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선물을 하나 받았다. 이래 저래 부딪고 살다 알게 된 분께서 보내주신..책..

 

 

 

간혹 뜬금없이 책들이 날아들곤 한다. 전부터 책을 좀 주시겠다고는 했는데..설마 신화일줄이야.

이래저래 뒷조사(?)를 해보니 신화에, 동아시아 신화에 일가견이 있으신 분이시다. 사실 낯선 책은 아니지만 뭔가 묵직하게 느껴지는 것이 아마 감사한 마음이었지 싶다.

길가메시를 읽고 마하바라따를 읽던 때가 문득 떠올랐다. 신화에게 포섭(?) 당했던 시기.

현실이 암담할 때 종종 어떤 신화적 이야기에 기대기도 한다. 그 때는 도피처로서 황당하기까지 한 신화를 읽었다.

시간이 오래 지난 후 되짚어 보니..신화는 어떤 시기 어떤 지역의 특수성을 품은 소망의 노래였다.

때론 어떤 국가나 민족의 정체성을 규정하게 되는 시작점이기도 했다.

신화를 읽을 때이다. 형이상학과 관념이 아닌 신의 모습을 한 민초들의 바람을 읽을 때는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몇권의 책을 더 주문했다.

 

 별로 상관관계가 없을 것 같지만..각 대륙의 신화는 어떻게 달라지게 되고 변형되기 시작했는지..그 정치사회적 변화와 문화적 토양들을 되짚어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에서 거대한 단절을 구입했다. 벽돌책의 부류이다. 무겁고 두껍다.

다행이다..이 간단치 않은 이야기들을 허투루 써냈다면 아마 많이 화를 낼 것도 같으니 말이다. 지도들로부터 시작하는 책..기대가 된다.

세계 신화여행과 함께 읽으면 조금 더 큰 그림으로 신화를 만날 것도 같다.

 

 

 

 

 

선거가 난리 북새통 속에 끝나고..니가 잘했니 내가 잘했니..난리도 아니다.

명확한 건..국민들의 힘이다. 참 절묘했다. 어느 한 당도 과반을 주지 않다니..게다가 호남에게 목숨줄을 내어주고 만 형국..

이 국민들의 정치감각이 녹슬지 않았구나 싶었다. 해결해야할 여러 과제들..

 

그 첫번째를 민생이라고 한다. 민생은 말 그대로 국민들의 삶의 양태이다.

해결의 과정은 그 삶의 고통을 들여다 보는 것에서 시작해 존엄성을 확인 하는 길로 나가야 한다. 원론적이지만..

그렇다면 가장 큰 상처 세월호의 문제..깊은 상처 위안부문제를 짚지 않을 수 없다.

먹고사니즘이 급하니 잠시 뒤로 미루자? 사실 세월호와 위안부의 문제가 풀리지 않는다는건 국민의 가치와 국가의 위상을 거부하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는 아닐까?

먹고 살기 위해 존엄을 내려두고, 먹고 살기 위해 위상을 축소한다는 건..아닌것이다.

 

제국의 위안부 재판이 있었다고 들었다. 최근.

이것에 대해 찬반 여론이 들끓지만(사실인지는 모르겠다.) 나는 반대한다.

학술적으로 구구절절 비판할 역량은 안된다. 다만, 그 속에 빠진 식민지지배 하에서의 자율성의 보장이 가능한가에 대한 의문을 해소하지 못했다.

다행히 그 문제에 대한 사이다 같은 책을 하나 발견한다.

 

 인터뷰와 칼럼, 기사들로 빼곡히 채워진 이야기가 어렵지 않게 서술되어 있다. 일본의 양식 있는 지식인이라 칭해지는 이들까지 포함된 책의 내용은 감정적이지도 과격하지도 않다.

다만..

중요한 핵심들 드러내고 교묘히 비껴가는 저들의 술수를 간파해낸다.

 

 

 

 

 

 

 

 

 

신화는..현실을 덮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 뿌리를 둔 이상의 가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혁명을 넘어선 신화..

우리 국민들이 쓰는 위대한 신화같은 걸 꿈꾸게 된다.

 

오늘은 일단..라마야나부터 시작한다. 동아시아의 매력적인 신화 속으로 들어가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름 없는 나비는 아직 취하지 않아
모리 아키마로 지음, 김아영 옮김 / 황금가지 / 2016년 4월
평점 :
절판



# 몇가지


몇 개의 단어가 떠돌며 묻는다. 비밀을 알겠어? 라고..

