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간지옥을 벗어날 길이 없다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일주일에 한 번은 햇빛을 ! 제 몸

에 불을 놓아 여공들의 엄마가 되었던, 노동이라는 이름

의 갓난아기를 낳았던 전태일의 소지를 다시금 읽은들


 내 몸에 불을 놓은들

 국가와 자본, 동패도 달라지지 않는다


 귀 기울이지 않는 사람들이 즐비한 술집마다 들어차

있다

 분노한 자들처럼 술 퍼마시고 돈을 쓴다

 다이어트 콜라를 마시며 자위의 트림을 해댄다

 제 눈을 찔러 제 앞이 희뿌연 시장의 저녁들

 힘을 모은다는 건 과학의 정언이지 마술같은 기회가

아닐진데


 더욱더 나누고 차이를 인정하고 상상하고 정주하지 않

겠다며 정주하는 주막

 그것마저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스스로 떼지어 사교에

젖는다


 피범벅 죽음을 옆에 두고도 습관과 일상이 계속되고

있다

 시위와 욕망의 밤낮을 가진 두 얼굴.


 오늘도 해방 세상을 향한 노동의 첫 마음이 진군하려

는지

 총파업의 쇠북 소리 이명처럼 울려 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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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색적인 제목을 가진 시집.

표제작인 연작시 대가리를 먼저 찾아 읽었다.

[국가는 계산적이었다

 냉정하게 분류하고 머리 숫자를 중요시했다]

로 시작하는 대가리1, 대가리2..

몇 명이 죽었고, 죽을것이고, 죽을지도 모른다고 했을 때, 그것을 감내하고 낼 수 있는 수익이 더 크다면 몇개의 대가리를 고임돌로 쓸 수 있다는 계산법이 통하는 나라.

수익은 대가리 수로 채워지고 대가리 수로 증폭된다. 대가리의 효용.

버려지는 대가리와 선택되는 대가리에는 어떤 차이가 존재할까. 목소리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늙은 대가리들의 안하무인 목소리에 힘을 실어주던 권력이 있으니 말이다.

소리 내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는 살해협박에 순순히 가만히 있던 대가리들은 오롯이 수장되고 매장되고 화장되고 해체되었다.

5월은 그렇다.

어린이 날도 어버이 날도 스승의 날도 있는..모든 관계들이 고맙고 감사하고 사랑스럽다는 걸 강조하며 시작된다.

5월의 심장 즈음에 두개의 반란이 마주 서 있다.

권력을 향한 총의 반란과 역시 권력을 향한 피의 반란. 권력을 독점하자는 총의 반란은 성공을 했다. 그래서 한 때 성공한 쿠테타는 혁명이라는 망언이 돌아다니기도 했다. 여전히 돌아다니고 있다. 망령처럼..

살아있다고 소리치는 민중들의 대가리에 정조준된 피의 반란은 조용히 수습되었다. 작디 작은 땅덩어리에 그들의 사망원인은 퍼지지 못했고, 아무도 그것을 물으려 하지 않았다. 말하지 않았고 묻지 않은 피의 반란은 오랜 시간 땅으로 스며들어 꽃을 키웠고 나무를 키워 그 붉은 5월을 드러내었다.

대학에 들어가서야 광주를 알았다. 4.19를 아는 것 만으로도 이상한 아이 취급을 받았던 시절에 광주는 충격을 넘어 분노였다

민주광장에 모여 성명서를 읽고 학생회 선배들을 격문을 쏟아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어갔는지를 이야기했다. 얼마나 많은 대가리들이 처절하게 떨어졌는지를 이야기했다. 그 때 신입생 하나가 천천히 앞으로 걸어나갔다.

"광주에서 왔습니다. 지금 선배들께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었는지 이야기하셨습니다. 우리 오빠가 총에 맞았습니다. 몇백이 죽고 몇천이 죽고 그게 다 무슨 소용입니까? 목숨은 하납니다. 모두에게 공평하게 말이죠. 대체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한 사람에게 하나씩밖에 없는 목숨. 그것을 잃은 것입니다. 단 한사람이 죽었어도 모든 걸 잃은 겁니다. 아시겠습니까? 숫자로 분노케 하지 마십쇼. 숫자보다 더 큰것을 빼앗긴 겁니다."라고 했다.

울먹이긴 했지만 끝내 울지 않고 우리들이 분노하는 허상에 분노하였다. 숫자가 대체 뭐란 말인가. 한 사람이 죽으면 분노의 양이 줄고 수천이 죽으면 분노의 양이 더해지는가..나는 그 자리에서 울었던 것 같다. 나의 분노게이지는 대가리 수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었는가 반문하다 마땅한 대답을 내놓지 못했던 까닭이다.


그 후로 오랜 시간이 흘렀다.

전설을 이야기하듯 회고하는 이야기들이 술집에서 이어졌다. 회한으로 동지가를 부르고 님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는 것으로 오르가즘도 없을 자위를 하며 지낸다.

술집 밖에선 여전히 노동자들이 죽어가고 쫓겨가고 쓰러지고 있지만 경계에 서서 머뭇거리는 나는 여전히 술집으로 발길을 잡아 한탄과 자괴감에 취할 뿐이다.

지나쳐 온 시간을 아이들은 역사시간에 현대사로 배운다.

4.19를, 5.18을, 6.10을..

그 시간을 살아낸 사람은 '그런 일이 있었어'라고 진술한다.


시집을 읽어내는 건 고역이었다. 취조실에 앉아 작성된 진술서를 살피며 반절씩 접어 진술이 틀리지 않았음에 동의하는 지장을 찍어야 할 때처럼 말이다.

얼마나 많은 형을 받게 될지는 모를 일이나 죄 많은 대가리를 목 위에 얹고 있는 한 감내해야 할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너무 많은 목숨을 잃었다. 너무 많이 잃어서 누가 죽었다는 기사를 보며 '전엔 300명도 죽었는데 뭘..'이라는 잔혹한 생각을 하게 되는 건 아닌지.

그렇게 세상과 권력의 공범이 되어가는 건 아닌지..두렵다.

비탄에 빠진 세상은 넋두리가 구하지 못할거다. 수없이 던져진 저 대가리들이 씨앗이 되고 꽃을 피우고 소리보다 강력한 반란의 향기가 되어 세상에 그득해질거다.

지금은 술집을 나서야 할 때다.

어여쁜 대가리들은 만나야 할 때다.

참혹하게 떨어졌으나 부릅 뜬 눈 감지 않은 그 대가리들과 마주할 때다.


5월이다.

자책과 자괴가 서로 먼저 죽겠다고 가슴 속에서 광란을 하고 있다.

살아있어야 할 대가리. 목소리를 내는 대가리가 되어야 한다. 큰 목소리를 만들어 아직 병원에 누워있는 백남기를 깨우자.

더 큰 목소리를 만들어 이익의 제물로 목숨을 내놓아야 하는 노동자들을 끌어안자.

막막한 현실에 더는 내려갈 곳도 없는 곳까지 숙여야 하는 대가리. 어차피 한세상이라면 빳빳하게 들고 들이대보자.

혹시 아는가.

참 대견한 대가리네..라며 누군가 쓰다듬어줄지..


고희림을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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