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만에 비슷한 시간에 또 다시 교실 바닥이 흔들렸다.

아이들은 비명을 지르고 이내 환호성을 지르기도 했다.

'지진이예요. 집에 가요~!!'

수업을 중단하고 집에 갈 수 있다는 사실에 신이 난 아이들..해맑다고 해야할지.

한 선생님이 그랬다.

"애들이 철이 없어서 큰일이네. 이게 좋아할 일이야?"

분명 좋아할 일이 아니다. 하지만 아이들이 위험에 둔해지도록 기른 이들이 할 말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극단적인 상황이 되어서야 발버둥치게 만들어 둔 셈이다. 안전에 대한 민감성은 없으며 위험에 대한 지각도 없다.

아이들을 내보내고 집에 오면서 마음이 개운치 않았다.

그동안 자잘하게 발 밑을 간지르던 여진들. 그 작은 움직임들이 만든 피로감은 스트레스라고 해도 과하지 않다.

원전은 안전하다고 한다.

정말?

사람조차 계속되는 작은 지진에 예민할대로 예민해지는데..조금씩 계속 흔들렸을 건물이 안전할거라고 장담하다니..

 

잦아들 거라고 한다. 혹은 진도 7정도의 큰 지진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한다.

큰 탈은 없을거라고 한다. 혹은 원전을 재점검해야 한다고 한다.

별 일 아닌데 호들갑 떨지 말라고, 일본만큼 지진이 잦은것도 아닌데..땅이 쩍쩍 갈라지는 것도 아닌데..별스럽게 군다고 타박하는 이도 있다.

분명히 말하지만..호들갑 떨어야 한다.

오버하지 말라고 그러다 별것 아니면 뻘쭘하지 않겠냐고 한다.

뻘쭘해도 좋다. 충분히 오버해야만 한다. 불안증 아니냐고 되물어도 할 수 없다.

 

생각이 많아진다.

아이들에게 "괜찮아. 금방 괜찮아질거야"라고 말하지 않겠다.

안심시키지 않겠다.

 

괜찮지 않을 수도 있어.

더 나빠질 수도 있어.

상황이 벌어졌을 때, 주저하지 말고 탈출할 수 있도록 위험에 예민해지라고 말해야겠다.

 

귀가준비를 하는 내내 해맑게 웃고 떠들던 아이들이 두려움에 떠는 아이들보다 더 큰 책임과 어떤 자책으로 남는다.

어쩌자고 아이들을 저렇게 키웠을까..우리는.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cyrus 2016-09-20 17:1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이들이 어른보다 감정이 예민해요. 그리고 자신들이 느낀 감정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려고 해요. 감정 표현을 자제하려는 어른과 무척 대조적인 모습이죠. 그래서 어른이 아이의 감정 표현을 억제하고, 무조건 다그치는 것이 좋지 않다고 생각해요. 오히려 그게 아이들이 자라면서 지워지지 않은 트라우마가 될 수도 있으니까요.

2016-09-21 09: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하필이면 영상수업을 하고 있었다. 조명을 끄고 아이들은 이미테이션게임과 아이리스, 포뇨 등에서 발췌 편집한 모스부호에 대한 영상을 보고 있었다.

바닥이 흔들렸고 아이들은 이내 '뭐야? 뭐야? 누구야?'를 외치며 누군가 책상을 흔들었을거라 짐작한것 같다. 아니면 정말 그 온몸이 흔들리는 진동이 실제 지진이라는 걸 의심조차 하고 싶지 않은 두려움일지도 몰랐다.

서둘러 불을 켜고 아이들을 진정시켰다. 무슨 상황인지 알아야 하는데..국가안전처의 문자도 없고, 카톡은 안되고, 포털은 자꾸만 느려진다.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책상위를 정리하고 아이들과 잠깐 이야기를 했다. 서두르지 말고 질서를 지켜야 한다고 등등.

아이들은 곧 진정되었다. 귀가차량을 수배하고 있던 차에 다시 한 번 진동이 시작되었다.

책상위에 올려둔 커피가 잔 밖으로 쏟아졌다. 흔들림이 이전보다 강했다.

아이들은 급기야 비명을 질렀고 가방을 준비하도록 지도한다.