이름 없다/ 아직 / 취하지 않다

이름이 애초에 없었던 것인지 감추거나 버려서 없어진 것인지 불분명하다.

아직. 언젠가 이루어 질 상황이지만 지금은 아니라는것. 그렇다면 언제인가?

취하지 않다. 무언가에 취해야만 한다면 그것은 회피인가 또 다른 도전인가.


작은 꽃잎들이 점점이 프린팅 된 파란 표지와 다소 길고 모호한 제목에 호기심이 발동했다.

추리소설이라고 들었는데 어쩐지 소녀스럽고 몰랑거리는 느낌이다. 모호하지만 정오의 그림자처럼 단호한 제목이라니..

꽃에 취하는 로직, 공에 취하는 로직, 해변에 취하는 로직,달에 취하는 로직, 눈에 취하는 로직. 다섯개의 연작 에피소드로 이루어진 이야기는 싱그럽다.

추리, 술, 청춘, 그리고 사랑..

솜씨 좋은 마법사의 묘약 주문서에 적혀있을 법한 것들이 책 속에 있다. 홀리지 않을 도리가 없는 것이다. 게다가 자신을 감춘 채로 숨어 든 공간이라면 더더욱..



# 청춘


아역 배우 출신의 조코는 평범한 대학생이 되어 청춘의 설렘을 만끽한다. 동아리..추리를 좋아하는 조코가 선택한 동아리는 '취리연구회'

취하면 이치가 보인다는 술마시는 동아리였다. 추리연구회와 혼동한 것이다. 요상한 구호를 가진 취리연구회..


"취,취, 취취취취, 취하면 멋진 이치가 보인다

 취,취, 취취취연, 마시면 당신도 이치가 보인다"

요상한 동아리, 요상한 선배 미키지마, 그리고 조코..

사건은 마치 미니시리즈처럼 벌어지고 조코는 여린 마음을 가졌으나 단호한 여주인공, 미키지마 선배는 똘끼 가득한 그러나 비밀이나 상처를 품고 있는 고독한 천재의 역할을 맡은 것만 같다.

피가 튀고 살이 떨어져 나가고 잔혹하게 난자당하는 사건을 수사하는 하드코어는 아니다.

하나 하나의 로직들이 모여 삶의, 혹은 청춘의 로직을 꾸려가는 것은 아닌가..번데기에서 뚫고 나와 날개를 펼치고 용감히 날아올라야 비로서 확실히 알 수 있는 나비의 정체.

그제서야 불러지는 이름.

그런걸까?


모두가 가능성의 고치 안에 들어가..그 몸부림치며 모순과 불합리와 부조리에, 일명 사건에 휘말리며 견뎌내야 하는 시간. 그 시간을 견디기 위해 차라리 취하기를 택하는 건가.

술에 취한다고는 하지만, 기실은 논리에 취하고 사랑에 취하고 청춘에 취하고 미래에 취해버린 그들은..차라리 아름다웠다.


현실 속 청춘들은 피폐해지고 까칠해져 고치 채로 바스라져버릴지라도 책 속의 그들은 빛나는 청춘이었다.

안타까웠다. 청춘은 이런 도전과 상실과 자괴의 시간을 거쳐도 기꺼이 일어설 수 있다는 확답이 있는 시간이다. 깨지고 부서지는 것이 두렵지 않은, 그렇게 자신을 뚫고 나오는게

정당하고 그 후의 날갯짓이 보장되는 시간. 고치 속에서 움찔거릴 여유조차 없는 이 나라의 청춘들이 자연스레 오버랩되며 안타까웠다.

세상에..나이 먹은 티를 내는 것도 아니고.


그래도..솜씨 좋은 마법사가 만들어 낸 묘약을 한 번 마셔보라고 꼬시고 싶어지는 것이다.

아직은 이름조차 불분명한 그들이지만, 그들이 취해도 좋을..기꺼이 취해 보고픈 것이 하나쯤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내내 했다.

이 몰랑한 연정을, 이 몽롱한 위로를, 이 웃음이 터져나오는 재미난 여유를, 내가 아는 대학생들과 청춘들에게도 보여주고 싶었다.

