썩은 고기를 물어다 암컷에게 바치는 짐승처럼

내 사랑의 수준은 딱 그만큼


먹다 남은 썩은 고기를 물어다

암컷에게 바치고 군침을

삼키며 썩은 고기를 다시 노리는 내 본능,

비루한 내 수준

아슬아슬한 내 수준


좀 남겨주지 않을까? 기대를 부풀리면서

구름이 뭉게뭉게 흘러가는 하늘을 올려다보면서도

끊지 못하는 썩은 고기에 대한 간절한 생각.

다 먹기야 하겠어?


쓸쓸하다. 이 정도면 암컷이 문제가 아니다

외롭다. 이 정도면 암컷이

덜어줄 수 있는 문제가 더이상 아니다.


암컷이 내가 갖다 바친 썩은 고기에

길고 아름다운 주둥이를 가져다대는 순간

나는 거침없이 싸운다


암컷을 잊고

썩은 고기를 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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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주철의 시는 도축장을 닮았다. 오래 칼을 잡은 도축사가 배를 가르고 뼈를 발라내고 뼛사이에 박힌 한 줌도 안되는 살을 도려내는 순간을 경이롭게 바라보듯 구석구석 샅샅이 발라낸다. 바름. 거기에 바름이 있다. 이것이 발라내는 것인지 올바른 것인지를 묻지 않는게 예의다. 도축사는 실수를 해도 칼은 실수하지 않을것 같아서이다.

이미 제 길을 꿰고 있는 잘 벼린 칼은 어제처럼, 그제처럼, 작년처럼, 더 오래 전 처음 짐승의 몸에 박히던 순간처럼 제 길을 만들어간다.

숨통이 이미 끊어진 것들은 저항없이 길을 내준다. 내장과 뼈와 거죽이 살아온 과정을, 혹은 죽은 사연을 고스란히 드러내지만 냉정하리만치 차가운 표정으로 칼의 길을 간다. 쭈욱~ 서걱서걱..칼에게 그것은 바르는 일이며 바른 일이다.

사랑은 얼마나 하찮은 무게를 갖는지 시를 읽고 또 읽는다. 유통기한이 있다고, 과학적 분석이 나오기 전부터 알고 있었다. 한여름에 고소하게 부쳐 놓은 부침개처럼 하루를 못넘기고 쉬어 꼬부라져 하찮은 신파 쪼가리가 되고 만다는 것을 말이다.

영원한 사랑이라 이야기 하는 건, 부질없는 주문 같은 것이다. 없다는 걸 확실히 알기 때문에 있다고 우겨보는 애잔함같은..

치킨을 시켜 다리와 날개만 먹는 남자와 가슴살과 퍽퍽한 살만 먹는 여자.

삼겹살의 비계를 좋아하는 남자와 고소한 살점만 좋아하는 여자.

막 무쳐낸 김치를 좋아하는 남자와 새콤하게 꼬부라지는 맛을 좋아하는 여자.

소주가 좋은 남자와 맥주를 좋아하는 여자.

쌍화차를, 녹차를, 커피만 빼고 다 좋아하는 남자와 커피만 좋아하는 여자.

이 남녀는 오래 같이 산다. 어쩐지 잘 맞고 어쩐지 앙숙이다.

사랑해. 따위의 고백은 하지 않으며 해보지 않았다. 우습게도 둘 다 사랑을 믿지 않았다.

그렇게 시작한 남녀는 애써 싸우지 않는다. 그렇다고 호의적이지도 않다. 적당히 긴장하며 적당히 타협하며 적당히 산다.

눈이 마주치면 웃고, 등이 닿으면 서운해하면서..사랑이란건 그렇게 썩은 고기 한 점 앞에서 치사해질 수 있을만큼 가볍다.

유치해지는 것이 대수롭지 않은 열병같은 사랑은 믿지 않는다. 썩은 고기 한 점에 점유지분을 계산하는 욕심이 예쁘다.

암컷과 수컷에서 시작해서 남자와 여자, 사람과 사람이 되어가는 과정은 이렇게 별 볼일 없다. 유구한 역사와 진화를 끌어들여 그럴싸하게 포장한다해도 헛수고다.

왜냐하면..썩은 고기는 사실 지천에 널려있고, 나눠 먹을 줄 아는 이도 지천에 널렸으니 굳이 나의 암컷이길 원하지 않아도 된다.


안주철의 시들..적나라한 시어들이 싱싱하다. 어쩌면 생경하거나 비릿할지도 모르겠지만..따끈하게 썰려나온 소의 간에 군침을 흘리는 족속이라면 기름장을 옆에 놓고 읽어낼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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