한줄로 내려가자. 차량은 아직 도착하지 않았지만 나가야했다.

한명씩 빠진 아이는 없는지 교실마다 단속하고 전기코드를 빼고 불을 끄고 밖으로 인솔해 나왔다.

밖엔 더 아수라장이다. 퇴근하는 사람들, 앞선 지진에 귀가하는 사람들, 어디론가 전화를 걸어보지만 연결이 되지 않자 화를 내는 사람들..

재난문자는 도착하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와 티비를 켰다. 뭐 어디 지진 이야기하는데가 없다. 대피요령이고 뭐고..딱 한군데서 지진 특보를 하고 있었다.

젠장..

 

SNS를 통해 지진상황을 읽는 게 빨랐다. 어디선가는 아이들을 귀가시키지 않았다고도 했다.

아이들뿐이겠는가..야근하던 노동자들도 여전히 일을 했을거고, 대목을 맞은 마트도 혼잡했을거다.

어디든 한 군데라도 무너져내렸으면 대형참사가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게다가..가장 두려운 건 원전이다.

 

'원전엔 아무런 피해가 없었다'는 말을 믿을 수 없는 현실이 두려움의 근원일지도 모른다.

도대체 국가안전처는 뭐하는 곳이며, 국가의 대응은 어째서 이토록 부실한 것이며 기승전북한의 이 어이없는 소리는 언제까지 들어야 하는 것인지..참담했다.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가는 책들..

더 말 해 무엇하겠나. 깊게 새겨진 화인같은 국가적 트라우마가 작동한대도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cyrus 2016-09-13 19: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하필 연휴가 다가오는 시점에 지진이 일어나서 고향에 가도 찝찝한 마음을 지우기 힘든 분들이 많아요. 그래도 연휴에 웃으면서 보냈으면 좋겠어요. 즐거운 연휴 보내세요. ^^


나타샤 2016-09-13 20:12   좋아요 1 | URL
네..넉넉한 명절 보내시길 바래요~^^
 
물결의 비밀 - 아시아 베스트 컬렉션 아시아 문학선 15
바오 닌 외 지음, 구수정 외 옮김 / 도서출판 아시아 / 2016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한동안 신화를 읽었다. 북유럽신화와 이제 징글징글하기까지 한 그리스로마 신화, 그리고 아프리카와 중동의 신화 그렇게 넘나들던 신화탐험(?)은 곧 동아시아 신화로 이어졌다. 굳이 동아시아로 구분할 것도 없이 하나의 이야기 속에 얽혀지고 파생되는 내용은 아시아 전반으로 스며들곤 했다. 신의 이야기와 사람의 이야기의 경계가 모호해질 때쯤 물결의 비밀을 읽게 된다.

인도 베트남 대만 필리핀 태국 중국 일본 터키의 작가들이 쓴 12편의 이야기. 구미가 당기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사실은 '곡쟁이'때문이었다. 마하스웨타 데비의 글. 사실은 익숙하지 않은 작가이다. 그의 작품의 결과 향을 짐작도 할 수 없었다. 그도 그럴것이 인도의 작가라고 하면 다들 아는 그런 분 .

사실 어느 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온전히 이해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각국의 특수성이라는 것이 만만치 않으니 말이다. 마치 정글의 식물들이 비슷비슷해보이지만 저마다 다른 종이며 다른 뿌리를 갖고 있는것처럼..하지만 그 나라에 대한 이해가 선행하지 않는다면 그 나라의 문학을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문학에 대한 이해가 편협한 탓일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혹여 그 나라를 이해하지 못한대도 느껴지는 문학이라면 특수성을 좀 살펴보고 재독했을 때 분명 이전엔 느끼지 못했던 강렬함을 느끼게 될것이다.

인도는 내게 아프고 강렬한 나라라는 이미지로 자리했다. 식민지배를 거쳤고, 신분제도와 오랜 가난, 이제는 양극화가 되어버린 부패한 정치가들이 국민들을 유린했던 어쩌면 우리나라와 참 닮은 구석이 많은 나라로 느껴지곤 했다.

데비의 글을 읽으며 거부감도 없이 이입이 되었던건 아마 그런 이유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어딘지 닮아서 고스란히 느껴지는 슬픔.

