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소크라테스는 위로 하늘에있는 것과 아래로 땅 아래에 있는 것을 탐구하고, 신들을 믿지 않으며,
궤변을 정설로 둔갑시키는" 자라고 말합니다. 그들은 사실 아무것도 알지 못하면서도, 자신들이 무엇인가를 아는 척하다가 무식이 탄로났다는진실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입니다.

내게 유죄판결을 내릴 것입니다. 내가 유죄판결을 받는다면, 그것은 멜레토스나 아니토스 때문이 아니라, 많은 사람의 모함과 시기 때문일 것입니다. 지금까지 수많은 선한 사람이 그런 모함과 시기로 유죄판결을받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즉, 어떤 사람이 스스로 좋다고 생각해서든, 아니면 지휘관의 명령을따른 것이든 어느 자리에 있게 되었다면, 그는 죽음이나 다른 어떤 것보다도 치욕을 가장 중시해서, 죽음을 비롯해 온갖 위험에 맞서 그 자리를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

어떤 사람이 죽음을 두려워한다면, 그는 지혜로운 것처럼 보여도 실제로는 지혜롭지 않으며, 무엇을 아는 것처럼 보여도 실제로는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에게 허락된 모든 복 중에서죽음이 최고의 복일지도 모르는데, 사람들은 마치 죽음이 최악의 재앙임이 확실한 것처럼 죽음을 두려워합니다. 그런데 자기가 알지도 못하는 것을 안다고 생각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비난받아야 할 무지가 아닐까요?

내가 진실을 말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충분한 증거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나의 가난과 궁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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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자리를 떠나면서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우리 두 사람 모두 대단하고 고상한 무엇에 관해 아는 것이 전혀 없는 것은 동일하다. 하지만 그는 아무것도 모르면서도 자기가 무엇인가를 안다고 착각하는 반면에, 나는 그와 마찬가지로 아무것도 모르지만 내가 무엇인가를안다고 착각하지는 않는 것을 보니, 내가 그 사람보다 더 지혜롭기는 하구나. 나는 내가 알지 못하는 것을 안다고 착각하고 있지는 않기 때문에,
적어도 이 작은 것 한 가지에서는 내가 그 사람보다 더 지혜로운 것 같아보이는군.‘,

최고의 명성을 지닌 사람들은 대체로 결함이 아주 많아 보였고, 그들보다못나고 부족하다고 여긴 사람들이 더 나은 분별력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나는 그 신탁이 과연 그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을 정도로 틀림없는것인지를 확인하기 위해 내가 걸어야 했던 고된 여정을 여러분에게 설명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그자리에 있던 다른 모든 사람이 그 시들을 직접 쓴 시인보다도 그 시들에대해 더 잘 설명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시인들과 관련해서도 이내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것은 예언자들이나 선견자들이 훌륭한 것들을 많이 말하기는 하지만, 자신이 말하는 것을 전혀 이해하지못하는 것처럼, 시인들도 지혜가 아니라 어떤 타고난 본능과 외부로부터주어지는 영감을 이용해서 자신의 작품을 만들어낸다는 것이었습니다.

훌륭한 장인들조차도 시인들과 똑같은오류 속에 빠져 있는 것이 내 눈에 보였습니다. 그들은 하나같이 자신의뛰어난 기술 덕분에 다른 중요한 일들에서도 매우 지혜롭다고 생각했고,
그러한 오류는 그들에게 있던 지혜마저도 가려버렸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들의 지혜와 무지 그 어느 것도 가지지 않은 현재의모습으로 계속 살아가는 쪽을 선택할지, 아니면 그 둘 모두를 가진 모습으로 살아가는 쪽을 선택할지를 놓고 신탁을 구하기 위하여 자문해보았습니다. 신탁이 준 대답은 현재의 나의 모습으로 계속해서 살아가는 쪽이 더 낫다는 것이었습니다.

