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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 라이징 ㅣ 레드 라이징
피어스 브라운 지음, 이원열 옮김 / 황금가지 / 2015년 11월
평점 :
# 복합적인 독특함.
읽는 내내 상당히 많은 이야기들이 복합적으로 떠올랐다 사라지곤 했다. 마치 세잎 클로버 속에서 네잎 클로버를 찾는것과 유사한..
출판사의 서평엔 "파리 대왕의 헝거게임 버전"이라고 했다. 요즘 대세공간(?)인 화성에서 이루어지는..이야기.
빽 투더 퓨처에 열광학고 영화에서 본 미래를 살며 그 때 놀라워했던 풍경과 지금을 비교하는 것은 짜릿했다. 하지만..화성은 멀다.
대로우와 이오..매트릭스도 떠올랐고, 집정관의 이야기에서 로마인 이야기나 풀잎관 같은 책들도 떠올랐고, 헝거게임과 킹스맨, 심지어 글래디에이터까지 ..
이런 조합이 가능하다니 놀라웠다. 더 놀라운 것은 이것이 뻔한 스토리 라인을 가지고 있지만 뻔하지만은 않다는 것이다. 거기에 독특함이 숨겨져 있다.
어쩌면 고도의 과학기술로 풀거나, 조금은 초현실적으로 풀거나 했을 법한 이야기를 계급의 이야기로 푼다.
지구를 떠난 이들이 살아내는 과정엔 계급이 있었다. 서로의 계급을 넘어설 수 없는..공정한 경쟁에서도 절대로 이길 수 없는 계급의 벽이 거기 있다.
마치 소모품처럼 살아가는 레드들. 그 속에 대로우가 있다. 이 부당함과 불의에 저항하거나 왜? 라는 의문조차 들지 않는 뼛속까지 레드인 대로우. 그리고 그의 아내 이오.
꽃미남 꽃미녀 대로우와 이오는 부부다. 이 설정이 재미있다. 아름다운 외모에 대한 묘사가 이어지지만 결국 그들의 신뢰와 사랑을 드러낼 뿐이다. 아름다운 이오의 죽음..아름다운 대로우의 죽음과 새로운 신분, 저항하는 젊음, 저항하는 계급..그 계급의 주인공에게 어울리는 아름다움이며 계급의 색이다. 레드.
# 다르지 않음
구분되어진 계급에서 낯설지 않은 계급이 높은 자들의 소위 갑질을 보게 된다. 소모품으로밖에 여기지 않는 레드들을 다루는 그들의 머릿 속에 동료이거나 같은 공간과 시간을 사는 공동체라는 의식은 없다. 계급에 따라 분배되는 권력의 맛과 힘이란 얼마나 매력적인가. 그것을 유지하고 강화하고 확장시키기 위해 얼마나 많은 희생들이 필요한지 관심없다. 어차피 소모되는 계급들이 꾸준히 생겨날거고 그것을 고착화하고 억누르며 이어가면 그 뿐이다. 그들에게 자비심을 가질 필요도 없으며 죄책감을 느껴서도 안된다. 사실 느껴지지도 않는다.
공교롭게도 오늘은 인권의 날이고, 노동자들의 권리를 위해 싸우던 이가 경찰에 자진 출두했다. 죽을 것을 알면서도 이오를 따라나섰던 대로우처럼..
권력과 자본의 결탁이 만연해지고 자꾸 화가 난다. 사회의 제일 낮은 곳에서 가장 열심히 살아내는 사회의 동력은 노동자들이다. 한 국가의 대부분의 구성원들이 그렇다.
그들의 권익을 주장하는 것이 어째서 국가와 경제를 갉아먹는 일인지 묻고 싶어졌다. 아무도 대답해주지 않을거다.
레드가 아닌 계급들은..골드는, 실버는..그레이는..아무 말도 하지 않을것이다. 그들은 이미 자발적 복종을 시작했으므로 골드보다 먼저 골드의 의중을 파악하고 레드를 핍박한다.
낯익지 않은가?
자꾸 소름이 돋았다. 이 낯선 공간 낯선 시간에서 일어나는 일이 어째서 이렇게 생생한지..
사람답게, 인간으로, 지구의 후손으로 살아내겠다는 것이 과연 목숨을 담보해야할만한 과한 욕심인건가..
# 사랑.
바보온달과 평강공주..그 사랑이 늘 기이했다. 아무리 옛날이야기라고 해도, 어떻게 서로에게 추호의 의심도 없이 헌신하고 온전히 맡기며 살아내는 게 가능했을까?
사랑은 어떻게 그 존재성을 증명할까? 중력이 약한 화성에서 교수형을 당할 때 목을 매달아도 목 뼈가 부러지지 않아 그의 가족이나 형제들이 다리에 매달려 숨통을 끊는다고 했다. 이오의 깃털처럼 가벼운 몸. 대로우는 그녀의 고통을 줄이기 위해 다리를 끌어안는다. 목뼈가 부러지고 숨을 거두는 이오..사랑이다. 있는 힘껏 그 다리를 붙잡고 매달리는 사랑. 온몸으로 사랑하는 이의 고통에 마주서는 것. 되돌아오는 것은 자신 몫의 고통이며 자탄일지라도 기꺼이 연인의 고통을 가로막아주는 것. 이 대목에서 눈물을 글썽였다면 신파이거나 늙은거겠지만..사실이다.
화성, 혁명, 경쟁, 권력, 계급 이런 단어들이 줄지어 나오는 책은 두껍다. 어째서 이렇게 방대한 이야기를 쓰고자했을까? 글쓴이가 좀 야속해진다. 사랑에 근거를 둔 영웅이 이제 만들어졌다. 영웅의 타락이 다음엔 그려지려나? 다음이 기대된다. 이들의 사랑이 생과 사를 넘어 어떻게 그려질지..
가독성이 뛰어난 작품이다. 자꾸 익숙한 장면들이 끼어들지만 않는다면 많은 분량이지만 붙들고 앉아 읽어내는데 무리는 없을것이다.
하지만..다음을 기다리는 건..어쩐지 힘들것 같다. 익숙한 장면들 덕에 이야기가 자꾸 흐트러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