감상이나 감정의 발현이 아닌 '슬픔'과 '상실'의 본질을 마주보게 하는 데비의 글은 제목때문인지 울음소리가 되어 맴돈다.

모든 것을 잃은 여자가 살아가는 법. 더는 잃을 게 없어보이지만 눈치채지 못할 뿐 시간을 자꾸만 잃어간다.

"사니차리가 느낀 감정은 무엇일까? 슬픔? 아니 그것은 슬픔이 아니라 두려움이었다.남편도 죽고, 아들도 죽고, 손자는 떠났고, 며느리는 달아났다. 그녀의 삶에는 항상 슬픔이 함께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강렬한 두려움은 이제껏 느껴본 적이 없다. (...)사니차리가 이런 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그 때문이다. 결국 왜냐고? 왜냐하면 사니차리는 늙었기 때문이다. (p237)"


표제작인 물결의 비밀..베트남 작가의 지 패오..자꾸만 가슴에 맺히는 것들이 있다.

동양의 정서라고 단순하게 단정짓기는 무리가 있는, 어쩌면 비슷한 역사를 품은 민중의 삶이라서 그랬을지도 몰랐다.

어쩌면 색만 달라졌을 뿐 밑그림은 여전한 것을 깨달았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조금도 달라지지 않는 질곡의 삶. 그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적어낸 글들이 순박하고 예리하다.


책을 덮으며 아쉬웠다.

"내 맘대로 써도 되는 용돈이 좀 있으면 잔뜩 사서 나눠주고 싶어" 하는 생각이 든 까닭이다.

그럴 여유도 뭣도 없으니 아쉽기는 했다. 친구가 물었다.

 "그마이 재밌드나?"

"응. 꼭 읽어봐" 라고 대답했다.

어설프게 이러저러하다고 말하고 싶지 않았다.

외할미의 된장국이 어떤 맛이었는지 설명할 방도가 없듯이 말이다. 떠먹어봐야 알지..


누군가에게 책을 권한다면..당분간은 주저없이 이 책을 권할 것 같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cyrus 2016-09-12 16: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곡` 하면 허난설헌의 시가 생각납니다. 시 제목이 `곡자`인데 아들의 죽음을 슬퍼하는 내용이거든요. 그래서 나타샤님이 소개한 `곡쟁이`가 어떤 내용인지 궁금해서 읽어보고 싶어요. ^^

나타샤 2016-09-12 17:05   좋아요 0 | URL
카스트 하급의 늙고 혼자 남은 여자의 이야기예요..상 당한 부잣집에 곡을 해주고 댓가를 받죠..여기까지만^^

보리숲 2016-09-13 13: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너무 읽고 싶어지는 리뷰예요!

나타샤 2016-09-13 13:12   좋아요 0 | URL
권해드려요..^^ 명절 잘 쇠세요!
 
1923 경성을 뒤흔든 사람들 - 의열단, 경성의 심장을 쏘다! 삼성언론재단총서
김동진 지음 / 서해문집 / 2010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영화 '밀정'이 개봉했다.

1920년대 일제 강점기 조선인 출신 일본경찰 이정출은 무장독립운동 단체 의열단의 뒤를 캐라는 특명으로 의열단의 리더 김우진에게 접근하고...

포털사이트에 나온 줄거리의 시작부분이다.


이 이야기의 실제 인물들의 무력독립투쟁의 이야기, 그들의 결기가 고스란히 느껴지는 책이다.

근래들어 독립운동가 개개인의 삶이 재조명되는 책들과 영상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훌륭한"이라는 말로는 도무지 설명이 다 되지 않는 그들의 염원과 투쟁은 한 자씩 또박또박 짚어가며 읽어도 지나치지 않을것이다.

일본경찰 출신의 황옥, 의열단의 수장 김원봉. 그리고 김상옥의 이야기, 이 싸움에 뛰어든 수많은 사람들과 몽골에서 의롭게 죽어간 이태준, 외국인이지만 폭탄을 제작해주기 위해 위험을 무릅썼던 마자르. 조선혁명선언을 집필한 신채호.