신께서 소크라테스라는 나의 이름을 언급한 것은 나에 대해서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단지 나를 하나의 본보기로 사용해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과 같습니다. "인간들아, 소크라테스처럼 자기가 지혜에 관해서는 실제로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아는 자가 너희 중에서 가장 지혜로운 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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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리워할 사람도 없노라, 했다. 말하자면 그것이그의 환멸이었다. 환멸의 정체였다. 그리하여 이미 스물이넘어 징그러운 사내가 되어 버린 그는 "아아, 조선아! 조선에 있는 모든 사람아, 모든 물건아! 하나도 남지 말고 죄다내 기억에서 스러져 버려라!" 울부짖을 수밖에 없었다.

 이광수는 신채호가 "춘추의 필법을 고대로 사는 사람"
이어서 터럭 끝만치도 타협이 없으며, 그의 몸은 어디를 두드려도 민족‘ 소리가 나고 어디를 찔러도 애국의 피가 흐를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광수는 그런 그를 또 한 사람의 원로 사학자 백암 박은식과 마찬가지로 스러지는 조선의 그림자‘ 라고 평하지 않을 수도 없었다.
새삼, 상하이는 남의 땅이었다.
그리고 그 남의 땅에서, 문학 따위는 급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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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나는 독서를 포기하지 않았다.
내 아무리 젠체해도, 내 아무리 고통스럽다 한들, 그렇다.
내 싸움이 육사나 단재만 하랴. 내 가난이 서해만 하랴. 내결핵이 유정만 하랴. 죽음을 희롱했기로서니 이상만 하랴.
그들은 봉건과 식민의 이중 굴레에서 벗어나려 고투했고,
그와 동시에 제 이름을 걸고 글을 썼다. 남의 것이 아닌 제나라 제 민족 고유의 무엇을 만들어 내야 하는 의무감도 상당했을 텐데, 어쨌든 쓰고 또 썼다. 

여기서는 그저 작가로서 그들이 꾸려 가던 인생의 어느 한 장면에 초점을 맞추었다. 밉든 곱든 그것이 그들을 새삼 기억하게 하고 그들에게 관심을 갖게 하는인생 사진‘ 한 컷이기를 바라면서.

 일단봉천(펑톈, 현재의 선양)행 기차를 타고 돈이 자라는 데까지간 다음, 걸어서 베이징까지, 거기서 다시 중국 남방을 거쳐안남(베트남), 면전(버마), 섬라(타이)를 지나고, 인도를 두루 돌아 파사(페르시아)와 소아시아로, 그리고 구라파(유럽)보다는 아프리카로 방향을 틀어 아비시니아(에티오피아)와애급(이집트)을 보고 대륙을 종단하여 희망봉까지 내려가는것. 도대체가 이 말도 안 되는 세계일주 프로젝트‘의 동기에대해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거기서 쇠망한 민족들의 정경도 보고, 또 그들이 어떤 모양으로 독립을 도모하는가 보고 싶었다. 그 속에서 내가 나갈 길이 찾아질 것 같았음이다."
그러나 이런 진술은 먼 훗날에나 가능한, 일종의 허세이거나 구차한 변명이었다. 

그는 아버지보다 거의 스무 살이나 어린 어머니가 입에다가 아주까리기름을 한입 물어서 아버지의 항문에 대고 불어 넣는 것을 본 적이 있었는데, 그런 정성으로도 무너지는 집안의 기둥을 다시 일으켜 세울 수는없었다. 그때부터 소년 이보경(이광수의 아명)에게 생이란 오직 목구멍을 위한 처절한 비루의 연속일 뿐이었다.

‘ 이런 처지에서 그의 망명 동기는 말이 좋아 세계일주였지, 정확히는 생에 대한 환멸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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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20세기로넘어가면서 작가들은 겉으로 보이는 세상을 그대로 묘사하는 방식으로부터 더욱더 멀어진다. 맨 처음으로 돌아가 흰 종이, 빈 캔버스에서 시작한다.
어떤 방식으로 볼지는 점점 더 어려운 문제가 되고, 아무것도 그리지 않는 게 그 자체로 새로운 예술이 되었다. 새로운 시대가 열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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