사실은 이래야 하는거야. 추리 동호회 같은 걸 하고, 때로 잘못보는 실수도 하고, 애간장을 태우기도 하고, 그리워 해 보기도 하고, 어떤 이름이 준비되어 있는지 궁금해보기도 하면서 보내는 것이 청춘이어야 해. 라고 말해주고 싶어지는 것이다.


추리 소설을 읽다가 재기발랄한 그들 특유의 상상력에 웃음을 빼물다가도 자꾸 흠칫거리며 떠올리게 되는 이 땅의 대학생들이 마음에 걸렸지만,,재미있는 책이다.

책을 하나 얻었었고, 잃어버렸다. 사무실 책상 위에 놓고 읽었는데 어떤 녀석이 들고 가 버렸는지 ..

결국 다시 한 권을 구해 읽었다.

맺음이 없을 그 맺음이 궁금했다..말 그대로 아직 취하지 않았을 그들이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소한 것들의 과학 - 물건에 집착하는 한 남자의 일상 탐험 사소한 이야기
마크 미오도닉 지음, 윤신영 옮김 / Mid(엠아이디) / 2016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물질의 세계


물질과 물질의 연관관계 속에서 살아간다. 나를 둘러싼 것들, 내가 살아내는 과정에 필요한 도구 혹은 목적으로서 작용하는 모든 물질들. 그것들을 사용하고 영유하는 나 조차도 물질이다. 존재론적인 구분이건 구조주의적 구분이건 분명한 건 물질이다. 그렇다면 살아낸다는 건 어쩌면 물질과의 연관성 속에서 진화하는 것은 아닐까? 좀 더 의미있는 물질로의 전환같은..

이런 엉뚱한 생각을 하게 하는 책이다. 과학이라는 것이 거창하고 복잡한 어떤 이론이 아니라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조건과 물질의 복합관계를 규명하는것이라면 소소할 필요가 있기도 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딱딱하지 않게 구체적으로 생활어로 쓰여지는, 단순한 과학적 지식뿐 아니라 그것이 어떻게 활용되게 되었는지에 대한 시초와 역사 사회적 특징까지 묻어난다면 더할나위 없이 흥미롭다. 그러기 위해서는 저자의 학문적 완성도와 사유가 요구될 것이 분명하다. 마크 미오도닉. 낯선 이름이다. 세상의 모든 유명인을 알지도 못하고 알고 있을 필요도 없지만 기억하고 싶어진다.

마치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개미를 처음 읽었을 때와 유사한 느낌이었다고 할까?

반박하고 싶지 않은, 아니 좀 더 정확히 반박하기 어려운 논리적이며 감성적이기까지 한 이야기이다. 과학이 인간의 삶에 어떻게 작용하게 되는지 그것에서부터 출발한 연구는 얼마나 치열하게 진행되고 있는지를 고스란히 읽어낼 수 있다.


# 열개의 물질, 혹은 재료


강철, 종이, 콘크리트, 초콜릿, 거품, 플라스틱, 유리, 흑연, 자기, 생체재료.

목차를 읽는다. 열개의 재료 앞에 붙은 수식어가 어쩌면 이 물질의 본질과 발전방향을 보여주고 있는건지도 모르겠다고 잠깐 생각했다.

불굴의 강철, 미더운 종이, 기초적인 콘크리트, 맛있는 초콜릿, 경탄할 만한 거품, 상상력이 풍부한 플라스틱, 보이지 않는 유리, 부저시시 않는 흑연, 세련된 자기, 불멸의 생체재료.

이 모든 재료들이 문명사적으로 시작하여 과학적으로 발전하게 되는 과정을 자신의 이야기와 버무려 위트있게 풀어낸다.

과학이라는 단어와 가장 닮아보이는 강철(개인적인 느낌, 혹은 이미지겠지만)로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에 수긍하며 읽어낸다.

하나의 사건으로부터 촉발되는 강철에 대한 집착. 그리고 깨닫게 되는 주변의 모든 쇠, 철들..우리가 인지하고 있든 그렇지 못하든 물질들은 주변을 가득채우고 삶의 내용을 채우는 도구로서의 역할을 훌융하게 하고 있다. 때때로 오해를 받기도 하지만 물질의 잘못이 아닌 사용의 부적절함이 가져온 결과일 뿐이다.

그렇다면 모든 물질은 순수한가? 라고 도덕적 반문을 해보기도 하지만 불필요한 허영이다. 모든 곳에 있다는 자명한 사실과 물질 스스로가 효용성을 드러내진 않았으니 말이다.