보도는 통제 되었고, 무력통치에서 문화통치로 더 교묘해진 일제의 지배전략하에서 독립운동의 다양한 양상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저들과 협상을 하려는 사람들, 이간책에 넘어가 투항하고 밀정이 된 사람들, 나이브한 문화선전으로 돌아선 사람들, 더 이상의 희망을 찾지 못하고 떠나버린 사람들..

그 속에서 더는 협상도 타협도 없다고, 저들과 무력으로 맞서 싸우겠다고 일떠선 사람들. 의열단.

사격훈련을 받고 폭탄 투척 훈련도 받고, 보안을 철저히 지켜가며 어떤 상황이든 조직과 독립을 위해 한 목숨을 내 놓을 각오가 되어있는 사람들의 움직임이 시작된다.

암살과 폭파. 그것으로 적들에게 타격을 입히고 조선 국민들에겐 희망과 용기를 주어 독립의 길로 이끌고 가겠다는 담대한 사람들이다.

조선 내 주요 건물에 폭탄을 설치 투척하여 일시에 타격하겠다는 의열단의 계획. 계획을 세우고 자금을 모으고 사람들을 모으고 제작된 폭탄을 국내로 들여오기까지 매 순간이 고비이고 간담을 서늘케 한다.

이 과정에서 조선이지만 일본 경찰에서 주요 위치를 차지한 황옥의 역할은 대단했다. 양쪽 모두에게 의심을 받으며 양쪽 모두에게 필요했던 사람.

의열단을 와해시키려 혈안이 된 일본 경찰. 의열단의 활약은 실로 대단했다.

특히나 사이토총독을 저격하기 위해 입국했던 김상옥의 이야기는 마지막 한순간까지 치열하게 싸워낸 이야기는 어떤 자책을 갖게도 했다.

이렇게까지 해서 지켜낸 나라인데. 어째서..


1919년부터 1923년까지 길지 않은 시간동안 파상적이고 입체적인 독립운동이 일어나고 있었다. 막연하게 숨어서 도망다니며 아슬아슬하게 선전하는 것이 아니라 다각적으로 조직이 만들어지고 움직이고 실행했다. 모진 고문과 협박에도 단 한명의 동지의 이름도 말하지 않았던 그들. 그들의 입을 막은 건 동지애를 넘어선 애국심이었다.

단 한명도 잃지 않겠다는, 그리고 그런 싸움들이 조국 독립의 불씨라는 확고한 신념. 모든 걸 내 놓고 목숨으로 싸운 사람들.


대단하다.

라는 생각보다 긴 한 숨이 먼저 새어나왔다. 그들의 후손은 아직도 궁핍하고, 그들이 지켜내려했던 주권은 너덜너덜해지지 않았는가.

밀정을 봐야하나? 생각이 길어진다.

책 한 권으로 읽어낸 그들의 이야기에도 이렇게 몸서리가 쳐지는데..실제로 움직이며 보여진다면 얼마나 이가 갈릴까..


사무실에 가져와 책꽂이에 꽂아두기로 한다. 아이들이 읽기에도 더없이 좋겠다.


대통령은 오늘 아베를 만난다고 했다. 위안부 이야기를 꺼낼까? 독도 이야기를 꺼낼까? 일제강점기에 대한 이야기를 꺼낼까?

우리에게 '의열단'이라는 강력한 투쟁조직이 있었다는 것이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한다. 그 정신이 그 결기가 시퍼렇게 느껴진다.

그런 조직이 또 다시 생긴다해도 하나도 이상하지 않을 정국이라는 게 참담할 뿐이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보리숲 2016-09-08 15: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밀정 보고 와서 글을 보게 되네요. 의열단 목숨의 무게 하나하나가 무척 무겁게 느껴졌습니다.

나타샤 2016-09-08 15:53   좋아요 0 | URL
아..보셨군요..보고싶은데 자꾸 주저하게 되네요.
 
달방 있습니까 오늘의 청소년 문학 17
송현승 지음 / 다른 / 2016년 8월
평점 :
절판


달방. 숙박업소에 한달씩 대여해서 쓰는 방을 보통 달방이라고 한다. 집을 구하기 어려운 이들이 선택해야 하는 볓 안되는 선택지 중 하나인 달방.

