적인 두려움이지. 두려움은 진실을 좀먹고 명백한 증거를 오염시키며 잘못된 가정과 비합리적인 결론을 이끌어 낸다. (p57)>

안트로포파기와 마주칠 때마다 냉철하게 판단하고 맞서는 건 그들이 두려움이 없어서가 아니라, 매번 두려움과 맞서며 그 두려움의 실체를 알아가는 과정이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모두가 꿈속에 봉인해두고 가설 속에 묻어 둔 두려움과 괴물. 그것이 현실로 뛰어 들어와 내 뒤를 쫓을 때, 그 섬뜩함을 감당할 수 있을까?


<나중에야 나는 내가 봉사해야 하는 매우 필수적인 업무 중 하나임을 깨달았다. 어쩌면 다른 모든 일보다도 훨씬 더 중요하고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임무였는지도 모른다. 바로 그의 지독한 외로움을 달래주는 일 말이다.(p104)>

어쩌면 이 괴물박사와 제자는 서로에게 그런 존재였을지도 몰랐다. 서로에게 지독한 골칫덩이이며 지독한 외로움을 달래주는 관계. 단단한 애증으로 서로에게 묶인 관계.


#3.

첫 한 권의 이야기를 읽고 나서 그런 장면을 떠올렸다.

영화 캐리에서, 졸업무도회인가? 캐리가 돼지피를 뒤집어 썼던 장면.

흠씬 피에 젖어버린 두려움과 증오가 뒤섞인 눈빛.

이제 시작이야. 광기는 이미 충분해. 피의 광란을 시작해볼까? 하는 선전포고 같은 장면.

뒤의 이야기들이 사뭇 궁금하다.

안 읽은 사람은 있어도 한 권만 읽은 사람은 없는 소설이 되려나? 하는 생각이 흐릿한 비린내와 함께 번지는 것 같다.

아그작 아그작 사람을 씹어대는 환청이 들리는 것도 같다.

여름엔 이런 것이 어울린다. 악몽을 꾸기에도 적당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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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6-14 17: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이 러브크래프트와 코난 도일을 오마주했을 것 같아서 눈 여겨 보고 있었습니다. 홈즈 전집을 다 읽으면 이 책을 읽어봐야겠어요. ^^

2017-06-14 18: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6-14 18: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난쟁이 백작 주주
에브 드 카스트로 지음, 정장진 옮김 / 열린책들 / 2017년 2월
평점 :
품절


#1. 실존


90cm밖에 안되는 사람. 소위 난쟁이라 불리우는 부류의 사람이다. 머리가 크고 팔 다리가 짧고 오동통한 손가락을 가진 사람들을 연상하게 된다. 하지만 유제프는 모든 비율이 완벽한, 사람의 축소판이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마치 살아있는 인형이라고 생각되는데도 무리가 없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유제프는 그의 유년시절부터 그런 취급을 받으며 성장했다.

방탕한 아버지의 죽음, 그 마지막을 목격한 어린 소년. 몰락한 귀족가의 자제였지만 이미 더 기울 수도 없이 기울어버린 가세. 아이들을 책임질 수 없었던 어머니에 의해 다른 귀족의 집으로 입양이라는 미명하에 팔려가는 유제프.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된다. 귀족의 집에 입양되었지만 그저 눈요기감이 될 수 밖에 없는, 애완인(人)이 되어버린 유제프의 위치는 고단할 수 밖에 없을 그의 일생을 짐작하고도 남게 한다.

과시와 사치 허영이 그득했던 프랑스의 귀족사회에 제 의지와는 무관하게 편입된 유제프는 신기한 대상, 혹은 어디서 구했는지 궁금한 장난감에 다름아니었다.

글을 배우고, 읽고 쓰고 악기를 연주하는 유제프. 그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찌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보통 사람의 절반밖에 안되는 체구로 곱지 않은 시선을 받으며 어머니에 대한 안타까움과 어린 동생 아나스타시아에 대한 그리움. 가시지 않는 아버지의 기억을 품고 살아내기 위한 절박함이 있었을테니 말이다.

어떤 극적 효과를 위해 조그마한 체구를 가진 주인공을 설정하는 이야기들을 종종 보게 된다. 그러나 유제프 보루브와스키는 실존 인물이라고 한다.

유제프의 회고록에 기반한 이야기는 그래서 더 절절한지도 모르겠다.

하필이면 격변의 시기를 살아낸 것 마저도..