우연한 발견과 과학적 요구들이 빚어낸 결과물에 대한 책임을 물질에게 돌릴 수는 없다. 그렇다면 그 성과 또한 재료의 몫이어야 할테니까 말이다.


작가의 이야기 속에 스며들어있는 재료들의 이야기가 피상적일 수도 있겠지만 구체적인 성질과 원리를 조목조목 짚어내면서 어렵지 않게 몰입하게 하는 것이 이 책의 장점이겠다.

특히나 꼬마 아이가 그린 것 같은 정체불명의 삽화들이 오히려 쉽게 납득이 되기도 한다. 초정밀 현미경으로 본 사진보다 훨씬 설득력이 있다.

따라 그려보게 되는..그럼으로 좀 더 쉽게 이해하게 되는 장치처럼 말이다.

잠깐 둘러보니 차례에 있는 모든 재료들이 옆에 있다.


택배 박스를 뜯을 때 쓰는 안전칼 속에, 펼쳐둔 책에, 종종거리며 올라온 계단에, 책상 위에 놓인 비상식량 초코파이에, 핸드폰 케이스에 잡다한것들을 담아둔 트레이 속 연필에, 조금 전 마신 커피잔에..기타등등..

이런 물질들은 어떻게 발전의 방향을 잡게 될까? 암묵적 합의는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것에 맞춰져 있을게다.

좀 더 안전하고, 편리하고, 건강하게..

그렇다면 물질로서 인간은 어떻게 물질계에서 자신의 역할을 해내야 하는걸까? 소모와 소비의 주체가 아닌 리싸이클의 대안은 없는것인가? 하는 맹탕한 자문을 해본다.



# 현실적인.


사소한 것들의 과학이라고 했다. 사소함이란 의미없음이 아니라 의미의 시작이라는 말의 다른 표현이지 않을까?

아주 작은 발견에서 분석되고 활용되서 우주의 저편까지 상상하게 하는 힘. 그것이 사소함의 힘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카카오 열매에서 우주의 물질까지 늘 사용하는 것에서 어쩌면 사용하게 될지도 모를 것까지, 이미 알고 있던 것에서 이제 알게된 것까지. 열개의 에피소드(?)를 처음 글자를 배운 사람처럼 읽는다. 한 꼭지를 읽고나면 '오~~' 하는 소리를 내며 이걸 누구에게 말해줄까?를 생각하게되는 재미도 있다.

때때로 '쉬운'이라든가 '재미있는' 이라든가 '누구나 가능한'이라는 제목들을 단 과학도서나 수학도서를 집어들고 실망하기도 한다.

너무 가볍거나 절대로 재미있지 않아서 말이다. 그렇게 읽고 나면 점점 재미없는 것으로 과학이 밀려나고 수학이 밀려난다.

그런 면에서 '사소한 것들의 과학'은 꽤 유용하다. 조금 더 알고 싶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섬유, 물, 세제, 아! 알콜 같은 것들..


전문적이며 일상적인, 사소하지만 인상적인 책을..읽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피에로들의 집
윤대녕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윤대녕의 신작 장편소설..기대가 컸다. 순전히 자의적 판단이겠지만 그와 나의 주파수가 잘 맞는다고 생각했다. 어떤 작가와 코드가 맞는다는 건 매우 흡족한 일이다. 책을 읽는다는 건 어쩌면 자신이 공명할 수 있는 주파수를 찾는 과정일거라고 늘 생각하는 까닭이다. 거기에 맞는 작가를 찾는다는 건..그래서 좋은일임에 분명하다.

오래 기다려 만나게 된 책.

기대는 한없이 부풀었고, 표지를 빤히 들여다 보다가 무의식적으로 '쓱~ 읽어보겠어요'라고 할만큼 좋았다.

마치 내 입맛을 아는 초콜릿 장인의 신작 초콜릿이 멋진 포장을 입고 내 손에 올려진 느낌..

 

 

#1. 분해된 군상

 

퇴락한 연극배우이자 극작가인 김명우가 아몬드 나무 하우스에 들어오며 사람들을 만난다. 거기 모인 사람들은 세상에 깊이 박혀있다 떨어져 나온 조각들이다. 우연과 인연의 루트로 재조합 된 사람들. 그들을 가족이라 부를 수 있을것인가에 대해 묻게 된다. 어떤 혈연적 연결이나 사회적 수긍이 있지 않은 다만 공간을 공유하며 교집합을 늘여가는 것만으로도 가족이라 할 수 있다면 넓은 의미의 가족일 수 있겠다. 넓고 넓어 희미한 가족일 수 있겠다. 그렇게 넓혀가다보면 가족이 아닌 대상이 있을까?