달방이라는 말을 오랜만에 듣는다. 사실 대학가 주변에 자취하는 아이들을 보면 거의 달방에 가까운 시스템으로 살고 있는 아이들도 있다. 보증금없이, 혹은 한달치 정도의 임대료를 보증금으로 내고 지내야 할 기간만큼의 임대료를 미리 내고 사는 전세도 월세도 아니고 깔세라고 부른다고 했다.

집이 없음. 저만치 달려갔다 돌아올 회귀점이 없는 일상은 얼마나 고단할까. 어떤 형태로든 고단한 몸을 누일만한 안전한 공간을 갖는 건 중요한 일이다.

그것이 성인이건 가출 청소년이건 간에..

제목만 보고 임대형태에 대한 이야기일까? 싶었다.

청소년 소설 두 아이의 가출과 귀가에 대한 이야기다.

왕따를 당하는 아이, 힘 센 아이에게 당하는 폭력과 무시와 상납. 피폐해질대로 피폐해진 아이를 보듬어 줄 어른이 없었다. 돈을 벌어오는 것으로 의무를 다한 부모는 약해빠진 아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리고 또 한 아이. 소리를 가르치려는 아버지와 신내림을 받으라는 어머니 사이에서 아무것도 선택할 수 없는 아이.

두 아이가 감행한 가출.

도망치듯 빠져나온 집. 어떻게든 살아내겠다고 아이는 혼자 분을 삭이며 만들었던 나무 조각을 팔기로 했고, 여자 아이는 칭찬 깨나 들었던 판소리를 하며 사람들을 불러모았다. 그리고 그 아이들이 찾은 집의 대안 '달방' 너무 어려서 들어갈 수 없게 되자 근처의 노숙인을 보호자라 속이고 방을 얻어 생활하게 된다.

여자 아이의 공연은 SNS를 통해 알려지고 아이를 못살게 굴던 일당(?)들에게 위치를 발각당한다. 결국 위기에 처해지지만 또 다시 도망을 치게 되고 촌으로 숨어든다. 거기서 만난 사람들의 도움으로 힘도 기르고 마음도 기르고..그러다 아버지의 임종 소식을 듣게 된다. 그렇게 되돌아 온 집. 상황은 그다지 달라지지 않았지만 아이가 달라졌다.

아이를 못살게 굴던 힘 센 녀석들도 혼내주고 제가 당한만큼 설욕하는데 집중한다. 이런 모습을 같이 동행했던 여자아이에게 자랑스레 보여주지만 오히려 훈계를 듣게 된다.


청소년 소설이라고 하지만 사실 얼마나 아이들이 공감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가출의 동기와 그 후의 생활, 그리고 귀가하기까지의 과정이 점잖다. 오래전 가난이 싫어서 가출하던 시절의 이야기를 닮았다. 요즘의 아이들이 가출을 하는 수백가지의 이유와 가출 후에 맞딱뜨리게 되는 현실은 생각보다 위태롭다. 극단적이기까지 하다.

소꼽장난처럼 알콩달콩 하기까지 한 이야기에 살짝 갸우뚱해졌다.

왕따의 문제도 가출 충동도, 귀가 후의 일상도 부대낌 없이 이어진다. 작가의 필력이거나 현실감의 살짝 떨어지는 탓은 아닐까 싶어졌다.


매일처럼 또래의 아이들과 부대끼는 직업을 갖고 있는지라 아이들의 성향과 반발심, 그리고 그것을 눌러 참는 지난한 과정을 체감하고 있다.

아무도 이해하지 못할 그 들끓음을 단지 믿고 기다려줄 수 밖에 없는 무력함을 시시각각 느끼면서 말이다.


아이들이 읽으면 어떨까? 싶어서 사무실에 두기로 한다.

아이들에게 내어놓을 책이라 꼼꼼하게 읽는다. 조금 싱겁게 느껴진것이 나이듦으로 인한 혼탁한 마음 때문일거라고 애써 위로해본다.

또래의 아이들에겐 어떤 대리만족이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예민할데로 예민한 아이들에겐 이런 두루뭉실한 쓰다듬음도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착하고 얌전한 가출기 같은 느낌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