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미자 하나가

    - 식민지 시절, 식민지 아동인 내 어머니가 일본풍 계면 가락에 맞추어 줄넘기를 하며 부르던 노래


천전소학교 여자 선생님

자기 부모 없는 사람 손을 들어라

육십 자 아동 그 안에서

박미자 하나가 손을 들었다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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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 시절을 지냈던  4남매의 맏이, 엄마는 집안의 기둥이었다고 했다. 지주의 딸은 아니었지만 아비가 남긴 재산이 있어 굶지는 않았고 주머니엔 사탕이 있었다고 했다. 아비 없는 살림을 어찌해야 할지 고민에 고민을 하던 외할머니는 아비의 죽마고우에게 재산을 의탁했고 아비의 죽마고우는 죽마를 부러뜨리고 야반도주를 했다.

하루 아침에 거렁뱅이가 된 외할미와 엄마와 엄마의 동생들은 갈월동 한복판에서 대여섯개 남은 보따리를 보며 망연자실했다고 했다. 해방이 되기 얼마전의 일이라고 했다. 엄마의 아비는 창씨개명도 했었다고 했다. 하루아침에 게이꼬가 되었던 엄마는 낯선 이름에 자주 대답하지 않았고 그럴때마다 외할아버지에게 혼이 났었다고 했다. 나라의 독립이라든가 민족의 자존심이 없어서 창씨개명을 한 것이 아니라 올망졸망 새끼들이 다칠세라 숨죽인 결과였다고 했다. 엄마는 그 이야기를 할 때마다 그랬다.

'느이 외할아버지가 친일파나 앞잽이는 아니었어 얘. 집에 숨어든 사람들은 꼭 밥 먹이고 재워서 흔적없이 고스란히 보내곤 했어. 말 잘들으니 감시가 덜했고 그게 어떻게 보면 여럿 살리는 길이 되기도 한거지. 할아버지 부끄러워마라. 내 아비래서가 아니라 좋은 분이셨다.'

해방이 되고 찾은 이름 경숙은 반가웠다고 했다. 게이꼬는 어쩐지 꼬집히는 것 같은 이름이라 싫었다고 했다. 철없는 이모는 영숙이보다 에이꼬가 좋았다고 중얼대다 엄마에게 머리카락 한 줌을 뽑혔다고도 했다.

살길이 막연했던 맏이는 영민하게 움직여 하꼬방 하나를 얻고 외할머니와 장사를 하며 단단한 기둥이 되어가기 시작했다고 했다.

숨 쉴만 하니 전쟁이 일어났다고 했다. 집에 남자라곤 없으니 이고지고 피난 갈 염도 못하고 구구로 집구석에 숨어 있었단다. 어린 남동생들은 너무 어려 힘을 보태기는 커녕 오히려 손이 가고 힘이 가는 동생들이었다.

사람들이 피난을 떠나고 몇 남지 않은 동네에서 이모는 고무줄 놀이를 했단다.

철없는 것..엄마는 힐난했지만 땀을 콩죽같이 흘리며 끝없이 고무줄 위를 뛰는 이모가 가여워 같이 고무줄을 했다고 했다.

'하다보니까, 내가 더 잘했지 뭐니. 느이 이모가 울고불고..호호..기집애가 샘은 많아가지고 언니면 다냐고 달려드는데..호호'


엄마는 고무줄 놀이를 하며 불렀던 노래를 가끔 부르곤 했었다.

'장백산 줄기 줄기 피어~린 자욱..'

내가 어릴 때, 나는 고무줄을 하며 이런 노래를 불렀다.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앞으로 앞으로..'


줄넘기, 고무줄을 할 때 부르는 노래들. 엄마와 나와 시인의 어머니가 부른 노래는 고스란히 상처의 역사이다.

선화공주를 얻기 위해 서동이 깜찍하게 유포(?)했다는 서동요는 현실이 되었다. 아이들이 불러대는 노래는 상징이었다.

내용이 무엇인지 어떤 가락인지 따위는 사실 중요치 않았다. 시름을 덜어내고 위로를 받고 하는 것은 어른의 몫이었고, 아이들은 그저 노래를 부른것이다.

다행이라고 생각되는 것이다.

그 내용과 이데올로기까지 송두리채 알아버렸다면 얼마나 참혹했을까.

장백산을 불렀던 엄마는 빨치산이 아니었고,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던 나도 반공주의자는 아니다.


허수경 시인의 청동의 시간 감자의 시간은 '발견'과 '교감'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먼 시간 전에 이미 있었던 것들이 '발견'되는 순간 시간을 건너 '교감'하게 되는 것.

절창이라 할만한 시들이 많았지만 나는 이 시 앞에서 꼬질꼬질한 옷차림에 바가지머리를 한 여자애를 발견했다. 지금은 엄마, 혹은 할머니라는 이름으로 불리우고 있는 그녀의 어린 시간을 말이다. 보듬고 쓰다듬고 끌어안고 싶어졌다.

쓰라리고 따갑고 위험한 시간의 길을 걷느라 깡총깡총 뛰었을 ..비명 대신 내용이 무엇이든 상관없는 노래를 불러야 했을 어린 여자애를 말이다.

아이들은 노래한다.

노래는 아이들이 한다.

가장 솔직하고 가장 적나라하게 어떤 시기를 이야기 한다.

아이들의 곡조는 여전히 상처다.


어버이날이라고 깜짝 방문한 아들녀석이 종일 흥얼대던..곡조가 머리 속에 맴돈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

거짓은 참을 이길 수 없다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우리는 포기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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