우연이라고는 하지만 직감할 수 있었다.

구성원 하나 하나의 이야기가 익숙하고 미리 그림이 그려졌다. 드라마나 소설을 너무 많이 본 탓이다.

 

작가는 <수년 전부터 나는 도시 난민을 소재로 한 소설을 구상하고 있었다. 가족 공동체의 해체를 비롯해 삶의 기반을 상실한 채 실제적 난민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고 보았던 것이다. 이들은 근본적으로 타인과의 유대가 붕괴되면서 심각하게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존재들이다. 나는 이 훼손된 존재들을 통해 새로운 유사 가족의 형태와 그 연대의 가능성을 모색해보고 싶었다. 이는 삶의 생태 복원이라는 나의 문학적 지향과도 맞물리는 것이었다>라고 작가의 말에 덧댔다.

도시 빈민의 문제가 결국 도시 난민의 문제로 재구성된 것일지도 모를일이다.

나는 어쩌면 묻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들이 조각이 되고 도시난민이 되어지는 과정, 가족 공동체의 해체의 원인을 어디에서 찾아야하는가? 라고 말이다.

 

기대가 너무 컸다.

 

#2.

 

연극배우이자 극작가를 이야기의 중심에 두고 연극을 하듯 구성된 글은 독자를 관객으로 만든다.

도입부에서부터 다양한 소품들이 배치되기 시작한다.

고흐가 나왔고, 바흐가 나왔고, 셜리에 관한 모든 것이 나왔고, 에드워드 호퍼가 언급되고..

사실, 이 모든 것들을 알아야만 이 감성이 이해되고 공감하게 되는 것은 아니겠으나, 이것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면 어떤 허영으로밖에 보여지지 않을 소품들이었다.

나의 피폐한 상상력은 난민들이 모여든 시공간이 어쩐지 이질감을 갖게 한다.

이것이 치유와 연대를 위한 어떤 예시였다고 한다면 할 수 없는 일이겠지만..

작가의 글에 일대 변화가 생긴 작품이라고 했다. 담백하게..진솔하게..

읽는 동안 나는 자꾸 그의 전작들이 눈에 밟혔다. 윤대녕이라는 이름이 갖는 지문같은 그의 이야기들의 결이 내내 아쉬웠다.

깔끔하게 떨어지는 어떤 여운. 그런것이 그리웠는지도 모른다.

낯설게 펼쳐서 애매하게 혹은 서둘러 지어버린 마무리가 아닌..

 

예를 들면, 그의 전작 "호랑이는 왜 바다로 갔나"를 읽고 나서 나는 이런 리뷰를 썼었다.

 

<(어디선가 환청처럼 혀차는 소리가 들려온다. 집중한 수업시간에 부주의한 선생의 손톱이

칠판을 긁는것과 비슷한 느낌으로..)

쯧쯧..

 

영빈 : 씨익 (어깨를 토닥이며 웃는다)

해연 : 씨익 (마주보고 웃는다.)>

 

 

#3. 그래서..

잘 읽히지 않았다. 나는 자꾸 아쉬워서 책을 덮었다 펼쳤다를 반복하며 종내 이상한 짓을 하게 되었다.

기껏 책 껍데기를 벗겨서 읽다가 노랑을 칠하고 파랑을 칠하고 빨강과 검정을 칠해서 겉표지처럼 만들어대는 만행을 저지르고 말았다. 집중해도 모자랄판에 딴짓이라니..

 

 

 

 

호불호가 갈릴 게 분명하다.

어쩌면 작가가 시도한 변화에 독자들의 호불호가 큰 발화점이 될지도 모른다. 어떤 질적으로의 도약을 위한..

다음에 조금 더 쫀쫀하고 윤대녕스러운 글을 기대해 보기로 한다.