#2. 역사


작은 사람, 정상적이지 않은 사람의 수명이 긴것은 기대하기 어렵다. 무수히 보아왔던 비극적 결말에 대한 기시감일지도 모르지만..

놀랍게도 유제프는 그런 염려를 뒤엎고 근 한세기 가까이 살아낸다. 그가 살아낸 시기..프랑스의 격변의 시기였다. 시민혁명과 산업혁명의 시기.

왕정과 공화정을 모두 겪어낼 수 밖에 없었던..귀족들의 횡포를 가까이에서 보면서도 그들에게 의탁해서 살아내야만 했던 유제프의 기구함이란..

어쩌면 유제프는 시민혁명을 시민의 반대편에서 가장 낱낱이 목격한 목격자일지도 모르겠다. 역사적 사건과 역사적 인물들의 이름이 튀어나올 때마다 가슴이 뛰었다.

역사소설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평도 들었다고 한다. 새로운 스타일의 역사소설. 가장 낮은 시선으로, 거기 있었으나 거기 있었다고 아무도 인정하지 않는 존재의 눈으로 보는 혁명의 현장은 또 다른 먹먹함이 있다.

프랑스의 역사 속에서 가장 큰 풍랑이 일었던 시기를 가장 작은 몸으로 견뎌낸 유제프의 이야기는 그래서 더 흥미로운가보다.


#3.살아남기


유제프의 생활력, 아니 생존력은 대단하달 수 밖에 없다. 모두가 원했지만 아무도 원하지 않았던 존재. 사랑하는 여인에게서까지 외면을 당할 수 밖에 없었던 유제프. 귀족들의 장난감이었지만 보통의 사람들처럼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어떻게든 살아낸다. 애잔하기까지 한 유제프의 행적을 따라 읽다보면 '살아남기'란 얼마나 고단한 일인가 싶기도 하다. 특히나 아직 살아있는 유제프를 부검하고 박제로 남겨 연구하려 드는 사람들을 볼 때..유제프의 의식이 빠져나가기를 간절히 바라는 사람들을 볼 때..차라리 그의 생기가 돌아오지 않길 바라기도 했다. 어쩐지 그의 고통스러움에 공범이 된 것 같은 기분을 떨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사람인데..단지 좀 작은 사람일 뿐인데..


#4. 목차가 다 읽어주네.

흥미로운 목차를 가졌다. 목차를 찬찬히 읽는 것만으로도 시놉시스를 읽은 느낌이다.

하나의 저주에 대하여, 납으로 만든 시계추에 대하여, 그리고 내몰리는 한 가족에 대하여 말해 보자. 폴란드의 옛 동화라고 하지만 결코 동화가 아니라 사실이었으니까...- 작은 꼬마를 진주조개로 만드는 방법 - 추운 폴란드에서는 연못이 녹은 다음 미끼를 던진다. 사랑에서도 미끼를 던지기 전에 여자의 마음부터 녹여야 한다. - 다른 어떤 것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것. - 살롱의 난쟁이를 교육하는 방법 살롱의 난쟁이를 두 토막 내는 방법. - 주주, 산 채로 불에 타 죽을 뻔하다. 그리고 왕비나 난쟁이나 같은 인간임을 알다. - 주주, 타오르는 덤불숲을 발견하다 그리고 교수대에 올라 목에 줄을 걸다 - 주주, 평범한 결혼한 남자가 되다 -주주, 심장을 강보에 싸 요람에 두고 오다 - 주주, 알록달록한 어릿광대의 도시에 들어서다 - 주주, 날카로운 엄니를 가진 야수를 길들이다. 그리고 진정한 사랑을 만나다 - 주주, 대혁명의 수레바퀴에 치여 쓰러지다. 행복하기 위해서는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다. 그러나 너무 늦었다.

 

이 책을 읽어보고 싶다고 생각한건 목차때문이었다. '심장을 강보에 싸 요람에 두고 오다' 이 강렬한 문구를 떨칠 수 없었다. 내 짐작이 맞았다.

이 챕터가 가장 날이 서 있다.

어쩌면 저주에 가까울 신체조건과 태생. 그래서 과연 유제프는 불행하기만 했을까.


유제프는 생각했다. <나는 하느님께서 행하신 기적을 통해 태어났다.> 유제프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p468)

생존자체가 기적이었을 유제프.

작은 친구 유제프를 얻었다. 실제로 거기 있었던 '사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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