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 신분 사회
모리오카 고지 지음, 김경원 옮김, 김종진 해제 / 갈라파고스 / 2017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지난 스승의 날 세월호 기간제 교사였던 ‘김초원’ 선생님의 순직을 인정한다는 보도를 보고 참 다행이다 싶었다. 아이들을 구하는데, 가르치는데 기간제 교사라서 소극적이었거나 적당히 거리를 둔 것이 아니었을텐데..기간제 교사라는 신분 때문에 순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비단 이 사안 뿐 아니라 다양한 불합리를 보아왔다. 그까짓 신분이 뭐라고.

화장실 한 칸을 휴게실로 사용한다는 비정규 청소 노동자들, 근로자의 날에도 일을 하다 사고를 당하신 협력업체 직원. 언젠가는 그런 기사를 본 기억도 있다. 복날이었던가? 정사원들은 삼계탕을 먹고 협력업체 사원들은 그러지 못했다는 기사.

너무 많은 사례들을 보아왔다. 처음에 들었을 때는 화가 났지만 너무 자주 듣게 되는 차별의 소식에 이제는 무뎌진 것도 같다. 아니, 다들 그렇지 뭐. 라고 체념한 것인지도 모른다. 점점 세분화되는 사회의 구성체계의 탓으로만 돌리기엔 무리가 있는 상황이지만 취업이 어려운 때 뭐라도 하고 있다는 건 어쩌면 작은 돌파구를 가진 기분일지도 몰랐다. 적잖이 손해를 보더라도 당장 손에 쥘 급여가 있다는 건 물 속에서 겨우 잡은 지푸라기일지도 몰랐다는 말이다.

하지만, 과연 그것이 온당한가라는 물음엔 자신이 없다.

 

책은 일본의 사례를 분석하여 정리했다. 하지만 어째서 이렇게 낯설지 않은지..어쩌면 이런 왜곡된 고용의 형태는 신자유주의 시대, 혹은 자본이 권력인 시대에서 소모품이 되어가는 ‘사람’의 일반적인 양태인가 싶기도 했다.

신분이라는 것. 역사적으로 신분의 철폐를 위한 다양한 싸움들이 있었고 이제는 신분이라는 것이 없다고도 믿는 사람들이 많지만, 우리는 더욱 세분화된 신분제 속으로 파고들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정규직, 계약직, 아르바이트, 시간제, 정사원, 협력사원..고용의 형태가 어떠한가에 따라 보장되는 복지의 차별이 있고, 급여의 차별이 있고, 권리의 차별이 있다.

자신이 원해서 얻게 된 것도 아니고 태생적으로 갖게 된것도 아닌데 고용의 형태에 따라 동일한 노동을 하면서-또는 더 많은 일을 더 오래 하면서-그에 합당한 대우는 커녕 재계약이라는 굴레 때문에 정당한 요구를 하지 못하는 악순환이 계속 되고 있다.

고용형태는 더 세분화되고 더 교묘해지고 적은 임금으로 이익을 내는 구조가 일상이 되고 있는 것이다. 거기에 사람은 없고 자본의 증식만이 남았다.

이것이 자본의 힘 만으로 되는 일인가? 이렇게 증식된 자본은 권력의 뒷배가 되고 권력은 다시 자본의 증식에 복무하게 된다.

단적으로 가난이 대물림되고 부가 상속되는 구조. 그래서 노동의 가치는 추락하게 되는 것은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존중받지 못하고, 극단적으로 생존이 보장되지 못하는 상황.

이 끝없는 굴레를 어찌해야할지를 고민하게 한다.

 

일을 할수록 가난해지고, 그 일조차 얻지 못하는 현실. 같은 근로자 사이에서도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에 암묵적으로 인정하게 되는 차별. 자신의 빵을 나누지 않겠다는 이기주의라고 비난하기에는 서로가 가진 빵이 너무 작다.

노동은 정당한 댓가로 교환되어야 하고, 존중받아 마땅한 인간의 행위이다.

싸게 팔아넘기는, 싸게라도 팔아넘겨야 하는 행위가 아니다. 생존을 위해 노동과 더불어 인간의 권리를 얹어 팔아버려서는 안된다. 어째서 ‘사람답게 살고 싶다’는 구호는 아직도 유효해야만 하는가.

착취.

자본은 정당한 교환 속에서 창출되어야 함에도 착취와 차별을 통해 증식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생각보다 많고 생각보다 교묘한 고용형태와 그 속에서 그것이 신분이 되어버리는 신카스트제도 같은 극단의 상황이 더 유지되어서는 안된다.

 

고용되지 않은 사람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자영업자들, 프리랜서..

나의 경우도 이상한 고용형태이긴 하다. 학원 강사는 개인사업자로 분류되지만 엄연히 고용된 전임강사이다. 정해진 페이를 받고 있지만 그 어떤 보장도 없다. 고정된 페이에 유동적인 수업시수. 분단위까지 페이 계산을 하는 마트 계산원들. 경력이 단절된 여성들, 잔업과 특근이 없으면 생활비가 어려운 가장들. 우리는 너무 오래 너무 많이 일하며 너무 많은 차별과 너무 작은 임금을 받고 있는 셈이다.

 

표와 수치로 비교하기 좋은 책을 후루룩 읽었다.

다시 꼼꼼하게 읽어봐야할 것 같다.

자본의 노예가 돼서 사는 건 사람의 노예가 되는 것보다도 더 참혹한 일이다.

이웃들을 생각해본다.

택배 기사 일을 하는 사람. 마트 계산원을 하는 00이 엄마. 시간제 식당 알바를 하는 xx엄마. 아파트 관리 일을 하는 한씨 아저씨. 협력업체 직원인 **이 아빠. 버스 기사님. 일이 너무 많은 집배원. 편의점에서 일하는 ##이. PC방 알바를 하다 알바비를 못받고 나온 xx.

적지 않은 서러운 신분을 가진 이들이 나의 이웃이다.

동일 노동 동일 임금의 꿈은 말 그대로 꿈인건가. 생각이 많아진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cyrus 2017-06-17 08: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위험한 환경에서 일하는 직업군은 노동의 대가를 많이 받아야 해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반대라서 위험한 일을 하는 노동자는 생계 걱정, 목숨 걱정을 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이런 일을 정식 직업으로 인정하지 않아서 천대 받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