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일기를 쓸 때 제야는 단어의 한계를 답답해했다. 단어들은 너무 납작하고 단순해서 진짜 감정의 근처에도 닿지 못했다. 바람이나 햇살, 풍경과 냄새를 표현할 때도 궁핍했다. 입체를 평면에 구겨 넣는 것만 같았다.

이상하게 꼭 사과해야 할 사람은 사과하지 않고 사과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이 사과를 하고그런다. 동우는 편지를 쓰고 싶었는데 결국 쓰지 못했다

제야는제니가 부러웠다. 글을 잘 쓰는 제니도 부러웠지만, 싫어요‘라고 말하는 제니가 더 부러웠다. 어른들은 제야를 보고 만이라서 의젓하다고 했다. 제니에게는 막내라서 철이 없다고 했다. 제야는 그런 식의 구분이 싫었다. 그런 말로자기를 싫어요‘라는 단어에서 멀리 떨어트려놓는 것만같았다.

일어난 일은 종이가 아니니 찢어도 태워도 없어지지 않고 없던 일이 되지도 않을 것이다. 하지만 없애버리고 싶었던 일로 만들고 싶은 건 엄마도 아빠도 마찬가지인것 같은데 말도 안 되는 방법을 쓰고 있다. 내게 모든 걸떠밀고 나를 없애버리고 있다. 지금의 나를 쓰레기로 만들어 쓰레기통에 버리면서 다 나를 위해서라고, 내 미래를 위해서라고 말하고 있다. 내가 찢어버리고 싶은 건 내가 아니다. 그런데 내가 찢어지고 있다. 

어째서 당하고만 있었는지. 어째서 부끄럽지 않고 고통스러운지. 당신들이 지금 이해하지 못하는 그 모든 것들, 설명을 요구하는 그 모든 의심들, 설명해봤자 핑계나 변명으로 듣는 걸 알아. 어째서 내가 변명을 하나. 변명은 가해자가 하는 것 아닌가. 당신들에게 나는 가해자인가..
나는 부끄럽지 않다. 그건 내 감정이 아니다. 내겐 아무잘못이 없다. 아무 잘못이 없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