극찬의 리뷰들 속에 조금 민망하기도 하지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미래의 나라, 브라질 빠우-브라질 총서 2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김창민 옮김 / 후마니타스 / 2016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941년에 쓰인 슈테판 츠바이크의 브라질 이야기.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75년 전의 이야기인 셈이다.
2차 세계대전이 유럽과 세상을 휩쓸고 있을 때, 제국주의와 식민지배가 정점을 찍고 있을 때 희망이란 것을 어디에서 찾아야할지 망연한 그 때 브라질을 찾아 쓰게 된 글이다.
선민의식이 불러온 대 참사, 학살과 파괴로 들끓는 유럽에서 빠져나온 것 만으로도 숨통이 트였을거다. 게다가 다민족으로 이루어진 온전히 열려있는 나라 브라질은 화해의 파라다이스처럼 보였을게 분명하다. 천혜의 자원을 품고 있으며 아마존이 있고 삼바가 있는 나라, 특유의 낙천적인 여유를 가진 사람들..혼혈이 부끄럽지 않은 나라..그 곳에서 인류의 미래의 모습을 그려낸다.

개척자들에 의해 우연히 발견된 것이라고 알고 있는 아메리카 대륙과 브라질..포르투갈과 스페인의 식민정책의 한 가운데 브라질이 있었다. 서로 주도권을 쥐려고 하는 형국, 유럽의 침탈이 다각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다양한 대립도 있어왔다. 그때마다 주도권을 쥔 국가에 의해 새로운 정책들이 제시되고 새로운 사람들이 몰려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부족한 인구 수를 보충하기 위해 아프리카의 사람들도 유입되기 시작한다. 유럽과 토착민과 아프리카의 사람들까지 얽혀 살게 되는 묘한 형국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런 상황들에 순응하며 혼돈이 아닌 독특한 문화와 역사를 꾸려가기 시작한다. 이 지점이 묘하다. 문명의 역할로 들어온 강대국, 지배국들의 문명화 식민화의 계획과 그 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마치 천연자원처럼 주어진 특질들이 어우러지기 시작한다.

미래의 나라 브라질..미래에 대한 대안일 거라는 생각을 갖게 하는 제목이다.
처음 책을 보게 되었을 때, 어쩌면 자본의 시대에 뒤틀린 나라들에게 제시할 또 다른 정치경제적 모델로서의 브라질을 기대했는지도 모른다. 사실 다르지 않다.
전운이 감도는 한창 파괴가 시작된 유럽인의 시각으로 본 브라질은 망가진 유럽의 대안이 될 수 있을 것 같았을테니 말이다. 평등한..누군가를 비하하는 단어를 갖고 있지 않은 평등한 나라 브라질.
미래의 나라라는 말을 그런 대안적 국가로서 브라질을 이야기 하지만, 다른 한편 식민정책으로 브라질에 들어온 예수회가 만들고자 했던 공동체 브라질의 청사진이기도 했다.
장기적으로 그 혈맥을 만들어나가려던 사람들..그들의 계획이, 그들이 만들어 갈 미래의 브라질이 망가질까 노심초사하던 사람들..

환상적인곳, 굴곡진 역사와 침탈로 시작된 식민지배가 이어져 온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특유의 문화와 질감을 갖고 있는 나라 브라질. 음악과 문학과 (희곡은 그리 발전하지 못했던..) 미술과 다양한 아름다움을 표출해 내는 나라.
문득 강대국의 정복전쟁이 벌어지던 격동의 시대에 모든 것을 빼앗겨야 했던 나라와 독특한 역사만큼 다채로운 문화와 다양성을 확보한 나라에 대한 생각이 많아진다.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미래의 국가는 어떤 모습일까..기술과 문명이 고도로 발달한 그런..모든 분야에 알파고와 같은 인공지능이 배치되고 완벽한 정체체제가 구축되는 그런 모양일까?
아니면, 원시의 그것처럼 `사람`과 `공존`이 주장하거나 강요하지 않아도 구현되는 그런 모양일까..
미래는 인간성에 있을거라는 생각에 동의한다.
지구의 한 복판에서 벌어지는 참상과 상관없이 남미의 어느 곳에서 보여내는 사람과 사람의 미래는 매력적이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오래 전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낯설지 않다. 브라질 특유의 문화가 어떻게 생성되고 그들의 국민성과 발전의 근거가 무엇인지에 대한 회고처럼 읽힌다.
기반.
그런 기반을 확인한 것 같다. 어떤 기원을 본것 같다.

이곳에서 모든 것을 보는 것은 누구에게도 허용되지 않는다. 분별력이 있다는 것은 시간에 순응할 줄 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나는 내 자신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번에는 이것으로 충분하다!˝ (p34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